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법을 살다>가 주는 위로

무죄변론에 앞장선 변호사 고 김동국 변호사가 남긴 기록 사랑으로 법을 살다를 읽고 법률사무소 HC의 김형찬(가브리엘) 변호사가 소감을 보내왔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변호사 후배로서 김동국 변호사에 대해 느낀 감정을 담담하고 따뜻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겟세마니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수난의 시간 앞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이 기도는 나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인간적인 면모, 그러면서도 결국 주님의 뜻에 온전히 순응하는 모습은 나에게 닥친 고난과 시련에 주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주님을 잊기까지 하였던 나조차도 아직 주님께 다가갈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수난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께서 온 세상을 밝혀 비추어 주셨듯이, 원망과 망각으로 먼 길을 돌아온 나도 오히려 이전보다 더 주님께 의지하고 순응하게 되었습니다.

고 김동국 변호사님의 유고집 사랑으로 법을 살다는 예수님의 기도처럼 이 잔을 비켜가게 해달라는 기도 끝에 아버지께서 원하는 대로의 삶을 살아간 독실한 신앙인이자, 한 가정의 듬직한 가장이며, 후배와 사회에 모범이 되는 변호사가 남긴 글입니다. 그 자신의 표현대로 간이식 수술을 통하여 다시 태어난” 2004년 이후부터 주님께서 부르신 2015년까지의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 자신과 가족, 그리고 사회를 향해 아버지의 뜻을 밝히기 위해 남긴 발자취가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의 첫 이야기는 고 김동국 변호사님이 다시 태어난 직후인 2005년의 글로 시작합니다. 자신이 B형 간염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때부터 다시 태어날 준비를 마친 2004124일까지의 일을 담담히 이야기합니다. 34세의 나이에 간암판정을 받고 몇 차례의 수술을 받았으며 미국으로 건너가 간이식 수술을 받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들을 최대한의 감정을 절제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합니다. 마치 제삼자가 쓴 것과 같은 그 이야기의 행간에서 잔을 비켜가게 해달라는 간절한 눈물을 느끼는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니길 바랍니다.

이어서 병마와 싸우며 평범한 삶을 기도하는 나약한 사람의 이야기(1부 평범함 일상이 그립다)를 들려줍니다.

그래도 문득 지치고 힘든 마음이 없을 수는 없다. 언제나 이 불안의 장막을 걷고 살아갈 수 있을까?” 

주님께 의지하며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가운데 문득문득 보이는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고뇌가 마음을 울립니다. 그리고 그 고뇌의 끝에 말씀으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을 믿으며, 구원의 길을 기쁘게 걸어가리라는 다짐이 또 한 번 마음을 울립니다.  

이 책에는 법조인으로서 높은 식견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담고 있습니다(2부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함께 나누며). 관습헌법, 무죄추정 원칙, 상고법원 제도 및 형사 사건 성공보수 약정에 관하여 법조인으로서의 혜안을 보여주며, 편견을 버리고 끊임없이 사유하며 연민과 부끄러움을 가져야 한다는 법조인의 자세에 대해서도 따뜻하게 이야기해 줍니다.

그리하여 어떻든 이성의 법정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국민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함께 나누는 직업이 변호사라며 후배 변호사들을 격려합니다.

다음은 자신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의 이야기(3부 가장 소중한 단어, )입니다. 삶을 살아가며 겪는 경험과 사회현상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성찰뿐만 아니라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색하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집니다. 

