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업 신부의 "백색 순교" 알리고파

중국 선교 중 <차쿠의 아침> 낸 이태종 신부


가톨릭신문 지금여기 2014.08.28


“김대건, 최양업 두 신부님의 우정은 참으로 애틋했습니다. 날로 각박해지는 세상에 하느님 신앙에서 맺어진 두 분의 

우정을  세상에 외치고 싶었습니다. 또 최양업 신부님의 첫 사목지인 차쿠(옛 백가점)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태종 신부)


중국에서 활동 중인 이태종 신부(청주교구)가 최양업 신부에 대한 소설 <차쿠의 아침>을 출간했다. 27일 명동 가톨릭회관 내 바오로딸 서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태종 신부는 자신이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김대건, 최양업 두 신부의 아름다운 우정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이태종 신부는 <차쿠의 아침>을 읽고 “좋은 교리서가 될 것 같다”고 말하는 사제들도 있다면서, 많은 이들이 최양업 신부의 영성을 배우고 따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한국 천주교회는 최양업 신부(1821~1861)를 역사상 최초로 순교자가 아닌 증거자로서 시복시성을 추진 중이다. 증거자란 일상의 높은 덕행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한 이를 말한다. 최 신부는 한국인으로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로 사제품을 받았으며, 박해 시기에 사목활동으로 과로 끝에 병사했다. 그는 피 흘려 죽은 “피의 순교자”와 비교해서 “땀의 순교자”로 불리기도 한다.

신학교에서 문예부장을 맡았다는 이 신부는 줄곧 지녔던 습작 욕구가 최양업 신부를 통해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구상한 소설은 습작을 다시 공부하고, 최양업 신부 관련 사료들을 검토하는 과정을 통해 2년여 만에 완성됐다.

이태종 신부는 최양업 신부의 첫 본당이자 보금자리였던 ‘배티’ 출신이기도 하다. 또 천주교 관련 사적지에 관심이 많아 중국 활동 중에 최양업 신부가 처음으로 사목한 ‘차쿠 성당’과 신학교 터 등을 찾아 다녔고, 최양업 신부의 사목지인 ‘차쿠(岔溝)’와 김대건 신부의 사목지인 ‘백가점(白家店)’이 동일 지역이라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후배 신부로서 최양업 신부와의 이런 인연을 무척 소중히 여기는 이 신부는 중국에서 활동하며 무언가 도움을 준다면, 그것은 165년 전 이곳에서 신세를 진 최양업 신부 대신 빚을 갚는 것일 뿐이라고 여긴다.

  이태종 신부는 책을 쓰는 동기가 두 사제의 우정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지만, 최양업 신부에 더 주목한 것은 그의 사목과 영성이 이 시대에 보다 더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신부는 김대건 신부가 용기와 대담함, 민첩함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최양업 신부는 인내와 온유, 자비를 지닌 사람이었다면서, “스스로도 최양업 신부를 닮으며 살아야 인생의 완성과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최양업 신부가 보여준 ‘소박한 일상의 승화’였다”고 강조했다.

또 “최양업 신부는 하느님은 자비로운 분임을 굳건히 믿었던 분”이라면서, “동포와 부모, 김대건 신부마저 순교하는 상황에서도 하느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태종 신부는 집필하는 동안 이런 최양업 신부의 믿음을 통해 자신도 은총을 받았다면서, “스스로 무엇이든 해결하려던 마음이 많이 변했고, 여전히 배우고 있다. 마음의 여유와 너그러움을 닮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최양업이 최양업인 이유는 한국에서의 13년 사목활동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제 치명 영성보다 마라톤같이 긴 인생길에 함께해 줄 ‘일상의 순교 모범’, 최양업 신부가 보여 준 백색 순교가 필요합니다. 최양업 신드롬으로 온 한국 교회가 들썩였으면 좋겠습니다.”

