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이신 주님,
첫 마음을 간직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 합리화로 변질되기 쉬운 깃털 같은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소서.
맨 처음 주님을 바라보며 결심했던 것을
잊지 않게 하시고
그 마음 그대로 살아가게 하소서.
유혹과 이기심을 뿌리치고 고난과 역경을
신앙의 힘으로 꿋꿋하게 밀고 나가게 하소서.
고단하고 분주한 일상에서
공기 마시듯 호흡할 때마다
당신 숨결을 느끼게 하소서.
주님게 드렸던 첫 마음 그대로
주님 곁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_ 이재희, 「엄마의 기도 수첩」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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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를

사제로 삼으셨으니

그리스도인의 보편 사제직

알베르 바누아 | 최현순 | 115*175 | 96| 6,000

ISBN 9788933113080 02230 | 2018. 1. 31. 발행 


우리도 사제입니다_평신도 희년 필독서!

 

지난해 1119한국 평신도 희년이 선포되었다.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한국평협)는 단체 출범 50년을 맞는 2018년을 평신도 희년으로 정하고,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를 통해 이를 승인받았다. 평신도 희년은 올해 1111일까지다.


모든 신자는 각자 소명에 따라 맡은 역할을 수행하며 교회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을 맡았느냐가 아니라 희생과 봉사, 사랑으로 그 일을 해야 한다 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른 역할이 필요하고, 모두가 기꺼운 마음으로 보편 사도직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제직은 죄인인 인간들의 무거운 운명과 완전히 연대하시는 그분의 행위에 기초하고 있고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결합된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분과 더불어 사제들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 12,27)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 교령을 선포하며, 교회와 세상 안에서 수행하는 평신도의 사명과 역할을 강조하였다. “또한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에 효과적으로 참여하여 하느님 백성 전체의 사명에서 맡은 자기 역할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수행한다.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인 정신으로 불타올라 마치 누룩처럼 세상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도록 하느님께 부름 받았다(2).

 보편 사제직이란 무엇인가?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로 부름을 받았다. 가톨릭교회는 직무 사제직과 구분되는 이러한 사제직을 가리켜 보편 사제직이라고 부른다.

 

현대 가톨릭교회에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를 무엇보다도 하느님 백성이라고 묘사하면서, 이 백성의 가장 큰 특징으로 보편 사제직을 꼽았다. 공의회는 교회가 마치 직무 사제들의 교회와 평신도들의 교회로 나누어져 있기나 한 것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고자 했다. 또한 평신도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존귀한 품위를 올바로 인식하고 교회와 세상 안에서 능동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도록 하는 데에 보편 사제직에 대한 인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교회의 현재와 미래의 발전은 보편 사제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 실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편 사제직은 중요한 주제다.

 

이 글은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의 교수이자 학장이었던 알베르 바누아 추기경이 2010기도 사도직모임에서 발표한 것이다.

추기경은 보편 사제직과 직무 사제직의 관계를 균형 있게 다루고, 보편 사제직의 의미를 성경을 기반으로 영성적 측면을 짚어주면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의 존재 의미와 사제직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보편 사제직과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베드로 1서와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알베르 바누아 추기경은 히브리서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대한 연구의 권위자다.


성 베드로에 따르면 신자들의 사제직 활동이란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 스도를 통하여 바치는것이다. 여기서 영적 제물이란 무엇일까? 현대어에서 희생제물이란 고행 또는 희생을 의미하고, ‘영적이란 정신적인 것과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영적 제물이란 정신적 희생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까? 세례받은 사람들은 정신적 희생을 감내하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성 베드로의 표현은 이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살아있는 희생제물, 다시 말해 하느님 앞에, 세상 안에서 하느님 사랑에 봉사하고 자신들의 몸을 산 제물로 바치도록 초대되었다. 바로 이것이 일상에서의 봉헌이 의미하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의 새로운 생명을 받은 우리는 세상 안에서 하느님 사랑에 봉사하도록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린 사람들이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결코 사제라는 칭호를 부여하지 않으며, 베드로의 첫째 서간처럼 신자들의 사제직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용어들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는 것, 따라서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실제로 사제들이라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중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곧 그리스도께서 성사들과 직무 사제직을 통해 당신의 중개를 현존하게 하신다는 사실이다.

