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다
[2012년 여름 지금여기가 추천하는 책-한상봉]
2012년 07월 12일 (목) 10:42:53 한상봉 기자 isu@catholicnews.co.kr

사방에서 4대강 사업의 폐해가 속출하고 염려가 염려를 낳고, 우려가 한숨을 자아낸다. 그러면 우리 마음 안에는 자연스럽게 흐르던 강물을 헤집어 놓고 흙탕물을 튀겨 물길을 알 수 없게 만들어놓은 곳은 없을까. 겉보기에 산뜻한, 그러나 안으로 곪아터진 구석은 없을까. 탐욕이 앞서가며 연민을 접어두고 사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우리 교회는? 교계 제도와 교회법 테두리에서 반듯한 질서를 호소하며 성령의 흐름을 가로막는 ‘성직주의’, 그리고 만사를 교회 안에 제한하는 ‘비닐하우스 신앙’이 신자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지 않는가, 한번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마당에 가뭄과 폭우로 이어지는 2012년 여름을 ‘독서’의 힘을 빌어 신앙 업데이트 기회로 삼아보면 어떨까, 제안한다. 일단 늘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아직 읽어 내지 못한, 그러나 한번 읽고 마음을 비추어 볼 몇 권의 책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책에서는 피에르 신부, 도종환, 캐틀린 노리스, 빈센트 반 고흐, 이현주, 제프리 로빈슨, 시몬 베유 등 실천적이면서 성찰적인 인물들이 호명된다. 예수에게 길을 물었던 사람들이다. 이제 이 사람들에게 다시 우리의 길을 물어볼 차례다. 내 삶이 충분히 복음적인지, 예수의 제자가 되기에 충분히 아파했는지, 세상과 교회를 향해 하느님의 자비를 마땅히 설파했는지.

책에 대한 소개는 출판사와 인터넷 서점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기초로 했으며, 책 본문 몇 대목과 개인적인 소감을 덧붙였다. 미리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몰려올 만한 기쁨을 예감한다.

 

<성인 지옥에 가다>, 질베르 세스브롱, 남궁연 역, 바오로딸, 2012 (소설)

   

성인이 지옥에 가다니! 제목 자체가 충격적이다. 사실은 프랑스 노동사제의 이야기다. 광산촌 출신 노동사제가 가난한 마을 ‘사니’에 들어가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함께 고통을 겪으면서도 하느님 사랑 안에서 희망을 건져내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1950년대 프랑스 교회는 산업사회의 발달과 함께 대두된 사회 문제 앞에서 새로운 시대적 사명을 자각하고, 빈민층과 노동자들의 복음화를 위해 비그리스도교적 환경에 복음의 ‘누룩’을 심는 방향으로 선교를 전환한다. 프랑스 교회는 이에 소명을 느끼는 사제를 양성해 사제가 없는 빈민지역이나 공단지역으로 파견한다.

이 책의 주인공 피에르 신부는 프랑스 파리 교외 공장지대에 가서 스스로 공장 노동자가 되어 살면서 산업사회가 낳은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숨김없이 증언한다. 밤마다 어린 아들을 때리는 주정뱅이 마르셀, 경찰의 앞잡이 북아프리카인 아흐메드, 창녀 쉬잔 같은 생활에 지친 군상이 바로 피에르 신부를 둘러싼 이웃이다. 이런 환경에서 피에르 신부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함께 의논하고 고민하며 따뜻한 사랑과 헌신으로 헤쳐 나간다. 이따금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좌절할 때도 있지만, 복음의 진정한 창조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사제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 교회도 국내 노동사목뿐 아니라 이주노동자사목, 해외사목까지 광범위한 사목을 펼쳐가는 시점에서 여기 나오는 초창기 노동사제의 열정과 고난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것은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단 한 마리의 가엾은 양도 잃지 않기를….” 등장인물, 파리대교구 추기경의 유언입니다. 고인이 되신 우리의 아버지 김수환 추기경이 생각납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를 살리는 힘은 가난한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단순한 필치로 심오한 복음의 진리를 전할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좋은 피정을 한 듯한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서춘배 신부 추천사)

이 책을 지은 질베르 세스브롱은 가톨릭 운동과 인연을 맺고 청소년 범죄 문제를 다룬 <굴레 벗은 개들>, 이혼 부부의 자녀 문제를 다룬 <우리가 죽이는 모차르트>, 장애인의 문제를 다룬 <나도 역시 그들을 사랑했소> 등을 지었다.

