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하느님의 섭리(천향길 수녀, 성바오로딸 수녀회)


2018.12.16 발행 [1494호] 가톨릭 평화신문


“책 많이 파셨어요?” 도서선교를 나가면 신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처음엔 듣기 불편했습니다. 출판 사도직이란 특수성 때문에 수도생활을 시작했다가 길을 바꾸는 자매도 봤고, 수도회를 아예 옮기는 자매도 봤습니다. 그 까닭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었는데 저희는 다른 형태의 가난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종신서원을 앞두고 제가 받은 성소에 충실하기 위해서 강한 체험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출판 사도직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는 표징을 보여 주십사고. 그러면 고작 ‘책 파는 수녀’라는 말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만든 매체를 누구에게나 무료로 나눠줄 수 있다면 이런 고민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질투가 났습니다! 아는 수녀님이 ‘요셉의 집’이라고 무료급식소를 운영하시는데, 당신은 매일매일 하느님의 섭리를 만난다고 하셨습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을 예수님처럼 맞이하시는데, 예수님이 굶을까 봐 쌀이 떨어지면 쌀이 들어오고 손이 필요하면 봉사자가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그 일을 계속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정말 부러웠습니다.

드디어 만났습니다! 시몬 형제님을 만난 건 본당 도서선교의 자리였습니다. 그분은 책을 통해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며 저희에게 점심을 사 주셨습니다. 당신 삶의 역사를 들려주시면서 성경 다음으로 가브리엘 보시의 「그와 나」를 많이 읽었다고 하셨습니다. 닳을 대로 닳은 책에는 완독한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앞뒤 면지에 빼곡했습니다. 그때의 뜨거움과 전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주님은 눈에 보이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구의 체험이 아니라 저만의 고유한 체험이 필요했기에 주님은 힘을 주셨습니다. 그림책을 썼을 때도, 라디오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도, 또 인터넷 서점을 운영하며 전자우편 서비스를 하는 지금도 저는 주님의 섭리에 의지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노력합니다.

주님은 초대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도 자선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책을 기획하고 출판하려면 저희의 노동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력도 필요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바오로딸 출판 사도직은 계속될 것입니다.  

▶ 기사 보러가기

[신앙단상]아버지의 집(천향길 수녀, 성바오로딸 수녀회)


2019.01.01 발행 [1496호] 가톨릭 평화신문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저는 늘 빈자리를 느꼈습니다. 이 ‘원체험’은 나이보다 일찍 철들게 했고 삶을 스스로 개척하게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엔 외롭고, 쓸쓸하고, 혼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웃으면서 하느님이 저를 키웠다고 말하지만, 가끔은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라면 성가정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늘에서 온 가족이 아침저녁으로 기도하고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친가와 외가 모두 다 구교집안이라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혼인성사와 병자성자, 성품성사 등 삶에서 칠성사의 은총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아무리 큰 사랑을 받고 자랐어도 부모 없이 자랐다고 욕할까 봐 뭇시선에 위축되곤 했습니다. 더 반듯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편견이 좀 심하잖아요?

어느 날 요한복음 14장 1-7절을 묵상하는데 ‘아버지의 집’, ‘거처할 곳’, ‘자리’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통증이 왔습니다. 예수님께 여쭸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제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지….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성체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주님은 위로를 주셨고 치유해 주셨습니다.

저는 한 번도 제 집이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집도 제 집이 아니었고, 작은아버지 집도 제 집이 아니었습니다. 동생이 결혼해서 가정을 가졌지만, 동생 집도 제 집이 아니었고요. 하느님의 집이라고 수도원에 들어왔지만, 제가 생각했던 가정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원체험이 너무 아파서 어디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사는 저를 주님께서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나와 함께 아버지의 집에 살자고요.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그 사이 호주제가 폐지되고 세상의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혼족, 혼밥이란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삶의 패턴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맞아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겨 봅니다. 그 어디에도 집이 없어 외롭고 쓸쓸했던 저처럼 어쩌면 그들도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할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그러기에 아버지 집으로 가는 확실한 길은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 기사 보러가기

[신앙단상]사랑의 ‘비스코티’(천향길 수녀, 성바오로딸 수녀회)



2018.12.25 발행 [1495호] 가톨릭 평화신문


내일 밤이면 아기 예수님이 오십니다. 마중 나갈 채비는 다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바쁘고 분주하게 지냈습니다. 한 해 중 대림시기가 가장 바쁜 것 같습니다. 인터넷 서점 사도직 특성상 삶에서 오는 피곤함을 기꺼이 봉헌하고 저의 부족함을 보속의 정신과 기도로 채우며 기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성탄 축제를 준비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으리라 생각됩니다.

