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요한 23세 >

 새 시대를 연 요한 23세 교황, 그 인간적 삶을 엿보다


요한 23세(PAPA GIOVANNI XXIII, 2002년), 감독 : 조르지오 카피타니(Giorgio Capitani), 제작국가 : 이탈리아, 등급 : 전체

      상영시간 : 1부 102분ㆍ2부 106분, 장르 : 드라마

사순시기 절정인 주님 수난 성지 주일과 성 주간이 멀지 않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인간들이 사는 땅에 태어나 평범한 인간으로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적응하며 사셨다. 그리고 인간들 손에 넘겨져 매질 당하고 십자나무 위에 못 박혀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돌아가셨다. 복자 교황 요한 23세의 삶을 조명한 이 영화는 요한 23세를 통해 또 다른 예수를 만나게 한다. 요한 23세 교황은 오는 27일 성인 반열에 오른다. 인간미 넘치는 그의 삶이 던져주는 에피소드와 사랑, 사목 정신을 눈여겨보자.


▲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기간 중 베네치아로 돌아갈 날을 계산하는 론칼리(왼쪽에서 두 번째) 추기경.


 줄거리

 1958년 베네치아 대주교 안젤로 론칼리(Angelo Giuseppe Roncalli) 추기경은 로마에서 소환 연락을 받는다. 론칼리 추기경은 베네치아로 돌아올 왕복 기차표를 들고 로마로 떠난다.

 가난한 시골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공부하기를 좋아했지만 아버지는 시간만 나면 안젤로가 집안일을 돕도록 했다. 당시 생활고에 허덕이던 마을 사람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을 축복을 해주는 본당 신부와의 대화를 통해 안젤로는 가난한 시골의 신부가 되고픈 꿈을 품게 된다.

 교황 비오 12세의 서거로 모든 추기경이 바티칸에 모인다. 교황 물망에 오른 추기경들은 라테라노 대성전 사제관에 짐을 풀었지만, 론칼리 추기경은 낡은 수도원에 여장을 푼다. 바티칸에서 오랜 만에 재회한 오타비아니 추기경은 보수적인 이탈리아인을 교황으로 추대하도록 그를 설득하지만, 론칼리 추기경은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지닌 몬티니(후에 바오로 6세 교황) 대주교를 추천한다. 드디어 교황 선출을 위한 투표가 시작되고, 오타비아니 추기경을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추기경들은 프랑스에 표를 주지 않기 위해 론칼리 추기경을 적극 밀게 된다.


 "내 몸을 관에 맞춰보시지"


 영화는 베니스 대주교 론칼리의 비서가 황급히 주교관을 나와 마을로 뛰어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평화로운 마을에 비둘기들이 날아다니고, 대주교를 발견한 곳은 마을 한가운데 있는 아카데미아다. 푸근한 할아버지 론칼리 추기경은 석관에 누워 조각가에게 말한다. "이 안은 좁을 것 같아. 좀 더 넓게 만들 수 있어요." 더 넓히면, 옆면이 얇아져 깨질지도 모른다는 조각가의 말에 "내 몸을 관에 맞춰보시지. 옆으로 누워보던가." 이는 그의 전 생애를 특징짓는 융통성이자 적극적 적응력을 암시하는 상징으로 묘사된 장면이다.

 추기경들은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나누기 시작한다. 프랑스 추기경들은 론칼리 추기경을 지지하지만, 보수적인 이탈리아 추기경들은 론칼리 추기경의 비밀 개인 서류를 열어본다. '1901년 베르가모에서 교회 권위를 손상시키는 행동을 했음. 사회주의와 기타 불온한 사상에 동조했음'이라는 기록 문서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주 베르가모 대주교 비서 시절의 장면으로 바뀐다.

