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눈물 한 방울로 아내를 살리다

2018.04.28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 

[박돈규 기자의 2사만루] 뇌출혈로 의식 잃은 아내, 사랑의 대화로 일으켜 세운 서규석씨

아내가 느닷없이 쓰러졌다. 의식을 잃었다. 2013년 7월 10일 서울 한 백화점 수퍼마켓에서였다. 뇌동맥 파열로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맬 때 남편이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다. 아내는 열흘째에 눈을 떴다. 일반 병실로 옮겼지만 불행은 사납고 질겼다. 수퍼박테리아(내성이 강해 그 균에 맞는 강력한 항생제를 써야 한다)에 감염돼 중환자실로 되돌아갔다.

열아흐레째 더 큰 뇌출혈이 일어났다. 의료진은 "생존 확률은 1%밖에 없으니 임종을 준비하라"고 했다. 할 수 있는 처방은 진통제밖에 없으니 집으로 데려가라는 것이다. 남편 서규석(76)씨는 절망했다. 프랑스에서 의사로 일하는 딸이 "희망을 잃지 마라"며 가져다준 책을 그날 밤새 읽었다. 프랑스어 원제는 '눈물 한 방울이 나를 살렸다'. 희소병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기적처럼 살아난 여인의 체험담이었다.


"딸이 엄마를 부르며 애절하게 울자 식물인간이던 환자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나왔답니다. 살아 있다는 신호를 그렇게 보낸 거예요. 딸이 '엄마가 울어요!' 외치자 상황이 급변했지요. 그 대목을 읽고 기뻤습니다. 저도 할 일이 생겼으니까요. 의식이 없는 아내에게 계속 말을 걸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런 남편의 병구완을 받으며 아내 신향철(61)씨는 아홉 번의 뇌수술과 긴 투병, 재활을 이겨냈다. 2016년 11월 마침내 집에 돌아왔다. 서씨는 희망의 등불이 돼준 책을 번역해 '눈물 한 방울'(바오로딸 刊)로 펴냈다. 지난달 21일 강원도 원주에서 만난 이 부부는 "우리 삶에서 가장 큰 선물은 이 책을 만난 것"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암담할 때마다 도움을 청하는 마음으로 '눈물 한 방울'을 읽고 새로운 힌트를 얻었다"며 "중환자 가족들을 돕고 싶어 직접 우리말로 옮겼다"고 했다.

서규석(오른쪽)씨는 아내 신향철(왼쪽)씨가 뇌출혈로 의식 없이 사경을 헤맬 때에도 말을 건네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의식 불명 환자도 귀는 열려 있다고 말하는 책 ‘눈물 한 방울’에서 희망을 얻었다”며 “인생의 목표는 이제 소박하다. 건강을 회복한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원주=고운호 기자
"의식이 없어도 귀는 열려 있다"

서씨는 간병하며 일기 4권을 썼다. 처음엔 경황이 없었다. 아내가 쓰러지고 열흘쯤 지난 때부터 기억을 복기했고 날마다 있었던 일을 적어나갔다. 일기 첫 장은 2013년 7월 10일의 기록.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중환자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잘 못 보았다. 야속한 눈물, 바보 같은 눈물 때문에'라고 적혀 있었다.

―부인에게 병의 징후가 없었는지요.

"혈압이 높진 않았는데 편두통이 있었어요. 일을 당하고 나서야 건강검진 제대로 안 한 걸 후회했습니다. 백화점에서 갑자기 쓰러져 토하는데 경비원들이 의무실로 옮기겠다는 걸 제가 막았어요. 이럴 경우 잘못 손대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구급차로 강남성모병원에 실려 가 3시간 만에 수술했는데 의사는 '사망할 확률이 80%'라고 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선 어떤 상태였나요?

"의식이 없었어요. 중환자실은 보통 비참한 게 아녜요. 마취가 풀리면 팔다리가 묶인 채 비명을 질러대는데 아내에게서 나올 거라곤 상상할 수 없는 괴성이었습니다. 몸부림을 쳐서 온몸에 피멍이 들어 있었어요."

