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 자서전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펴낸 메조소프라노 김청자씨


발행일 : <가톨릭신문> 2014-11-09 [제2918호, 16면]


화려한 무대 뒤로 하고 아프리카 ‘마미’로…
예순에 선교사 결심… 말라위서 생활 중
뮤직센터 건립 등 아동 위한 활동 펼쳐

“나로 인해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라죠”


 ▲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선교사로 활동 중인 김청자씨는 “내 영혼의 고향 아프리카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완전한 사랑을 만났다”고 전한다. 

나이 쉰쯤 되었을 때, 자신에 관해 글로 옮길 만한 멋진 이야기들이 많지 않았다. 예순쯤 되어서도 ‘내가 이렇게 살았노라’고 자랑할 만한 일이 있는가 되묻게 됐다. 다시 한참이 지난 후, “나이 일흔이 되어서야 감히 내 삶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메조소프라노 김청자(아녜스·70)씨는 최근 자신의 인생 여정을 통째로 쏟아 부은 책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을 펴냈다. 

6·25 한국전쟁을 겪으며 성장한 어린 시절부터, 간호조무사로서 일하러 갔던 독일에서 기적처럼 음악원에 들어가고,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섰던 일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직을 내려놓자마자 전 재산을 모아들고 선교사로 나선 여정 등 ‘나의 인생’을 풀어낸 책이다. 

특히 스스로 ‘내 영혼의 고향’이라고 부르는 아프리카 말라위에서의 삶을 넘치도록 담아냈다. 한 줄 한 줄에 얹은 이야기들은 30여 년간 써온 일기를 바탕으로 엮어 더욱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김씨는 “저의 삶을 짧게 말해보라고 한다면 ‘사랑으로, 사랑을 위해, 사랑을 향하여 살아온 삶’이라고 말할 것”이라며 “아프리카에서 제 마지막 여정인 ‘영혼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이곳에서 제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완전한 사랑을 만났다”고 전한다.

김씨가 이 책에 담은 목소리는 ‘나에게 항상 최상의 것을 주시는 하느님’을 만난 이후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는 신앙고백과 다를 바 없다. 

“난 평생 성악가로서 차고 넘치도록 누렸다. 명성과 인기도 얻었고 과분한 사랑도 받았다. 그 감사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2004년 12월 28일 내 나이 예순.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밤새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김씨가 10여 년 전 썼던 일기의 한 부분이다. 당시 고민은 아프리카 잠비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여행하면서 풀렸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잠비아 어린이들이 매미처럼 찰싹 붙어 안기는 순간, 그는 화려한 음악인생을 뒤로하고 아프리카 선교사로서 살 뜻을 떠올렸다고. 

2010년부터는 말라위 카롱가 루스빌로 마을에서 ‘마미’, ‘마마’로 살고 있다. 모든 재능과 시간, 물질 등을 온전히 쏟아붓는 삶이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큰 다리로 자리 잡은 ‘루수빌로 뮤직센터’ 설립과 운영 이야기도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김씨는 이 책을 통해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을 위해 학교와 기숙사, 미션센터를 짓고, 아이들이 한국에 유학을 올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은 꿈도 나누고 있다. 말라위 추장이 그에게 지어준 이름, ‘루세케로’(행복을 가져다 주는 여인)와 같은, 더욱 많은 ‘루세케로’들이 생겨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필요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말라위 전체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나로 인해 조금 더 행복해지고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한편 바오로딸출판사는 15일 오후 2시 서울 알베리오네센터에서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북콘서트를 연다. 참가비는 1만 원.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6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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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청자 씨 얼굴에 활짝 핀 웃음, 모란꽃을 닮았다!


10월 28일(화) 오후 2시 명동 바오로딸 서원에서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을 펴낸 김청자 씨의

기자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성악가 김청자’를 알고 있는 나는 가까이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가슴이 설렜습니다. 드디어 김청자 씨를 본 순간, 반가움과 남다른 포스에 하마터면 우와~ 하는 탄성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습니다. 음악으로만 듣다가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눌 수 있어 영광이었답니다~^^ 가톨릭신문, 평화신문 ․ 방송, 코리아헤럴드, 뉴스원 등 교회 ․ 일반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간담회에서 김청자 씨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공연을 위해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말라위 아이들. 밤에 불이 번쩍번쩍 켜져 있는 것을 보고 한국 사람들은

잠은 언제 자냐며 놀라워했다던 아이들. 그렇게 그들 눈에 한국은 신기하고 ‘정말 잘사는’ 나라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삶이 곧 저주요, 불행이요, 결핍 투성이라고 생각해 왔던 아이들을 보며 이 아이들 곁에서 평생 살리라 다짐하고 선택한 ‘내 영혼의 고향 아프리카’라고 말하는 김청자 씨.