인터넷 서점이 시작된 지 벌써 스무 해가 지났습니다. 이를 먼저 기억하고 챙겨주신 분은 원장 수녀님과 주방 수녀님이셨습니다. 주방 수녀님이 처음 인터넷 서점을 시작하셨거든요. 올해 성탄 이벤트는 이탈리아 쿠키인 ‘비스코티(biscotti)’입니다. 선교사로 러시아와 이탈리아에서 살았던 원장 수녀님이 어느 해 처음 만들어 주셨는데 바삭바삭한 식감이 참 좋았습니다. 비스코티는 다른 쿠키와 달리 오븐에 두 번 굽습니다.

원장 수녀님은 인터넷 서점 회원을 위해서도 꼭 한 번 쿠키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주방 소임을 해 봤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원의 바쁜 살림과 대식구를 위해 매 끼니를 준비하는 것도 어려운데 덤으로 쿠키를 굽다니요.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기꺼이 반죽을 준비해 주신 수녀님과 함께 쿠키를 구워주신 수녀님들, 또 예쁘게 포장해 주신 수녀님도 고마웠습니다.

저는 아기 예수님께 드릴 구유 예물로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가 일치를 이루며 기쁘게 살 수 있었던 것과 피곤을 봉헌하며 이웃에게 기쁨을 줄 수 있었던 것을…. 때로는 공동체 생활 자체가 힘겹고 십자가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함께하기에 힘든 일도 쉽게 넘을 수 있고 웃을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 마음자리에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시리라 믿습니다.

성탄의 가장 큰 신비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주님이 계신다고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감사송은 이렇게 초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깨어 기도하고 기쁘게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탄 축제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하셨다”고요.

큰 빛이 오십니다. 주님은 어두운 세상에 하늘을 열고 오십니다. 그분은 선물처럼 우리 기다림을 채워주셨습니다. 안드레아 슈바르츠는 「성탄이 왔다!」에서 신비이신 하느님께 시간과 공간을 내어드리자고 초대합니다. 이 신비를 내 삶 속으로 모셔올 때 비로소 성탄을 살게 될 것입니다. 

▶ 기사 보러가기

[신앙단상]“LOVE MYSELF”(천향길 수녀, 성바오로딸 수녀회)


2018.12.09 발행 [1493호] 가톨릭 평화신문


수녀원에 들어오기 전 좋아했던 가수는 ‘이동원’씨입니다. 앨범 대부분을 소장할 만큼 그 시절, 그의 노래는 저에게 ‘성사’였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비롯해 정지용 시인의 ‘향수’ 등 아름다운 노랫말이 가진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분이 부른 많은 노랫말은 시인들의 시어(詩語)였습니다. 그 가사를 음미하며 힘을 얻었습니다. BTS(방탄소년단)를 좋아하는 대부분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저는 요즘 방탄소년단의 ‘덕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미(Army)’로 활동하진 않지만 조용하게 열렬히 좋아하고 있습니다. 아이돌 가수가 얼마나 되는지? 그룹명은 물론 가수 이름도 모르는 저에게 그들은 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거듭되는 행보를 접할 때마다 정말 놀랍습니다. 그들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멤버들 간의 공동체성, 노랫말 메시지로 ‘랩’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저에게도 귀를 열게 했습니다.

데뷔한 지 5년 만에 그들이 어떻게 세계 정상에 설 수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평범한 그들이 뮤지션으로 성장한 성공신화를 보니까 그 중심에 팬들과 허물없이 소통하고 또래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공감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었고 거기에 ‘케이팝 고유 가치를 지키며 기본에 충실했던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특히 방탄소년단 리더 김남준의 UN 연설은 훌륭했습니다.

인권주일인 오늘, 그 내용을 떠올려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 어린이와 청소년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LOVE MYSELF 캠페인을 유니세프와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체험으로 말문을 엽니다. “LOVE YOURSELF 앨범을 발매하고, LOVE MYSELF 캠페인을 시작한 후 우린 전 세계 팬들로부터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들었다”고요. “우리의 메시지가 그들에게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랑하게 되는 데 어떠한 도움이 되었는지를….” 거기서 그는 ‘말의 힘’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평범한 소년이던 자신이 어떻게 해서 꿈을 잃어버렸고, 어떻게 다시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되었는지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은 걸 정말 행운이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결점이 있고 두려움이 있지만, 온 힘을 다해 자신을 끌어안고 천천히 조금씩 사랑해보려고 한다고요. 저는 방탄소년단에게 배우고 싶습니다.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말입니다. 그들은 내 안에 열정과 가능성을 일깨워 주었고, 삶의 자리에서 내가 먼저 변화될 때,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 기사 보러가기


[신앙단상]성탄을 기다리며(천향길 수녀, 성바오로딸 수녀회)

2018.12.02 발행 [1492호] 가톨릭 평화신문


기다림은 희망입니다. 그리움 또는 설렘입니다. 성탄을 생각하면 어릴 적부터 그랬습니다. 공소가 있는 시골 마을에서도 대림절이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 성극을 준비하고 성탄의 기쁨을 나누곤 했습니다. 먼 기억 속의 성극을 소환한 건 순전히 외가 방계 형제들을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6년 전부터 11월 마지막 토요일이면 형제 모임이 있습니다. 첫 모임이 이태원에서 있었는데, 저는 연락도 없이 수녀원에 들어온 지 스무 해가 넘어 처음 보는 자리라 서먹서먹했습니다. 다들 저보다 머리도 희끗희끗하고, 오랜만이라 선뜻 말을 놓기도 어려웠습니다. 어색함을 떨치고자 초등학교 때 본 성극 중에 대사로 부른 노래가 아직 생각난다고 했더니 갑자기 어수선해졌습니다.