―투병을 지켜보는 사람도 힘들고 외로울 텐데요.

"처음 며칠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중환자실은 하루 20분밖에 면회가 안 돼 병원 복도에서 울고 다녔어요. 투병이 길어지면서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었습니다. 친구나 친척 만나기도 싫더라고요. 그래서 일기를 쓴 거예요. 저를 향한, 저와의 대화처럼."

―평소에도 일기를 썼나요?

“아뇨. 그땐 뭐라도 해야만 했어요. 그날 있었던 일과 기억하고 싶은 것을 적었죠. 기도도 들어가고요. 이 사람이 좋아지고 나서는 일기를 안 써요.”

―부인과 나이 차이가 꽤 나는군요.

“저는 재혼이고 이 사람은 초혼이에요. 제가 프랑스에서 20년 넘게 살았고 프랑스 기업 솜피 한국지사에서 대표이사를 지냈습니다. 이혼하고 8년을 혼자 살다가 직장에서 만난 이 사람과 1999년에 결혼했어요. 프랑스에 사는 아들딸은 모두 전처소생이고요.”

―의사인 따님이 ‘눈물 한 방울’ 원서를 가져다줬다고요?

“그해 프랑스에서 출간돼 화제가 된 책이었어요. 앙젤 리에비라는 여인이 식물인간으로 회복 불능 상태였는데 사실은 표현만 못 할 뿐 모든 걸 듣고 있었답니다. 생생한 투병기였어요. 환자가 의식이 없어 보여도 귀는 열려 있으니 계속 희망을 가지고 얘기하라는 겁니다.”

―사람이 죽으면 귀가 가장 나중에 닫힌다고 하죠. 병원이 수술조차 거부하며 장례를 준비하라고 할 때 받은 책인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아니었을까요.

“믿었어요. 증인이 나타난 거니까요. 임종 전이라 면회 시간을 제한하진 않았어요. 중환자실에 들어가 아내에게 계속 얘기했어요. ‘당신 꼭 나을 거야. 의사 선생님도 희망을 가지고 계셔. 걱정하지 말고 고통스럽더라도 참아야 해.’”

네 권의 간병 일기 서규석씨는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투병하는 아내를 돌보면서 일기를 썼다. 2013년 7월 입원부터 2016년 11월 퇴원까지 40개월이 일기장 4권에 담겨 있다. 서씨는 “나와 대화하듯이 하루하루를 기록했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간병하다 몰래 심장수술 받은 남편

신씨는 그해 8월 초 뇌에 고인 피를 빼는 수술을 받았다. 하루에 두세 번 의식이 잠깐씩 돌아왔다. 눈을 떴고 쳐다봤다. 일반 병실로 옮겼다. 서씨는 “시간이 더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했다”고 했다.

―9월 중순까지 호전되다 또 갑자기 의식을 잃었습니다.

“뇌실(腦室)에 물이 찼다는 거예요. 수술은 죽을 확률이 90%일 만큼 위험하고 수술 안 하면 평생 식물인간처럼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죽어도 괜찮다’ 동의하고 수술실로 들여보냈어요.”

―그랬더니요?

“수술받고 나오면서부터 시선이 딱 고정돼 있었어요. 눈알을 움직이고. 성공한 거죠.”

―그게 마지막 수술인가요.

“다섯 번째였습니다. 원주 기독병원으로 내려와서 네 번을 더 했어요. 나빠지고 의식 잃고 다시 수술하기를 반복했지요. 별의별 어려운 과정을 다 거친 겁니다. 뭘 하나 삼키는 데 몇 달이 걸렸어요. 그 사이 저도 심장 부정맥 수술을 받았고요.”(옆에 앉은 신씨가 ‘저 사람이 그때 쓴 일기를 나중에 읽었어요. 심장수술도 위험한데 그걸 말해야 하는지, 내가 걱정할까 봐 몰래 해야 하는지, 혹시라도 사망하면 어떡하나 고민한 것’이라고 했다)

―결국 어떻게 하셨나요?

