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마 수녀의 신나는 성경공부]<10>가장 큰 사람(마르 9,33-37)

스스로 낮추고 섬기는 위대한 삶

▲ 영화 '마르첼리노의 기적' 포스터.


예수님이 높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마르코 복음 9장에는 제자들의 무능력이 드러난다. 예수님이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했음에도 제자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제자들은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인지에 너무 관심을 갖고 있었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하면서 수난과 죽음에 대해 세 번이나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런 가르침이 제자들의 마음속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예수님 말씀에 힘과 권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자들이 딴생각을 하고 있어서다. 마음 깊이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나와는 다른 사람에게 해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자들은 많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고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에게 십자가와 죽음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따라다니는 예수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가 오면 예수님 옆에는 누가 앉을까에 더 관심이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예수님과 생각이 너무 달랐다. 그 제자들 모습이 우리 모습이다. 우리는 신앙생할을 열심히 하면서도 예수님 생각 따로, 우리 생각 따로인 것처럼 행동한다. 야고보와 요한은 수난을 당하려고 예루살렘에 가시는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르 10,37)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그 길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제자들의 알아듣지 못함이 내 모습은 아닌가 생각해보자. 세속적인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현세적 축복을 기대하는 제자들처럼 예수님이 아무리 당신 수난과 부활을 이야기하셔도 알아듣지 못한다. 예수님이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것은 당신의 죽음이 실패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자원하셨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두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용기를 주고자 하셨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통치자가 되시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자기들은 마땅히 그 다음가는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 마음은 어땠을까.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마르 9,33-34)

 그러나 제자들은 거리낌이 있어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설명해주신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신다. 삶을 진정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은 나눔의 삶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

 예수님은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가운데 세우신 다음, 어린이를 껴안으면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 9,37).

 어린이들은 서슴없이 예수님에게 간다. 이익을 따지지 않고 예수님께 곧장 갈 수 있는 마음은 우리 안에도 있다. 많은 사람이 통상적으로 천진무구하다. 예수님은 하느님 앞에서 가장 미소한 이의 상징이 어린이라고 말씀하신다. 

 영화 '마르첼리노의 기적'을 보면, 주인공 마르첼리노가 수도원 앞에 버려져 있다. 수사들은 마르첼리노를 데려다 키웠다. 수사들은 마르첼리노에게 다락방에는 올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마르첼리노는 다락방에 올라간다. 다락방에 올라가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고 마르첼리노는 놀란다. 옷을 걸치고 있지 않은 예수님에게 마르첼리노는 "예수님 춥죠? 예수님 배고프죠?"하고 묻는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어 마르첼리노가 가지고 온 빵을 같이 잡수신다. 우리 마음에도 분명히 예수님을 직면할 수 있는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이 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 눈에서 의심 없이 순수한 믿음을 보셨다. 어린이들처럼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갖고 살 때 누구라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선언하셨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스스로를 낮추고, 하느님의 종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분의 이름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어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 예수님은 가장 큰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대답해주셨다. 섬기러 오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느님과 이웃에게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진정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방송시간 : 화 오전 8시, 수 새벽 1시ㆍ오후 1시 40분, 금 오후 8시, 토 오후 10시

 ※교재 문의 : grace@pauline. or.kr, 02-944-0945 


평화신문 :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73170&path=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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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job coaching 2013.09.20 18:37 신고

    행복 경제학은 공공 정책의 성공을 평가할 때 공공 행복의 조치가 전통적인 경제 조치를 보완하기 위해 사용되어야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감사합니다.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어리둥절한 때가 많았고,
길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귀를 열어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사막 같은 삶이었다.

 

* 다음주 화요일에 계속 *

 

이 사피엔자 수녀 | 그림 주 벨라뎃다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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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계단을 내려오다가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네가 왜 사람 때문에 그렇게 절망하느냐?'

그때, 그분이 내 곁에 계시고
그분이 내 모든 것을 알고 계심을 체험했다.

그때의 기쁨환희란!

 

* 다음주 화요일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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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서원식을 준비하던 날이었다.

성당 안에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작동이 잘 안 되어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선배 수녀님이 오셔서 꾸중하셨다.
속상했고, 늘 다루던 카메라임에도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

 

* 목요일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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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나를 초대하셨다.
나를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시려고.