노래와 춤으로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는 아프리카라는 곳은 나에게 영적인 훈련을 받는 장소, 끝나지 않는 피정, 끝나지 않는 다이어트를 하는 곳, 언제나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늘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에 살이 찔 수 없다며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그곳에서 살고 있는 한 끊임없이 해야 할 일들이 많다면서, 첫째 음악 대학, 둘째 기숙사, 셋째 미션 센터, 넷째 초등학교 교실, 다섯째 성당, 그리고 여섯째 병원이라고 말하는 그.

학생들이 후에 지도자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유학을 보내는 등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싶고, 성당을 지어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을 변화시키고, 천국처럼 만들고 싶다는 그는 내 소망 안에 하느님의 계획이 있음을 확신한다며 눈빛을 반짝였습니다.

이번 자서전에 대해,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준비하였다고 말하는 김청자 씨는 책에도 나와 있지만, 두 번의 이혼을 겪었던 아픔과 하나밖에 없는 아들 다니엘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은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 아픔, 아이가 성장할 시기에 함께 많은 시간을 나누지 못한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지금은 그런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주는 아들이 곁에 있어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숙연해지는 순간이었지요...

지금 떠나도 후회가 없다는 그는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이 책 속에 자신의 열정, 사랑, 온 인생이 담겨 있다고 고백합니다. 

 

 


신앙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하는 김청자 씨.

아프리카 아이들이 ‘엄마’ 김청자를 통해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이보다 더 확실한 선교가 어디 있을까요?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김청자 씨의 멋진 인생에 엄지손가락을 번쩍 올리는 이유입니다.

 

바오로딸 홍보팀 최인순 제노베파


• 책이 궁금하시다면~

http://www.pauline.or.kr/bookview?gubun=A01&gcode=bo100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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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선교 떠난 성악가 김청자 씨 "용서와 인내 배워"


발행일 : PBC뉴스 2014-10-29


[앵커]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섰던 메조소프라노 김청자 씨가 아프리카에서 평화와 사랑의 길을 찾은 이야기를 엮은 책이 나왔습니다.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발표회를 김항섭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아프리카 말라위의 오지 카롱가에서 자신의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김청자 씨.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에서는 아프리카에서의 김씨의 삶과 더불어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풍경과 말라위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담은 사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명동 바오로딸 서원에서 열린 신간 발표회에서 김청자 씨는 “아프리카 여행을 하던 도중 깊은 감명을 받아 선교활동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고 고백했습니다.

< 녹취 : 김청자 씨>
“하느님께서 저를 부르셨고 남아공에서, 잠비아에서 어린 아이들이 저에게 달려들 때 그 때 저는 그 아이들이 저를 필요로 하고 나를 사랑하는 구나 내가 이 사랑을 너희에게 주노라하고 약속을 하고 돌아와서...”

김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교수생활을 마치고 난 뒤 집을 팔아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후원회’를 만들고 아프리카 말라위로 떠났습니다.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고아들을 위해 음악학원을 세우고, 배움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유학의 기회를 주고자 혼신의 힘을 쏟았습니다.

김씨는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통해 용서와 인내를 배웠다”며 “아프리카는 나에게 영적으로 끝나지 않는 피정을 하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 녹취 : 김청자 씨 >
“하느님께서 기쁨과 좌절을 주지만 기쁨이 더 많아요. 보람이 있고 그들이 행복해 하는 것이 드러나니까 그런 것을 통했을 때 다른 사람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 지잖아요.”

다음 달 15일 성바오로딸수도회 알베리오네센터에서는 김씨의 북 콘서트도 예정돼 있습니다.

PBC뉴스 김항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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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첫 메조소프라노의 아프리카 사랑

바오로딸출판사, 김청자 자서전 출간


발행일 : 세계일보 2014-10-28



가톨릭 바오로딸출판사가 한국인의 훈훈한 아프리카 사랑을 담은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사진)을 펴냈다.