이 신부는 현재 중국 선양시 랴오닝대학에서 사회보장학 대학원을 다닌다. 하느님과 중국 현지 사정이 허락한다면, 곧 차쿠에서 노인들을 위한 활동을 시작할 요량이고, 차쿠를 순례지로 만들고 싶다는 목표도 세웠다. 할 수 있는 소박한 일을 하면서, 최양업 신부의 자취가 묻힌 차쿠에 오래 살고 싶다는 것 또한 그의 바람이다.

하지만 이 신부는 그 모든 것은 이제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소설을 쓰기 전까지는 다른 것들이 중요했지만, 이젠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제가 차쿠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최양업처럼 사는 것”이라며, 이 첫 번째 계획을 하느님이 허락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regina@catholicnews.co.kr>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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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쿠의 아침-소설 최양업> 저자 간담회


어제 8월 27일(수) 오후 2시, 명동 가톨릭회관 바오로딸 서원에서

<차쿠의 아침-소설 최양업> 저자 이태종 신부의 기자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가톨릭신문, 평화신문, 평화방송,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등

교회 언론사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는데요,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며 앞으로의 계획까지 이태종 신부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 보았습니다.


2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이 세상에 나온 <차쿠의 아침>을 보는 순간,

아들을 하나 낳았다고나 할까, 아님 딸을 시집보낸 아비의 마음이 이럴까,

대견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는 이태종 신부.

 

 


머리에 하얀 눈이 내려앉은 신부를 보고 휴가 가서 뵌 아버님이 처음에는 “글쎄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어유.” 하시더니 1년 반이 더 지나 뵈었을 때는, “아유 할아버지 신부님 오셨시유?” 하더랍니다. 이 우스갯소리는 소설을 준비하면서 이태종 신부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까를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왜 이토록 뼈를 깎는 고통으로 최양업 신부에 대한 소설을 썼을까요?

한마디로 ‘차쿠’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고, 김대건과 최양업, 두 분의 애틋한 우정을 세상에 외치고 싶었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이유요 동기입니다.

“일상생활이라는 소박한 밭”에서 생명의 진주를 캐어내는 ‘최양업 영성’을 거듭 강조하는

이태종 신부는 무엇보다 차쿠에서 제일 해보고 싶은 것은 최양업처럼 살아보는 일,

최양업 신부님 흉내 내며 그분처럼 말하고, 그분처럼 세상을 대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최양업 신부처럼 살면 기쁘고, 그렇지 못하면 후회가 밀려왔다고 고백하면서,

여유와 기다릴 줄 아는 너그러움을 주시고 자신을 변화시켜 주신 분이기에...

 

 

 

 

 

 

이 모든 일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이라고 말하는 그의 순박한 웃음 위로

‘반딧불이’가 반짝거리며 일제히 날아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차쿠를 널리 알리고, 최양업 신부를 닮고자 노력하는 이태종 신부,

몇 년 뒤 다시 소설가 이태종 신부로 만나 보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 책이 궁금하시다면~

http://www.pauline.or.kr/bookview?code=18&subcode=01&gcode=bo1001304

 

저자 간담회를 위해 애써 주신 홍보팀 책임 이 레나타 수녀님~

첫 간담회 문을 잘 열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찍고 쓰고 올리고

바오로딸 홍보팀 제노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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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일상에서 호흡처럼, 이 노래처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15년 전의 일이다. 부산 바오로딸 서원에서 사도직을 하고 있던 나는 주로 2층 미디어 쪽에 있을 때가 많았다. 그날도 2층 계산대에 서 있는데 1층에서 누군가 계단을 올라왔다. 얼굴을 마주 보고 인사를 나누었는데 나는 첫눈에 ‘미스코리아 같다!’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아름다운 분이었다.

2층을 오가며 음반과 상본을 둘러보던 그분은 나에게 다가와 잠깐 이야기할 수 있는지 물으셨다. 2층에 마련된 탁자에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가족에게 “넌 못생겼어”라는 말을 듣고 자라온 그분은 자신이 정말로 못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시댁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참 이상하고 안타까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자신을 못생겼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이렇게 눈물지으며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이…….

자기 자신을 바로 안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할 때 우리는 타인의 말에 따라 자신을 판단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닐 때가 많다.