행복하게 첫 서원을 했다.

 

* 목요일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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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바오로딸수도회는
'바오로딸'이란 출판사를 세워
사회 커뮤니케이션 세계 안에서
진리의 기쁜 소식을 사람들과 나눠오고 있다.

책, 음반, TV, 라디오, 인터넷…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말씀을 전한다는 것,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러 매체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 다음주 화요일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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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 청원기, 수련기…

수도원에서의 삶은
내게 큰 행복을 안겨주었다.

 

* 목요일에 계속 *

 

이 사피엔자 수녀 | 그림 주 벨라뎃다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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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옛날 바오로 집)에 초대를 받았다.

성당 복도에서 지원자 자매들이
아주 소소한 일로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웃으면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 다음주 화요일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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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성당 구석에 앉아 있다가
우연히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의 길을 쳐다보았다.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님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십시오,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 다음주 화요일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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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필립 그로닝|다큐멘터리|프랑스, 스위스, 독일|개봉 2009


영화 <위대한 침묵>은 프랑스의 알프스 산자락에 자리 잡은 카르투지오회 대수도원(The Grande Chartreuse)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세상에 처음 공개된 이 봉쇄 수도회는 엄격한 금욕생활을 지키고 정결 ․ 청빈 ․ 순명서원과 함께 침묵을 서원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수사들이 아닌 바로 이 침묵이다. 그래서 보통의 다큐영화와는 달리 이곳 수도생활에 관한 정보를 주는 자막이나 수사들의 인터뷰는 나오지 않는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풍경과 더불어 매일 일하고 기도하는 수사들의 말없는 몸짓만이 우리가 볼 수 있는 작품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인위적인 조명도 전혀 쓰지 않았기에 자연적인 빛과 어둠이 필름의 거친 입자 속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수사들의 찬미가만 유일한 음악으로 들리는 이 세계는 소리 없는 무성의 세계가 아니다. 침묵에도 빛이 있고 언어가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처음 보고 느꼈다. 세상을 지배하려 드는 인간의 언어가 잠재워진 이곳에 새들과 바람, 수사들의 발자국과 옷깃이 서로 스치며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리는 눈, 동그랗게 퍼지는 빗방울 물결, 나뭇잎을 스치는 차분한 바람, 천천히 산을 감싸며 미소 짓는 구름, 창문으로 들어온 하얀 햇살, 기나긴 겨울을 지나 봄의 생명을 만끽하는 자연과 사물 하나하나는 사람과 동일한 무게의 존재감을 지닌다. 그래서 이곳 수사들은 꼭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들은 알프스처럼 높은 산위, 첨예하게 깍아지른 절벽 꼭대기에 서서 하느님을 부르는 풀이요, 나무들 같았다. 그분 앞에 동등하게 놓여 있는 자연과 사물과 사람에게 깃들여진 존재의 신비가 위대한 침묵 안에서 은은한 빛을 발한다. 그 신비를 대하는 것은 나에게 정말 큰 선물이었다.



처음 이 작품을 대할 때 내 마음은 어수선하게 움직였다. 낯선 고요함에 저항하듯, 수도원 상황 하나하나를 이해하려 들었고, 수사들이 품고 있을 사연을 궁금해 하며 인과관계를 따지느라 생각이 분주했다.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카메라를 쫓아다녔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안에 오가는 말들이 얼마나 크고 불필요한 소음인지 곧 알게 되었다. 내 존재가 침묵이라는 어둠 속에 묻혀서 질식해 버릴까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내 안에 가득 찬 말들을 놓아버리고 침묵에 온전히 나를 맡겼을 때, 한없이 충만하고 아름다운 언어가 살아 숨 쉬는 세계가 다가왔다. 두 시간 반 동안 침묵의 세례를 받았다고 말해도 좋겠다.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의 언어를 초월한 자연과 우주에 깃든 생명의 언어임을 <위대한 침묵>을 통해 배웠다. 그래서 모든 인간적인 언어는 깊은 침묵 가운데 소멸되고, 그들 가운데 오직 하나의 응답만이 고요하게 울려 퍼진다.

“주님께서 저를 이끄셨으니, 제가 이곳에 있나이다.”

- 바오로딸 <야곱의 우물> 2010년 1월호
김 노엘라 수녀

*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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