책은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섰던 메조소프라노 김청자(70)의 자서전이다. 그녀는 간호조무사로 찾아간 독일에서 성악가의 꿈을 이룬 입지전적 인물이다. 1963년 외국 신부의 도움으로 독일에 간 그녀는 돌보던 환자를 통해 음악계의 은인을 만났고, 독일에 도착한 지 5개월 만에 레오폴트 모차르트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7년 뒤, 1970년 김청자는 한국인 최초로 메조소프라노 가수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올랐다. 이후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16년간 성악가로 이름을 날렸고, 독일 뒤셀도르프 오페라단의 프리마돈나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그녀는 2005년 안식년을 맞아 1년간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다 아프리카에서 벅찬 감동을 받는다.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지만, 모두가 춤추고 노래하며 아름답게 사는 아프리카야말로 내 영혼의 고향이 될 것’이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은 것. 2010년 2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정년퇴임한 그녀는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후원회’를 만들었고, 그해 9월 보따리를 싸서 아프리카 말라위로 날아갔다. 그녀는 말라위에서 고아들을 위해 음악학원을 세우고, 청소년들에게 한국 유학의 길을 열어주고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이제 그녀는 여생을 화려한 무대 대신에 아련한 삶의 무대에서 사랑과 감사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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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받을수록 많이 나누는 게 하늘나라 법칙”


발행일 : [한겨레신문 2014.10.23]


                                                                                                     메조소프라노 김청자.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짬] ‘아프리카 사랑’ 자전에세이 펴낸 성악가 김청자씨


“가장 많이 받은 자가 가장 많이 나누어야 하는 것이 ‘하늘나라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로 갔어요.” 그는 스스로를 ‘가장 많이 받은 자’라고 생각했다.

2009년 정년퇴직을 1년 앞두고 유럽과 미국, 아프리카를 돌며 남은 생을 보낼 곳을 찾던 그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검은 눈망울을 보았다. “깜깜한 밤이었어요. 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반짝거렸어요. 골목길을 가다가 20여명의 어린이들과 마주쳤어요. 낮에 성당에 왔던 아이들이었어요. 브람스의 자장가를 한국어와 독일어로 불러줬어요. 노래가 끝나자 굶주림에 뼈만 남은 아이들이 나의 품에 안겨왔어요. 그냥 안긴 것이 아니라 숨이 막힐 정도로 가슴속 깊이 들어왔어요. 눈물이 흘렀어요. 그리고 약속했어요. 꼭 오겠다고….”

메조소프라노 김청자(70·사진)씨. 그는 1970년대 유럽 오페라 무대의 첫 한국인 프리마돈나였다. 시간이 흐르면 늙는 것은 ‘지상나라의 법칙’이다. 눈부셨던 검은 머리는 반백이 됐고, 고왔던 얼굴에도 70년 세월을 머금은 주름이 자리잡았다. 하지만 변치 않는 것이 있다. “열정이라는 뜨거운 불덩어리는 늘 가슴에 지닌 채 살고 있어요. 지금도 뜨거워요.”

정년 뒤 집팔아 세계 최빈국 말라위로 
고아공동체에서 5년째 교육봉사 
제자들로 꾸린 밴드와 함께 귀국 공연

간호조무사로 건너간 독일서 꿈 이뤄 
70년대 한국인 첫 오페라 가수 활약

지난 22일부터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아프리카 말라위의 ‘루수빌로(희망) 밴드’가 재즈와 클래식, 팝과 춤이 어울린 공연을 펼치고 있다. 11명의 뮤지션은 바로 김씨가 5년 전 말라위에 세운 음악학원에서 악기를 익힌 제자들이다. 2010년 정년퇴임하자마자 살던 집을 팔아 마련한 2억원으로 ‘김청자 아프리카 사랑후원회’를 꾸리고 혈혈단신 말라위로 날아가 고아들을 돌보며 예술을 가르치고 있는 그의 피와 땀, 정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무대인 셈이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저주받았다고 여기며 살았어요. 아무런 희망과 꿈도 없이 에이즈와 가난에 시달리며 내일을 포기했어요.”

말라위는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세계에서 10번째로 가난한 나라다. 한때 아프리카 노예 무역의 중심지로 인구 1400만명 가운데 100만명이 에이즈 환자일 만큼 ‘버려진 땅’이다. 평균 수명이 40살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왜 하필 그런 곳에 그는 터를 잡았을까?

