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살아가는 이들의 벗, 야곱의 우물

 

 

매달 발행되는 「야곱의 우물 」이란 잡지 아시죠?
저는 매일미사 대신 이 잡지를 보는데 복음 묵상에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이번 달엔 특히 박병규 신부님의 주일 렉시오 디비나 묵상이 좋았습니다.
신앙은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깨우쳐 주기도 하고
세례 받은 햇수와도 상관이 없다는 걸 가르쳐 주십니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지가 첫째'가 되는 이치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해 줍니다.

문득 야곱의 우물에서 사도직하면서 만났던 소중한 인연이 기억납니다.
통신성서공부를 하면서 만난 엘리사벳님은 벌써 20년 지기가 되었습니다.
2014년은 「야곱의 우물 」이 창간된 지 20주년이 되는데,
창간 독자면서 애독자인 그분은 늘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분이십니다.
교회 안에서 말씀 봉사도 하시고, 재능 기부도 하시면서 삶의 기쁨을
노래하고 신앙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많이 가졌다고 해서 더 많이 베푸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한 사람만이 나눔의 삶을 살아갑니다.
엘리사벳님은 결코 많이 가지지 않았지만 자녀들에게 '기부'의 습관을
몸소 가르치셨고, 당신도 해마다 잡지를 기부하셨습니다.
막내딸이 화가 수녀님이 되고 싶다고 해서 저와 깊어진 인연인데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첫 월급을 탔다고 기부금을 건넸던 꼬마친구의 꿈은 변했지만
자신의 재능으로 교회 안에서 봉사하리라 믿습니다.

야곱의 우물 잡지 한 권은 2,800원, 커피 한 잔 값이면
한 달을 풍요롭게 살 수 있습니다. 진리이신 말씀을 묵상하게 해 주는
매일성경묵상을 비롯하여 그것이 삶으로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지
이웃들의 삶을 통해 조명해주고 교회의 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배려된 지면을 통해 교회 안팎으로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습니다.
아직도 교회가 이어져오는 것은 누군가가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우리 자신이면 좋겠습니다.


바오로딸 홈지기수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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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pauline.or.kr/newnbest/paulzine?date=2013-01-21


Q) 복음묵상에 도움이 되는 책이 있을까요?

묵상이 잘 되지 않아 훈련을 하고자 하니

묵상방법 안내와 복음묵상이 많이 수록된 책이면 좋겠습니다.


A) 좋으신 주님께 찬미~


회원님 안녕하세요?

복음묵상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 묵상에 관련된 책을 찾고 계시는군요.

아시는 것처럼 복음묵상을 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영신수련에 의한 묵상과 거룩한 독서에 의한 묵상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묵상을 통해 하느님과 일치한다는 목표는 같지요.


매일 성경 구절을 읽고 짧게 묵상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를 원하신다면

'야곱의 우물'이라는 성서 월간 잡지를 추천합니다. 

'야곱의 우물'은 성서묵상을 위한 잡지로 

매일 전례에 따른 성서구절과 짧은 묵상이 실려 있습니다. 

다른 이의 묵상은 디딤돌처럼

나의 묵상으로 들어가게 하는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매주 수요일에는 예수회 류해욱 신부님의 묵상 안내가 실려 있어서

영신수련적인 복음묵상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한 권을 구입해서 보시고 도움이 되시면 정기구독 하셔서

묵상자료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우물(2012년 9월호)> 바로가기


거룩한 독서와 

영신수련에 관련된 책도 추천해드립니다.


<거룩한 독서1> 바로가기

<요한 복음(거룩한 독서를 위한 신약성경 주해4)> 바로가기

 

<삶의 우물가에 오신 말씀> 바로가기

<한 영신수련> 바로가기


말씀 안에서 은총의 나날 되시길 빕니다.


바오로딸홈지기수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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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승준|주연 조영찬, 김순호|애정, 다큐멘터리|한국|2012년 개봉

 

이 영화는 시청각 중복장애인 조영찬씨와 척추장애인 김순호씨 부부의 남다른 소통과 사랑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나에게 달팽이처럼 아주 느리게, 세상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알아가는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주인공의 삶을 대신 설명해주거나 공감을 강요하는 내레이션 대신 그들만의 특별한 삶의 방식에 직접 끌어들여서 느끼게 하는 이 작품은 다소 생경한 인상을 주지만 그 어떤 멜로드라마보다도 더 큰 울림과 진한 사랑을 전해준다.