“말 안 하고 몰래 수술을 받았어요. 아내는 이틀 동안 저를 못 봤고요.”

―퇴원한 2016년 11월까지 장장 40개월을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다른 환자와 가족, 간병인도 많이 보셨겠군요.

“불행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6인실을 썼는데 가족이 환자한테 잘 못 하는 걸 자주 봤어요. 의식이 없으면 간병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들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얘기를 하면 겉으론 미동도 없는데 집중해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어요. 의식이 없는 다른 환자도 가족이 오면 반가워하는 게 저한테는 보였어요. 휙 나가면 슬퍼하는 것도 느껴지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간병인도 여러 종류예요. 어떤 할머니를 돌보는 분이 쓰다듬고 얘기하고 지극정성이라 며느리인 줄 알았는데 간병인이라서 놀랐어요. 반대로 가족이나 간호사가 없을 때 환자를 꼬집고 학대하는 간병인도 봤어요. 제가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딱 잡아떼더라고요.”

―부인은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처럼 지낼 때 남편의 말이 들렸나요?

“의식 없이 생사를 넘나들던 순간은 전혀 기억이 안 나요. 남편 일기를 보고야 알았지요. 저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노력을 했는지. 내가 얼마나 큰 정성을 받았는지.”

―지금은 어떤 상태인가요.

“뇌수술 때문인지 파킨슨병이 생겼어요. 옛날 일은 잘 기억하는데 단기기억이 좀 안 좋아요. 걸음이 느리고 시야가 좁아졌고요. 왼쪽 마비가 왔었는데 다 나았습니다. 여행을 갈 정도로 많이 회복됐어요. 장애 1등급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가장 낮은 4등급입니다.”

―부인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어떤 갈증이 있었나요.

“환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어요. 간호사도 약이나 갈고 나갈 뿐 제게 말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온전하지 않은 존재로 대우받는 게 싫었어요.”

―지난해 ‘뇌졸중을 이긴 사람들’ 수기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으셨더군요.

“의사가 이 사람 회복된 상태를 보고 놀라며 공모전을 알려줬어요. 겪은 일을 써 보냈더니 최우수상에 뽑혔지요. 뇌졸중 학회 자리에서 시상식이 열렸는데 ‘눈물 한 방울’이 한국어판으로 나와 널리 읽히면 좋겠다고들 하더라고요.”

중환자 돌보는 보호자들에게

번역자들을 수소문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서씨가 직접 나섰다. 그는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대중이 읽을 수 있는 단어와 문장으로 풀어야 했다”며 “의학용어는 의사인 딸과 집사람 친구인 간호사가 도와줬다”고 했다.

―따님이 큰일 하셨네요.

“지난해 여름 프랑스에서 저희 부부와 온 가족이 모였어요. 제가 딸에게 물었습니다. ‘나탈리,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준 게 뭔지 아니?’ 다들 눈이 동그래졌어요. 제가 답했죠. 이 책이라고. 한국어판 번역까지 맡았다고. 다들 아주 좋아했어요.”

―강남성모병원 의사들은 이런 결과에 대해 뭐라고 하나요?

“(신씨가 답했다) 아직 못 갔어요. 제가 가서 깜짝 놀라게 해드리고 싶은데(웃음).”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계속 말을 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환자는 칠흑 같은 절망 속에 있는 셈입니다. 말을 건네고 희망을 주고 인격체로 대하는 게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의무 아닐까요.”

―힘겨워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나요?

“간병할 때 체중이 10㎏ 빠졌어요. 의사들이 저더러 포기하라고 했어요. 그러다 당신도 큰일 치른다고요. 딸도 ‘아빠 시간을 가지라’고 권했지요. 그래야지 하다가도 매일 아침 눈 뜨면 병원 가서 이 사람을 보고 싶었습니다.”