신자들의 사제직 활동을 위해서 그리스도보다 더 권위 있는 어떤 안내자도 발견할 수 없다. 우리는 항상 그분에 의해 안내되고 우리를 맡겨드릴 수 있도록, 모든 것이 그분이 지닌 사 제의 마음과 온전히 일치하여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사제직을 수행하도록 인도해 줄 위대한 사제가 계시다. 바로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인간을 위한 희생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우리의 대사제가 되셨다.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세례를 통해 그분의 수난과 부활에 참여하므로 그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주교로 선출되면서 보편 사제직과 직무 사제직에 대하여 멋진 말씀을 남겼다.

제가 여러분을 위하여있다는 사실이 저를 두렵게 하지만, 제가 여러분과 함께있다는 사실은 저를 위로해 줍니다. 실제로 여러분을 위하여 저는 주교이지만, 여러분과 함께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전자는 직무의 이름이며, 후자는 은총의 이름입니다. 전자가 위험한 이름이지만, 후자는 구원의 이름입니다. 전자가 위험한 샘이라면, 후자는 구원의 샘입니다. 저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되는 것은 제가 여러분과 함께 구원된 존재라는 사실이지, 제가 여러분의 우두머리로 뽑혀 세워졌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보편 사제직과 직무 사제직은 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같다.

어느 쪽이든 균형을 잃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완성된 교회의 모습이다.

사도직의 다양한 형태와 방법을 통하여 새로운 요구에 끊임없이 적응하는 평신도들은 주님의 협력자가 된다.”(평신도 교령 33)

어디에 있든, 어떤 부르심을 받았든,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각각 다른 방식으로 부르실 뿐, 우리 모두는 각자의 소명에 따라, 지금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실천하고 선포할 책임이 있다.

 

한국 천주교회가 평신도 희년을 보내고 있는 지금, 때마침 발행된 이 책이 특히 평신도들에게 자신들의 고귀한 품위를 확인하고 교회와 세상을 위해, 그리고 하느님을 위해 담대히 일할 수 있도록, 또한 보편 사제직에 대한, 보편 사제직과 직무 사제직의 관계에 대한 올바르고 균형 있는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히신 대사제 주 그리스도께서는 새 백성이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들이 되게 하셨다.”


키워드(주제어): 보편 사제직, 직무 사제직, 평신도 희년, 베드로 1, 히브리서, 조화, 균형, 수난, 죽음, 희생제물, 세례, 대사제, 성체성사,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갖는 새로움, 새로운 길, 교회의 완성, 2차 바티칸 공의회

 

 

목차

이 책에 대하여

성 베드로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보편 사제직

1. 봉헌의 전제조건/ 2. 그리스도와의 결합/ 3. 영적 집/ 4. 영적 희생제물/

5. 사랑의 불/ 6. 보편 사제직과 성체성사의 관계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보편 사제직

1.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갖는 새로움/ 2. 그리스도인의 사제적 상태/

3. 분리를 없애다/ 4. 새로운 길/ 5.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도록 초대됨/

6. 믿음 · 희망 · 사랑의 권고/ 7. 교회의 완성

옮긴이 후기

 

 

 

 

지은이_ 알베르 바누아(Albert Vanhoye)

예수회 소속이며 1954년 사제품을 받았다. 1961년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박사학위를 받고 1963년부터 동 대학 교수, 1984-1990년 동 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 및 위원장, 신앙교리성 위원을 지냈으며, 2006년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특히 히브리서에 대한 연구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대한 권위 있는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옮긴이_ 최현순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MTh.), 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STL, STD)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대우교수로 있다. 학술활동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관련 논문을 다수 썼다.