 극심한 착취에 시달리는 노동자들, 파업과 폭동의 한 가운데서 그들을 지지하는 대주교를 목격하게 되는데 론칼리는 노동자들 속에서 소리 지르던 젊은 엄마 로사가 갓난아기와 함께 경찰에 연행되는 것을 보고 어떻게든 그녀를 구해주려고 경찰청장을 찾아간다. "로사는 어리고 아무것도 몰라요. 어린 아기가 있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는 노동자 대열에 서서 외치거나 그들을 부추기지는 않는다. 가능한 방법으로 충돌을 피하고 대화로 풀어갈 협력자를 찾아간다.

 보수적 이탈리아 추기경들은 이탈리아인끼리 뭉치자며 설득한다. 하지만 론칼리 추기경은 "나는 하느님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하느님 섭리에 맡길 뿐입니다"고 답한다. 

 장면은 다시 론칼리의 과거 교황대사 시절을 오버랩시킨다. 지혜롭고 현명하게 위험 상황에 대처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1930년대 터키 주재 교황대사 시절의 일화다. 터키 대통령은 모든 종교 사제들에게 사제복 착용을 금하지만, 그는 이에 항거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선 수용해야지" 하며 사제들에게 양복으로 갈아입게 한다. 늘 상황에 순응하며 적응하는 그였다.

 터키에서의 이스탄불 기차 사건 또한 잊지 못할 일화다. 유다인들을 트레불링카의 학살수용소로 보내기 위해 무장한 군인들이 기차를 포위하고 있는 삼엄한 긴장 속에서 그는 기지를 발휘해 독일 대사와 비밀 협상을 벌인다. 가톨릭 신자 순례객이라는 공문을 작성해 유다인들을 구해준 사건은 긴박한 상황속의 기적이나 다름없다.

 1945년 프랑스 교황대사로 있을 때 일이다. 드골 장군은 가톨릭에 반감을 품고 주교들을 추방하려 한다. 만나주지도 않는 드골 장군을 그는 인내와 끈기로 설득시키려 하지만 실패하자, 교황대사관에 파리 최고의 요리사를 초청해 호의를 얻는 유연하고 재치 있는 지혜로 외교에 성공한다.

 

 "이렇게 됐네!"

 가난한 시골 신부가 되고 싶었던 론칼리! 교황 선출을 위한 열두 번이라는 지루하고도 긴 투표 기간 중 베네치아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는 하루에 세 번 선거하자는 제안을 할 정도였다. 교황이 된 후 그는 비서관들에게 "결국 이렇게 됐네!" 하며 멋쩍게 웃는다. "주님 왜 접니까? 제게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도 당신은 아십니다.… 주님께서 절 택하셨으니 당신만 신뢰합니다. 주님께서 믿어주셨으니 저 요한은 최선을 다해 당신 뜻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다짐한다. 그의 심중은 늘 하느님의 뜻과 평화를 소중하게 간직했기에 그의 외침은 평화 자체였다. 회칙 「지상의 평화」를 발표할 수 있었던 것도 거기서 길어낸 영성 때문이었다. 보수파 이탈리아 추기경들은 냉소하며 임시 교황이라는 여론까지 부추기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가기도 했지만, 온유와 재치로 난관을 극복하는 추진력이 뛰어났다. 그는 늘 신앙 안에서 하느님의 뜻만을 찾아 실행시킨 하느님의 사람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상태로 핵전쟁의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이었을 때, 교황청 공보실 추기경들은 모든 공산주의자들을 파문시키려 했고, 소련으로부터의 방어를 강조했다. 하지만 교황은 대화와 이해로 노력하자고 설득했다. "끊임없이 누구하고든 대화해야 돼. 언제나"라고 대응한 것이다. 하느님을 닮은 놀라운 인내와 기다림은 효력을 발휘한다. 팽팽하게 맞선 두 세력의 위기를 넘기는 또 한 번의 기적이었다. 예수님이 당시 사람들과 문화에 적응하신 것처럼, 그는 언제나 상대를 부정하거나 방어하지 않고, 또 비난하거나 단죄하지도 않았다.