 

<해인으로 가는 길>, 도종환 시집, 문학동네, 2006 (시집)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도종환 시인이 <슬픔의 뿌리> 이후 4년 만에 펴낸 아홉 번째 시집이다. 2004년 지병으로 교단을 떠난 시인이 보은 법주리 산방에 머물며 쓴 시편들을 엮었다. 깊은 산중에 집을 짓고 홀로 텃밭을 가꾸는 동안, 시인이 일구어 온 시간과 고즈넉한 마음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병들었던 시인의 심신은 자연 속에서 천천히 아물어 갔다. 허욕과 집착을 비우고 고통과 아픔을 삶의 축복으로 치환하는 긍정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삶과 시는 눈에 띄게 단순해지고 그러면서도 더욱 꼿꼿해졌다.

수록된 60여 편의 시는 '아름다운가게'의 홈페이지, '시인의 선물'이라는 칼럼란을 통해 정기적으로 소개된 바 있다.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의 인세는 아름다운가게에 기부되어 청소년들을 위해 쓰인다.

산경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도종환 시인은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0년 제8회 신동엽창작기금을 수상했다. 2009년 시 ‘바이올린 켜는 여자’로 제22회 정지용 문학상을 탔다. 시집에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산문집에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등이 있다. 지금은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이다.

 

<수도원 산책>, 캐틀린 노리스, 강창헌 역, 생활성서사, 2004 (산문)

   

이 책은 개신교 배경을 갖고 있는 저자가 미네소타 주에 있는 베네딕도회 성 요한 수도원에 거주하면서 수도 생활에 대한 일흔다섯 편의 다양한 고찰과 묵상을 담은 수필집이다. 이 책은 수도원 전례의 리듬을 따라서 얻은 베네딕도 수도원의 영성을 살피고 있다. 전례력에 따른 시편을 비롯해 성서를 풍부하게 인용하면서 이른바 ‘거룩한 독서’의 은총을 증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기의 삶과 연결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수많은 성인, 사상가, 예술가들의 다채로운 말과 글, 이야기들을 선사하고 있어 천천히 읽으면 그 자체로 '거룩한 독서'가 된다.

“위령의 날 분위기는 침울하다. 죽은 사람들을 위해 성무일도를 바치고 자비를 간청한다. 우리는 ‘세상을 떠난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그리고 비신자들’을 덧붙이거나, 성찬 기도문에 나오는 것처럼 ‘오직 당신만이 아시는 신앙을 지닌 사람들’과 혼란스럽고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을 첨가한다.”

이 글을 지은 캐틀린 노리스는 미국의 시인이며 작가, 베네딕도회의 봉헌자로서 노스 다코타 주의 '성모 승천 수도원'과 미네소타 주 '성 요한 수도원'에서 머물면서 얻은 영적 통찰을 이 책에 담았다.

 

<하느님의 구두>, 클리프 에드워즈, 최문희 역, 솔, 2007 (예술+신학)

   

빈센트 반 고흐가 자기만의 하느님과 영성을 깨달아가는 여정에 초점을 맞추어 쓴 평전이다. 주변의 일상적인 사물을 통해 자신의 영적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비근한 삶을 그림 속에 투사시켰던 고흐. 그가 편지와 그림을 통해 제시하는 영적 인간상을 꼼꼼하게 읽어 냈다.

고흐가 하느님이라 불렀던 것은 건강하고 인간적이며 강렬하고 솔직한 사랑과 우정, 노동이 존재하는 이 세상 위로 펼쳐진 별빛 비치는 커다란 둥근 하늘이었다. 지은이는 고흐가 남긴 회화 작품과 편지글들을 찬찬히 살피면서, 고흐의 영성이 어떤 방향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또한, 실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고군분투하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아내고자 하는 삶의 의지를 그의 그림을 통해 확인한다.

여기서 고흐의 눈은 항상 ‘일상의 거룩함’으로 열려 있다. 고흐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우리를 세속 세계의 인간적 한계 너머로 끌어 올려 삶의 상처를 치유하는 예술적 길로 안내한다. 우리는 고흐의 그림을 주의 깊게 명상하면서 우리 자신의 영혼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는 고흐의 고독한 투쟁과 나의 고뇌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발견했으며, 그가 상처 입은 치유자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이전에 내가 감히 바라보지 못했던 것을 그렸고, 내가 감히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던 것에 물음을 던졌으며, 내가 감히 근접할 수 없었던 마음의 자리에 성큼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나로 하여금 나의 두려움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고, 내가 사랑이신 하느님을 찾기 위해 더욱 깊이 또 더욱 멀리 나아갈 수 있게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헨리 나웬)

고흐의 도록에 헨리 나웬이 남긴 메모를 기초로 이 책을 지은 클리프 에드워즈는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종교역사와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와 스위스 뉴샤텔대학교, 예루살렘 히브리 유니언대학교에서 성경 및 고고학을 공부하고, 일본의 선 사찰인 대덕사에서도 공부했다. 그는 버지니아 커먼웰스대학에서 30년 이상 학생들을 가르쳐 왔으며 현재 이 대학의 종교예술학과 교수다. 저서로는 <신자의 삶과 행위>, <하늘 아래 모든 것>, <고흐와 하느님>이 있다.