이 세상의 동물이나 식물도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존재하듯이 하느님은 우리 인간도 한 사람 한 사람 고유하게 만드셨다. 우리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미도 예쁘다고 말하지만 제비꽃이나 들꽃처럼 작고 소박한 꽃들도 예쁘다고 하지 않는가? 어떤 기준을 두고 비교하기보다 각각의 꽃이 지닌 고유함과 아름다움을 알고 좋아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는 외모에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열등감을 느끼고 자신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 부조리한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얼굴이나 몸에 칼을 대는 것을 허용한다. 이러한 기준은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이효리가 작곡, 작사, 노래한 ‘미스코리아’는 이런 현실을 드러낸 곡으로 가사에 특별한 의미를 싣고 있다.

유리거울 속 저 예쁜 아가씨 / 무슨 일 있나요 지쳐 보여요
많은 이름에 힘이 드나요 / 불안한 미래에 자신 없나요
자고 나면 사라지는 그깟 봄 신기루에 / 매달려 더 이상 울고 싶진 않아

Because I'm a Miss Korea / 세상에서 제일가는 Girl이야
누구나 한 번에 반할 일이야 / Because I'm a Miss Korea

사람들의 시선 그리 중요한가요 / 망쳐가는 것들 내 잘못 같나요
그렇지 않아요 이리 와 봐요 다 괜찮아요 / 넌 Miss Korea

우리 자신이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무이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이효리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그건 모두 신기루이며 그것에 따라 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각자가 바로 미스코리아라고 노래한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해 주셨다. 누구나 주님 앞에서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셨다.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이사 49,15ㄷ-16ㄱ).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과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편승하기 쉽다. 그 기준 속에 들어갈 때 안심하게 되고 인정받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깨어 있는 눈으로, 주님 안에서 바라보면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아!’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각자의 시간과 걸음이 다르겠지만 주님은 그 여정을 계속 걸어가길 원하신다. 그 진실을 믿기를 원하신다. 처음 우리를 지으실 때 “보시니 좋았다”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그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내 눈에 값지고 소중하며 나는 너를 사랑한다’(이사 43,4ㄱ 참조).


황난영 수녀 (율리아나)
성바오로딸수도회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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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비' 실천하는 풀타임 그리스도인교황 첫 강론집 <교황 프란치스코, 자비의 교회> 출간
한상봉 기자  |  isu@catholicnews.co.kr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10월 2일 일반알현에서 신자들에게 “아무 두려움 없이 하느님의 성성에

물들도록 우리 자신을 내맡깁시다”라고 권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화의 소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어 “성성은 어떤 특별한 일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활동하시도록 모든 것을 맡기는 데

있다”고 전했다.

교황은 친절하게도 성성(거룩함)이란 “우리의 나약함과 하느님 은총의 힘이 만나는 데 있다”고

함으로써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고, 성인이 되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리고 이 거룩함의 길은

“우리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이웃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애를 실천하고 모든 일을

기쁨과 겸손으로 행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하느님의 활동을 신뢰하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일러주었다.

   

▲ 성 크리소스토모는 평신도들이 '지옥만 면하면 된다'는 식의 신앙을 갖지 말라고 이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화의 소명을 가진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화의 소명 받아
교황의 강론, 한국교회에 지침 주고... 
한국사회에 방향타 제공할 것

토마스 머튼은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죄를 거부하고 자신을 아무런 타협 없이

그리스도께 봉헌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고, 자신의 영혼을 구하며, 하느님의 신비

안에 들어가 자신을 완전히 ‘그리스도의 빛 안에 잠기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였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젊은 시절 사막으로 가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훗날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거룩함으로 부르심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부와 수사와 수녀들은 완전함을 향해 성숙해야 하고 진전을 보여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평신도들은 은총의 상태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며, 성직자들의 옷자락에 매달리거나

홀로 ‘완전함’에 불린 전문가들에게 이끌려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크리소스토모는 평신도들이 ‘지옥만 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비판하며 “나무는 단지 살아있기만

해서는 안 되며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성인’이 될 것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인물이다. 개별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하다면,