김씨의 지난 삶은 화려했다. 고교 졸업 뒤 가난으로 대학을 포기한 그는 독일에 간호조무사로 건너갔다. 어릴 때부터 가슴 깊이 간직했던 성악가의 꿈을 입버릇처럼 얘기했던 그는 돌보던 병원 특실 환자들의 도움으로 기적 같은 기회를 얻었다. 5개월 만에 간호복을 벗고 ‘아우크스부르크 레오폴트 모차르트 음악원’에 입학한 것이다. 그는 졸업 2년 만에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섰다. 창(판소리)을 잘 뽑으시던 할아버지의 유전자가 빛을 발한 덕분이었다. 오스트리아 빈 음악대학을 졸업한 뒤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오페라단원 생활을 비롯해 스위스·이탈리아·스페인 등에서 16년간 활약했고 뒤셀도르프 오페라단의 프리마돈나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1994년 한국 대표 메조소프라노의 명성을 안고 귀국한 김씨는 중앙대·연세대·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꼬박 16년간 후학들을 가르쳤다. 그사이 두번의 국제결혼을 했던 그는 아들 하나를 뒀다.

“말라위로 갈 때 컨테이너 가득 드럼과 색소폰 등 각종 악기를 싣고 갔어요. 5월부터 11월까지 건기 때는 섭씨 50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위에 시달렸어요. 우기에는 엄청난 비가 쏟아져요. 주변에 한국인은 한명도 없어요. 너무도 고독했어요.”

김씨는 낯선 이국땅에서 마주친 ‘인간적인 고독’을 고아들을 돌보는 루수빌로 공동체에서 교육과 봉사로 극복했다.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음악학원을 지었어요. 말라위 최초의 음악학원입니다. 전국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찾아와요.” 2012년에는 그의 제자들이 말라위 전국 음악 콩쿠르 대회에 나가 1등을 차지했다. 그래서 이번 한국 공연을 기획했고 마침내 이루었다. 아이들은 모두 김씨를 ‘마마’, ‘마미’라고 부른다. 한국말을 배워 ‘엄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처음에는 지각하기 일쑤였고, 열심히 하지 않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속으로 ‘한국에선 나 같은 대가에게 레슨을 받으려면…’이라는 말이 뱅뱅 돌았지만 참고 참았죠.”

그는 음악뿐 아니라 미술도 가르친다. 주말엔 체육선생을 불러 축구를 가르치기도 한다. 우물을 파는 것도 현지인들에겐 엄청난 도움이다. “땅을 파서 나오는 흙탕물을 식수로 쓰더라고요. 그래서 우물을 파주기 시작했어요. 우물 한개를 파는 데 200만원 정도 들어요. 이미 13개의 우물을 곳곳에 파주었어요.”

김씨는 이번 한국 방문에 맞춰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이라는 자서전도 내놨다. 11월15일에는 북콘서트도 연다.

“사랑을 얻기 위해 달려온 길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완전하고도 영원한 사랑을 만났습니다.” 그가 찾은 영원한 사랑 이야기에 귀가 쏠린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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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고향 느끼며 말라위 고아들 돌봐”

발행일 : [문화일보 2014.10.23]

자서전 ‘…아프리카 사랑’ 펴낸 김청자

김청자(70) 씨는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선 메조소프라노로 잘 알려져 있다.(문화일보 2010년 3월 17일자 ‘사랑·희망 전령사 릴레이 인터뷰’ 참조)

지난 1963년 외국 신부의 도움으로 독일 간호조무사로 가게 된 그는 사실 ‘음악 공부’가 꿈이었다. 돌보던 환자를 통해 현지에서 음악계 은인을 만난 것은 기적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독일에 간 지 다섯 달 만에 레오폴트 모차르트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공부하게 됐고, 1970년 스위스 베른오페라단과 전속계약을 맺으면서 한국인 최초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김 씨는 이후 독일 카를스루 국립오페라단 단원 생활을 비롯해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16년간 이름을 날렸고 뒤셀도르프 오페라단의 프리마돈나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중앙대와 연세대를 거쳐 1994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런 그가 2010년 예순여섯의 나이에 돌연 아프리카로 떠났다. 김 씨가 최근 펴낸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바오로딸출판사)은 어린 시절부터 최근 아프리카에서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생을 담은 자서전이다. 특히 책은 그가 아프리카로 떠난 이유와 그곳에서 음악학원을 설립해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제2의 인생’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앞서 김 씨는 2005년 안식년을 맞아 세계 곳곳을 여행하던 중 아프리카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프리카 사람들이 춤과 노래를 잊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마지막 ‘내 영혼의 고향’은 이곳”이라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평생 성악가로서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며 “이 사랑을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이런 연유로 김 씨는 정년퇴임을 하자마자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후원회’를 만들었고 홀로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현재는 말라위에서 고아들을 돌보면서 음악학원을 통해 한국 유학의 길을 열어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지역의 추장은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여인’이란 뜻의 ‘루세케로’란 이름을 지어줬다.

