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만과 편견 

오해와 편견이 이해와 사랑으로 바뀌는 만남의 은


오만과 편견(Pride & Prejudice, 2005년) / 감독 : 조 라이트/ 제작국가 : 프랑스ㆍ영국 / 등급 : 12세 이상/ 상영시간 : 127 분/

장르 : 로맨스, 드라마


인간은 누구나 만남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관계가 형성된다. 이 사이에 끼어드는 내면의 불청객이 있다면 오만과 편견이 아닐까?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만남의 신비」에서 "만남이란 하나의 신비이며, 이 만남 안에는 진귀한 보물과도 같은 사랑ㆍ용서ㆍ구원ㆍ감사ㆍ생명ㆍ희망ㆍ평화ㆍ기쁨 등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남녀간 사랑 역시 만남에서 시작되고 헤어짐의 발단도 만남에서 비롯된다. 수많은 인간 군상들 속에 펼쳐지는 만남의 진실을 보여주는 영화 「오만과 편견」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첫 무도회에서 첫 만남을 갖게 되는 다시와 리지.



▲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리지와 다시는 격렬하게 부딪친다. 

리지 역은 키이라 나이틀리가, 다시 역은 매튜 맥퍼딘이 맡았다.



▲ 떠오르는 아침 햇살은 두 사람의 미래를 예고하듯 환히 비춘다. 

오해에서 이해로, 교만에서 겸손으로, 용서와 사랑으로의 과정은 은총이었다.


줄거리

 사랑이 싹틀 무렵 남자들이 빠지기 쉬운 실수는 '오만'이고, 여자들은 깨기 힘든 '편견'에 사로잡히기 일쑤다. 이 모든 것을 넘어선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진전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엘리자베스'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결혼까지 이어지는 것임을 굳게 믿고 있는 자존심 강하고 영리한 소녀다. 좋은 신랑감에게 다섯 딸을 시집보내는 것을 부모의 목표로 생각하는 극성스러운 어머니와 자식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너그러운 아버지를 중심으로 화목한 베넷가(家)의 다섯 자매 중 둘째 딸이다. 조용한 시골에 부유하고 명망 있는 가문의 신사 '빙글리'와 그의 친구 '다시'가 여름 동안 대저택에 머물게 되고, 그곳에서 열리는 댄스파티에서 처음 만난 '엘리자베스'와 '다시'는 서로에게 야릇한 호감을 품지만 자존심 강한 '엘리자베스'와 무뚝뚝한 '다시'는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저울질만 한다. '다시'는 아름답고 지적인 그녀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되는데…. 폭우가 쏟아지는 날, 비바람이 몰아치는 언덕에서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둔 뜨거운 사랑을 그녀에게 고백한다. 결혼의 조건은 오직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 '엘리자베스'는, '다시'가 그의 친구 '빙리'와 그녀의 언니 '제인'의 결혼을 앞두고 '제인'이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한 것을 알게 된다. 이로 인해 그를 오만하고 편견에 가득 찬 속물로 여기며 외면하고….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골이 깊어지는데 '엘리자베스'와 '다시'는 과연 서로의 진심을 알고 사랑을 키워갈 수 있을까….

 첫 만남

 영화의 첫 장면은 소설책을 읽으며 걷는 리지(엘리사베스를 엘리자나 리사, 리즈, 리지, 베스, 베티 등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를 클로즈업하며 시작된다. 그녀의 성격을 드러내는 단순하면서도 짙은 색감의 드레스! 아침 햇살이 그녀를 환히 비춘다. 자신의 선입견을 넘어가듯 다리를 건너 집으로 향하는 그녀를 따라 카메라는 롱테이크(long take)로 베넷 집안으로 들어간다. 천진한 모습으로 뛰어 다니는 딸들! 엉망인 집안! 거기에 개까지 집 안을 들락거린다. 집안으로 들어가려던 리지는 자기만의 창을 통해 타인을 바라보듯 창문을 통해 엄마, 아빠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는다. 부각되는 장면은 베넷가 집 밖 전경으로 이어진다. 집 앞에는 연륜을 드러내는 깊게 주름진 표피의 큰 나무 밑둥치가 양쪽에 서 있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뿌리 깊은 인간 내면의 대결을 상징하듯이….