점자 단말기를 이용해서 공부하고 글을 쓰는 영찬씨는 대학생이자 시인이다. 태초의 어둠과 적막 속에 탄생한 그의 시에는 볼 줄 아는 사람은 볼 수 없는 그들만의 별나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주 어렸을 때 심하게 앓았던 열병 탓으로 시각과 청각을 잃은 영찬씨는 순호씨를 만나기 전에는 시간의 흐름도 알 수 없는 갑갑함 속에 희망도 없이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축 처진 모습으로 차에서 내려 잠시 서 있는 그에게 천사처럼 나타난 순호씨는 그를 데려가 밥이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따끈한 라면을 끓여주었고, 세상에 태어난 이래 그토록 맛있는 라면은 먹어본 적이 없었다는 영찬씨는 더할 수 없는 감동에 휩싸였다. 그 만남을 계기로 백년가약을 맺은 두 사람, 남편의 눈과 손이 되어 그의 모든 것을 보살펴주는 아내 순호씨는 그 작은 몸집으로 그의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구석구석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마음의 거인이다.

 

 

그들 부부는 비장애인들에 비해 무척 제한된 감각을 사용하지만 그 누구보다 온전하고도 아름다운 소통을 이루어낸다. 존재의 모든 촉수를 동원하여 한 마디 한 마디를 성심성의껏 주고받는 이들의 모습은 사실 나의 현실에 다소 도전적인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스마트 기기와 SNS로 대표되는 감각의 무한확장 시대를 살게 된 오늘날, 나는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고 그 중에서 진정 ‘친교’라 부를 수 있는 영역은 얼마나 될까? 모든 감각기관이 정상적으로 움직인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를 보고 듣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마음의 눈과 귀가 닫혀있거나, 헛것에 사로잡히면 보면서도 보지 못하게 되고, 들어도 듣지 못하게 됨을 나도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진심을 보고 들으려 하기보다 내 눈과 귀, 매체로 확장된 기계적인 성능만 자랑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의 표현대로 ‘사람의 눈, 귀, 가슴들은 대부분 지독한 최면에 걸려 있거나 강박에 사로잡혀 있거나 자아의 깊은 늪에 빠져 세계를 전혀 모른 채로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

소설 [어린 왕자]의 별을 따서 ‘달팽이의 별’이라고 제목을 지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들의 대화 안에 함께 머물다보면 나 또한 그들의 별을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어둠은 짙어야 별이 빛나고 밤은 깊어야 먼동이 튼다.”는 시처럼 그 별은 그들의 오래된 고독과 어둠 깊은 곳에서 반짝이는 참된 빛의 세계이다. 그들은 어쩌면 모든 이가 깨닫기 바라는 것을 침묵과 어둠 속에서 먼저 알았는지도 모른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하여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거다.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하여 잠시 귀를 닫고 있는 거다.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하여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 <야곱의 우물> 2012년 5월호 게재
김경희 노엘라 수녀

*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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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한|주연 김윤석, 유아인|드라마|한국|2011


점잖게 앉아서 보기에는 너무도 유쾌하고 때때로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이리저리 자리를 들썩거리며 볼 수밖에 없었던 영화 <완득이>, 다소 비현실적인 면도 없지 않으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두루 비추면서도 대충 얼버무리지 않고 할 말을 하는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척추장애자로서 카바레의 광대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그곳에서 나고 자란 도완득은 어릴 때 집을 나간 어머니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열일곱 살 청소년이다. 카바레가 문을 닫자 아버지는 노점상을 시도하지만 그마저도 자릿세와 텃새에 밀려서 전국을 떠도는 유랑극단의 약장사로 길을 나선다. 가출조차도 성립되지 않을 만큼 혼자일 수밖에 없는 완득에게 도저히 외로울 틈을 주지 않는 단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담임이자 옥탑방 이웃사촌인 동주. 시도 때도 없이 ‘얌마 도완득!’을 불러대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간섭하는 그는 완득에게 원수나 다름없다. 오죽하면 교회에서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겠는가?