저와 함께 하시는 주님!
오늘 하루 저의 말 한 마디가 다른 이들에게
당신을 보여 줄 수 있고 느끼게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님, 제 안에서 말씀하시는 당신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다른 이에게도 사랑과 기쁨, 희망 넘치는
그 아름다운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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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신 주님,
새로운 형제 자매들을 당신께로 부르시고
당신의 자녀가 되도록 허락해주심에 감사드리며 청하오니,
주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이 더욱 굳세어지고,
천상 잔치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그들 마음에 당신 사랑의 불을 놓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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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
이제 당신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영광인지 알게 하소서.
저희가 주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저희를 택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신앙을 고백하게 하셨듯이
따뜻한 당신 품으로 이끌어 주소서.
저희가 하나 되어 당신께 나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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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가득하신 주님,

주님을 모르고 살아가던 저희를 부르시어

주님 성전에서 다듬고 가르치며

깨끗이 씻어주셨나이다.

이제 당신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영광인지 알게 하소서.

저희가 주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저희를 택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신앙을 고백하게 하셨듯이

예비신자들도 따뜻한 당신 품으로 이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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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빛으로 오신 주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기도드립니다.

주님의 백성인 교회의 지체들이

세례 때의 은총을 기억하고

감사드리는 삶을 살게 하시며

세상 모든 이들에게 참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주님의 충실한 도구로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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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인정이 넘치시는 주님,

저희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과

주님이 주신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새 이름은 교회의 거룩한 성인 이름이며

당신께서 불러주신 이름입니다.

수호성인을 따르며 성인들의 삶을 본받고

빛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새 이름에 걸맞은 생각과 행동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언제든 주님이 부르시면

'주님, 제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기쁘게 달려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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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8) 엔딩노트 

죽음, 하느님께로 가는 아름다운 길

엔딩노트(Ending Note, 2011) , 감독 : 스나다 마미(砂田麻美), 상영시간 : 90분 , 장르 : 다큐멘터리 , 등급 : 전체 관람가 



인간은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일회적 삶을 사는 인간에게 죽음은 반복될 수 없는 사건이기에 삶이 의미가 있다면 죽음 또한 분명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스나다 도모아키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엔딩노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줄거리

 정년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던 스나다 도모아키는 건강검진을 통해 말기암 판정을 받아든다. 예상치 못한 죽음 통보 앞에 망연자실해 하며 슬퍼하기보다 그는 성실하고도 꼼꼼하게 자신만의 '엔딩노트'를 준비한다. '평생 믿지 않았던 신을 믿어보기', '한 번도 찍어보지 않은 야당에 표 한 번 주기', '일만 하느라 소홀했던 가족들과 여행 가기' 등 목록을 작성하며 그는 가족들과 소중한 추억을 쌓는다. 그렇게 '엔딩노트'가 채워질수록 가족과의 긴 이별 시간은 점점 가까워진다


▲ 말기암 판정을 받고 나서도 해변가에서 손녀들과 머슴놀이 실컷 해주는 주인공 스나다 도모아키.


▲ 하느님을 믿기 위해 사제를 찾아가 세례를 받고 싶다고 고백하는 스나다 도모아키(왼쪽).


▲ 임종 직전, 주인공 스나다 도모아키는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 막내딸에게 세례받는 주인공.


죽음 준비는 내 일상의 일부


 영화의 첫 장면은 카메라 파인더를 서서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기며 촬영하는 패닝(panning)기법으로 막을 올린다. 청명한 하늘에 정갈히 건축된 높은 빌딩을 낮은 데서 올려다보며 찍다가 장례식장인 성당으로 화면을 옮겨가며 오버랩(Overlap)한다.

 그는 죽어서도 문상객을 자상히 챙긴다. "바쁘신 와중에도 저를 위해 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마실 건 충분한가요? 부족한 건 뭐든 말씀하세요.… 덕분에 이날을 맞을 수 있게 됐습니다."