 

<예수에게 도를 묻다>, 이현주, 삼인, 2005 (묵상 대담집)

   

작가이자 번역가인 저자 이현주 목사가 마르코 복음서를 한 구절 한 구절 풀어 읽은 기록이다. 책에서 예수는 '선생님'으로 등장하여 제자인 저자와 직접 대화를 나눈다. 주석서이면서 스승과 제자의 문답집이기도 한 셈이다. 동서양의 종교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복음서의 뜻과 기독교의 개념을 알기 쉽게 전달한다.

“네가 애써서 요한처럼 먹고 요한처럼 입는다 해도 네 마음이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결국 자신과 세상을 속이는 것일 뿐이다. 요한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었나에 눈길을 머물지 말고, 그가 그렇게 해서 누렸던 자유를 보고 그것을 배우도록 하여라.”

많은 이들이 이현주 목사를 이 시대의 멘토로, 영성가로 꼽는다. 글이 모이면 책을 내고, 부르는 곳이 있으면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있다. 그동안 <기독교인이 읽는 금강경>, <지금도 쓸쓸하냐>, <예수의 죽음>, <길에서 주운 생각들>, <장자 산책>, <대학 중용 읽기> 등을 썼다. 그밖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 <예언자들>, <어둠 속에 갇힌 불꽃> 등을 번역했다. <바보 온달>, <콩알 하나에 무엇이 들었을까> 등의 동화를 쓰기도 했다.

 

<성 권력 교회>, 제프리 로빈슨, 최문희 역, 2011 (신학 에세이)

   

적지 않은 사제와 수도자들에 의해 자행된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과 그러한 추행을 은폐하려는 바티칸 당국의 시도는 가톨릭교회의 가장 불미스런 추문 가운데 하나다. 1994년 호주 주교들의 논의에 따라 성추행 사건에 대응하는 소임에 임명된 저자는, 그로부터 9년간 추문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사건의 본질을 목격하며 환멸을 느낀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관리’하려 드는 모습에, 조용히 입 다물고 문제가 사라지기만을 바라는 모습에 고뇌한다. 그리고 마침내 성과 권력을 다루는 교회 태도의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절실히 느꼈다.

“완전하고 무한한 사랑을 갈망하는 우리에게 종교적 믿음은 삶에 의미를 형성하는 중요한 한 부분이다. 종교적 믿음은 삶의 큰 문제들에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해답은 사랑을 토대로 한다. 우리는 사랑에서 왔고, 사랑할 것이며, 사랑은 이 세상에 우리가 현존하는 목적이자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한 종교적 믿음을 직접 상징하는 이들에 의한 성추행은, 그 종교가 지금까지 제시해 온 대답들을 무너뜨린다.”(제프리 로빈슨)

제프리 로빈슨은 호주 시드니 대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호주와 로마에서 철학과 신학, 교회법을 전공했다. 1984년 시드니 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었으나 2004년 사임하면서 <성과 권력 교회>라는 책을 발간했다.

 

<시몬 베유 노동일지>, 박진희 역, 리즈앤북, 2012 (평전+철학)

   

예전에 <불꽃의 여자 시몬느 베이유>라는 책으로 유명해 졌던 시몬 베유의 삶과 사상을 읽을 수 있는 모음집이다. 우리 시대에 다시 시몬 베유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녀의 삶과 이상이 오직 하나의 길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시몬 베유는 모든 지성인들이 저지를 수 있는 습관적 오류에 빠져들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생각을 위한 생각, 지성을 위한 지성에 몰입하지 않았다. 시몬 베유는 자신이 납득할 수 있을 때 스스로의 의지를 완성시켰다. 괴팍하다 할 만큼 고집스러운 시몬 베유의 삶의 자세를 들여다보며 우리는 느슨한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시몬 베유 노동일지>는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노동운동가 시몬 베유의 저작 <중력과 은총>, <뿌리박기>, <신을 기다리며>와 여섯 통의 편지 등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시몬 베유의 삶과 현실>에서는 T. S. 엘리엇과 체슬라브 밀로스의 글을 통해 시몬 베유의 짧은 생애를 이해해 보고자 했고, 지인들과 부모에게 보내는 시몬 베유의 편지들을 통해 그녀가 겪었던 현실의 순간을 보여주고자 했다. 제2부 <시몬 베유의 작품과 이상>에서는 시몬 베유의 사후에 발표된 여러 글들을 편집하여 실음으로써 그녀의 사상이 어떻게 글로 표현되었는지, 그리고 그 사상의 깊이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했다.