 

 양팔을 벌리고 십자가에 계신 예수

 바티칸 정원에 십자가 조각상을 세우고 그의 감탄사를 기대하는 추기경들에게 "예수님은 2000년 전부터 양팔을 벌리고 계시지요. 우린 예수님 말씀을 어떻게 전하고 있나요?" 하고 말한다. "…교회는 새로운 방법으로 인류에게 다가가야 돼.… 여러 문제에 교회가 어떻게 대처할지 그 방법"을 찾기 위한 전 세계 공의회 소집을 요한 23세 교황은 요청한다. 공의회가 중요한 건 "교회가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지.… 비난이나 처벌은 그만하고 대결이 아니라 화합을 추구해야 돼.… 모든 사람이 자기 의견을 말 할 수 있어야 돼.… 우린 모두 똑 같은 하느님 자녀니까"라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전에는 루터교와 성공회, 그리스 정교회, 퀘이커교도, 감리교 신자까지 보편 공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였던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첫 번째 회기를 마친 그는 위암 진단을 받는다. 숨을 거두기 전, 그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은 팔을 벌려 우리 모두를 환영하지"라고 말하며 마지막 숨을 거둔다.


 마지막

 당시 많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요한 23세'는 이탈리아 국영TV에서 2부작으로 방영된 것을 바오로딸에서 DVD로 제작했다. 교황 요한 23세의 특징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끌어간 조르지오 카피타니 감독은 교황 23세를 사람들의 눈이 평상시 수평으로 볼 수 있는 각도인 '아이 레벨(eye level)'로 잡아 평범하고 다정하고 인자하며 정감 어린 할아버지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교황청 추기경들은 카메라가 피사체보다 낮은 데 위치해서 화면에는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는 느낌을 주는 '로우 앵글(low camera angle)'로 잡아 그들의 권위 의식과 당당함을 상징적으로 연출한다.

 4월 27일 성인품에 오르시는 착한 할아버지 교황, 지구촌의 친근한 할아버지 교황 요한 23세는 우리 곁에서 오늘의 세상에서 교회가 나아갈 길을 비추어주고 계시리라 믿는다.


성경 구절 

"나는…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1코린 9,19-23).




이복순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


평화신문 가톨릭 문화산책]<58>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503387&path=201404


영화: 도쿄소나타

크고 작은 시련의 터널 끝에는 언제나 찬란한 빛이


도쿄 소나타(Tokyo Sonata, 2009년, 감독 : 구로사와 기요시, 제작 국가 : 일본, 네덜란드, 등급 : 12세 이상, 상영시간 : 119분 ,

장르 : 드라마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서 많은 소시민들은 경제적으로 좀 더 삶이 나아지길 꿈꾼다. 소시민들에게는 화합과 소통을 꿈꾼다는 말은 어쩌면 사치스런 말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만큼 힘든 상황과 어려운 처지의 고통이 희망을 품을 힘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잠시 '인간이 넘어진다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고 다시 일어선다는 것은 신적인 것'이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시작의 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새롭게 걸어갈 용기를 가진 이들의 영화 '도쿄 소나타' 속에서 그 답을 찾는다.


▲ 영화는 거짓말과 의심, 불통이 이미 그 가족의 식탁에서부터 시작한다는 평범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 도둑과 바닷가에 있는 엄마 메구미. '구구는 고양이다'로 많은 사랑을 받은 코이즈미 쿄코가 엄마 역을 맡아 최고의 열연을 선보였다.


▲ 쓰레기더미에 쓰러져 있는 아빠 류헤이는 희망이 없는 가운데서도 희망을 찾으려 한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 배우로 도약하는 연기파 배우 카가와 테루유키가 가족에게도 해고 당한 사실을 숨기는 아빠 역할을 맡았다.

