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9. 10 가톨릭평화신문

장례미사까지 치렀는데 살아 돌아온 사제


러시아로 선교 떠난 월터 취제크 신부의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과 신앙 

 ▲ 러시아에서 혹독한 수용소 생활 중에도 사목의 열정을 아끼지 않은 월터 취제크(가운데) 신부가 

1955년 현지 사람들과 찍은 사진. 취제크 신부 기념센터 누리방 제공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

월터J.취제크 지음 / 최진영 옮김 / 바오로딸 / 1만 6000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무렵. 폴란드계 미국인 예수회 월터 취제크(1904~1984) 신부는 ‘신앙의 불모지’인 러시아 선교를 자원한다. 하고 많은 지역 가운데 왜 하필 전쟁의 포탄이 오가는 철의 장막 뒤편 러시아였을까.

취제크 신부는 예수회 사제가 되는 기쁨을 ‘러시아 복음화’라는 사명을 통해 하느님께 보답하고자 스스로 힘든 순례길에 오른다. 어린 시절 고집불통에 골목대장까지 해가며 부모 속을 썩인 그가 자기 뜻을 쉽게 꺾을 리 만무했다. 취제크 신부는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우랄산맥 지대 목재소 노동자 모집에 자원한다. 소설 같은 이 실화는 여기서 시작된다.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바오로딸 / 1만 6000원)가 최근 ‘다시 읽고 싶은 명작’ 시리즈로 독자들을 찾았다. 장장 23년간 러시아(소련)에 억류된 채 온갖 탄압을 받으며 살았던 세월을 소설처럼 옮긴 취제크 신부의 생생한 체험기다. 사제의 신분을 숨긴 그가 노동자에서 독일군 스파이로, 다시 전기공, 병원 간호 보조사, 광부로서 전쟁과 박해의 땅 러시아에서 지낸 이야기가 생생히 담겨 있다.

전시 상황의 극한 속에서 간첩의 누명을 쓴 그는 정치범교도소와 강제노동수용소에서 15년을 지낸다. 혹독한 추위는 물론이고, 오랜 심문과 역경은 그의 육체를 갉아 먹었다. 떨어진 빵조각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워 먹을 정도로 찾아온 극한의 배고픔과 러시아 군인들의 멸시 속에서도 그를 버티게 한 것은 기도와 믿음이었다.

그는 감시인들 몰래 동료 사제와 숲 속에서 미사를 바치고, 홀로 독방에서 매일 폴란드어, 러시아어, 라틴어로 묵주기도를 바쳤다. 자신을 조사하는 심문관이 가톨릭 신자임을 고백하자 도리어 그의 어려운 상황을 들어주기도 했고, 후에는 전쟁 통에 사제를 잃은 본당 신자들을 위해 목자로서 성사를 베푸는 데 열을 올리기도 했다.

강제수용소 수감자로 있을 때엔 집단 처형의 불안 속에 살았고, 전기공사 중 감전사고로 죽을 뻔한 위기도 겪던 그 시기. 미국의 예수회 회원과 가족들은 1947년 이미 그의 장례미사를 치렀다. 하지만 1963년 하느님은 극적으로 그에게 ‘해방’을 선물한다. “취제크 신부님, 이제 다시 미국 시민이 되셨습니다!”

취제크 신부가 러시아행을 택한 이유는 단 하나.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였다. 위험을 무릅쓴 그의 열정은 200년 전 기꺼이 박해의 땅 조선행을 결심하고 순교 앞에서도 의연했던 외국인 선교사들의 모습과 겹치기도 한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그의 체험은 근현대사의 아픔 속에 남겨진 한 사제의 신앙 업적과도 같다. 교황청은 1990년 이후 취제크 신부에 대한 시복시성 조사를 진행 중이며,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는 그를 기리는 기도공동체와 센터가 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출처 :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694532&path=20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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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남았냐고요? 하느님의 섭리죠

 

2017.08.18. 조선일보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소련서 23년 억류 취제크 신부, 手記 '러시아에서' 출간

 

"2757끼를 혼자 먹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31개월 만에 풀려난 캐나다 교포 임현수 목사가 공개한 북한 억류 생활의 일부다. 앞서 735일 동안 북한에 억류됐던 재미교포 케네스 배씨는 억류 생활을 담은 수기 '잊지 않았다'(두란노)를 통해 북한 체제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폭로하기도 했다.

 

최근 재출간된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바오로딸출판사)는 무려 23년간 소련에 억류됐던 예수회 소속 미국인 월터 취제크(1904~1984) 신부의 수기다. 이 수기는 공산 정권의 종교 탄압 실상을 낱낱이 보여준다. 또 역경 가운데 더욱 빛나는 불굴의 신앙심도 보여준다.

 

취제크 신부가 23년간의 소련 억류에서 풀려나 196310월 뉴욕 공항으로 돌아왔다. /취제크 신부 기념 사이트

  

폴란드계 미국인 취제크 신부가 소련에 들어간 것은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어릴 때부터 고집 세고,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기를 즐겼던 취제크 신부는 소련의 종교 탄압 실상을 알게 되면서 선교를 자원했다. 전쟁의 혼란기를 틈타 우랄산맥 깊숙한 작업장에 위장취업했던 그는 이듬해 비밀경찰에 체포된다. 혐의는 '독일 스파이'. 미사를 위해 감춰뒀던 포도주는 '니트로글리세린', 가루치약은 '화약가루', 어린이에게 알파벳을 가르쳤던 쪽지는 '비밀암호 해독서'로 둔갑했다.

 

이때부터 1963년까지 23년간의 긴 억류 생활이 시작됐다. 비밀경찰은 끊임없이 '이름, 생년월일, 죄목'을 묻고는 스파이 혐의를 시인하라고 강요한다. 독일과의 전쟁이 끝나자 이번엔 '바티칸의 스파이'로 몰린다.

 

그는 독방 감옥에서 5, 악명 높은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15년간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그 과정에서 신앙을 지켜가려는 노력은 눈물겹다. 잠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이면 미사 경문 등을 모두 외워서 미사를 드리고, 여자수용소에 수감된 수녀들과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쪽지를 주고받으며 고해성사를 들어주기도 한다.

 

1947년 예수회 사망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장례미사까지 치러졌던 취제크 신부는 1963년 소련 스파이들과 맞교환하는 조건으로 풀려나 기적적으로 귀국하게 된다. 이후 그는 영성지도자로 활동하다 1984년 선종했으며 현재 시복시성(諡福諡聖) 절차가 진행 중이다.

 

취제크 신부는 서문에서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사람들이 '러시아에서 생활이 어떠했습니까?' '도대체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까?'를 묻는데, 하도 여러 사람이 똑같이 묻기에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주저 없이 '하느님의 섭리'라고 대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18/20170818000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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