“그때 내가 솔로몬 역할을 했었는데”, “난 아기”, “난 가짜 엄마”, “난 진짜 엄마”, “어,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도 나도!!” 여기저기서 말문을 열더니 순식간에 분위기가 환해졌습니다. “하느님보다 엄마가 더 무섭다”는 동생이 있는가 하면 “신앙의 자유를 갖고 싶다”는 동생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순식간에 세월을 뛰어넘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겐 공통의 기억이 있었습니다. 거기 모인 형제 중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요. 명절에 자식들이 다니러 가면 성체를 영하는지 영하지 않는지 눈여겨보신다는 친척 어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1801년 이전부터 교우촌을 형성해 살아온 그곳은 현재 노인들만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공소 회장이라는 직분을 봉사했기에 길 가는 사람 아무에게나 “회장님” 하고 부르면 뒤를 돌아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그 시절, 우리는 넉넉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부유했고, 다들 신앙만큼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지키며 살아가는 걸 보면 역시 신앙은 최고의 유산인 것 같습니다. 냉담한 지 45년 만에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외숙부를 봐도 그렇고, 누가 하느님을 떠나 살더라도 언젠가는 아버지의 집으로 꼭 돌아오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아직도 사순절이면 바쁜 농번기에도 불구하고 매일 저녁 교우들이 모여 성로신공(聖路神功, 십자가의 길)을 바친다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방학이라 꾀를 부리고 싶어도 면제되지 않았던 기도생활, 새벽이면 조과를, 저녁이면 만과를 온 가족이 함께 바쳤던 시간이 향수로 남아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판공을 준비하고 공소에 모여 축제를 준비하던 그때의 설렘으로 돌아가 성탄을 기다리고 싶습니다. 

▶ 기사 보러가기

2006년부터 매년 구유 제작해온 성바오로딸수도회 이금희(레나타) 수녀


“올해엔 위기 겪는 가정 위한 기도를 담아 만들었어요”

크리스마스 트리와 성가정상 넣어
한 달 반 동안 300개 구유 제작
「성탄이 왔다!」 책과 함께 판매


2018. 12. 16 가톨릭 신문


이금희(레나타) 수녀가 만든 ‘성가정 축복 구유’.

“모든 가정이 우리에게 선물로 오실 아기 예수님의 성가정처럼 되도록 해주십시오.”

이금희 수녀(레나타·성바오로딸수도회·인터넷서점 담당)는 구유를 만들며 아기 예수에게 이렇게 축복을 청했다. 2006년부터 해마다 구유를 만들고 있는 그가 올해는 위기의 가정을 위한 ‘성가정 축복 구유 세트’를 만들었다. 그는 “위기를 겪는 가정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이 너무 많다”고 전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부부 문제로 시작해서 가족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는 가정을 만나게 됩니다. 저희 가족들 중에도 위기의 순간을 여러 번 넘긴 경우도 있고, 가정이 흔들려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성가정 축복 구유’의 기틀이 되는 나무 작업 과정.

‘성가정 축복 구유’ 제작 모습.


이 수녀는 한동안 이러한 가정의 사연들에 너무 깊이 공감해 우울에 잠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다시 하느님 뜻에 귀 기울이며 기도로서 어둠 속에 있는 가정을 돕고 있다. 실제로 그의 기도 책 맨 앞장에는 구유를 구매하며 기도를 청한 이들의 이름이 메모지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구유 세트를 구매한 이들이 ‘바오로딸 수녀에게 기도 부탁하기’에 적은 부부들의 이름이다. 바오로딸 수녀들은 위기를 겪고 있는 가정을 위해 12월 22일부터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인 30일까지 9일 기도를 봉헌하기로 했다.

그는 “성탄의 빛이 위기를 겪고 있는 한 가정에라도 밝혀지길 바란다”며 “아픔을 겪는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성가정 축복 구유 세트는 책 「성탄이 왔다!」와 구유로 구성됐다. 「성탄이 왔다!」는 대림과 성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구유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성가정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트리에는 ‘이 가정을 축복 하소서’라는 문구가 장식돼 있다.