김 씨는 책 출판을 기념해 음악학원의 제자들과 함께 한국에 와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22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에서 열리는 ‘희망을 노래하라’다. 제자들의 공연단 이름 또한 루수빌로(희망) 밴드로, 현지 음악콩쿠르에서 1등을 할 만큼 실력을 갖췄다. 김 씨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유행 때문에 관객이 별로 없을까봐 걱정된다”며 “많은 분들이 오셔서 아프리카의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102301032530109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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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행복한 미소

발행일 : [조선일보 2014.10.22]


아프리카서 인생 2막 성악가 김청자… 책 내고 말라위 아이들과 서울 음악회



고희(古稀), 일흔 할머니의 미소에서 '여성으로서 매력'이 느껴진다. 최근 생애 첫 책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바오로딸)을 펴낸 성악가 김청자(70)씨다. 젊을 때, 화려한 무대에 섰을 때보다는 전기조차 없는 동(東)아프리카 말라위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사진 속 얼굴의 행복감은 찬란하게 빛난다.

"저는 스스로 생각해도 참 진취적이라고 생각해요. '넌 시집가면 남편이 돈 많이 들겠다. 얼굴이 넓어서'라고 놀림 받을 정도로 얼굴 크고, 미간(眉間) 넓은 것이 어릴 때 엄청난 콤플렉스였어요. 그래도 웃으며 여기까지 왔어요. 하느님이 주신 DNA일까요?"

김씨는 입지전적 삶의 대명사다. 성악가를 지망했지만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간호사로 취업해 독일로 갔다. 거기서 신부와 수녀의 도움으로 음대에 진학, 장학생으로 성악을 공부해 유럽 무대에 데뷔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가 문을 열 때 귀국해 65세까지 후학을 가르치고는 아프리카로 건너갔다. 동생들 공부시키고 어머니 모시느라 유일하게 남은 경기도 양지 전원주택도 처분했다. 집 판 돈 5억원 중 2억원은 말라위 청소년 돕기 후원회에 내놓고 아예 삶의 근거를 아프리카로 옮겨버렸다.

그는 '열한 살 때 성당에서 만난' 하느님과 피아노(음악)란 선물을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정년퇴직 후 찾은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는 상수(常數), 최근의 에볼라 바이러스는 변수(變數)이다. 역경을 만날 때마다 '극복' 혹은 '포기' 양자택일로 돌파해온 그다. 이번에도 그의 선택은 '극복'이다. 수년 전 결성한 후원회 이름을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으로 지은 것도 '조금이라도 알려진 내 이름'을 팔기 위해서다.

김씨는 말라위 청소년 11명을 데려와 22~24일 국립극장에서 공연한다. 악보 볼 줄은 몰라도, 듣기만 하면 그대로 따라 하는 독특한 천재들이다. 그는 "내 무덤은 아프리카"라고 했다. "평생 예술가로 살아왔는데 마지막도 멋진 퍼포먼스로 끝내야죠." 책과 공연 티켓 판매 수익은 모두 아프리카 말라위 청소년을 위해 쓰인다. (02)523-9095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22/20141022000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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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 김청자 씨 "홀로 떠난 아프리카…영혼의 고향을 느꼈어요"

발행일 : [한국경제 2014.10.21 A37면]



말라위 고아들 돌보며 '제 2의 인생' 사는 성악가 김청자 씨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책 펴내

한국인 첫 유럽무대 선 소프라노
2010년 한예종 퇴임, 말라위 정착
청소년 밴드 이끌고 내한 공연 



“이 나이에 40도의 불볕더위와 온갖 불편함을 참아내며 이곳에 살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그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김청자 씨(70·사진)가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이란 책을 내놨다. 김씨는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선 유명한 메조소프라노였다. 평소 음악공부가 꿈이었던 그는 1963년 독일에 간호조무사로 갔다가 은인을 만나 레오폴트 모차르트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 공부를 시작했다. 독일 카를스루 국립오페라단원을 비롯해 스위스 이탈리아 등에서 16년간 이름을 날리며 프리마돈나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1973~1978년 중앙대 및 연세대 성악과 교수, 1994~20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교수로 지냈다. 이렇게 ‘잘나가는’ 성악가였던 김씨는 이번에 출간한 책에서 왜 모든 것을 버리고 돌연 아프리카로 떠났는지 털어놨다.