줄거리

 들리나요, 희망이 오는 소리가…. 며칠 전 실직 당한 아빠, 언제나 외로운 엄마, 갑자기 미군에 지원한 형, 남몰래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나. 우리 가족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주인공은 고백한다. 초등학교 6학년 켄지에겐 꼭꼭 감춰둔 비밀 한 가지가 있다. 켄지의 천재적 재능을 발견한 선생님은 음악학교 오디션을 권하지만, 아빠의 반대 때문에 몰래 피아노학원을 다니던 켄지는 계속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 그런데 비밀은 켄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해고된 아빠, 어느 날 사라진 엄마, 미군에 지원한 형까지 모두 숨겨둔 비밀이 있었는데…. 과연 켄지는 아름다운 꿈인 피아노 연주를 계속할 수 있을까? 거짓말쟁이 켄지 가족 불협화음의 조율이 시작된다!

 폭풍우가 치네

 세찬 폭풍우가 몰아치며 열린 거실 문으로 빗줄기가 들이치고 신문지와 잡지는 바람에 휘날려 뒹군다. 황급히 문을 닫으려던 엄마 메구미는 휘청거리는 나뭇가지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이어지는 장면은 아빠 류헤이의 사무실. 그는 "폭풍우가 치네" 하며 중얼거린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한다. 아니나 다를까 저임금 정책에 따라 중국인을 채용한 회사는 총무과장이었던 아빠를 권고 퇴직시킨다. 갑작스런 해고로 가장으로서 권위와 자존심이 무너지자 그는 이 사실을 가족에게 비밀에 부친다. 아침이면 넥타이에 양복을 차려 입고 출근하는 것처럼 집을 나선다. 노숙자들 틈에 끼어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때우며 고용지원센터를 찾아다닌다.

 가족만을 위해 헌신하던 엄마 메구미는 정성을 쏟아 도넛을 만들지만 식구들은 관심이 없다. 그녀는 어느 날 소파에 누워 "일으켜 줘, 누가 나 좀 일으켜 줘" 하며 외로움과 무료함에 절규해보지만 간절한 손짓은 그저 허공을 맴돌 뿐이다.

 초등학교 6학년 켄지는 아빠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몰래 급식비를 피아노 레슨비로 사용하며 쓰레기통에서 고장난 전자 피아노를 주워 열심히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연습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평범한 사사키 가족이지만 일본 중산층 가족의 상징으로 보인다. 이들이 사는 집의 내부 역시 그들의 심리를 드러낸다. 집을 둘러싼 전깃줄, 집 뒤를 지나가는 전차가 내는 굉음과 진동은 삶의 굴곡을 의미한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공간인 식탁은 계단과 부엌의 선반이 가로질러 있어 꽉 막힌 느낌을 준다. 거리의 대형 쇼핑센터와 도쿄라는 도시 또한 생명력이 없어 보인다. 류헤이는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쇼핑센터 화장실 청소 일을 하게 되는데, 가장으로서 권위를 지키느라 넥타이 차림으로 출ㆍ퇴근하는 위선적 태도를 드러낸다. 큰아들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세계평화를 지키겠다는 포부를 내세워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미군에 자원 입대한다.
 
 새로운 시작의 징검다리

 시련의 어둡고 갑갑한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류헤이는 어느 날 쇼핑센터 화장실 청소를 하던 중 돈 봉투를 발견한다. 돈 봉투를 움켜쥔 그는 어디론가 달려가다 쓰레기더미에 부딪쳐 뒹굴며 외친다. "어떻게 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 다시 시작하고 싶어…." 일어나 뛰다가 그는 자동차에 부딪쳐 정신을 잃는다. 한밤중이었다.

 한편 도둑의 인질로 잡힌 메구미는 도둑이 시키는 대로 훔친 차를 대리 운전해 먼 바닷가에 도착한다. 그 밤에 그녀는 도둑의 진실한 속내를 듣게 된다. 자신은 이제 구제불능이라며 자살하려는 도둑에게 "자기 자신은 하나뿐이에요"하며 용기를 주던 그녀는 눈을 들어 수평선을 바라보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라며 자문하듯 중얼거린다.