구유는 그가 성가정에 대해 묵상을 하며 직접 만든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그는 한 달 반에 걸쳐 구유 300개를 만들었다. 재료 구하기부터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삶고, 말리는 것과 그 위에 트리와 성가정을 꾸미는 것, 사진촬영까지 모두 직접 했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힘들 때마다 ‘위기를 겪는 가정들의 무게’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위한 희생으로 받아들였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처럼, 여러분들도 온 마음을 다해 행복한 가정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그게 우리 모두를 밝게 비추는 일이기도 하지요. 구유에 있는 이 세 분이 여러분의 가정을 축복 해주실 겁니다.”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원 성당에서 위기를 겪는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이금희 수녀.

지난 9월 떠난 성지순례에서 그는 방문하는 성지마다 위기를 겪고 있는 가정들을 위해 초를 봉헌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구유를 만든 저보다 세상에 구원을 가져 오시는 예수님과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부각시켜 달라”며 “저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기로 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어둠은 우리 삶에서 너무 중요합니다. 대림초 하나하나가 어둠을 밝히는 것처럼, 우리도 성탄절을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아갈 수 있길 기도하겠습니다. 기도는 한 마음으로 연대할 때 힘이 생깁니다. 우리 함께 기도해요!”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

▶ 기사 보러가기 :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302278

함께 울어줄 사람… 있으신가요?
이기헌 주교의 삶과 신앙 수필로 엮은 묵상집 「함께 울어주는 이」

가톨릭평화신문 2018. 07. 15발행 [1473호]

  
▲ 「함께 울어주는 이」




“오래전부터 사목자다운 수필을 쓰고 싶었습니다. 사목 현장에서 만난 착한 사마리아인 사람들의 이야기며,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하며 우시던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가 사목자로서의 삶과 신앙, 추억의 조각들을 기워 낸 묵상 수필집 「함께 울어주는 이」(바오로딸)를 펴냈다.

쉬는 날이나 긴 연휴가 주어지면 ‘책을 볼까, 글을 쓸까?’ 망설이다, 글을 쓰기로 결심한 날들이 안겨준 선물 같은 책이다. 의정부교구 사목월간지 ‘나무그늘’에 기고했던 글, 시대 상황에 맞게 목자로서 목소리를 낸 글, 영적인 생각에 대한 단상, 교구 주보에 실었던 글을 모았다.

책 제목은 본당 주임 신부로 사목했던 시절, 유럽 성지순례로 본당을 비워야 해 동창 신부에게 본당을 맡기고 떠났을 때의 일화에서 따왔다.

“여행을 마치고 본당에 돌아온 후, 걱정했던 자매님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매님에게는 두 아들과 남편이 있었는데, 비신자인 남편이 어찌나 고집이 센지 오랫동안 성당에 가자고 졸라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무척 속상해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주일미사에 나왔습니다.”(51쪽)


이 주교가 자리를 비운 동안, 동창 신부는 그 자매의 집을 방문해 병자 영성체를 해주고, 병자성사를 주는 등 자매의 임종을 지켜보며 눈물을 함께 흘리며 슬퍼해 줬다. 동창 신부의 눈물이 남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예수님이 ‘우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신, 참 행복의 의미가 와 닿았습니다. 고통을 받고 우는 사람, 어렵고 힘든 사람을 찾아가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은 사제들이고, 신자들이지요.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바오로딸 출판사 수녀님들이 정해주신 제목으로 마음에 드는데, ‘내가 그렇게 살았나’ 하는 반성이 듭니다.”(웃음)

수필집에는 평생 자녀들이 하느님 자녀로 살아가기를 기도하신 어머니, 묵주기도의 추억, 일본 교포 사목, 성체조배의 은총, 사제로서 정체성과 외로움이 닥쳤던 시간, 성사의 아름다움 등 주교가 살아온 삶의 아름다운 궤적이 녹아있다.

이 주교는 1947년 해방 직후 평양에서 태어난 피난민이자, 북에 두 명의 누나를 두고 있는 이산가족이다. 그래선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으로서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짙은 애절함도 담겨있다.

“북에서 넘어왔기에 어렸을 때 피난민이라는 소리를 종종 들었지요. 그래서 난민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제주의 난민들도 그렇고, 교회는 삶의 위기에 있는 난민들을 따뜻하게 돌봐줘야 합니다. 새터민들도 난민이지요. 새터민과 이주민들에게 형제애를 실천해야 한반도에 평화가 오지 않을까요?”

평소 영적 독서를 즐기는 이 주교는 “영적 독서를 하는 시간은 아깝지가 않다”며 최근에 읽은 책 두 권을 추천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성인들」과 「황혼의 미학」이다.

이 주교는 “글을 쓰는 시간은 살아온 날들을 꺼내보는 시간”이라며 “앞으로도 조용한 시간을 통해 삶을 돌이켜보기도 하고, 글을 써서 교우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기사 원문 :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726959&path=201807






「함께 울어주는 이」 펴낸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타인의 아픔에 눈물 흘려본 적 있나요?