다시 태어나 담담히 주님이 주신 길을 걸어가는 신앙인의 이야기(4부 죽음의 공포에서 건져주신 하느님)는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고 김동국 변호사님은 그분에 대하여 더 많이 알게 되면서 삶의 의미에 관한 물음에 대해서 만족할 만한 답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라며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은 이유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신 평화와 위로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한 발짝 한 발짝씩 나아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라는 히브리서 말씀처럼 자신이 겪는 죽음의 공포가 어떻게 자신을 예수님의 곁으로 가까이 하게 하였는지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으로 누구보다 따뜻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이야기를(5부 자랑스러운 내 아들, 내 딸) 써 내려 갔습니다. 다시 태어나, 커가는 자녀들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느끼게 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혼 25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세월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항상 내 곁을 지켜준 마리아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는 이 책의 마지막 글은 고 김동국 변호사님의 새로운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이었는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이 책의 각 장의 마지막마다 고 김동국 변호사님과 함께 했던 분들을 통해 그분의 흔적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사랑하고, 사랑받았으며, 축복하고 축복받았는지 따뜻한 글들을 통해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요한 12,27)  

주님께서 부활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셨듯이 어쩌면 고 김동국 변호사님의 삶 또한 새롭게 태어난 이후의 삶을 통해 더 빛나는 삶을 사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은 어쩌면 고 김동국 변호사님의 가장 빛나는 시간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삶에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놓치지 않고 인간적, 세속적 요구를 자제하면서 순례의 여정을 계속하는우리들에게 작은 평화와 위로를 주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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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신 하느님은... 사람들

이 서로 미워하고 서로 죽이는 전쟁을 인정하시는 건가요?”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독자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말이 깊은 울림을 주는 KBS 김학순 PD의 「전쟁과 사랑」에 대한 감상입니다.

<전쟁과 사랑>을 읽고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엔도 슈사쿠의 <전쟁과 사랑>이라는 소설의 주제에 해당하는 이 말은 폴란드인 콜베 신부가 사치코에게 준 성화에 있는 말씀입니다.

나가사키라는 특정한 지역에 관련된 인물들로 구성된 소설은 마치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온갖 인물 군상들이 살아가며 고뇌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치코라는 한 소녀가 성장하면서 사랑을 알게 되고 전쟁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 살아남아 사랑을 기억하는 소설이죠.

책 읽는 시간 내내 나는 슈헤이가 되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소설을 읽는 재미는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는 점이죠, 누구는 사치코가 될 수도 있고 누구는 콜베, 누구는 헨리크, 누구는 슈헤이 등.

슈헤이는 자기가 곧 전장에 투입될 것을 알고 있죠. 신앙인으로서 그의 고뇌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서로 죽이는 전쟁을 인정하시는 건가요?”

답을 찾지 못한 채로 그는 가미가제 특공대로 출전하여 죽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누구나 이 문제의 답을 스스로 찾아야하겠지요.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풍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섬세한 느낌을 엔도 슈사쿠는 현미경 들여다보듯이 포착하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콜베 신부가 자기 목숨을 타인을 위하여 바치는 장면은 일반인으로서는 하기 힘든 숭고한 사랑이지만 거기에서 머물렀다면 별다른 느낌이 없을 텐데 나중에 헨리크가 콜베 신부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고 또다시 그가 타인을 위해 베푸는 사랑은 엔도 슈사쿠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헨리크) 신부님, 전 천국은 믿지 않지만, 지옥은 믿습니다. 이 수용소가 바로 지옥이에요. (콜베) 여긴 아직 지옥이 아니요, 지옥이란, 헨리크! 사랑이 완전히 없어진 곳이에요. 그러나 여기엔 아직 사랑이 남아 있소.”

사랑이 있어야 천국이라는 말.

사치코가 한 말 전쟁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연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사람들은 왜 서로 싸우고 피를 흘리는 것일까.’ 이 말은 지금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작가의 질문 같습니다.

김학순 PD는 1987년 KBS 공채로 입사. ‘TV 책을 말하다’ ‘6시 내 고향’, ‘문화탐험 오늘’, ‘VJ 특공대’, ‘생로병사의 비밀’, ‘아침마당’, ‘생생정보통’ 등 KBS 간판 프로그램을 다수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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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함께하는 바오로딸 책읽기 5.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홍성남 신부님께서 후회에서 벗어나기를 읽은 감상을 전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따스함을 안겨주는" 책이라고 하시네요 ^^*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박정우 후고 신부님께서 바오로딸의 다시 읽고 싶은 명작01 「천국의 열쇠」를 읽고 감상평을 남겨주셨습니다.