―‘눈물 한 방울’에서 가장 아끼는 문장이라면.

“‘중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모든 걸 제쳐놓고 오직 회복만을 향해 앞만 보고 가라’입니다. 환자는 가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잖아요. 병원에서 잘해준다고 음악을 틀어주는데 그게 온종일 돌아가요. 그럼 소음공해가 됩니다. 누군가 꺼줘야죠. 살피지 않으면 몰라요.”

―중환자는 사회에 소속돼 있다는 감정을 잃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관계가 다 끊어지니까요. 중환자는 다 내려놓고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몸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병원은 환자의 몸을, 가족은 환자의 마음을 돌봐야죠. 똑같이 다쳐 같은 치료를 받았는데 회복 속도에 차이가 난다면 그런 이유 아닐까 싶어요.”

―2013년 가을에 가장 큰 바람이 뭐였는지요.

“소박했어요. 아내와 같이 손잡고 산책하고 싶었지요.”

그 소망은 벌써 이뤘다. 이 부부는 병원이나 의료진을 원망한 적이 없다고 했다. 서씨는 “저는 의학의 힘 없이 보호자의 사랑으로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며 “다만 보호자도 같이 가야 빨리 회복될 수 있다”고 했다. “의식 잃은 환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건 가족이고 사랑밖에 없어요. 짧은 면회라도 시간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해요. 환자에게 사랑한다고 한마디만 해줘도 감동할 겁니다. 희망을 붙잡을 테고요.” 인터뷰 마치고 사진을 촬영하는데 신씨가 남편 몰래 소곤거렸다. “근데요, 저도 저 사람을 너무너무 사랑해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27/2018042701700.html


조선일보 9월 5일자 '신문은 선생님' 지면 <동화를 써보세요> 코너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친구들, 개학해서 매일 학원다니랴, 숙제하랴 많이들 바쁘겠지요. 친구들에게 어떤 숙제가 가장 어렵냐고 물어보면 ‘글쓰기요!’하는 대답이 제일 많습니다. 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작가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글쓰는 일이 매번 쉽지 않은 까닭은 바로 상상력 때문이지요. 어른들은 쉽게 우리들에게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렴’이라고 말을 하지만, 막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글로 옮길수 있는 상상력은 다르답니다. 도대체 상상력이 뭘까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상상력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기원전 8세기 쓰여졌던 그리스•로마 신화는 서양인들의 상상력의 창고라고 평가받습니다. 이 책에는 여러 신(神)들의 이야기가 나오지요. 이 이야기속에는 세계가 어떻게 생겨났는가, 인간이 왜 불행해졌는가 등에 대한 고대인들의 대답이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에는 ‘페가소스’라는 날개 달린 천마가 나옵니다. 이 천마가 죽은후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 페가소스가 되었답니다. 하늘의 별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떠오르는 것 같지요. 3000년전 신화속 주인공 페가소스는 전세계 어린이들의 베스트셀러인 해리포터 시리즈3편 ‘아즈카반의 죄수’에도 ‘벅빅’이라는 괴물로 다시 등장합니다. 

평생 동화작가로 사셨던 권정생 선생님의 ‘밥데기 죽데기’란 작품속에는 기괴한 달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할머니는 오두막을 깨끗이 쓸고 닦은 다음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그러고는 장에서 사 온 달걀을 쑥과 마늘을 넣은 솥에다 삶았습니다. 달걀을 삶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쑥과 마늘을 함께 넣다니요. 언뜻 본다면 ‘할머니 입맛이 참 특별하네’ 하고 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기 마련입니다. 