 모든 남자들은 단순하면서도 멍청한 속물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리지는 무도회에서 다시와 첫 만남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 그녀가 다시에게 용기를 내어 춤 파트너가 되어주길 신청하지만, 그는 무뚝뚝하게 정중하고도 냉정하게 거절한다. 더욱이 그가 친구에게 리지의 외모에 대해 폄하하는 말을 엿듣고는 불쾌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친절한 구석이라곤 없어 보이는 무뚝뚝하고 잘난 척하는 다시, 언제나 검은 정장에 흐트러짐 없는 반듯함을 지닌 귀족의 풍모를 지닌 그는 고상함과 완벽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여자는 완벽해야 하고 그림이나 춤, 피아노도 할 줄 알고, 독서로 지성도 쌓아야 한다며 베넷 가문의 여자들을 속물로 바라본다. 그는 누구의 말에도 동요되지 않으며 쉽게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다시가 오만한 사람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히게 된 리지는 위크햄을 만나 다시와의 관계를 듣는다. 그의 거짓말을 진실로 믿는 리지는 다시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을 더 굳힌다. 콜린즈의 청혼을 당당히 거절한 그녀는 맨발로 집 뒤뜰 그네에 앉아 빙글빙글 꼰다. 편견에 대한 집착에 가득 차 계속 주변의 모든 것들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느 날 다시의 숙모를 돕는 피츠윌리암을 만나게 되는데 리지는 언니 제인의 결혼을 파경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 다시라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와 실망의 어두움에 깊이 빠져든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비에 흠뻑 젖은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들의 만남! 둘은 언성을 높이며 극한으로 치닫는다. 이 공방전을 통해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다시는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리지를 향해 사랑을 고백하며 청혼한다. 하지만 언니를 불행에 빠트린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하는 리지!


 난 장님이었어 

 다시와 헤어진 리지는 아주 캄캄한 방안에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허공을 응시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거울 이론과도 같은 심리적 갈등 속에서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바라보는 리지. 그 모습을 부각시킴으로써 리지의 내면을 관객에게 들키는 효과와 함께 관객 또한 그녀와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상징했다.

 인생이란 깨달아 가는 과정으로 점철된 역사라고 말하고 싶다. 이 역사는 언제나 만남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으로 이뤄진다. 리지는 언니 제인에게 고백한다. "난 장님이었어." 다시는 잠옷 바람으로 리지의 거실을 찾아와 오해를 풀기 위한 편지 한 통을 놓고 간다. 언니와 빙리와의 관계, 위크햄의 거짓말로 빚어진 오해가 얽혀 있었음을 깨닫는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새로운 마음의 시선으로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그날 밤 오렌지색의 둥근 원과 어두운 그림자들이 빅 클로즈업(big closeup)된 리지의 눈동자 속에서 춤을 추며 스쳐지나 간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벌판을 지나 절벽에 올라 바람을 쏘이는 리지! 이제 편견에서 해방된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은총의 만남

 캐서린 부인의 방문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리지는 다음날 새벽 안개 자욱한 벌판에 서 있다. 멀리 저편에서 풀어헤친 셔츠 바람으로 급하게 그녀를 향해 오고 있는 다시! 캐서린 부인의 무례함으로 고통 받았을 리지를 위로하며 사랑을 거듭 고백한다. 어두운 밤의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정화된 사랑의 순수함이 드러난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은 두 사람의 미래를 예고하듯 환히 비춘다. 오해에서 이해로, 교만에서 겸손으로, 용서와 사랑의 과정을 겪은 진솔한 만남이며, 은총의 시간이다.