열 여섯 살 성소를 고민하던 시절에 이 책을 읽고 치점 신부처럼 살고픈 바람을 지금까지 마음에 품고 있다는 신부님의 꿈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박정우 신부님의 꿈을 응원합니다.

가톨릭 소설의 영원한 고전, 스코틀랜드의 의사 출신 작가 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40년 만에 다시 읽었다. 한창 사제 성소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 16살의 어느 날인가 이 책을 잡았다가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서 밤을 새워가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50대 중반을 넘긴 현재의 나에게도 똑같은 감동을 선사했다. 

<천국의 열쇠>1941년 출판된 이후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고 1944년 미국에서 그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었다. 1972년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고 고우영 화백이 그린 둥근 찌그렁이란 제목의 만화로도 교회 신문에 연재된 적이 있다. 

부모를 사고로 잃고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후 우여곡절 끝에 사제가 된 주인공 프랜시스 치점 신부(과거 번역본에 나온 치셤 신부가 더 친근하다)는 편법이나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강직한 성격으로 자주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종교, 사회적 지위, 인종 등에 대한 편견이 없는 보편적인 인간애와 지극히 이타적인 사랑의 마음을 지닌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가 선교사로 중국에 파견되어 겪은 35년간의 이야기는 참된 믿음과 구원이란 무엇인가”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해 생생하고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한다.

특히 그가 친구인 자신을 돕기 위해 중국까지 와서 페스트와 싸우다 병에 걸려 죽게 된 무신론자이며 자유주의자인 의사 탈록과의 마지막 대화는 정말 인상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죽어가면서도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없다는 친구에게 치점 신부는 그런 건 상관없다며 대신 하느님 쪽에서 자네를 믿고 있네라고 말한다. 얼마나 지혜로운 답인가!

속일 건 없어.... 난 회개를 하지 않았네

인간의 괴로움은 모두 회개의 행위이네

탈록은 자신을 회개시켜서 천국에 보내려고 들볶지 않는 친구가 더 좋아졌다고 농담하지만 치점 신부는 자기 목숨을 다해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았던 이 친구가 천국의 열쇠를 이미 받았다고 믿고 있었다. 이 소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공식화된 익명의 그리스도인사상을 이미 20년 앞당겨 보여주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나도 이런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던 것도 그렇고 내가 이 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은 치점 신부와 대조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친구 밀러 신부(주교)의 삶을 무의식 중에 거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신학생 때부터 면담 때마다 교수나 학자가 되기 위한 유학은 가고 싶지 않고 소박한 사목자로 살고 싶다고 여러 번 말씀 드렸었고 (비록 유학은 다녀왔지만) 여전히 나의 꿈은 밀러 주교와 같은 화려한 엘리트의 삶이 아니라 중국에서 가난한 신자들과 동고동락했던 치점 신부와 같은 따뜻한 사목자의 삶이다. 

그런데 우리 부서의 30대 여직원들이 이 소설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우리 시대에는 가톨릭 청년들의 필독서였는데...청소년기 내 가슴에 불길을 일으키고 사제의 길을 선택하는데 일조했던 이 소설이 다음 세대에도 계속 널리 전해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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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에서 "중독 신부"로 알려지며 각종 중독으로 힘겨워하는 당사자와 가족들을 위해 애쓰시는 홍성민 신부님이 바오로딸의 탐욕을 읽고 감상평을 보내주셨습니다. '탐욕'의 자리에 다른 것이 자라게 하는 지혜를 배웠다는 신부님의 감상에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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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사와 함께하는 바오로딸 책읽기 1 https://bit.ly/33aiGUr

