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승준|주연 조영찬, 김순호|애정, 다큐멘터리|한국|2012년 개봉

 

이 영화는 시청각 중복장애인 조영찬씨와 척추장애인 김순호씨 부부의 남다른 소통과 사랑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나에게 달팽이처럼 아주 느리게, 세상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알아가는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주인공의 삶을 대신 설명해주거나 공감을 강요하는 내레이션 대신 그들만의 특별한 삶의 방식에 직접 끌어들여서 느끼게 하는 이 작품은 다소 생경한 인상을 주지만 그 어떤 멜로드라마보다도 더 큰 울림과 진한 사랑을 전해준다.

점자 단말기를 이용해서 공부하고 글을 쓰는 영찬씨는 대학생이자 시인이다. 태초의 어둠과 적막 속에 탄생한 그의 시에는 볼 줄 아는 사람은 볼 수 없는 그들만의 별나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주 어렸을 때 심하게 앓았던 열병 탓으로 시각과 청각을 잃은 영찬씨는 순호씨를 만나기 전에는 시간의 흐름도 알 수 없는 갑갑함 속에 희망도 없이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축 처진 모습으로 차에서 내려 잠시 서 있는 그에게 천사처럼 나타난 순호씨는 그를 데려가 밥이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따끈한 라면을 끓여주었고, 세상에 태어난 이래 그토록 맛있는 라면은 먹어본 적이 없었다는 영찬씨는 더할 수 없는 감동에 휩싸였다. 그 만남을 계기로 백년가약을 맺은 두 사람, 남편의 눈과 손이 되어 그의 모든 것을 보살펴주는 아내 순호씨는 그 작은 몸집으로 그의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구석구석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마음의 거인이다.

 

 

그들 부부는 비장애인들에 비해 무척 제한된 감각을 사용하지만 그 누구보다 온전하고도 아름다운 소통을 이루어낸다. 존재의 모든 촉수를 동원하여 한 마디 한 마디를 성심성의껏 주고받는 이들의 모습은 사실 나의 현실에 다소 도전적인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스마트 기기와 SNS로 대표되는 감각의 무한확장 시대를 살게 된 오늘날, 나는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고 그 중에서 진정 ‘친교’라 부를 수 있는 영역은 얼마나 될까? 모든 감각기관이 정상적으로 움직인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를 보고 듣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마음의 눈과 귀가 닫혀있거나, 헛것에 사로잡히면 보면서도 보지 못하게 되고, 들어도 듣지 못하게 됨을 나도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진심을 보고 들으려 하기보다 내 눈과 귀, 매체로 확장된 기계적인 성능만 자랑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의 표현대로 ‘사람의 눈, 귀, 가슴들은 대부분 지독한 최면에 걸려 있거나 강박에 사로잡혀 있거나 자아의 깊은 늪에 빠져 세계를 전혀 모른 채로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

소설 [어린 왕자]의 별을 따서 ‘달팽이의 별’이라고 제목을 지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들의 대화 안에 함께 머물다보면 나 또한 그들의 별을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어둠은 짙어야 별이 빛나고 밤은 깊어야 먼동이 튼다.”는 시처럼 그 별은 그들의 오래된 고독과 어둠 깊은 곳에서 반짝이는 참된 빛의 세계이다. 그들은 어쩌면 모든 이가 깨닫기 바라는 것을 침묵과 어둠 속에서 먼저 알았는지도 모른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하여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거다.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하여 잠시 귀를 닫고 있는 거다.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하여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 <야곱의 우물> 2012년 5월호 게재
김경희 노엘라 수녀

*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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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알레한드로 고메즈 몬테베르드|주연 에두아도 베라스테구이, 타미 브랜차드
드라마, 멜로/애정/로맨스|미국, 멕시코|2009년 개봉

 

영화 <벨라>는 기괴한 판타지와 범죄자들이 난무하는 극장가 한쪽에 다소곳이 피어난 작은 꽃 같은 영화다. 화려한 볼거리나 말랑말랑한 로맨스와도 거리가 먼 영화다. 슬픔을 간직한  친구에게 귀를 기울이듯 함께 느낄 때 비로소 그 진한 향기가 마음에 와 닿는 착한 영화다.

 

주인공 호세는 형이 운영하는 멕시칸 식당의 주방장이다. 원래 축구 스타로서 유명했던 그는 인기 절정의 순간에 자동차 사고로 막다른 길에 접어든 것이다. 사고 현장에서 달아나자는 매니저의 유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차에 치여 죽은 소녀를 끌어안은 호세는  잘못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않는다. 과거의 영광보다 자기 때문에 사라진 생명을 더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그는 쉽사리 그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한편 호세와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니나는 몇 번 지각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당한다. 일찍이 부모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혼자서 힘겹게 살아온 니나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의 아기를 임신한 데다가 직장마저 잃게 된 것이다. 형의 무자비한 처사를 보고 주방에서 뛰쳐나온 호세는 알록달록한 멕시코식 유니폼을 입은 채 거리를 떠돌게 된 니나를 자기 집에 데려간다. 그리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낙태를 결심한 니나는 호세의 부모님과 만나면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가족애를 경험한다.



호세의 동작과 눈빛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쫓아가며 완성된 이 영화는 그를 통해 참된 양심과 인간성을 다시금 발견하게 한다.
호세가 자기 죄를 감추지 않고 슬퍼하는 모습에서, 죽은 생명을 애통하게 바라보며 우는 모습에서, 고용주에게 억눌린 이들을 대변하는 모습에서, 절망에 빠진 이웃의 벗이 되고 꺼져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모습에서, 당신 모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얼을 만나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태 5,8)

 

- <그대 지금 어디에> 2010년 9월호 게재
김경희 노엘라 수녀

*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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