당연히 교회 역시 성인됨을 준비하는 학교이며 근거지가 되어야 하고, 스스로 정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성(聖)교회’라는 말이 제 몸을 찾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하느님 안에 잠기고 성화되어, 이 세상을 복음화시키는 근거가 되기 위해

청사진을 제시한 교황이 바로 프란치스코다. 이탈리아 출판인 줄리아노 비지니가 엮은

<교황 프란치스코, 자비의 교회>(바오로딸, 2014)은 이 교황이 착좌 미사부터 수요일 일반 알현,

평화를 위한 기도 모임, 아파레시다 대성당에서 봉헌하신 미사 등 다양한 기회에 주교와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교회구성원들에게 “부탁하고 하소연한 39편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강우일 주교(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는 “이 책은 오늘의 한국교회에 분명한 지침이 되고,

세상 어느 곳보다 세계화에 내몰려 신음하는 우리 사회에도 방향타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했다.

“이 시대 한국이라는 땅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할지 끊임없이 자문하도록 우리를

재촉하고 일깨운다”고 했다. 여기서 교황의 초대는 단순하다. “복음의 기쁨에 젖어 주님과 함께

우리의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한 곳으로 나가라는 초대”다.

“가난한 이들의 외침에 귀를 막으며 내 안에, 교회 울타리 안에 들어앉아 있기보다는 다치고 깨질

위험을 감수하면서 세상을 향해 나갈 때만이 교회의 진정한 모습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하고 구체적이고 생생한 현장감으로 가득한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있노라면 어느새 새로운 희망,

새로운 용기가 솟는 것 같아 마음이 흥분됩니다.”

교회의 가난한 어부들, 
하느님의 깊은 물속에 ‘자비’의 그물 던져라


   

▲ <교황 프란치스코, 자비의 교회>, 줄리아노

비지니 엮음, 바오로딸, 2014

밀라노 가톨릭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기도 하는 편집자 줄리아노 비지니는 “교황은 사도좌에서 직무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말과 행동과 확고한 결정을 통해 교황으로서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편교회에 대한 전망과 의지가 무엇인지 명확히 드러내셨다”고 말한다. 특히 2013년 11월 24일 발표한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은 교황 자신과 교회가 걸어야 할 길을 총체적으로 제시한 ‘대헌장’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교회가 언제나 더 순수하고 충실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교회의 부족함도 알고 있다고 줄리아노 비지니는 말한다. 

“교회의 가난한 어부들이 부서지기 쉬운 배와 낡은 그물을 가지고 일하고 있으며, 갖은 노고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거두지 못하는 때가 많다는 것을 교황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 그러나 교회의 힘은 인간적 능력이나 인간적 수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깊은 물속’에 숨겨져 있으며, 교회는 그 속에 그물을 던지라고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도 잘 알고 계십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물을 던져야 하는가’인데, 그 방법을 교황은 이 책의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하느님의 자비’라고 말한다. 교황이 거듭 지향하는 교회의 모습은 ‘자비의 집’이다.

“이 집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비를 느끼거나 스스로를 포기하는 일 없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사랑과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조명된 충만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당신의 교회 안에 현존하시며, 이 분을 만나는 이들은 신앙의 기본원리뿐 아니라

용서와 화해, 형제애와 사랑의 필요성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기쁜 마음으로 이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는 증인으로서 용서와 화해, 형제애와 사랑을 실천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게 교황의 생각이다.

탁상공론 하는 파트타임 신앙에서 풀타임 그리스도인으로 가야..
교황의 기본노선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가난한 교회’

교황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거룩함으로 나아갈 소명’을 일깨우는데, 이는 복음을 듣고, 선포하고

증거하는 단계를 밟아간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은 ‘파트타임’이 아니라 ‘풀타임’으로 투신해야 한다.

‘풀타임 그리스도인’은 “제 자리에 앉아 자신의 신앙을 반추하거나 탁상에서 그 신앙을 두고 토론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 밖으로 나가서 용기 있게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 모든 사람과

복음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거리로 나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교황이 말하는 ‘복음화’는

교회의 ‘바깥’을 향해 있다.