오직 신만이, 진정한 신만이, 우주가 온 무게로 우리를 짓누를 때 균형을 이루는 추가 될 수 있다. 거짓의 신은 설사 참된 신의 이름으로 일컬어진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악은 한정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무한하다. 물질, 공간, 시간. 오직 참된 무한만이 이런 무한을 이길 수 있다. 십자가는 저울이며, 그 위에서 연약하고 가벼운 육체―바로 신이다―가 온 세상의 무게를 들어 올린다.
'나에게 지렛목을 주시오. 이 세상을 들어 올리겠소.'(아르키메데스)

십자가가 바로 이 지렛목이다. 다른 것으로는 안 된다. 세상을 들어 올리는 지렛목은 세상이 아닌 것과 세상의 교차점이어야 한다. 십자가가 바로 그 교차점이다.(시몬 베유)

시몬 베유는 프랑스의 철학자.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고등사범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져 공장과 농장의 임금 노동자로 취업했고, 스페인 내란에도 참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와 합류하고자 귀국을 시도하던 중 런던에서 죽었다. 그녀는 유대인이었지만 가톨릭 영성에 심취한 신비가였으며, 평생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들의 고통으로 아파했다. 그래서 독일 여성신학자인 도로테 죌레는 시몬 베유를 ‘우리 시대의 성인’이라고 부른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원문 보기: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52

 

성인, 지옥문에서 하느님을 만나다
<성인 지옥에 가다>, 질베르 세스브롱, 바오로딸, 2012
2012년 07월 11일 (수) 11:04:07 한상봉 기자 isu@catholicnews.co.kr

사랑이 우리를 불태우지 않았다면
예기치 않았던 산불이 우리를 태우고 갔으리

착한 열정으로 우리가 넘치지 않았다면
이름도 모르는 파도가 우리를 휩쓸고 갔으리

가난했지만 민망할 정도로 가난하여
겨울바람도 우리의 냉기를 비켜갔지만

때 묻지 않은 마음 우릴 가득 채우지 않았다면
어지러운 바람 이 골짜기 끝없이 몰아쳤으리

도종환 시인이 지은 ‘청년’이란 시다. 시인은 민망할 정도로 가난한 가운데서도 사랑으로 자신을 불태우고, 착한 열정을 일으켜 세우며, 때묻지 않은 마음으로 가득 차길, 그 힘으로 파란만장한 바다에서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그예 몸을 다쳐 충청도 보은 산속, 해인(海印)으로 들어갔다. “해인에서 거두어 주시어 풍랑이 가라앉고 경계에 걸리지 않아 무장무애하게 되면 다시 화엄의 숲으로 올 것”이라고 했다. “그때는 화엄과 해인이 지척”이라고 했다(도종환, ‘해인으로 가는 길’ 참조). 여기서 해인이란 지혜의 바다이며, 화엄이란 실천적 삶이라 불러도 좋겠다. 해인이 성(聖)이라면, 화엄은 속(俗)이고, 해인이 종교라면 화엄은 일상이며, 해인이 하느님이라면 화엄은 그분을 드러내는 성사(聖事)다.

성인, 지옥에 가다

   

이처럼 화엄에서 해인을 보고, 해인 안에서 화엄을 만난 사제가 있다. 가난한 노동자의 얼굴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하느님 안에서 ‘지옥’으로 간 사제가 있다. 질베르 세스브롱의 소설 <성인 지옥에 가다>(바오로딸, 2012)에 등장하는 피에르 신부다. 이 책은 공장 지대인 사니 마을의 노동사제가 마침내 지옥문처럼 열려 있는 탄광촌 갱도에 이르러 '고향 같은' 하느님의 땅을 발견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세스브롱은 책을 펴내면서 “같은 언어를 가진 사람들끼리도 소통이 어렵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중재자를 죽이는 시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지라도 찢어야 하는 시대, 예수 없는 십자가가 군림하는 이 시대에 나는 어느 편에도 가담하고 싶지 않다”고 전했지만, 피에르 신부의 입을 빌어 한탄할 만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건져 올리고 있다. 세스브롱이 “이 책이 어떤 사람에게는 비위에 거슬리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결국 나이브하게 ‘복음’을 말하던 이들에게 심각한 걸림돌이 될 게 뻔한 소설이다. 그리고 고난받는 백성들과 더불어 이승을 순례하는 이들에게는 깊은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난 그분과 함께 있지 않아. 난 그분과 함께 있고 싶어, 피에르.” 전임 사제로서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혼신을 다하던 베르나르 신부가 용기를 잃고 공단을 떠나 자신이 소속되었던 수도원으로 되돌아가고, 피에르 신부가 이 마을에 파견되었다. 먼저 인근 공장에 취업해서 일하며, 퇴근 이후에 자신의 집에 모여드는 이들에게 하룻밤 지낼 숙소를 주선하고, 필요한 서류도 작성해 주고, 노동자들과 마주 앉아 조촐한 미사를 봉헌하며 이들에게서 그리스도의 눈빛을 가늠한다.