 설상가상으로 켄지마저 아빠에 대한 반항으로 가출해 고속버스 짐칸에 몰래 숨어든 죄로 지하 감방에 갇힌다. 모든 상황은 무거운 침묵을 자아내는 분위기다.

 혹독한 사회 현실, 실패와 좌절 속 사사키 가정은 분열되고 상처만 가득하다. 하지만 어둔 밤이 서서히 밝아올 무렵 이들 마음 안에도 서광의 동이 터 온다. 

 불기소 처분으로 석방된 켄지도, 거친 파도가 밀려드는 바닷가에 있던 메구미도 새벽 햇살을 받으며 집으로 향할 결심을 한다. 만신창이가 돼 길 옆에 쓰러져 있던 류헤이도 정신을 차리고 주머니 속 돈뭉치를 유실물함에 넣고 집으로 돌아온다. 악몽 같은 어둔 터널을 체험한 이들은 집과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며 식탁에 둘러 앉아 함께 식사를 한다. 미군에 입대한 큰 아들만 빼고….

 몇 개월 후 켄지는 음대부속중학교 실기시험에서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하게 되는데 심사위원들과 청중은 켄지의 연주에 심취한다. 권위와 자존심의 상징이던 넥타이도 없이 입시 시험장에 함께한 류헤이는 아들의 천부적 소질에 놀라 눈물을 글썽인다. 하느님의 영을 상징하는 빛은 연주장을 가득 채우며 생기를 돋운다. 연주를 마친 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류헤이와 메구미…. 세 식구가 연주장에서 걸어 나오는 영상 뒤로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이들의 발자국 소리만 특별한 음향으로 깔린다. 이 소리는 희망을 향해 계속 걸어갈 미래를 암시한다.

 하느님은 언제나 다시 시작할 기회를 마련하신다. 어떤 처지에서도 실망하지 않은 이들 안에서 새로운 창조를 이루시는 하느님을 떠올리라는 초대가 아닐까 한다.
 
 꿈과 희망을 안고

 '도쿄 소나타'는 2008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 2009년 아시아 필름 어워드 최우수 각본상과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세계적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감독은 이 영화는 꿈과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시나리오 작가 맥스 매닉스가 쓴 작품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각본을 수정한 작품이다. 엄마의 비중을 높이고 큰아들 캐릭터를 추가로 등장시켰다. 크고 작은 시련의 터널을 지나 '도쿄 소나타'의 가족들에게 찾아온 희망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용기의 메시지를 함축한 영화다.


 성경구절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로마 8,24) 

이복순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

평화신문 <가톨릭 문화산책><48>영화(10) 도쿄 소나타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92338&path=201401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92338&path=20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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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치'- 생명을 살아가는 작은 숨결들

흔들리는 인간 마음을 터치하는 '그 손길'

터치(Touch, 2012) ,감독 : 민병훈 ,상영시간 : 100분 ,장르 : 드라마 ,등급 : 18세 이상 



몇 년째 자살률이 부동의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 2011년 서울시에서 자살한 사람은 2722명으로, 하루 평균 7.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3시간마다 1명이 자살한 셈이다. 너무 빈번해 이제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면 보도도 되지 않는다. 민병훈(바오로)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그날그날 세상을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그저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의 낮고 작은 숨결이 모여 이룬 것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 신의 영역이라면, 그 생명을 지키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이런 메시지를 살리려고 애쓴, 소시민의 이야기 같은 영화 '터치' 속으로 들어가 보자.