바깥을 향하면서, 그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을 돌보려는 태도가 ‘복음화의 길’이다.

교회는 일차적으로 가난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이들이 사목적‧경제적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가난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당신의 삶에서, 그리고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시면서 그들에게 특별한 자리를

내어주셨기 때문”이다.

   

▲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가난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며,

가난한 이들에게 특별한 자리를 내주신 것을 기억하자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그래서 교황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기본노선으로 삼았다. “그리스도는 가난한

사람들과 공고히 연대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이 지닌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해 주고 정의를

실현하셨으며 참된 의미의 ‘인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앞장섰다”고

믿는다. 교회는 당연히 그분의 제자로서 그 노선을 따라야 한다는 게 교황의 확신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권력과 돈, 출세주의, 이기주의, 무관심, 그리고 ‘세속의 영’이라고 표현되는

우상들을 허물어버리고 스스로 정화되어야 한다. ‘자신을 향한 복음화’를 감행할 수 있는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다. 교황이 가장 우려하는 현실이 ‘생기 없고 졸린 듯한 신앙’이다. 교황은 오히려

“예상치 않게 맞닥뜨릴 수 있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 안에서 기쁘게 세상의 도전에 맞서는

신앙”을 요청한다. 그래야 교회는 거듭 활기찬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2013년 9월 25일 일반 알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말은 여전히 우리에게 도전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자문해 봅시다. 이 세상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통 중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무관심한가, 아니면 가족 가운데 하나가 고통 받는 것처럼 느끼는가?”

교황은 이런 질문도 던진다. “나는 내가 속한 단체를 위해, 내 조국을 위해, 내 친구들을 위해 교회를

사유화하는 사람은 아닌가?” 하고 묻고는, “이처럼 이기주의와 신앙의 부족으로 ‘사유화된 교회’를

바라보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라고 말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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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음

[일상에서 호흡처럼, 이 노래처럼]

황난영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며칠 전, 외출을 하고 돌아오려는데 비가 쏟아졌다. 다행히 입고 있는 점퍼에 모자가 달려있어 머리만 가리고 달려가 버스를 탔다. 비가 제법 많이 오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역까지 서둘러 갔다. 입구에 도착해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사람들이 비닐 우산을 사서 들고 가는 게 눈에 띄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뒤돌아보니 아주머니 한 분이 우산을 들고 나에게 내밀며 “이 우산 쓰고 가세요”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손을 내저으며 “아녜요. 지금 나가시면 우산이 필요하시잖아요”라고 말씀드렸다. 아주머니는 일행이 있으니 괜찮다며 다시 우산을 내미셨다. 조금 망설이다 받아든 꽃무늬 우산이 그분의 마음처럼 곱디고왔다. 지하철에서 내려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주머니가 내내 고마웠다. 그분의 마음이 따스한 엄마 같았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가장 닮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라고 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처럼 엄마는 자녀를 위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모든 것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제주도 출신의 인디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의 ‘엄마’라는 곡은 딸을 향한 엄마의 애틋한 마음을 전해준다. 노랫말과 목소리가 유난히 잘 어울리는 이 곡은 모든 엄마들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 그림 : 오마리아 수녀 / 출처 : 바오로딸 콘텐츠

 

딸아 사랑하는 내 딸아
엄마는 늘 염려스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날씨가 추워 겨울이불을 보낸다

딸아 사랑하는 내 딸아
엄마는 늘 염려스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귤을 보내니 맛있게 먹거라

엄마는 늘 말씀하셨지 내게
엄마니까 모든 것 다 할 수 있다고
남들이 뛰라고 할 때 멈추지 말라고 할 때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잠시 쉬라 하셨지

남들이 참으라 할 때 견디라고 말할 때에
엄마는 안아주시며 잠시 울라 하셨지


세월이 흘러도 엄마에게 자녀는 ‘나이든 아이’다. 이 노랫말에도 떨어져 지내는 딸에게 이것저것 챙겨 보내면서도 더 해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고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또한 세상의 논리와는 다르게 쉬어도 되고 울어도 된다며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이 모든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이렇게 한결같이 자녀를 염려하고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을 생각할 때 세월호의 침몰로 어린 자녀들을 잃은 부모님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헤아려보게 된다. 바다를 앞에 두고 마냥 기다려야만 했던 그분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마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지켜봐야 했던 어머니, 차가운 시신을 받아 안고 통곡하신 성모님과 같은 심정이지 않았을까?