“피에르는 팔을 벌리고 웃는 얼굴로 그들에게 손짓했다. 그가 본당에 있을 때 몇 달 동안 신자들 앞에서 미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신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미사를 드렸으며, 제대에 오르는 계단과 성가대 사이에 철책이 있어 신자들과 신부를 갈라놓았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는 똑같이 피로를 느끼며 똑같은 요구를 가진 공장 친구들과 얼굴을 맞대고 미사를 드리는 것이다. 같은 손을 가진 그들, 그리스도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분이 사람들 사이에 계실 때 그분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그분의 눈빛밖에 없었다.”

노동사제 운동의 시작, ‘미션 드 프랑스’(Mission de France)

   
▲ 쉬아르 추기경(Emmanuel Suhard)은 1941년 ‘미션 드 프랑스’(Mission de France)를 설립해 노동사제를 양성했다.

프랑스에서 노동사제운동이 시작된 것은 1941년 7월이었다. 산업사회가 낳은 비참한 노동현실 속에서 빈민층과 노동자들의 복음화를 위해 파리 대주교인 쉬아르 추기경(Emmanuel Suhard)은 ‘미션 드 프랑스’(Mission de France)를 설립했다. 비그리스도교적 환경에 복음의 누룩을 심는 선교 활동이었다. 여기에 사명감을 느끼는 사제들을 양성해서 도시빈민지역이나 공단지대에 사제들을 파견했다. 이들은 직접 공장 생활을 하며 노동자들과 삶을 나누었다.

중요한 것은 사제로 대변되는 교회가 노동자들과 친밀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제들이 현장에 직접 투신한다는 의미와 그들과 나누는 우정의 중요성을 갈파하는 것이다. 시몬 베유가 <노동일기>에서 드러내고 있듯이, 직접 공장 노동에 투신해야 그들을 ‘정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해가 되어야 ‘참된 사귐이나 우정’이 가능하다. 여기서 예수회의 노동사제였던 반 브뢰크호벤 신부가 지은 <우정일기>(대구 가르멜 수녀원 옮김, 계성 출판사, 1986)의 한 대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언제 어떻게 사람들에게 가야 할지를 모색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방식이 불완전해도, 원숙하게 재검토를 못했더라도,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다. 누군가를 향하여 간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 이것만이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요, 그들 마음을 채워주고 감동과 행복을 전해 준다. 이것은 크리스챤적인 메시지, 즉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진실은 흔히, 달갑지 않은 듯한 상황에서 더 잘 증명된다. 타인들에게로 이와 같이 가는 것이 사도직이다.”

피에르 신부가 처음 입사하던 날 만난 인사과장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남겼다. “자신이 선하고 하느님이 저기 편인 줄 믿고 있는 이 외로운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다.” 그 사람은 양심의 가책 없이 자기 의무에 충실하다고 믿고 일한다. 가능한 많은 이익을 내도록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관심사이며, 그 밖의 것은 상관이 없다. 그러나 피에르가 보기에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장에서, 환기도 되지 않는 숨막히는 창고에서 죽음을 코앞에 두고 하루 끼니를 걱정하면서 일했지만 그들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살고 있어 결코 외롭지 않았다.”

이는 단지 사니의 공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공장 노동자들은 작업라인에서 다른 노동자를 협력자로, 동료로 만난다. 급기야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 유성기업과 콜트·콜텍에서 보듯이, ‘해고’라는 같은 어려움에 처할 때, 해고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을 ‘같은 고난을 넘어가려는’ 혈육처럼 느끼며, 희망버스에서 보듯이 선한 이들의 연대를 체험한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나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다른 이들의 세상마저 따뜻하게 품어낼 마음을 낸다.

이런 점에서 노동사제는 축복 가운데 있다. 그리스도가 사랑하던 그 ‘가난한’ 얼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형제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상징’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랑도 ‘상징적인 사랑’이 아니다. 그들은 구체적인 인간을 만나고, 시간과 돈과 몸을 내어놓고 구체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더 이상 사니 마을에서 선교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피에르 신부가 다시 본당으로 가지 않고 광산으로 발길을 옮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당 사제들은 너무 쉽게 강론대에서 ‘사랑’을 설교하고, 이런 관념적 사랑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하느님이 발생(發生)하지 않는다. 복음서의 최후 심판 이야기에서 예수가 거론한 것은 ‘구체적인 사랑’이었다.