그는 안식년을 맞아 은퇴 후 삶을 준비하며 세계 곳곳을 여행하던 2005년 아프리카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 그런 환경에서 춤과 노래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곳이 내 영혼의 고향”이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2010년 2월 한예종에서 퇴임하자마자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후원회’를 만들고 그해 9월 혼자 아프리카로 갔다. 말라위 고아들을 위한 음악학원을 세우고 한국 유학 길을 열어주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에게 아이들은 ‘마미’ ‘마마’라고 부른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메조소프라노 가수가 아니라 사랑과 화해, 감사의 삶으로 새로운 무대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에게 말라위 추장은 루세케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여인’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김씨는 “사랑을 얻기 위해 달려온 길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완전하고도 영원한 사랑을 만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렇게 자식처럼 돌보는 말라위 청소년으로 구성된 ‘루수빌로(희망)’ 밴드를 이끌고 22~24일 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재즈, 아프리카 음악 등 공연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102044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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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지막 내 영혼의 고향은 아프리카

발행일 : [서울경제 2014.10.17]


1963년 열아홉의 나이에 독일로 건너갔다. 천주교 성당의 외국인 신부를 통해 간호사로 떠났지만 마음에 품은 것은 소프라노. 행운과 호의가 겹쳐 소원이던 음악을 공부한 그는 7년 뒤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오른다. 메조소프라노 김청자씨는 그렇게 유럽 각지를 돌며 16년간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교수 생활을 하던 그는 2005년 아프리카를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생을 바칠 해답을 얻는다. "잠비아에서 뼈만 남은 아이들이 나한테 찰싹 매미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순간, 아~ 마지막 내 영혼의 고향은 이곳이구나 깨달았다."

그리고 꼭 5년 뒤 정년퇴임한 그는 아프리카 후원회를 만든다. 그가 선택한 곳은 말라위. 잠비아·탄자니아·모잠비크와 국경을 맞댄 아프리카 동남부의 내륙국이다.

한국의 집마저 팔고 떠나온 그는 청소년센터를 마련해 갈 곳 없는 현지 아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뮤직센터를 만들어 음악을 가르친다. 그 중 몇몇은 한국으로 보내 음악교육까지 받을 수 있도록 주선했다. 모금운동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병원에 침대를 기증하거나 우물 파는 비용을 대기도 했다.
이재유기자 0301@sed.co.kr

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1410/e2014101717153211818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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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서 제2의 인생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발행일 : <뉴시스> 2014-10-20




【서울=뉴시스】유상우 기자 = “7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40도의 불볕더위와 온갖 불편함을 참아내며 말라위에 살 수 있는 것은 하느님 은총이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성악가의 화려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다가 아프리카 말라위의 오지 카롱가에서 평화와 사랑의 길을 찾은 김청자가 자서전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바오로딸)을 펴냈다.

김씨는 1970년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올랐던 메조소프라노다.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 오페라 단원을 비롯해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16년간 활약했다. 독일 뒤셀도르프 오페라단의 프리마돈나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고 뉴욕,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등에서 독창회까지 열 정도로 잘 나갔다.

그런 그녀가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예순의 나이를 맞은 2005년, 은퇴 후 삶을 준비하며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다.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인들의 삶, 그 안에서 발견되는 춤 추며 노래하는 아름다운 삶은 그곳이 내 영혼의 고향이 될 것이라는 내면의 소리를 듣게 했다”고 밝혔다. 

2010년 2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한 그녀는 은퇴하자마자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후원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9월 보따리를 싸서 아프리카 말라위로 날아갔다. 

말라위에서 고아들을 위해 음악학원을 세우고 청소년들에게 한국 유학의 길을 열어주고자 노력했다. 말라위 추장이 그녀에게 ‘루세케로’(행복을 가져다주는 여인이란 뜻의 말라위 이름)란 이름을 지어줬다.

김씨는 책에서 두 번의 이혼을 겪은 후 평생을 바친 삶 전체를 내려놓고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준다. 아프리카에서 펼친 다양한 활동사진도 실려 있다. 328쪽, 1만5000원.

한편 김청자는 22~24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에서 말라위 학생들로 구성된 루수빌로 밴드와 함께 공연한다. 11월 15일 성바오로딸수도회 알베리오네센터에서는 북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swryu@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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