온 국민에게 커다란 상처를 준 이번 사고를 겪으며 ‘만약 우리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엄마의 마음으로 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엄마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의 결단이다. 편안함과 안전함, 자기만족 대신 희생과 도전, 자기 비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매일 뉴스에서 만나는 팽목항의 많은 자원봉사자들,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고 바다 속 수색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잠수부들에게서 ‘엄마’의 마음을 발견한다. 멀리서 크고 작은 구호물품을 보내주는 이들, 전국 각지에서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기도하는 이들에게서 ‘엄마’의 마음을 느낀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에게 ‘엄마’의 마음을 심어주셨다. 지금 나와 함께 지내고 있는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 나만의 배려와 친절한 말 한마디를 전하는 순간, 피곤하지만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순간, 지금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기도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에게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엄마’의 마음을 선물하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엄마’의 마음을 꺼내 나눌 것인지, 안에 꼭꼭 숨겨둘 것인지는 매순간 우리 각자의 선택이다. 따사로운 오월, 성모님의 달을 지내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엄마’의 마음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이끌어주시길 기도하게 된다.


황난영 수녀 (율리아나)
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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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하게 되니 모든 게 변해가네

[일상에서 호흡처럼, 이 노래처럼]

 

황난영 수녀
(율리아나)
성바오로딸수도회

어느 날, 사도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한 수녀님에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별로 큰 일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결국 자신을 방어하려는 여린 자아의 한 부분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자 곧 그런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지고 예수님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이 멀게만 느껴졌다. 다소 우울하게 주님 앞에 앉아있는 내 마음에 노래 하나가 흐르기 시작했는데 학창시절 좋아하던 ‘변해가네’였다.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생각한 그 길로만 움직이며
그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가려했지
그리 길지 않는 나의 인생을 혼자 남겨진 거라 생각하며
누군가 손 내밀며 함께 가자 하여도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고집했지
그러나 너를 알게 된 후 사랑하게 된 후부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나의 길을 가기보다 너와 머물고만 싶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 우- 너무 빨리 변해가네”
(작곡 · 작사 김창기 / 노래 김광석)

 

   
ⓒ박홍기
사람이 변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고유한 체험 안에 형성되어온 성격이나 기질, 사고방식이 바뀌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는 너무 쉽게, 너무 빨리 변해간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고집했던 것들이 ‘너를 알게 된 후부터, 사랑하게 된 후부터’ 다 변해간다고 말이다.

이 노래를 통해 다시 의식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 내가 변화된다는 것은 그동안 ‘나’라고 고집했던 것들보다 그분을 더 사랑하게 될 때 시작되는 선물이라는 것을. 그것도 누군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어느 순간 달라진 모습을 깨닫고 깜짝 놀라게 되는 선물인 것이다.

 

사실 예수님을 깊이 체험한 사람들은 이러한 선물을 받았다.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제자들을 비롯하여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자캐오가 그러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오로 사도, 그리고 여러 성인들도 그러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난 뒤 완전히 다른 모습의 사람이 되었으며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운 사랑을 체험하면서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나 역시 그러한 변화의 삶을 살고 싶은 열망이 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이해하고, 예수님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을 갖고 싶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성숙하지 못한, 반갑지 않은 내가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마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 (로마 7,15).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모습을 바꾸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다만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거짓 자아와 이기심과 깊은 어둠의 뿌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사랑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사랑하게 될 때 변화는 자연스럽게 따르게 된다. 결국 가장 크게 남은 과제는 ‘사랑’이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무겁던 마음이 어느 정도 가벼워졌다. 마음이 불편했던 사건까지도 주님의 메시지를 듣게 해준 선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때 겸손하게 눈과 귀를 열어 주님을 바라보게 되는가보다.