사목 현장서 겪은 체험 수필로
해방 직후 태어난 실향민으로서 민족화해에 대한 깊은 애정 보여
“새터민·난민 형제애로 보듬어야”

가톨릭 신문 2018-07-15 [제3103호, 13면]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책 제목이 함께 울어주는 이인데, 내가 과연 그렇게 살았는지 반성도 됩니다. 누군가를 위해 울어준다는 것은 참된 행복을 의미합니다. 고통받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사제입니다. 사제와 신자들이 함께 울면서 서로의 아픔에 공감할 때 그 의미가 더 커지겠지요.”

‘함께 울어준다는 것’은 행복하다고 말하는 따뜻한 책이 출간됐다.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가 집필한 「함께 울어주는 이」(이기헌 지음/160쪽/1만1000원/바오로딸)다. 이 책은 사목자로서 걸어온 이 주교의 삶의 체험을 수록한 묵상 수필집으로 가족, 성소, 기도 등 다양한 영성적 주제를 실었다. 이 주교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에 대한 잔잔한 따뜻함이 묻어나는 글이 많아 마음을 이끈다.

그는 “글을 쓰면서 자신을 돌이켜보는 시간이 된 것 같다. 물론 글을 쓰는 것은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즐거운 부담이다”라며 “이 책을 통해 신자들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신앙생활의 소중함과 더불어 하느님 말씀을 통해 삶의 가치를 깨닫기를 바란다”고 집필 계기를 밝혔다.

특히 ‘민족화해’에 대한 이 주교의 생각은 신자들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선사한다. 그는 스스로를 ‘한반도가 분단된 상태에서 태어나 분단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저는 해방 직후 1947년 분단된 한반도에서 태어났습니다. 내가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피난민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요. 그러다 보니 난민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제주도 난민에 대해서도 많은 걸 느낍니다.”

이 주교는 교회는 삶의 위기에 처한 난민들을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새터민’ 역시 난민이라며 한 형제와 같은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른 이들을 형제애를 가지고 대할 때, 마음에 평화의 씨앗이 심겨 마침내 한반도에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저서 「함께 울어주는 이」에서도 그가 각별히 생각하는 평화와 민족화해에 대한 깊은 애정이 드러난다. ‘사그라들어도 잊을 수는 없는’이라는 글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볼 때면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낍니다. 저 역시 이산가족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 그렇겠지요”라고 말한다. 그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북한 방문을 했을 때를 설명했다. 북한 방문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소식을 전하자 어머니와 누나가 눈물을 쏟았다며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 했다.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경제적 실리와는 무관한 인간 본연의 인륜에 대한 호소”라며 이산가족 상봉의 절실함을 짚었다.

이 외에도 일본에서 교포사목을 할 당시, 서툰 한국어로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던 연로한 사제의 이야기 등 마음에 훈기를 채우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신자들은 「함께 울어주는 이」를 통해 이 주교가 말하는 진솔한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다. 또 그가 이 책을 “그간의 삶을 돌아보며 인생의 한 단편을 정리한 글”이라고 설명한 만큼 오랜 시간 사목자로 살아온 삶의 체험과 신앙에 대한 깊은 묵상을 나눌 수 있다.

권세희 기자 se2@catimes.kr

기사 원문 : http://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297162


[Why] 눈물 한 방울로 아내를 살리다

2018.04.28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 

[박돈규 기자의 2사만루] 뇌출혈로 의식 잃은 아내, 사랑의 대화로 일으켜 세운 서규석씨

아내가 느닷없이 쓰러졌다. 의식을 잃었다. 2013년 7월 10일 서울 한 백화점 수퍼마켓에서였다. 뇌동맥 파열로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맬 때 남편이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다. 아내는 열흘째에 눈을 떴다. 일반 병실로 옮겼지만 불행은 사납고 질겼다. 수퍼박테리아(내성이 강해 그 균에 맞는 강력한 항생제를 써야 한다)에 감염돼 중환자실로 되돌아갔다.

열아흐레째 더 큰 뇌출혈이 일어났다. 의료진은 "생존 확률은 1%밖에 없으니 임종을 준비하라"고 했다. 할 수 있는 처방은 진통제밖에 없으니 집으로 데려가라는 것이다. 남편 서규석(76)씨는 절망했다. 프랑스에서 의사로 일하는 딸이 "희망을 잃지 마라"며 가져다준 책을 그날 밤새 읽었다. 프랑스어 원제는 '눈물 한 방울이 나를 살렸다'. 희소병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기적처럼 살아난 여인의 체험담이었다.