󰋼 명사와 함께하는 바오로딸 책읽기 2 bit.ly/3hi5fXv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교수이자 교회상식 속풀이저자 박종인 신부님이 은총을 읽고 감상평을 보내주셨습니다. 은총으로 내 삶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씀으로 이해가 됩니다.

hen 이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근본적인 마음을 가리키는 반면, 헤세드 hesed 는 그 사랑의 구체적인 행동들을 표현한다. “헨이 하느님이 지니신 우리에 대한 근본적인 성향과 마음이라면, 헤세드는 근본적인 성향 때문에 나오는 구체적인 행위를 가리킨다.”

#은총 이라는 신학적 개념을 그 어원적인 설명에서 시작해서 쉽게 설명해 주는 책을 만났다.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했던 형제 수사들이 최현순 선생을 좋아했던 이유가 이런 데 있었음을 확인했다. 어렵지 않은 단어와 저자의 경험과 성찰도 편안하다.

나의 부족함을 메워 구원에 이르려면 선행과 공덕을 쌓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고 지내왔는데 결국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실천을 하는 것도 모두 은총의 산물이란 것을 알았다.

내가 싫으면 구원을 사양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지만 자기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존재도 인간이다. 신학... 어렵다고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교리와 신학 입문서로도 좋겠다.     -출처: 박종인 신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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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 최현순 지음 󰠐 바오로딸

정신과 의사이자 신경인류학자 박한선 박사님이 저희 책 <칠층산>을 읽고 서평을 보내주셨습니다. "정작 필요한 것은 깨끗이 비워내는 것"일 경우가 많다는 말이 마음을 울리네요. 박한선 박사님은 2019.11.13. JTBC 차이나는 클라스 133회 "마음의 진화, 약하니까 인간이다"에 강사로 출연하기도 하셨습니다.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은 단테의 신곡, 연옥편에 나오는 산입니다. 교만과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색욕의 일곱 죄를 모두 정화하는 곳이죠.

연옥의 연(燃)은 불태운다는 뜻이지만, 라틴어로는 purgatorium이라고 합니다. 불로 정화한다는 뜻일텐데, 핵심은 불이 아니라 정화입니다. 의학에서는 설사약을 하제, purgative라고 합니다. 장을 깨끗이 비워낸다는 뜻이죠. 비워야 깨끗해집니다.

칠죄종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진화적 본성입니다. 연옥에서 올라야 하는 일곱 층의 산은 사실 우리의 일곱 본성을 통찰하는 삶의 과정을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숙명으로서의 죄는 어느 누구에게 용서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두운 본성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면서 조금씩 비워내는 것일까요?

토마스 머튼은 트라피스트 수도회 수사입니다. 1948년 자전적 전기를 출판했고, 2009년 정진석 추기경이 번역서를 냈습니다. 제 2차 대전이라는 세계사적 비극 속에서 저자가 겪은 시련과 슬픔, 고민과 갈등, 그리고 깨달음의 과정이 잘 녹아있습니다.

곳곳에 통찰적인 구절이 있습니다만,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다음입니다.

"최상의 것의 부패는 최악이다. corruptio optimi pessima. 무릇 악이란 선의 결핍이다. 곧 응당 있어야 할 선이 없는 것이 악이다. 따라서 최상의 선이 부패된 곳에 최대의 악이 발견되는 것이다."

정신과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은 흔히 무엇인가 좋은 것을 얻어가려고 잔뜩 기대하곤 합니다. 의사의 입을 쳐다보며 묵직한 통찰과 풍성한 지혜를 퍼담기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깨끗이 비워내는 것, 즉 정신의 하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종종 스스로 좋은 것이 가득 차 있다는 사람은, 나쁜 것이 가득 차 있는 사람만큼이나 위험합니다.

2020.07. 

출처: 박한선 교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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