지금 내 마음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지금 내가 사랑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부활신앙’을 살아간다고 하지만 자주, 아주 쉽게 그것을 잊어버리고 만다. 매일 죽고 부활하는 것을 실천하지 못한다. 아직은 내 자신이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 한가운데 내가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을 때엔 충만한 부활의 기쁨을 체험할 수 없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방어하고 남을 밀어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훌훌 털어버리고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실 때 좀 더 쉽게 나를 버리고 ‘사랑’을 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변해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이렇게 노래할 수 있지 않을까?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 우- 너무 빨리 변해가네.”


황난영 수녀 (율리아나)
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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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걷지 않아도 괜찮아[일상에서 호흡처럼, 이 노래처럼]

 

황난영 수녀
(율리아나)
성바오로딸수도회

손병휘 님의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수녀원 공동 성체조배 시간이었다. 기타 소리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힘 있는

목소리와 함께 가슴을 쿵쿵 치며 울려 퍼졌다. 공동기도의 주제는 ‘공동체’에 대한 것이었는데 노래 가사와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누군가 보지 않아도 / 나는 이 길을 걸어가지요.
혼자 혼자라고 느껴질 땐 / 앞선 발자욱 보며 걷지요.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쉬어가도 / 서로 마주보며 웃음 질 수 있다면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 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

마음의 마음의 총을 내려요 / 그 자리에 꽃씨를 심어보아요
손 내밀어 어깨를 보듬어 봐요 / 우리는 한 하늘 아래 살지요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쉬어 가도 / 서로 마주보며 웃음 질 수 있다면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 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
―손병휘, ‘나란히 가지 않아도 2’

   

사진 이정아 수녀 ⓒ바오로딸

수도원에서 ‘공동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더불어 살며 그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수용하며

동글동글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모습에 거부감이 들고, 싫어하거나 미워지는 것은 수도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끊임없이 ‘마음의 총’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꽃씨를

심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나중에 보니 노랫말을 쓰고 곡을 만든 손병휘 님은 2002년 임진각에서 열린 통일 관련 행사를 가면서 ‘나란히

가지 않아도 1’을 만들었고, 이라크 전쟁 소식을 들은 후 가사를 약간 수정하여 ‘나란히 가지 않아도 2’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알고 나서 노래를 다시 들어보니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로 새롭게 다가왔다.

노랫말이 주는 의미가 참 컸다.

오는 4월 27일 시성되시는 교황 요한 23세는 ‘평화’를 중요한 사목 방향으로 삼았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무고한

유대인들을 구하고, 프랑스에서는 전쟁포로 석방을 위해 힘썼으며, 미국과 소련의 긴장감 도는 세계 정세 안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 또한 갈라져 있는 교회의 현실을 보며 가장 중요한 것이 평화와 화해임을 깨닫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어 교회의 쇄신과 일치를 위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마지막에는 회칙 <지상의 평화>를

통해 모든 이들에게 평화의 길을 제시하였다. 교황 요한 23세가 제시한 이 길은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의 길이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사순 시기를 지내면서 우리는 예수님이 수난과 고통을 받으신 이유를 기억하게 된다. 예수님은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우리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보여주셨고 인류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셨다. 모두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이었다. 이 길은 예수님께도 쉬운 길이 아니었다. 반대 받고 배척 받았으며 그분의 생각을 제자들마저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른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 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내가 남긴 발자국을 보며 따라오면 된다’고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다.

혼자라고 느껴지고, 넘어지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나와 의견이 다르고, 함께 갈 수 없다 생각된다 해도

결국 한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함께 걸어가는 존재들이다. 앞서 걸으신 예수님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있기에 서로 마주볼 수 있고, 웃음 지을 수 있으며,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노래를 들으며 나와 너의 평화를 위해,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걸어가고 있음을 다시 기억해보자.


황난영 수녀
(율리아나)
성바오로딸수도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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