 줄거리

 국가대표 사격 선수를 지냈지만 점차 알코올 중독자가 된 후 모든 걸 잃고 중학교 사격코치를 하는 남편 동식(유준상)과 간병인 일을 하며 쪼들리는 삶이지만 금실 좋은 부부로 살아가는 아내 수원(김지영)의 이야기다. 수원은 병원 몰래 돈을 받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환자들을 무연고자로 속여 요양원에 입원시키기도 한다. 어느날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있는 동식은 코치 재계약 문제로 이사장이 주는 술을 어쩔 수 없이 마시고 음주 운전을 하다가 자신이 가르치던 사격부 학생 채빈을 치게 되자 당황한 나머지 뺑소니를 쳤다가 경찰에게 잡힌다. 동식의 교통사고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원은 자신이 돌보는 노인환자의 끈질긴 성관계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하지만 이 사실이 발각돼 수원은 결국 병원에서 퇴출당한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수원은 딸 주미가 없어졌음을 알게 되고 수소문 끝에 낯선 집에서 주미를 발견하는데….


▲ 사슴을 죽인 동식이 두려움과 죄책감에 오열한다.



▲ 무릎 끓은 동식을 창 밖으로 보며 수원은 따스한 미소를 보낸다.


▲ 가톨릭노인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수원이 깨끗이 치유된 여인의 손을 잡아준다.


민초들의 삶

 영화의 첫 장면은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 만신창이가 돼 흔들리는 들풀로 시작한다. 세파에 시달리며 가정을 지키는 소시민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장례미사를 드리는 성당 안 풍경이다. 검정색 포에 덮인 관, 아빠 품에 안긴 어린이의 해맑은 미소가 스쳐 가지만 수원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사제는 강론을 계속한다. "…하지만 사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나서야 합니다.… 영혼 속 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의 눈은 좀 더 밝아질 것입니다. 영혼 속 신과 연결된 끈을 놓지 않는다면…." 강론은 영화의 흐름을 암시한다.

 장례미사 도중 돌아가신 할머니의 아들이 성당 밖으로 나와 고통스러워한다. 수원이 말을 건넨다. "어머님은 좋은 데로 가셨을 거예요." 그러나 아들의 질문은 날이 서 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그때 뭔가 수원의 양심을 건드린다. 사랑과 용기의 영이 그녀를 터치한 것이다.

 수원은 몰려오는 피곤을 감수하며 간병 일에 힘을 소진한다. 먹고 살기 위해 불법 의료행위까지 하며 늘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래서 수원은 자신에게 불신의 눈길을 던지는 사제나 수녀의 눈길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그녀의 긴장된 삶을 거친 숨소리와 함께 핸드 헬드 카메라로 클로즈업하며 따라가는데, 이들 장면 속에는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거나 이웃을 괴롭혀 상처를 주지 못하는 수원의 착한 심성과 강인함의 양면성을 겹쳐서 보여준다. 그녀는 간신히 남편을 출옥시킨 뒤 노인 복지센터를 그만둔다.

 동식이 사격코치를 하던 부유한 집안 여학생 채빈은 자신의 속옷을 훔쳐 달아나는 남학생(장정원)을 사격용 총으로 쏜다. 정원이는 폐병에 따른 합병증으로 다리가 썩어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달동네 학생이다. 동식은 정원이를 쏜 채빈의 뺨을 때리며 야단친다. "빈총이라도 사람에겐 겨누지 않는다." 

 수원의 노력으로 출옥한 동식은 사냥 포수로 돈벌이를 한다. 그러던 어느날 덫에 걸려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어린 사슴을 보며 생명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동식은 두려움과 신비로움의 체험을 사슴이라는 상징을 통해 하느님 영에 터치된다. 인간의 쓰러짐은 인간적인 것이고, 다시 일어섬은 신적인 것이다.