 다시는 오만했던 마음을 비운 겸손한 모습으로 리지를 기다리고, 청혼 허락을 받기 위해 리지 역시 진심을 말한다. "그분은 교만하지 않아요. 제가 오해한 거예요…. 우리 서로가 잘못 봤던 것이에요…. 제가 분별력을 잃었어요. 둘 다 고집이 센 점이 많이 닮았어요."

 예수님은 인간 그 자체를 믿으셨기에 모든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으셨고 편견의 잣대로 저울질하지 않는 분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모든 관계는 참된 만남에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은 TV 미니시리즈로 네 번이나 영국 BBC에서 제작돼 인기를 모았고, 영화로도 제작됐다. 2005년 영상의 귀재이자 탐미적 낭만주의자인 감독 조 라이트는 이 영화를 맡기 전 오스틴의 작품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문학보다 시각예술과 그 문법에 익숙한 사람으로서 영화 「오만과 편견」 한 장면 한 장면에 정성을 기울였다. 사랑 받는 작품들은 모두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고, 세대를 초월해 공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진실을 담아내고 있다.

 사랑의 관계는 남녀 관계뿐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이기도 하다. 이 만남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고 진실하려면 다음의 성경 말씀을 마음에 품어야 할 것이다.



이복순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


평화신문 :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98140&path=201402


[가톨릭 문화산책]<8> 영화- (2) 7번방의 선물


잠자고 있던 '인간의 선함' 순박함으로 일깨워

 

                           ▲ 용구가 대본을 암기하도록 도와주는 7번방 식구들.

  우리는 주위 환경에서 수많은 영향을 받고 산다.
특히 함께 사는 사람들을 통해 상처받고 감동도 받으며
끊임없이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도록 자극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 변화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는 과정으로 우리를 이끈다.

인간은 또한 누구나 절대자라는 신적 존재와 관계를 맺으려 한다.
아무리 끔찍한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선한 지향과 아름다운 사랑을 꿈꾼다.
순수한 마음을 어린이를 통해 자극받아 인간다움과 진실로 향하게 한다.
굳어지고 비뚤어졌던 영적 자아가 잠에서 깨어나 '나는 누구인가'하고 자문하며
하느님의 속성을 점차 알아보는 체험으로 들어가게 한다.
이 때문에 사랑ㆍ순수ㆍ일치ㆍ평화ㆍ연대를 이끌어내는 집단적 행동을 유발한다.
<7번방의 선물>에서 주는 선물은 무엇인가?
그들은 어떤 체험을 했으며 어떻게 변화됐는가?

 

 

줄거리
 지적 장애를 지닌 용구는 그의 딸 예승이에게 세일러문 가방을 사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한 개밖에 남지 않은 세일러문 가방을 경찰청장의 딸이 사버린다. 다음 날 경찰청장의 딸은 세일러문 가방 파는 곳을 알려준다며 용구를 데리고 앞서 뛰어가다가 돌연 죽음을 맞는다. 용구는 청장의 딸을 살리려다 누명을 쓰고 살인 혐의로 체포되고 사형판결을 받아 7번방에 입소한다.
 
 바보같은 사람
 교도소 7번 방에는 밀수범ㆍ사기전과 7범ㆍ간통범ㆍ부부 소매치기범ㆍ자해 공갈범등 다양한 범죄자들이 갇혀 있다. 이들은 비좁고 누추한 방에서 그동안 길들었던 것들을 자랑삼아 말하고 상징적 행동을 휘두르며 함께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놈이 7번 방에 들어왔다. 이놈은 아동유괴 강간살인범!! 죄질로 치면 극악범이다. 이들은 이 극악범에게 혹독한 폭력으로 신고식을 치르게 한다. 그러나 꼭지가 덜 떨어진 듯한 이상한 놈 용구는 대들거나 반항하지 않으며 미워하거나 증오할 줄도 모른 채 부당한 대우를 받기만 한다. 그는 7번 방의 험악한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을 믿어주며 평범한 사람으로 대한다.