삶은 달걀 두 개를 물에다 깨끗이 씻고는 소반 위에 올려 놓고 일곱 번 절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달걀 두 개를 정성스럽게 삼베 헝겊에 잘 싸서 할머니가 똥을 누는 뒷간 똥통에다 담갔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퉤퉤’ 먹는 달걀을 냄새나는 똥통에 담다니요. 갈수록 할머니가 하시는 거동이 수상합니다. 똥통에 한달 담갔다가, 개울물에 또 한달 담그고, 등꽃나무 밑에다가 다시 한달을 묻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질경이 기름에 열흘을 더 적셔 두었다나요. 그렇게 백일을 꼬박 채웠습니다.

마침내 달걀에 뭐가 들었길래 할머니는 이런 행동을 하셨을까, 드디어 그 정체가 드러납니다.

할머니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자꾸자꾸 빌었습니다. 한참이 지났습니다. 갑자기 푸른 불꽃 속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뭉게 구름같이 방 안 가득 연기가 들어 찼습니다. 아름다운 꽃향기가 사방에서 퍼져 올랐습니다. 할머니가 눈을 떠 보니 눈앞에 벌거숭이 예쁜 아이 둘이 서 있었습니다. 

아. 권정생 선생님이 달걀 요술을 부리셨네요. 이 대목에서 고구려의 주몽신화가 떠오르는 친구들이 있을 겁니다. 주몽왕은 기원전 1세기 고구려를 세운 왕으로, 알을 깨고 나왔다고 전해지지요. 권정생 선생님이 이 신화를 떠올리셨는지 알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상상력은 또 다른 상상력과 맞닿아 있는 것 같네요.



그런데 꼭 명심할 게 있습니다. ‘알에서 아이가 나왔어!’‘난 어제 하늘을 날았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대로 무턱대고 말로 쏟아냈다가는 듣는 이들이 ‘말도 안 돼!’ 하고 무시할 게 뻔합니다. 아직은 그냥 엉뚱한 생각일 뿐이니까요. 이런 상상이 이야기가 되려면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할수 있어야 합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이를 위해 늑대할미와 달걀 귀신을 만들어냈습니다. 달걀속에서 나온 두 아이는 사실은 사람이 아니고 달걀귀신입니다. 할머니도 사람은 아니었죠. 사람에게 식구를 잃고 원수를 갚기 위해 변신한 늑대할미였습니다. 그러니까 ‘밥데기죽데기’는 달걀귀신 아이와 늑대할미가 벌이는 복수 이야기로군요. 

이렇듯 어떤 상상을 할 때는, ‘나는 왜 그런 상상을 했는가?’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듯한 구조를 만들어 생명력을 불어 넣어야 된다는 말이죠. 그래야만 상상이 더 멋지게 날개를 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을 이야기로 생생하게 꾸며 내려면 많은 경험이 있어야 하는건 당연합니다. 권정생 선생님도 어린시절부터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등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일들이 선생님 작품속에 그대로 녹아 있을 겁니다. 친구들도 많은 책을 읽고, 즐거운 경험들을 해보는 것이 글을 잘 쓰는 첫째 조건이 될 겁니다. 김기정•동화작가

(온라인 서비스가 되지 않는 지면이라 원문 링크를 하지 않습니다.)


입력 : 2012.06.22 03:14

[평창 성필립보 생태마을 12년째 일구는 황창연 신부]
10만㎡ 조성… 年 3만명 방문
"유기농 먹고 숲 바람 쐬고 평상에 누워 별똥별 세고… 아토피도, 마음도 금새 낫죠"

"아토피로 고통받는 아이들은 온몸이 농으로 뒤덮여 진물이 흘러요. 더 심하면 시력까지 극도로 나빠지죠. 하지만 과자, 라면, 피자 이런 것만 먹던 아이들이 유기농 자연식을 먹으며 숲 속 바람을 쐬면, 대개 2주일 만에 꾸들꾸들 딱정이가 져서 떨어지고 새살이 돋는 게 보입니다. 정말 놀랍지요."

