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안 괜찮아도... 괜찮아!”

 

영화 에브리바디스 파인(Everybody's Fine)

 

커크 존스 감독 | 로버트 드 니로, 드류 배리모어, 케이트 베킨세일, 샘 록웰 주연 |

2009| 미국 | 어드벤처, 코미디 | 99

 

백사령 아우구스티나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SNS 우울증이라는 말이 있다. 블로그나 카카오스토리에는 좋은 곳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여가를 즐기며 다방면에서 전문가 못지않은 활동을 하는 이들의 참 괜찮은삶이 넘쳐나는데 나의 현실은 그렇지 못해 우울하다는 것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괜찮게사는 것 같아서.

그런데 요즘, 또 다른 어려움도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과 삶을 공유하며 물리적 거리가 소통에 아무런 문제를 주지 않는 세상에 사는데 오히려 그 속에서 이전보다 더 먼 마음의 거리를 확인하게 된다는 것. 카톡과 문자는 괜찮지만, 전화 받는 것은 어렵다는 이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에서 뭔가 생각해봐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자녀들과의 소통을 맡아왔던 아내와 사별한 후, 이제는 자신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전국 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자녀들을 한 명씩 찾아가는 아버지 프랭크의 여정을 담은 영화 에브리바디스 파인(Everybody’s Fine)괜찮은것만 보여주며 피상적인 관계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실마리를 제시해 준다.

프랭크는 광고회사 중역이자 단란한 가정의 주부인 에이미,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로버트, 라스베가스 유명 무대의 댄서 로지, 예술성 있는 화가 데이빗의 자랑스러운 아버지. 그는 자녀들을 위해 매주 1천마일의 전선을 코팅하며 40년간 PVC증기를 마셔 왔기에 폐가 좋지 않다. 그토록 고생해서 키운 아이들은 당연히 자신을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만들어 주었는데 실상 깜짝 방문으로 알게 된 그들의 삶은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르다. 왜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있는 그대로를 말할 수 없었을까?

프랭크는 괜찮은것을 강요하는 사회를 대변한다. ‘괜찮은것이란, 영화에서 보여주듯 1등을 하는 것, 많은 부를 갖는 것,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꿈을 성취하는 것 등이다. 벽화를 그리는 페인터 보다 화가가 괜찮고, 어쩌다 나오는 타악기 주자보다는 지휘자가 더 괜찮다. 동성애자이거나 별거 중이면 더 말할 것도 없이 안 괜찮다! 주목받지 못하거나 혼란스러움이 있거나 통념상 정상의 범주에서 좀 벗어났다 싶으면 거부감을 갖는 사회인 것이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 줄 거지?”, “1등이 되어야 해.” 프랭크는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괜찮음의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그는 자녀들을 만날 때마다 괜찮은삶의 모습에 흡족해하며 사진기에 담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모습들은 모두 괜찮기위한 자녀들의 연출이었다.

왜 자녀들은 거짓말까지 해가며 괜찮으려했을까? 사실 괜찮다.’는 표현은 타인이 적당한 환상 속에서 나를 보며 내 삶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방어해 주는 ‘Magic Word’이다. 깊은 관심이나 염려도, 원치 않는 훈수와 판단도 원천봉쇄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괜찮은것만 보여드리며 적당히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괜찮아야하는 이들의 관계 속에서 진정성은 희생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서지 못하는 자녀들은 함께 하는 시간이 불편하기만 하다. “아빠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오늘 밤도 내일도 한가한데 못하겠어. 못하겠다고.” 

여행 중, 프랭크는 길에 널브러져 있는 젊은이에게 돈을 주고도 여러 번 괜찮니?”라고 묻는 통에 그의 화를 돋기도 한다. ‘괜찮지 않은사람에게 자꾸 괜찮냐?”고 묻고, ‘괜찮은반응을 요구함은 사람을 얼마나 불편하게 만드는 것인지! 화가 난 그는 프랭크의 약병을 밟아 산산조각 내고 만다. 영화는 다소 과해 보이는 젊은이의 폭력을 통해 괜찮아야하는 세상에 그렇지 못한 이들이 가진 박탈감과 분노를 보여준다.