그리스도인은 '양떼' 인가 '군대'인가?

이 소설에서는 본당사제와 노동사제 사이에 빚어질 만한 갈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날 그 지역의 본당 보좌신부인 르부아쇠르 신부가 피에르 신부를 찾아와 하소연한다. “전 본당에서 숨이 막혀요. 어린애들과 축구나 하고 부자들의 장례나 치러주기 위해 신부가 된 건 아닌데…….” 사제직에 대한 갈등을 빚고 있는 보좌신부 때문에 급기야 본당 신부가 본당 수녀를 대동하고 피에르 신부의 집으로 찾아왔다. ‘불안정한 사도직’으로 기울어지는 보좌신부를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것이다.

피에르 신부는 본당이 시내 중심가에 사는 몇몇 신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빈민 지역을 포함한 모든 주민들을 위한 본당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본당 신부는 “먼저 있는 것부터 지키고 구원하도록 해야지, 나머지는… 뒤에 해야지 한꺼번에 모든 걸 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난 이 본당의 양떼를 책임지고 있소. 그것을 지키고 하느님 앞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내 임무요.”
"그들은 양떼가 아니라 군대입니다. 제각기 방법이 다를 뿐이지 모든 그리스도인은 똑같은 직책을 갖고 있습니다."
“신자가 모두 ‘투사’란 말인가? 나도 알고 있소, 현대 유행어를.”
“‘구제회’라는 것이 옛날에 유행어였습니다. 그럼 아직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 ‘사도직’은 어떻습니까?”
“이 거리에서 사도직인지 뭔지는 당신 마음대로 하되 본당은 침범하지 말라는 것이오.”
본당신부의 고운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본당신부는 노동사제 베르나르 신부가 지역에서 노동자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예전에 본당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마들렌이 본당을 떠난 것, 그리고 본당 보좌신부가 ‘복음적 삶’에 대한 갈증으로 방황하기 시작한 책임을 피에르와 같은 노동사제들에게 돌렸다. 피에르 신부는 답답한 교회 현실을 생각하며 “그들의 귀를 막고 있는 유리창을 깨드릴 수만 있다면! 돈, 특권, 관습, 심지어 의무라는 이름을 가진 유리창을!”이라고 읊조렸다.

피에르 신부는 노동자가 되었다. 그리고 “경찰과 노동자, 집주인과 셋방살이하는 사람들, 기업주와 날품팔이꾼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교회나 난방이 잘 된 안락한 아파트, 하늘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공장이나 셋집이나 감옥에서는 동료를 배반하지 않고는 다른 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는 게 ‘노동자 세계’의 비극이라고 여겼다.

문득, 지난 6월 25일 명동대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 착좌식을 행한 염수정 대주교가 강론에서 “나는 특정 계층을 위한 목자가 아니라 노인에서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의 구별 없이 모든 이들이 더불어 사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라고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한 게 떠올랐다. 이런 발언 역시 안온한 교구청이나 윤택한 주교관에서나 가능한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며 슬퍼졌다. 언젠가 그도 추기경을 꿈꿀 것이다.

   
 ⓒ한상봉 기자

사제보다 아름다운 '대주교'

때로는 사제보다 아름다운 주교가 있기 마련이다. 아들보다 사랑스러운 아버지가 있기 마련이다. 사니 마을에서 동맹파업이 시작되면서 피에르 신부가 동료 노동자들과 더불어 도움을 청하러 파리의 대주교였던 추기경을 방문했다. 창백하고 마른 노인이었던 추기경에게 피에르 신부가 “죄송합니다. 피로하시다는 말씀을 듣고도…”하며 사과하자, 추기경은 “당신들은 피곤하지 않은가요?”라며 되묻는다.

추기경은 요청을 듣고서 “아버지는 특별히 한 자식만 사랑해서는 안 되는 법”이라면서 “마음속으론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강한 놈들한테 항상 맞고 아무한테도 사랑받지 못하는 자식을 특별히 더 생각하지만 겉으로는 공평해야 한다”고 말한다. 추기경은 그 자리에서 피에르 신부에게 어떤 약속도 해주지 않았지만, 본당신부들에게 기업주들의 최근 회계장부를 수집하게 하고, 이를 회계사에 맡겨 분석한 뒤에 행동할 것이라고 언질을 주었다. 일행이 떠나려고 하자 추기경은 “언제든지 오시오. 되도록 자주……” “혹시 내가 침대에 누운 채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당신들을 만나겠소.” 하였다.