 서로 위한 선물
 어느 날 반대 패거리 두목이 방장을 뾰족한 흉기로 찌르려 하자 용구는 달려가 대신에 찔린다. 순박한 용구의 행위에 방장은 감동하며 고마움을 느낀다. 방장은 용구에게 필요한 뭔가를 해주고자 한다. 그러나 용구는 물질적인 욕심이나 방장이 되겠다는 야심도 없다. 오직 사랑하는 딸 예승이를 만나고 싶을 뿐이다.

 7번 방 죄수들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이들은 용구에게 예승이를 만나게 해주려고 함께 머리를 짜낸다. 그동안 으르렁거리며 나쁜 짓을 위해 힘을 모았던 이들은 이제 뭔가 좋은 일을 하려는 실행에 옮긴다. 드디어 예승이를 교도소 7번 방으로 밀입시키는 데 성공하고 용구의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들도 진정한 그 기쁨에 서서히 동참하게 된다. 세파에 찌든 마음들이 정화되기 시작하고 단순해진다.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 특사로 나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신봉식! 그는 예승이의 반입을 반대했지만 우연히 들고 들어온 예승이의 휴대폰으로 순산한 아내와 급작스레 통화한다. 그는 갓 태어난 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살아갈 희망을 얻는다. 감방에서 세상과 소통을 이룬 것이다. 이는 범죄를 위한 소통이 아니라 생명과 기쁨을 나누는 소통이다. 예승이는 죄수들에게 생명을 전한 '선물'이다.

 

▲ 예승이를 상자에 넣어 밀입시키는 7번 방 식구

변화된 사람들
 마지막 법정 공판에서 용구의 누명을 벗겨주려고 용구에게 사건을 재연하게 한 7번 방 식구들은 그가 무죄임을 입증하는 대본을 작성해 암기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어눌한 용구가 성공할 리가 없다. 사형 날짜가 결정되자 이들은 열기구를 만들어 용구와 예승을 탈출시키려고 단합한다. 반대 패거리 두목도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며 앞장선다. 악행으로 갇힌 이들이 자신들의 죄는 까마득히 잊고 어떻게든 예승이와 아빠 용구를 살리려는 간절한 심정으로 급박한 상황에 온 힘을 모은다. 그야말로 일치ㆍ연대ㆍ협력ㆍ사랑의 현장이 된다.

 천진난만한 용구가 감방 식구가 되면서 사랑과 끈끈한 서로의 유대 관계를 체험하게 하고 웃음까지 선사한다. 여기에 인간 안에 내재하는 하느님의 이미지인 선을 재발견하게 하는 메시지가 깔려 있다. 죄인들이 갇히는 곳이 보이는 천국이 됐다. 이것이 기적이다. 이상한 놈이 들어와 일으킨 기적이다. 용구가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7번방의 죄수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갔어야 했는데…." 이제 이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고백한다.

 이들은 출소해 사회에 적응하며 떳떳하게 살게 됐다. 용구와 예승이는 감방 사람들에게 과거의 악에 묶였던 끈을 끊게 해주었다. 예수님처럼 과거의 죄를 없애주고 새로운 삶을 살게 했다. 예수님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함께 사시면서 목숨을 바치심으로 사랑ㆍ소통ㆍ연대를 이룬 것이 이들 안에서 현실이 된 것이다.
 
 불 속에 휩쓸린 보안과장
 교도소 보안과장은 납치범에게 아들을 잃은 후 폐인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에게 용구는 아동을 유괴ㆍ강간ㆍ살인한 극악범이다. 어느 날 7번 방 식구들은 예승이를 밀입하여 감방에 감추려 했지만 과장에게 들키고 만다. 용구는 다시 꽁꽁 묶여 과장에게 끌려간다. 비가 철철 내리고 번개와 천둥이 요란히 치는 한밤중에 용구는 독방으로 이송된다. 꽁꽁 묶여 갇힌 용구의 어둠침침한 독방! 용구는 홀로 저 깊은 밑바닥까지 버려진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8). 예승이는 인류를 상징한다. 용구는 인류를 위해 고통 속에서도 침묵하는 어린양이다.