이렇듯 괜찮음의 압박은 우리들에게 거짓과 피상성을, 때론 파괴적 관계로까지 치닫게 하는 긴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프랭크가 여행하는 동안, 그의 집이 있던 지역에 큰 태풍이 왔다는 뉴스가 나온다. 태풍의 이름은 앨리스(Alice)’, 그리스어로 진실이라는 뜻이다. ‘진실을 피해 온, 운이 좋은 프랭크이지만 이제 진실을 마주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괜찮다는 자녀들에게서 애매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프랭크는 북을 치는 로버트에게 음악에 재능이 있으니 지금이라도 더 공부해 번듯한 지휘자가 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진실은, 난 한 번도 아주 뛰어난 적은 없다는 거에요.’라고 딱 잘라 말하며 무대에서 자리를 비워도 아무도 알지 못하는 타악기 연주자이지만, 그것이 나에게 맞고 만족하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편견과 묵혀놓은 감정의 앙금을 드러내는 로버트와의 꽤 아슬아슬한 대화 끝에 마침내 프랭크는 좋았어. 북소리가 아주 좋았어.’라며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한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감독은 두 사람의 정면 얼굴을 한 화면에 담았다. 이제 진정한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번듯한 남의 아파트를 빌려 자신의 집으로 소개하며 괜찮게살고 있음을 과하게 치장했던 로지는 왜 너희들이 자꾸 나에게 무엇을 숨기는지 모르겠다.’는 프랭크에게 아빠는 늘 강요하는 편이었어요. 엄마는 주로 들어주셨고, 아빠는 주로 말씀하시는 편이었죠.’라고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

이렇게 자녀들은 괜찮지 않은자신들을 아버지에게 보였고, 아버지 역시 자신이 자녀들에게 괜찮지 않은존재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내 기준의 괜찮음을 강요하지 않고, 자녀들은 괜찮음의 피상성 아래 숨기를 그만두는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진실하게 나누며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몇 가지 오해를 풀었다고 해서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집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심장마비로 잠시 혼수상태에 빠진 프랭크는 집 마당에서 자녀들과 식사하는 꿈을 꾼다. 감독은 프랭크를 현재의 모습으로, 자녀들은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등장시키며 여전히 자녀들을 어린 아이로 보며 다그치는 프랭크를 보여준다. 그는 자녀들이 숨긴 괜찮지 않은모습들을 날카롭게 파헤치며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묻는다. 시커먼 먹구름 아래로 비가 쏟아지고, 비를 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버지를 피해 집안으로 도망치는 아이들. 그 중 하나가 돌아서서 말한다. ‘그냥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사세요. 아빠도 엄마를 만나면 모두 잘 지낸다고 말하세요!’ 프랭크는 적당하게 편안한 거리를 두고 살기를 원치 않는다고 외친다. 그리고 홀로 비속에 남겨져 자신이 자녀들과 함께 살았지만, 철저하게 타인으로 살았음을 깨닫는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프랭크는 이제 가장 괜찮지 않은현실을 듣게 된다. 아버지에게 가장 큰 압박감을 느꼈던 데이빗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난 것. 그 날, 프랭크의 꿈에 어린 데이빗이 찾아와 말한다. “꼭 화가가 되지 않더라도, 페인터라도 괜찮았을 것 같아요.” “그래, 네가 무얼 하든 나는 너를 자랑스러워했을 거야. 미안하구나.” 그제야 감독은 데이빗을 성인으로 등장시킨다. “아버지 잘못이 아니에요.”

그는 힘겨워 하면서도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있었다. 그가 남긴 작품에서 프랭크는 자녀들을 위해 자신이 평생 만들었던 전선이 도드라지게 표현된 풍경화를 보며 아들의 마음과 늦게나마 소통한다.

영화에서 보듯 우리는 괜찮지 않음을 인정하면, 곧 삶이 괜찮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각색된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놓고 진실한 관계 속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다. 피상적인 관계가 주는 씁쓸함과 외로움에 만족할 수 없다면, ‘괜찮지 않은진실도 받아들일 힘이 필요한 것이다. 관계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진실하게 만날 때, 그리고 내 것을 내려놓고 상대를 긍정할 때, 깊어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감독은 프랭크를 자주 두 개의 수직선 사이의 좁은 공간에 세워 놓곤 했다. 칼 같이 정돈된 마트의 높은 진열대 사이, 매표소와 기둥 사이, 계단과 벽 사이, 기둥과 기둥 사이 등. 이는 그의 완고한 기준과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좁은 공간, 프랭크 뒤쪽으로는 거의 대부분 문이 있다. 한 명, 한 명 자녀를 만나기 위해 문으로 향했던 그, 이제 괜찮음 신화에서 벗어난 그는 진정한 관계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무엇을 해도 괜찮은사랑스런 자녀들은 그의 둘레에 모여 앉아 모든 거짓을 벗고 편안하게 식사를 한다. 

길고 힘든 여정에서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괜찮아? 안 괜찮아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사진 :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600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