하지만 동주의 거칠고 지나친 간섭은 곧 외톨이 완득이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난다. 가난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가난을 탓하며 굶어죽는 게 진짜 부끄러운 일이라며 완득에게 진정으로 맞서야할 문제가 무엇인지, 스스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동주는 완득에게 진정한 인생선배요 스승이다. 자기 재산을 털어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마을주민들을 위한 공동체를 세우고, 입시학원으로 변질된 교실에서 학생들이 진정으로 배워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려는 동주는 어쩌면 지금 우리의 한국사회가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선생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이 영화는 사건의 내용보다 각 사람들의 됨됨이가 더 많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특히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인 완득의 아버지는 이 영화의 인물 중에 가장 성숙하고 겸손한 인격의 소유자다. 비록 돈 때문에 자기와 결혼한 외국 여자라 해도 그녀의 인격자체를 존중했고 완득의 어머니로 받아들였으며, 길에서 떠도는 민구를 거두어 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주변 관계는 공경과 이해, 대화와 화해의 끈으로 이어진다. 빈자와 이민자들을 소재로 한 기존의 영화들이 억지스러운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과장된 비극 또는 웃지못할 희극으로 끝나버린 것을 생각해보면, 보다 건전하고 현실적인 감각으로 그들이 바로 우리임을 받아들이게 해준 이 영화가 참 고맙게 느껴진다.



사실 나에게 가장 오랜 잔상을 남긴 것은 이 영화 속의 교회다. 제단 벽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글자만 걸려있을 뿐 단 한 번도 설교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동주와 이주노동자들이 만나는 장소인 이곳은 실제로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실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살아있는 곳, 가난한 이들과 이방인들의 안식처이며 나눔과 친교가 이루어지는 곳, 완득이가 다니는 교회는 그런 곳이었다.

- <야곱의 우물> 2012년 1월호
김경희 노엘라 수녀

*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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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예시카 하우스너|주연 실비 테스튀, 레아 세이두|드라마|오스트리아|2011


프랑스 남쪽에 위치한 루르드는 해마다 600만 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찾는 세계 최대의 성모발현 성지다. 치유기적이 많이 일어나기로도 유명한 이곳에는 지금까지도 완치된 사람들이 두고 간 목발과 휠체어가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영화 <루르드>는 바로 이 기적의 장소를 찾아온 한 여성의 순례길을 따라가면서 기적과 신앙의 문제를 탐구한다. 단순하고 절제된 미장센과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화면, 대사로 전달되는 메시지보다 넓은 행간에서 관객 스스로가 생각하고 찾아내야 할 것이 더 많은 이 영화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하느님과 기적에 대한 의문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주인공 크리스틴은 전신마비로 휠체어에 앉은 채 식사부터 잠자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른 사람 손에 맡겨야 하는 미혼 여성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 더 큰 기적이 필요할 것 같은 크리스틴의 모습에서는 어떤 희망이나 절실한 믿음을 찾아보기 어렵다. 자신의 비극을 하느님 탓으로 돌리며 우울하게 살아온 그녀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태도로 순례코스를 돌면서 열심히 기도하기보다는 남자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누군가 자기를 불러낸 듯 혼자서 몸을 일으켜 걷게 된 크리스틴, 그녀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기적의 주인공이 되어 삶에 대한 활력을 되찾지만 함께 순례하던 사람들의 눈길은 오히려 의심과 질투로 얼룩진다.

바로 여기서 크리스틴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의 관점을 통해 참된 신앙과 기적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진다. ‘하느님이 전지전능하고 선하시다면 모든 이를 낫게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어떤 사람의 병은 고쳐주시고 어떤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두시는 건가’,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품었을 만한 이런 질문에 대해 순례단 신부의 대답은 곱씹어볼만하다. 기적은 외적인 치유만이 아니라 내적인 변화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불현듯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도 기적이고, 외적인 치유를 받았다 해도 그것을 통해 영혼까지 변화되지 않는다면 은총을 낭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내 기억에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잘 정돈된 식당의 식탁 위로 같은 음식이 놓이고 ‘아베 마리아’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 사람 한 사람씩 등장하는 첫 장면이다. 다양한 기대와 희망 속에서 서로 다른 상처와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한 식탁에 모여 앉는 이 장면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초대받은 우리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식탁에 앉아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매일 주어지는 일상 안에서 축복을 발견하고 감사할 때 그것이 행복이고 기적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자기 힘으로 계속 서 있으려고 하다가 넘어진 크리스틴이 다시 평온하게 휠체어에 앉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하느님의 뜻을 알고 따르기 위해 기도하면서도 내가 바라는 표징을 요구하고, 나에게 주어진 은총은 외면한 채 남이 받은 것만 보고 부러워하면서 하느님의 능력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영화는 나에게 묻는다. 그리고 우리 이성으로는 절대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에 더욱 온전하게 내맡겨질 것을 가르쳐준다.

- 바오로딸 <야곱의 우물> 2011년 5월호
김 노엘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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