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취제크( 예수회 신부)
교황님 덕분에 예수회의 새로운 사제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오래 전에 꽤 유명한 책이었나 본데, 나는 이제사 그분을 만나며 정말 오묘하신 하느님의 섭리에 다시한번 놀라게 된다.
세계 제 2차대전이 일어나던 시기에 이미 공산혁명이 시작되어 종교의 자유가 사라진 러시아에 선교를 목적으로 잠입했다가 23년간이나 연락이 두절되어 모두가 다 죽은 줄 알고 예수회에서는 사망자 명단에 넣고 연미사를 드리기까지 했는데, 그분은 러시아의 형무소와 시베리아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15년간이나 형극의 시간을 보내고 만기가 되어서는 러시아인들에게 열심히 사목을 하시다가 미국에 있는 누나들과 연락이 닿아서 1963년에 포로 교환으로 본국으로 돌아오게 된 신부님의 이야기이다.
참 재미있는 게 어릴 때부터 의지와 체력이 남과는 달라서 지독한 문제아에 고집쟁이이기도 했던 이 신부님은 서품을 받고 나서 신부가 되자마자 러시아 선교가 꿈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것이다. 이걸 보면서 사람마다 하느님께서 자기 역할을 미리 심어주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중이니 적국이 분명하고 공산국가니까 종교가 철저히 금지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노동자로 위장해서 러시아로 잠입하는 일은 보통 사람이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정신력과 체력이 남달랐던 그분은 남들이 안 갖는 소망을 품게 되고 하느님은 또 그걸 허락하신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비로웠다.
처음에는 우랄 산맥에 있는 목재소의 노동자로 배치되어 종교는 약한 자의 아편이라 생각하는 공산주의 무신론자들 틈에서 하루의 고된 노동이 끝나고 숲으로 들어가 몰래 미사를 드리고 그것도 안 될 때는 숙소에서 기도를 드리며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하려는 목적 하나만으로 모든 일을 인내하는 모습이 정말 위대해 보였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한다는 원대한 포부나 신부로서의 사명이란 것이 허상처럼 느껴지고 아무 것도 성취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열악하고 지독한 상황에서 그분을 지탱한 힘은 하느님의 섭리와 전능하심을 믿고 자신과 미래를 하느님께 맡기고 오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독일 첩자라는 죄목으로 15년간의 판결을 받기까지 수없이 반복되는 심문과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분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기도의 힘으로 버티어 나갔다. 어떠한 고난을 당하든 하느님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결심과 아무리 괴롭고 외롭고 힘들더라도 혼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는 믿음으로 다시 용기를 찾는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한번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러시아 관리들은 자기가 신을 믿지 않으니까 선교를 목적으로 들어온 그의 말을 전혀 믿지 못하고 끝까지 독일이나 바티칸과의 어떤 정치적인 목적이나 연결점을 찾아내려 했다. 끝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그에게 결국은 약을 먹여 첩자 노릇을 했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게 하는 비열한 짓을 했는데, 그래도 꼭 본인의 싸인을 받아내려는 제도는 선진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제도는 그리 잘 만들어 놓았어도 그걸 망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42년 7월에 판결을 받고나서의 4년간의 감옥생활을 철저하게 공부하고 배우며 하느님을 섬기는 은수자로 살았다는 점은 정말 배울 점이다. 의지가 보통 강한 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감옥의 독방에 갇혀있는 1년동안 수도원에서처럼 규칙적인 묵상기도와 미사를 혼자 바치고, 삼종기도와 묵주기도를 언어를 바꾸어 가며 바치고 나서 기억에 떠오르는 모든 시를 외우기도 하고 논제를 정해 듣는 사람도 없는 연설을 하기도 하고 날짜 가는 것을 기억하여 스스로 축일을 챙기고 기도를 하는 등등 머리와 육체가 활기를 잃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러시아 문학을 탐독하고 역사를 공부하며 운동 삼아 마루를 청결하게 윤나게 정성들여 닦는 일도 하고 옷을 깨끗하게 수선하기도 하면서 4년간의 감옥생활을 대학생활처럼 공부하고 수련하는 생활로 이어나갔다.
또한 러시아 군대의 군목이 되라는 권유나 러시아의 첩자로 로마에 파견되는 일 등을 철저히 거부하고 신부로서의 본연의 일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는 독방에 있다가 여러 명이 함께 있는 방으로 옮겼을 때는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이해하고 동정하려는 마음이 바로 자신의 수형생활을 버티는 힘이 되었다고 하였다. 하느님의 관점에서 이 세상의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믿는 것이 그의 생활에서 목적의식을 잃지 않도록 도왔음을 고백한다. 종교나 기도, 하느님의 사랑이 현실을 바꾸어 놓을 힘은 없지만 현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15년의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고 스탈린호에 실려 시베리아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과 온갖 질병과 싸우며 광산의 석탄을 캐 나르는 극심한 노동을 하루에 12시간씩이나 했는데, 그 당시의 최고 목표는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었다는 고백을 통해 계속 육체의 실존이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했다.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또 한 명의 러시아인 캐스퍼 신부와 힘을 합쳐 몰래 미사를 드리기도 하고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기도 하면서 신부로서의 일을 해 나갔다. 나중에는 빅터 신부도 만나 함께 사목활동을 이어나갔다. 한편 구리공장에서 일하다가 좀더 편한 일자리인 병원으로 옮겨 근무하며 좋아하기도 하고 감전사고로 죽을 뻔한 경험도 하였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자 수용소에서도 폭동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게 되는 과정에서 가슴아파하는 등 극한 상황에서도 사람에 대한 애정을 한 순간도 놓지 않았고, 광산에 들어가 일하다 광산이 무너져 죽을 뻔한 사고를 거치면서도 그는 용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1955년 4월 드디어 15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도 다시 집과 직장을 구해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여 우수일꾼이 되었다. 한편으로 KGB의 감시와 통제를 받으면서도 열심히 사목활동을 하였고 신자들은 날로 늘어나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을 처리해 나가셨다. 모든 인간에 숨어 있는 종교심을 정치지도자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는 사이에 드디어 미국에 있는 수녀인 누나들과 연락이 닿아 소포를 받기도 하고 누나들의 추진으로 미국으로의 송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새삼스럽게 놀라운 것은 이 글이 미국에 돌아와 연락이 끊긴 상황의 생활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활을 기억에 의지해 기록한 회고록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일을 매일 현실에서 기록한 것처럼 소상히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분이 얼마나 명료한 의식으로 깨어서 살았는지를 증명하는 것같다.
또한 그는 그리 혹독한 심문을 받고 비참하기 그지없는 수용소생활을 겪으면서도 그 누구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현실을 항상 긍정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며 그들에게 하느님을 전하려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이 글을 통해 그런 자세가 바로 하느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의 바른 자세라는 것을 배웠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사소한 일조차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속이 상하고 울화가 치미는 내 얄팍한 믿음이 보다 깊어지길 소망하며 책을 덮었다. 1984년 돌아가신 그분의 영이 2016년 여름인 이제사 내 안에 부활하셔서 앞으로 내가 힘이 들 때마다 현실을 살아낼 위안과 힘을 주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http://blog.daum.net/rina507/3120039 박은경 가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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