"딸이 엄마를 부르며 애절하게 울자 식물인간이던 환자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나왔답니다. 살아 있다는 신호를 그렇게 보낸 거예요. 딸이 '엄마가 울어요!' 외치자 상황이 급변했지요. 그 대목을 읽고 기뻤습니다. 저도 할 일이 생겼으니까요. 의식이 없는 아내에게 계속 말을 걸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런 남편의 병구완을 받으며 아내 신향철(61)씨는 아홉 번의 뇌수술과 긴 투병, 재활을 이겨냈다. 2016년 11월 마침내 집에 돌아왔다. 서씨는 희망의 등불이 돼준 책을 번역해 '눈물 한 방울'(바오로딸 刊)로 펴냈다. 지난달 21일 강원도 원주에서 만난 이 부부는 "우리 삶에서 가장 큰 선물은 이 책을 만난 것"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암담할 때마다 도움을 청하는 마음으로 '눈물 한 방울'을 읽고 새로운 힌트를 얻었다"며 "중환자 가족들을 돕고 싶어 직접 우리말로 옮겼다"고 했다.

서규석(오른쪽)씨는 아내 신향철(왼쪽)씨가 뇌출혈로 의식 없이 사경을 헤맬 때에도 말을 건네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의식 불명 환자도 귀는 열려 있다고 말하는 책 ‘눈물 한 방울’에서 희망을 얻었다”며 “인생의 목표는 이제 소박하다. 건강을 회복한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원주=고운호 기자
"의식이 없어도 귀는 열려 있다"

서씨는 간병하며 일기 4권을 썼다. 처음엔 경황이 없었다. 아내가 쓰러지고 열흘쯤 지난 때부터 기억을 복기했고 날마다 있었던 일을 적어나갔다. 일기 첫 장은 2013년 7월 10일의 기록.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중환자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잘 못 보았다. 야속한 눈물, 바보 같은 눈물 때문에'라고 적혀 있었다.

―부인에게 병의 징후가 없었는지요.

"혈압이 높진 않았는데 편두통이 있었어요. 일을 당하고 나서야 건강검진 제대로 안 한 걸 후회했습니다. 백화점에서 갑자기 쓰러져 토하는데 경비원들이 의무실로 옮기겠다는 걸 제가 막았어요. 이럴 경우 잘못 손대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구급차로 강남성모병원에 실려 가 3시간 만에 수술했는데 의사는 '사망할 확률이 80%'라고 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선 어떤 상태였나요?

"의식이 없었어요. 중환자실은 보통 비참한 게 아녜요. 마취가 풀리면 팔다리가 묶인 채 비명을 질러대는데 아내에게서 나올 거라곤 상상할 수 없는 괴성이었습니다. 몸부림을 쳐서 온몸에 피멍이 들어 있었어요."

―투병을 지켜보는 사람도 힘들고 외로울 텐데요.

"처음 며칠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중환자실은 하루 20분밖에 면회가 안 돼 병원 복도에서 울고 다녔어요. 투병이 길어지면서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었습니다. 친구나 친척 만나기도 싫더라고요. 그래서 일기를 쓴 거예요. 저를 향한, 저와의 대화처럼."

―평소에도 일기를 썼나요?

“아뇨. 그땐 뭐라도 해야만 했어요. 그날 있었던 일과 기억하고 싶은 것을 적었죠. 기도도 들어가고요. 이 사람이 좋아지고 나서는 일기를 안 써요.”

―부인과 나이 차이가 꽤 나는군요.

“저는 재혼이고 이 사람은 초혼이에요. 제가 프랑스에서 20년 넘게 살았고 프랑스 기업 솜피 한국지사에서 대표이사를 지냈습니다. 이혼하고 8년을 혼자 살다가 직장에서 만난 이 사람과 1999년에 결혼했어요. 프랑스에 사는 아들딸은 모두 전처소생이고요.”

―의사인 따님이 ‘눈물 한 방울’ 원서를 가져다줬다고요?

“그해 프랑스에서 출간돼 화제가 된 책이었어요. 앙젤 리에비라는 여인이 식물인간으로 회복 불능 상태였는데 사실은 표현만 못 할 뿐 모든 걸 듣고 있었답니다. 생생한 투병기였어요. 환자가 의식이 없어 보여도 귀는 열려 있으니 계속 희망을 가지고 얘기하라는 겁니다.”

―사람이 죽으면 귀가 가장 나중에 닫힌다고 하죠. 병원이 수술조차 거부하며 장례를 준비하라고 할 때 받은 책인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아니었을까요.

“믿었어요. 증인이 나타난 거니까요. 임종 전이라 면회 시간을 제한하진 않았어요. 중환자실에 들어가 아내에게 계속 얘기했어요. ‘당신 꼭 나을 거야. 의사 선생님도 희망을 가지고 계셔. 걱정하지 말고 고통스럽더라도 참아야 해.’”