 대학에서 경제학부를 나와 민간 화학제조사 영업부에서 40년간 많은 프로젝트를 기획해온 그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일생일대의 마지막 프로젝트"라며 엔딩노트를 만든다.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무엇이든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는 꼼꼼한 그였기에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잘 죽을 수 있을까, 사람은 왜 죽을까?"하는 질문을 던지고 죽음을 적극적으로, 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하나하나 준비해 나간다. 장례식장도 자신이 직접 답사해 빈틈없이 준비한 그는 94세 어머니께 알려드린다. "장례식은 조용하고 간단히 할 거예요. 노래도 부를 거예요. 지인들만 모시고, 부의금은 받지 않겠습니다.…"

 밝은 성격과 심각한 일일수록 유머를 잊지 않았던 그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체력은 떨어지고 몸은 야위지만 부정하려고도 하지 않고 자포자기하지도 않으며 분노하지도 않고 오히려 유쾌하게 죽음을 맞는다. 장례식에 초대할 사람들을 미리 컴퓨터에 정리해 두고 혹시나 해서 여벌받기까지 해 둔 명단을 아들에게 넘겨주며 말한다. "장례식에서 주빈(Main guest)은 나니까." "…장례식 도중에 잘 모르겠으면 나한테 전화해"하며 늘 웃음을 잃지 않는다. 올해를 넘길지 모르니 연하장하고 부고장을 같이 보내겠다며 친구에게 전화한다. 


 잊고 있던 중요한 것들을 회복하기


 자신의 부주의로 태어난 막내딸! 그러나 문제인 이 딸을 통해 그동안 무심했던 하느님과의 관계를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직접 사제를 찾아가 말한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곳을 찾다 보니 이렇게 의지하게 됐습니다. 이곳에서 세례를 받고 여기서 편안히 보내주신다면…." 그러고나서 사제가 권하는 기도문을 매일 정성들여 바친다.

 "제가 세상을 뜰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가장 걸리는 건 가족이죠!" 그는 소홀했던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힘들지만 마지막 가족여행을 떠난다. 그동안 멀리서 홀로 살았던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며 많은 대화를 나눈다. 대화 중에 가장 중요했던 건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것. 그리고 불교 신도인 그가 세례를 받기로 한 사실과 성당에서 장례식을 할 것이라는 소식 등이다. 바쁜 직장생활로 평소 소원했던 아내에게도 쑥스럽지만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내 준코는 "같이 가고 싶어. 당신이 이렇게 좋은 사람인줄 너무 늦게 알았어. 더 많이 사랑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하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부인에게 "같이 살아줘 고맙다"고 자신의 노트에 기록한다.

 가족들 역시 끝까지 온 힘을 다하는 그가 흔들리지 않고 남은 생을 편하게 보내도록 최선을 다한다. 모두 그의 둘레에 모여 행복한 옛 추억을 담은 비디오를 보며 아름다운 삶의 기억을 되살린다. 아버지 주위에 모인 가족들! 손녀들은 "할아버지 덕분에 많이 웃었어요.… 하늘나라에 가시게 됐지만 할아버지랑 굉장히 즐거웠어요.…"하며 할아버지가 아름다운 죽음을 맞도록 돕는다. 그는 어머니께도 작별 인사를 한다. "오랫동안 고마웠어요.… 어머니보다 먼저 가서 죄송해요.…" 가족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쁨을 느낀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관계가 있는 한 죽음은 끝이 아니다. 

 평소 스쳐 지나치던 일이지만 죽음 앞에서는 매시간이 소중하며 은총이었다. 방학 중 미국에서 찾아온 손녀들 앞에서 암에 걸렸다고 누워만 있을 순 없다며 손녀들 머슴노릇으로 재미있게 최선을 다해 놀아준다. 임종을 앞둔 그을 위해 미국에서 자신을 보러 찾아온 손녀들에게 애정을 표시하며 연신 "고맙다…. 감격스럽다! 할아버지 감격!! 만나서 감격!!"하며 두 손을 들어 올려 기쁨을 표현한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한 삶이었기에 모든 것이 감사로울 뿐이어서 그는 끊임없이 그와 관계한 모든 이들에게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는 죽기 하루 전 세례를 받는다. 그가 상상했던 장엄한 성당도, 오르간 음악도 없는 병실에서 막내딸에게 세례(대세)를 받는다. 온 가족이 모인 병실! 부인과 세 자녀, 큰 아들의 세 아이까지! 창가에 비치는 햇살 속에서 죽음에 대한 어린 손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렇게 웃고 있으니까 여기가 천국 같다. 정말 그러네"하고 말한다.

 이어 그는 편안하게 죽음의 문을 넘어 영원한 나라로 간다. 죽음은 축복이자 은총이다.