다음 주일에 추기경의 명령으로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파리의 성당 문 앞에서 파업한 노동자들의 가족을 위한 모금이 있었다. 추기경의 메시지는 성당에서, 사무실에서, 술집에서, 정당에서, 살롱에서 검토되었고, 어떤 이들은 “추기경이 제 정신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수많은 신자들은 처음으로 “정치적 편견 없이” 노동자들의 조건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으로 노동자들한테서 자기의 형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 파리의 많은 주민은 새옷을 입고 승용차를 몰며 기름진 얼굴을 들고 다닐 때 그들 주변에 있는 가난하고 헐벗은 외곽지대를 언짢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 그들 가운데는 진실로 양심과 영혼의 고통을 느끼는 이가 생겨났다. 그들은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라고 자처할 수 없게 되었다.” 

"대주교님, 며칠 동안만 저희 사이에서 살아보시면…"

그러나 이윽고 추기경이 이승을 떠나고 새로운 교구장이 임명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새로운 대주교는 피에르 신부를 불러 제일 먼저 “몇 사람이나 세례를 주었소? 몇 사람에게 혼배성사를 주었고 미사에는 몇 명이나 모였소?”라고 물었다. 피에르 신부는 “매우 소수입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형제애가 싹트고 이해관계를 떠난 생활태도와 사랑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바로 복음을 살고 있습니다. 그 밖의 것은 자연히 따라올 것입니다. 대주교님, 며칠 동안만 저희 사이에서 살아보시면… 공장에서, 식당에서, 셋방에서, 회합에서… 아, 정말로 온 마을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하고 전했다.

그러나 “우리는 초대교회에 살고 있는 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대주교는 “그분은 죽음까지도 순명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오! 피에르 신부, 질서문란은 위험한 함정이오. 그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니오?”라고 질책했다. 결국 피에르 신부는 사니 마을을 떠나야 했다. 후임으로 전에 본당보좌였던 르부아쇠르 신부가 노동사제로 부임한다는 전갈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혼신을 다해 일했던 사니를 떠나야 한다는 게 피에르 신부에게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피에르 신부는 베르나르 신부처럼 수도원으로 달아나지도, 안온한 본당사제를 택하지도 않았다. 그가 추운 겨울을 택해 힘차게 돌아서서 간 곳은 ‘지옥문’이었다. 탄광촌이었다.

지옥문에서 '다시' 만난 하느님

피에르 신부는 어린 시절부터 지옥의 영상으로 머릿속에 새겨진 탄광 갱도를 바라보았다. 지옥의 문에서는 눈만 하얗게 드러난 시꺼먼 광부들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자신의 상복을 입은 사람들, 그들의 발밑에 쌓인 석탄 먼지가 버석버석 소리를 냈다. 가장 불행한 이들에게로 가서 하느님을 다시 만나기로 작심한 노동사제 피에르.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반백의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무슨 용건이오?”
“일자리가 있습니까?”
“갱에 들어갈 수 있겠소?”
“네.”
“자리는 언제나 있지.”

어차피 예나 지금이나 ‘복음적 명령’을 따르는 이들은 소수다. 주교거나 사제거나 수도자거나 평신도거나 아무 상관없다. 김수환 추기경 마저 ‘복음적 청빈’을 살고자 했으나 용기가 부족했던 자신을 질책한 적이 있다. 주교들도 우리 안에 매인 양떼를 지키거나 우리 안에 더 많은 양들을 집어넣으려고 애쓸지언정, 우리 밖의 사정에 대해서는 무감하기 쉽다. 사제들 가운데 본당 살림 먼저 챙기고서 여유가 생기면 지역사회를 돌아보리라 마음‘만’ 먹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이들’과 ‘복음’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의심하지도 않는다. 종교를 부적처럼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다. 액땜을 하려고 봉헌금을 내고, 사제 생활을 철밥통으로 여기고, 짐짓 점잖은 체 하지만 결국 암투를 통해 주교좌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편에서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겸손’으로 언제나 낮은 곳으로 내려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던 백성을 나도 사랑한다”고 몸으로 증거하는 이들이 있다. 이를 두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눈먼 풀포기도 돌 사이에서 돋아날 것이고 슬픈 새도 우짖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 그리스도 역시 그런 슬픈 눈매를 가진 이들 가운데 한 분이셨다. 그분 역시 지옥문(화엄, 華嚴)에서 해인(海印)을 발견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원문 보기: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46

[새책] 성인 지옥에 가다 / G. 세스 브롱 지음

발행일 : 2012-06-24 [제2801호, 17면]

G. 세스 브롱 지음/남궁연 옮김/432쪽/1만3000원/바오로딸

바오로딸 출판사(대표 이순규 수녀)가 펴내는 ‘다시 읽고 싶은 명작’ 시리즈 열한 번째 책이다.

프랑스 광산촌 출신 피에르 신부는 스스로 공장 노동자가 되어 가난한 노동자들 곁에서 고통과 희망을 나누고, 나아가 그들의 비참한 생활을 숨김없이 증언한다.