 

 절망의 끝에서 찾아온 희망

 주미의 행방불명을 알게 된 수원은 절규하며 딸을 찾아 나선다. 그때 딸의 생일선물 인형을 매달고 가는 남학생을 미행한다. 학생이 다다른 가난한 달동네 정원이의 집 벽장에서 주미를 발견한 수원은 두려움과 분노 속에 도망치듯 딸을 끌고 나온다. 그때 방바닥에서 방치된 한 여인을 본다. 더러운 오물 냄새 속에 다리가 썩어가는 여인의 꺼져가는 신음 소리가 수원의 양심을 건드린다. 그때 성당 마당에서 본 사슴이 떠오른다. 수원은 자신의 마음을 터치하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낀다. 그래서 다시 그 여인을 찾아간다. 더럽고 악취가 진동하는 어두운 방 창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어오는 햇살은 수원과 그녀를 비춘다. 어쩌면 우리 영혼 속에 깃들고 싶어 하는 하느님 빛의 초대인지도 모른다.

 

 차가운 현실

 죽음이 임박한 듯한 여인을 위해 수원은 주민센터도 찾아가고 병원 응급실도 찾아가지만 관료적인 그들의 태도는 답답하기만 하다. 수원은 소리친다. "그럼, 돈 없으면 치료도 받지 말라는 건가요?" 이 말은 사회에 던지는 절규다. 마지막으로 가톨릭노인복지센터에 전화 다이얼을 돌린다. 그러나 그동안 수원이 저지른 거짓에 속아온 사제는 그 여인의 입원을 거절한다. 수원은 가슴을 에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직접 여인에게 안락사 주사를 놓아주려 하지만 두려움이 엄습한다. 절망의 순간에 양심을 건드리는 하느님! 수원은 자신이 생명도, 죽음도 책임질 수 없는 존재임을 절감한다. 이때 죽음에 임박한 여인은 떨리는 손으로 수원의 볼을 조용히 건드린다. 그를 위해 애쓰는 수원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터치다. 그때 요양원 구급차가 도착한다.

 요양원에 도착한 여인은 세례를 상징하는 물속에 잠긴다. 그동안 몸과 마음의 상처가 깨끗이 씻긴 것이다. 수원은 그의 손을 잡아준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여인은 아들 정원을 보살펴줄 것을 수원에게 부탁한다. 그의 고달픈 삶을 위로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한다. 은은한 성가를 뒤로한 채 수원은 지친 몸을 이끌고 밤차를 타고 집에 돌아온다.

 한편 동식은 채빈의 사격 성공에 환성을 지르며 또 술을 마신다. 취중에 교통사고로 쓰러진 아이를 총으로 쏜 동식은 갓길에 쓰러진다. 아침 햇살이 동식이의 어깨를 환히 비춘다. 잠을 깬 동식은 몽롱한 눈으로 자동차 문을 여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신에게 생명의 경외감을 안겨준 사슴이다. 햇살은 동식의 눈과 사슴의 눈을 강하게 비춘다. 동식은 생명을 죽인 죄책감에 오열한다. 지친 몸으로 돌아온 수원을 밝고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비추고 수원 손에 들려진 생일 선물 인형이 클로즈업된다. 그때 원장신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잘 들어갔니? 방금 자매님이 편안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안나야, 고생했다. 정말 수고했다. 편히 쉬거라." 수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불편함을 주는 영화 

 러시아에서 영화 공부를 한 민병훈 감독의 작품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연출기법처럼 담백하고 함축적이다. 이 영화는 관객이 능동적으로 사유하게 하고, 곱씹으면서 깊은 의미를 끌어내게 한다. 영화 '터치'는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는 영화다. 직면하고 싶지 않은 어둔 현실의 갖가지 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진지한 영화이기에 재미로 감상하기에는 무겁고 감상하기 힘든 영화다. 이 영화는 각자의 현실 속에서 터치하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게 한다. 성찰적 예술성이 강한 작품이다.


 그룹대화  

 1. 오늘을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사회의 부조리한 문제들은 무엇인가?

 2. 이 영화에서 터치 받은 것은 무엇인가?

 3.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께서 터치한다고 생각하는가?


 성경구절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이복순 수녀 (성바오로딸수도회)


평화신문 <가톨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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