 그날 새벽 교도소에 화재가 발생한다. 불 속에서 석유통을 들고 소리치며 난동 부리는 화재범을 말리기 위해 과장은 문짝을 뜯고 불 속에 휩쓸려 들어간다. 용구는 과장을 구하려고 쓰러진 문짝을 밀어내고 과장을 끄집어낸다. 병상에서 과장은 용구가 눈물 콧물을 흐리며 "우리 과장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고 외쳤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바보 용구는 자기 목숨을 생각하지 않고 희생하며 과장을 살려줬다. 그는 자신을 때리는 자 앞에 반항하거나 보복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몸을 내던져 희생된 예수와 같은 사람이다.

 의구심과 분노에서 차있던 과장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면 깊은 곳에서 영적 자아의 소리를 듣게 된 그는 용구의 죄상에 대해 의문을 품고 "왜 죽였느냐"고 물으며 용구의 누명을 벗기려고 경찰청장을 찾아가 사면을 요청한다.  

 그러나 마지막 법정 공판에서 용구는 전 날 경찰청장이 마구 때리며 "죄 값을 달게 받아. 그러지 않으면 내가 네 딸을 똑같이 만들어 줄 거야" 라는 말, 국선 변호사가 "당신이 죽어야 예승이가 살아, 당신 아빠지!" 라는 말이 떠올라 예승이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암기했던 대본과 다른 말을 한다. 그의 부성애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자신이 소녀를 죽였다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예승이를 살려 달라고 한다.

 용구가 딸 예승이를 위해 허위로 시인하자 과장은 "용구는 지금 정신적으로 위축된 상태"라며 "네가 무슨 사람을 죽이냐, 뭐가 미안하냐!"고 소리친다. 죄수들이 형을 다 받게하는 것이 책임인 과장 오히려 죄수의 형을 면해 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후 과장은 예승이를 자신의 딸처럼 키운다. 변호사가 된 예승이는 아빠 용구가 허위자백을 강요 받았음을, 그래서 무죄임을 어렵게 밝혀낸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교도소 담장 철망에 묶여 있던 노란 풍선이 자유로이 하늘로 날아가는 광경을 실제처럼 처리하면서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갈망을 상징적으로 마무리 했다.
 
 노랑 풍선은 이제 날아 갔을까?
 이 영화는 코믹드라마로 개연성이 부족한 면도 있지만 슬픈 이야기를 밝게 묘사했다. 죄수복은 보통 푸른색이고 감방은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로 생각되지만 이 영화에서의 죄수복은 주황색이고 감방은 햇살이 비치는 따뜻한 분위기이다.

 영화에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노랑 풍선, 노란 가방, 노랑 조끼, 노란 보자기…. 노란색의 의미는 태양과 성스러움을 상징한다. 또 감방 안에 있는 종교적 성물들이 시야게 들어오게 함으로써 간접적인 종교 메시지를 드러낸듯한데, 어쨌든 바보 같이 희생하는 사람이 있기에 7번 방 죄수들은 서서히 변화돼 간다.

 7번 방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방일지도 모른다. 우리 가정과 공동체, 더 나아가 우리 사회, 국가가 쌓아 놓은 울타리 속의 방 말우이다. 가난하고 아무런 기득권이 없어 죄인처럼 손가락질 당하는 이웃에 대한 나의 고착된 선입견, 부조리한 체제와 권력, 규범에 묶여 노랑 풍선처럼 자유롭게 날지 못하게 하는 그 무엇이 우리를 방해하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 이복순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

 

평화신문 : http://web.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43379&path=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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