네 권의 간병 일기 서규석씨는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투병하는 아내를 돌보면서 일기를 썼다. 2013년 7월 입원부터 2016년 11월 퇴원까지 40개월이 일기장 4권에 담겨 있다. 서씨는 “나와 대화하듯이 하루하루를 기록했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간병하다 몰래 심장수술 받은 남편

신씨는 그해 8월 초 뇌에 고인 피를 빼는 수술을 받았다. 하루에 두세 번 의식이 잠깐씩 돌아왔다. 눈을 떴고 쳐다봤다. 일반 병실로 옮겼다. 서씨는 “시간이 더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했다”고 했다.

―9월 중순까지 호전되다 또 갑자기 의식을 잃었습니다.

“뇌실(腦室)에 물이 찼다는 거예요. 수술은 죽을 확률이 90%일 만큼 위험하고 수술 안 하면 평생 식물인간처럼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죽어도 괜찮다’ 동의하고 수술실로 들여보냈어요.”

―그랬더니요?

“수술받고 나오면서부터 시선이 딱 고정돼 있었어요. 눈알을 움직이고. 성공한 거죠.”

―그게 마지막 수술인가요.

“다섯 번째였습니다. 원주 기독병원으로 내려와서 네 번을 더 했어요. 나빠지고 의식 잃고 다시 수술하기를 반복했지요. 별의별 어려운 과정을 다 거친 겁니다. 뭘 하나 삼키는 데 몇 달이 걸렸어요. 그 사이 저도 심장 부정맥 수술을 받았고요.”(옆에 앉은 신씨가 ‘저 사람이 그때 쓴 일기를 나중에 읽었어요. 심장수술도 위험한데 그걸 말해야 하는지, 내가 걱정할까 봐 몰래 해야 하는지, 혹시라도 사망하면 어떡하나 고민한 것’이라고 했다)

―결국 어떻게 하셨나요?

“말 안 하고 몰래 수술을 받았어요. 아내는 이틀 동안 저를 못 봤고요.”

―퇴원한 2016년 11월까지 장장 40개월을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다른 환자와 가족, 간병인도 많이 보셨겠군요.

“불행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6인실을 썼는데 가족이 환자한테 잘 못 하는 걸 자주 봤어요. 의식이 없으면 간병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들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얘기를 하면 겉으론 미동도 없는데 집중해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어요. 의식이 없는 다른 환자도 가족이 오면 반가워하는 게 저한테는 보였어요. 휙 나가면 슬퍼하는 것도 느껴지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간병인도 여러 종류예요. 어떤 할머니를 돌보는 분이 쓰다듬고 얘기하고 지극정성이라 며느리인 줄 알았는데 간병인이라서 놀랐어요. 반대로 가족이나 간호사가 없을 때 환자를 꼬집고 학대하는 간병인도 봤어요. 제가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딱 잡아떼더라고요.”

―부인은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처럼 지낼 때 남편의 말이 들렸나요?

“의식 없이 생사를 넘나들던 순간은 전혀 기억이 안 나요. 남편 일기를 보고야 알았지요. 저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노력을 했는지. 내가 얼마나 큰 정성을 받았는지.”

―지금은 어떤 상태인가요.

“뇌수술 때문인지 파킨슨병이 생겼어요. 옛날 일은 잘 기억하는데 단기기억이 좀 안 좋아요. 걸음이 느리고 시야가 좁아졌고요. 왼쪽 마비가 왔었는데 다 나았습니다. 여행을 갈 정도로 많이 회복됐어요. 장애 1등급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가장 낮은 4등급입니다.”

―부인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어떤 갈증이 있었나요.

“환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어요. 간호사도 약이나 갈고 나갈 뿐 제게 말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온전하지 않은 존재로 대우받는 게 싫었어요.”

―지난해 ‘뇌졸중을 이긴 사람들’ 수기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으셨더군요.

“의사가 이 사람 회복된 상태를 보고 놀라며 공모전을 알려줬어요. 겪은 일을 써 보냈더니 최우수상에 뽑혔지요. 뇌졸중 학회 자리에서 시상식이 열렸는데 ‘눈물 한 방울’이 한국어판으로 나와 널리 읽히면 좋겠다고들 하더라고요.”

중환자 돌보는 보호자들에게

번역자들을 수소문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서씨가 직접 나섰다. 그는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대중이 읽을 수 있는 단어와 문장으로 풀어야 했다”며 “의학용어는 의사인 딸과 집사람 친구인 간호사가 도와줬다”고 했다.

―따님이 큰일 하셨네요.

“지난해 여름 프랑스에서 저희 부부와 온 가족이 모였어요. 제가 딸에게 물었습니다. ‘나탈리,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준 게 뭔지 아니?’ 다들 눈이 동그래졌어요. 제가 답했죠. 이 책이라고. 한국어판 번역까지 맡았다고. 다들 아주 좋아했어요.”

―강남성모병원 의사들은 이런 결과에 대해 뭐라고 하나요?

