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필립 그로닝|다큐멘터리|프랑스, 스위스, 독일|개봉 2009


영화 <위대한 침묵>은 프랑스의 알프스 산자락에 자리 잡은 카르투지오회 대수도원(The Grande Chartreuse)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세상에 처음 공개된 이 봉쇄 수도회는 엄격한 금욕생활을 지키고 정결 ․ 청빈 ․ 순명서원과 함께 침묵을 서원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수사들이 아닌 바로 이 침묵이다. 그래서 보통의 다큐영화와는 달리 이곳 수도생활에 관한 정보를 주는 자막이나 수사들의 인터뷰는 나오지 않는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풍경과 더불어 매일 일하고 기도하는 수사들의 말없는 몸짓만이 우리가 볼 수 있는 작품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인위적인 조명도 전혀 쓰지 않았기에 자연적인 빛과 어둠이 필름의 거친 입자 속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수사들의 찬미가만 유일한 음악으로 들리는 이 세계는 소리 없는 무성의 세계가 아니다. 침묵에도 빛이 있고 언어가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처음 보고 느꼈다. 세상을 지배하려 드는 인간의 언어가 잠재워진 이곳에 새들과 바람, 수사들의 발자국과 옷깃이 서로 스치며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리는 눈, 동그랗게 퍼지는 빗방울 물결, 나뭇잎을 스치는 차분한 바람, 천천히 산을 감싸며 미소 짓는 구름, 창문으로 들어온 하얀 햇살, 기나긴 겨울을 지나 봄의 생명을 만끽하는 자연과 사물 하나하나는 사람과 동일한 무게의 존재감을 지닌다. 그래서 이곳 수사들은 꼭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들은 알프스처럼 높은 산위, 첨예하게 깍아지른 절벽 꼭대기에 서서 하느님을 부르는 풀이요, 나무들 같았다. 그분 앞에 동등하게 놓여 있는 자연과 사물과 사람에게 깃들여진 존재의 신비가 위대한 침묵 안에서 은은한 빛을 발한다. 그 신비를 대하는 것은 나에게 정말 큰 선물이었다.



처음 이 작품을 대할 때 내 마음은 어수선하게 움직였다. 낯선 고요함에 저항하듯, 수도원 상황 하나하나를 이해하려 들었고, 수사들이 품고 있을 사연을 궁금해 하며 인과관계를 따지느라 생각이 분주했다.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카메라를 쫓아다녔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안에 오가는 말들이 얼마나 크고 불필요한 소음인지 곧 알게 되었다. 내 존재가 침묵이라는 어둠 속에 묻혀서 질식해 버릴까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내 안에 가득 찬 말들을 놓아버리고 침묵에 온전히 나를 맡겼을 때, 한없이 충만하고 아름다운 언어가 살아 숨 쉬는 세계가 다가왔다. 두 시간 반 동안 침묵의 세례를 받았다고 말해도 좋겠다.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의 언어를 초월한 자연과 우주에 깃든 생명의 언어임을 <위대한 침묵>을 통해 배웠다. 그래서 모든 인간적인 언어는 깊은 침묵 가운데 소멸되고, 그들 가운데 오직 하나의 응답만이 고요하게 울려 퍼진다.

“주님께서 저를 이끄셨으니, 제가 이곳에 있나이다.”

- 바오로딸 <야곱의 우물> 2010년 1월호
김 노엘라 수녀

*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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