1950년대 산업사회 발달과 함께 대두된 각종 사회 문제 앞에서 새로운 시대적 소명을 자각, 빈민층과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사목을 펼치는 프랑스교회 변화의 선봉에 선 노동사제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초창기 노동사목에 나선 사제의 열정과 고난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가톨릭신문 


원문 보기: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44787&ACID=5&S=

 

발행일: 2012년 5월 25일 | 지은이: G.세스 브롱
옮긴이: 남궁 연 | 판형: 125*185 | 쪽수: 432쪽 | 가격: 13,000원

 

● 기획 의도
가난한 노동자들과 삶을 나누며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노동사제를 통해 하느님 사랑을 맛보고 삶의 희망을 발견하게 한다.

주제 분류 - 문학, 사회소설
 
키워드(주제어) - 노동자, 공장, 노동사목, 노동사제, 프랑스교회, 산업사회, 광산촌, 가난, 비그리스도교적 환경, 복음, 누룩, 정의.

요약 - 노동자 마을로 걸어간 어느 사제 이야기
불란서의 광산촌 출신 노동사제 피에르가 가난한 마을, ‘사니’에 들어가 고통을 겪는 노동자들과 함께 살면서 하느님 사랑 안에서 희망을 간직하는 이야기.

상세 내용
불란서 노동사제 이야기, 광산촌 출신 노동사제가 가난한 마을, ‘사니’에 들어가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속에서 함께 고통으 겪으면서도 하느님 사랑 안에서 희망을 간직하는 이야기.

1950년대 프랑스 교회는 산업사회의 발달과 함께 대두된 사회 문제 앞에서 새로운 시대적 사명을 자각하고 빈민층과 노동자들의 복음화를 위해 비그리스도교적 환경에 복음의 ‘누룩’을 심는 방향으로 선교를 전환한다. 이에 소명을 느끼는 사제를 양성해 사제가 없는 마을이나 노동자 마을로 파견한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노동사제의 활동이 시작된다.

이 책의 주인공 피에르 신부는 프랑스 파리 교외 공장지대에 가서 스스로 공장 노동자가 되어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며 그들의 어려움과 슬픔,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산업사회가 낳은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숨김없이 증언한다.

밤마다 어린 아들을 때리는 주정뱅이 마르셀, 경찰의 앞잡이 북아프리카인 아흐메드, 창녀 쉬잔 같은 생활에 지친 군상이 바로 피에르 신부를 둘러싼 이웃이다. 이런 환경에서 피에르 신부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함께 의논하고 고민하며 따뜻한 사랑과 헌신으로 헤쳐나간다. 이따금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좌절할 때도 있지만, 복음의 진정한 창조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사제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 교회도 국내 노동사목뿐 아니라 이주 노동자 사목, 해외사목까지 광범위한 사목을 펼쳐가는 시점에서 여기 나오는 초창기 노동사제의 열정과 고난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것은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다.

"단 한 마리의 가엾은 양도 잃지 않기를…." "등장인물, 파리대교구 추기경의 유언입니다. 고인이 되신 우리의 아버지 김수환 추기경이 생각납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를 살리는 힘은 가난한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단순한 필치로 심오한 복음의 진리를 전할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좋은 피정을 한 듯한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 서춘배 신부(의정부교구 의정부 주교좌 성당 주임)

대상
모든 노동자, 근로자 , 현대의 노동 현실에 관심 있는 이, 노동 사목, 이주 사목을 하는 관계자와 여러 종교의 사목자.                                       

지은이 : 질베르 세스브롱(Gilbert Cesbron, 1913-1979)
가톨릭교회의 운동과 인연을 맺고 있던 작가로서 언제나 그 시대에 대두된 중요한 사회문제를 주제로 한 소설을 썼다. 저서로는 노동사제 문제를 다룬 「성인, 지옥에 가다Les Saints vont en enfer」(1952) 외에도 청소년 범죄문제를 다룬 「굴레 벗은 개들Chiens perdu sans collier」(1954), 이혼 부부의 자녀문제를 다룬 「우리가 죽이는 모차르트C’est Mozart qu’on assassine」(1966), 장애자의 문제를 다룬 「나도 역시 그들을 사랑했소Mais moi je vous aimais」(1977) 등 50권이 넘는 그의 소설은 현대사회가 내포하는 여러 가지 문제 앞에서 정의와 사랑을 열정적으로 산 작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옮긴이 : 남궁 연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프랑스어문화학과 명예교수다. 옮긴 책에 「진흙탕에서」․「다니의 일기」․「또 다른 무쉐트의 새로운 이야기」․「코르니유 영감의 비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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