강원도 평창 성(聖)필립보 생태마을 관장 황창연(47) 신부는 "생각해 보면 간단한 원리"라고 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고 거스르면서 생긴 병이 '하느님 주신 대로' 돌아가면 치유받는다"는 것이다. "방학 때 한 달이 지나면 더 이상 긁지 않고, 길어도 두 달이면 피부가 제 빛깔을 찾아요. 하지만 껌이라도 한번 씹으면 다시 벌겋게 아토피가 올라옵니다."

"하느님 주신 대로의 자연스러움"

황 신부는 평창 삼방산 기슭 10만㎡(약 3만평) 땅에 2000년 12월 성필립보 생태마을을 세워 12년째 손수 넓히고 가꿔왔다. 지금은 연 3만여명이 찾아와 알록달록한 야생화 길을 산책하고, 2만㎡(6000여평) 텃밭에 자라는 60여종 유기농 작물을 가꾸며, 밤이면 천문대나 강가에 마련된 평상에서 쏟아지는 별을 바라본다. 직접 담근 된장 간장 고추장에, 상추 치커리 부추 미나리 같은 쌈 채소 등을 실비로 즐길 수 있다.

지난 14일 강원도 평창 성(聖)필립보 생태마을로 1박 2일 피정을 온 서울 염리동성당 노인대학 어르신들이 황창연 신부(가운데 신부복 입은 사람)와 함께 유기농 상추를 따며 활짝 웃고 있다. 황 신부는“자연의 소중함을 몸으로 체험하도록 해주는 것도 이 시대 교회가 할 수 있는 예언자적 역할”이라고 했다. /성필립보 생태마을 제공

휴식과 피정, 환경교육과 체험학습이 다양하게 이뤄지는 생태마을에서는 가족 프로그램이 특히 강조된다. "가족을 잇는 소중한 끈을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도시에서 온 가족들은 특히 평창 밤하늘의 별을 보며 감동을 받는다. "평상에 누워서 새벽 4시까지 손잡고 별을 보던 가족도 있었어요. 아침에 아버지가 제게 그러더군요. '내 인생에 이렇게 아름다운 밤은 없었다'고요."

밤이면 별똥별이 쏟아지는 곳

황 신부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를 보고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신학교 학부 4학년 때였다. 1992년 수원교구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아주대 환경공학과 대학원에서 석사까지 땄다. 1999년 황 신부는 고(故) 김창린 필립보 신부(지난 5월 17일 87세로 선종)를 찾아가 부탁했다. "생태마을을 꾸며서 아이들에게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가르치겠습니다." 김 신부는 장학기금으로 쓰기 위해 평생 모아온 돈을 흔쾌히 내놓았다. 생태마을의 이름은 김 신부의 세례명에서 따왔다.

"생태마을 전국에 40곳 만들 것"

성 필립보 생태마을은 이제 직원 23명에 농번기엔 지역 주민들도 함께 와서 일하는 일종의 '사회적 기업'이 됐다. 매월 5000원, 1만원씩 회비를 내고 가을엔 무농약 배추 30포기를 선물로 받는 '되살림 후원회' 회원도 2만명이다.

황 신부는 지금 경기도 여주에 약 15만평 규모의 제2 생태마을을 준비 중이다. "이런 생태공동체를 40곳 만드는 게 꿈이에요. 자연의 소중함을 몸으로 체험하도록 해주는 것이 이 시대 교회가 할 수 있는 예언자적 역할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황 신부는 최근 '북극곰! 어디로 가야 하나?'(바오로딸)라는 제목의 책도 펴냈다. 7월 말까지 환경 UCC 공모전을 해서 25개 작품에 대해 성 필립보 생태마을 2박 3일 4인 가족 무료체험권을 줄 계획이다. "산골에 오래 살다 보니 오후 8시면 자고 새벽 4시면 깨요. 해 떨어지면 자고 해 뜨기 전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는 게 몸에 익은 거죠. 저는 그게 정말 행복해요. 더 많은 분이 이곳에 와서 함께 행복하면 좋겠어요."

조선일보 이태훈 기자

원문 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6/21/2012062103012.html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