민남현, 『성경의 노래, 바오로딸, 2012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주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에페 2,4-9)

성경을 읽다 보면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신 은총이 우리의 노력으로가 아니라 순전히 하느님께서 거저, 공으로 주신 커다란 선물이라는 것을 반복하여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공짜를 좋아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셔서일까? 그러나 우리 사이에 또 이런 말도 엄연히 존재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하느님이 주시는 공짜가 세상의 공짜와는 전혀 다른, 진짜 공짜라는 것을 알아듣기가 어려운 것 같다.

어쨌든 우리가 하느님의 엄청난 공짜의 세계에 들어서 있다면 이제는 무언가 공로를 쌓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결핍과 모자람을 알아차리는 일이고 그에 따라 도움을 간청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노력해 보아라, 성공하리라” 하고 말씀하시지 않고 “청하여라, 주실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마태 7,7-8)라고 하셨다. 우리가 모든 것이 공짜로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원칙을 분명히 깨닫게만 된다면 우리는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하고 기쁨에 넘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매일, 매순간이 축제요 잔치를 지내는 듯 삶이 흥겹게 되지 않을까?

[성경의 노래]라는 책을 읽으면서 바로 이거야 하고 무릎을 치게 된 구절이 있었다.

“삶을 숙제가 아닌 축제로 맞는 능력은 결국 하느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믿는 것에 달린 근본적인 신앙 문제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생명의 주인이 어떤 마음의 소유자인지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삶의 자세가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에게 묻는다. 왜 일상이 숙제처럼 무거운 짐이 되는 걸까? 하느님을 마치 빚을 독촉하는 쩨쩨한 빚쟁이로 여기거나 인정 없는 독재자처럼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말씀이신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그 깊은 이유를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이셨던 말씀이 사람이 되신 뜻, 가난한 인간보다 더 가난하게 되신 그분의 뜻이 삶을 선물로, 기쁜 축제로 살라고 인도하기 위함임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지혜를 깨친 마리아, 즈카르야, 시메온, 모세, 다윗 등 성경의 인물들은 삶의 고비마다 함께해 주시고 거저 이루어주신 모든 은혜를 고마워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 못지않게 우리 삶을 이끄시며 완성하시는 주님을 찬미하게 되기를 빌어본다.

 

- 박문희 고로나 수녀

* 이 글은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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