 그리고서 어둑어둑해지는 도시 하늘에 한 마리 새가 하늘로 훨훨 날아 사라진다. 장례차가 가족 곁을 지날 때 그는 손녀들에게 말한다. "할아버지 앞에 너희들이 나타나줘 정말 행복하단다. 하늘의 별이 돼 너희들 크는 걸 지켜볼게…."

 

영화에 대해서

 다큐멘터리 영화 '엔딩노트'는 감독이자 주인공 막내딸인 스나다 마미 감독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직접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다. 다큐멘터리를 공부한 그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밑에서 배운 이후 데뷔작에서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 준비, 임종을 그렸다. '엔딩노트'는 최대한 인물에 가깝게 다가가면서도 거리를 두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의 모습을 습관처럼 계속 카메라에 담아온 스나다 마미 감독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 계획은 없었지만 촬영 과정에서 아버지가 죽음을 맞던 모습과 죽음을 함께 마주하는 가족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고자 영화화를 했다고 밝힌다. 죽음은 관계의 회복이자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며, 하느님께 가는 아름다운 길임을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그룹대화  

 1. 인생을 마무리하는 주인공 죽음에 대해 느끼는 바는 무엇인가?

 2. 주인공의 마지막 프로젝트, 엔딩노트는 무엇인가?

 3. 나의 엔딩노트에 첫 번째는 무엇인가?


 성경구절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끝이 좋고 죽음의 날에 복을 받으리라"(집회 1,13).




이복순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

평화신문 [가톨릭 문화산책]<38>: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80592&path=201310



 

손호빈 신부 글, 데레사 말가리다 수녀 그림, 『나의 첫영성체』, 바오로딸, 2012

 

내가 수녀원에 입회를 하고 가장 부러워했던 것 중의 하나는 유아세례를 받고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한 동기들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교회 안에 머물렀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교회의 분위기 안에서 자랐으니 가랑비에 옷 젖듯이 신앙인으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은 자연스럽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반면에 어른이 되어서 스스로 신앙을 선택한 이들은 이것이 복음적인가 아닌가를 늘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때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묻힌다고 느낄 때 많이 힘겹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부럽다고 표현을 하면 자매들은 나에게 “그래도 어른이 돼서 세례를 받으면 그때 느끼는 기쁨, 하느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는 기쁨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느끼지 않았냐고, 그리고 사실 지식적인 교리는 어른이 되어서 교리 공부를 한 네가 훨씬 더 잘 설명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런 면에서 나는 네가 더 부럽다.”라는 표현을 해오곤 하였다.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는 것과 수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느님이라는 커다란 힘이 나를 지켜주며 나를 이끌어 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문제들을 돈과 명예가 다 해결해 주는 듯이 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을 조금만 깊이 바라보면 돈과 명예가 자신의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앙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큰 힘이 되어준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하느님은 우릴 외면하지 않는다. 그런 하느님을 자녀에게 유산으로 물려준다는 것은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는 이익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여도 가장 큰 것을 물려주는 것이다.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하느님 앞에 서게 된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의 첫영성체」는 어린이들에게 신앙을 마음 깊이 새겨준다.

가장 기본이 되는 가톨릭 교리와(칠성사, 전례력, 미사 등등) 예수님의 탄생에서 승천까지의 이야기를 어린이들이 알기 쉽게 이야기하고 있다. 예쁜 그림과 더불어 만화도 함께 실려 있고 첫영성체를 한 후 첫 고해성사 후의 자신의 결심과 느낌을 적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부모님과 선생님의 축하메시지, 첫영성체 때의 사진 등도 담을 수 있게 만들어 첫영성체를 한 어린이들에게 신앙의 첫걸음인 첫영성체를 오래도록 기억하며 신앙을 키워갈 수 있게 했다.

물론 인터넷이나 게임에 익숙한 어린이들에게 심심하고 재미없을 수 있다. 하지만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다고 꼭 필요한 것은 알려주고 가르쳐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참된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고 자양분이 된다.

 

- 황현아 클라우디아 수녀

* 광주교구 간행물 <하늘지기>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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