“(신씨가 답했다) 아직 못 갔어요. 제가 가서 깜짝 놀라게 해드리고 싶은데(웃음).”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계속 말을 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환자는 칠흑 같은 절망 속에 있는 셈입니다. 말을 건네고 희망을 주고 인격체로 대하는 게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의무 아닐까요.”

―힘겨워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나요?

“간병할 때 체중이 10㎏ 빠졌어요. 의사들이 저더러 포기하라고 했어요. 그러다 당신도 큰일 치른다고요. 딸도 ‘아빠 시간을 가지라’고 권했지요. 그래야지 하다가도 매일 아침 눈 뜨면 병원 가서 이 사람을 보고 싶었습니다.”

―‘눈물 한 방울’에서 가장 아끼는 문장이라면.

“‘중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모든 걸 제쳐놓고 오직 회복만을 향해 앞만 보고 가라’입니다. 환자는 가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잖아요. 병원에서 잘해준다고 음악을 틀어주는데 그게 온종일 돌아가요. 그럼 소음공해가 됩니다. 누군가 꺼줘야죠. 살피지 않으면 몰라요.”

―중환자는 사회에 소속돼 있다는 감정을 잃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관계가 다 끊어지니까요. 중환자는 다 내려놓고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몸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병원은 환자의 몸을, 가족은 환자의 마음을 돌봐야죠. 똑같이 다쳐 같은 치료를 받았는데 회복 속도에 차이가 난다면 그런 이유 아닐까 싶어요.”

―2013년 가을에 가장 큰 바람이 뭐였는지요.

“소박했어요. 아내와 같이 손잡고 산책하고 싶었지요.”

그 소망은 벌써 이뤘다. 이 부부는 병원이나 의료진을 원망한 적이 없다고 했다. 서씨는 “저는 의학의 힘 없이 보호자의 사랑으로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며 “다만 보호자도 같이 가야 빨리 회복될 수 있다”고 했다. “의식 잃은 환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건 가족이고 사랑밖에 없어요. 짧은 면회라도 시간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해요. 환자에게 사랑한다고 한마디만 해줘도 감동할 겁니다. 희망을 붙잡을 테고요.” 인터뷰 마치고 사진을 촬영하는데 신씨가 남편 몰래 소곤거렸다. “근데요, 저도 저 사람을 너무너무 사랑해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27/2018042701700.html


눈물 한 방울 

앙젤 리에비ㆍ에르베 드 샬랑다르 지음 / 서규석 옮김 / 바오로딸 / 1만 3500원




의식 없는 환자가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모든 의식불명 환자가 그렇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가족과 보호자는 그런 환자를 살아있는 사람, 나아가 더욱 사랑과 감동을 줘야 하는 존재로 여겨야 한다. 그 사랑이 기적적으로 사람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눈물 한 방울」에 담긴 이야기는 의식불명 환자였던 저자 앙젤 리에비를 일으킨 그의 가족 사랑 이야기를 담은 실화다. 앙젤은 어느 날 급성 희소병으로 온몸이 마비된 채 혼수상태에 빠진다. 의료진도 그를 죽은 사람으로 대하며 장례를 준비하라고 일러둔 상황. 그러나 그의 가족은 끊임없이 대화를 멈추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간호한다. 간호한다기보다는 사랑해 준다.

책은 저자가 깨어난 뒤 병상에서 ‘의식의 감옥’에 갇혔던 상황을 소상히 펼쳐놓았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남편과 딸, 친구,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고, 어떤 대화를 건넸는지 모두 기억해 옮겨놓았다. 앙젤은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려 하지만 단절돼 있었다. 극도의 고통과 대화가 안 되는 상황일지라도 앙젤이 바랐던 것은 단 하나. 바로 관심과 사랑이었다.

어느날 딸이 “엄마가 우릴 떠나면 안 돼. 셋째가 태어나는 걸 엄마가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자 드디어 앙젤은 자신의 대답을 눈물 한 방울로 표현했다. 

책의 역자인 서규석(베드로, 76)씨도 앙젤의 사례처럼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 신향철(마리나, 61)씨에게 끊임없이 ‘사랑의 대화’를 이어갔고, 결국 아내가 깨어나는 기적을 체험했다.<본지 4월 8일자 제1459호 1면> 아내가 의식이 없어도 남편 서씨는 앙젤의 가족처럼 아내를 매일같이 사랑으로 대하며 일상과 기도를 나눴고, 수차례의 고통스러운 수술 끝에 아내가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서씨가 책을 번역하게 된 것도 당시 책의 내용이 큰 힘이 됐기 때문이다.

서씨는 “환자는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이기에 가족의 사랑과 감동을 더욱 필요로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처럼 힘겨운 상황에 있을 때 ‘사랑이 곧 생명을 살릴 수 있음’을 책을 통해 실감하고 용기를 얻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비슷한 고통 중에 있는 이와 가족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는 책이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