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를 거룩히 지내기 위하여

사랑스럽고 부드러우신 어머니 마리아님,
제 머리 위에 당신의 거룩한 손을 얹으시어
제 지성과 마음과 오관을 지키시고
죄에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제 생각과 감정, 말과 행동을 성화시키시어
나의 하느님이며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당신께
기쁨을 드릴 수 있게 하시며,
당신과 함께 하늘나라에 들게 하소서.
예수 마리아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저에게 강복하소서. 아멘.
_ 「바오로 가족 기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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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당신을 길 진리 생명으로 선언하신 천상 스승님,
당신을 흠숭하고 감사드리나이다.

저는 당신을 제가 거쳐가야 할 이시요,
믿어야 할 진리이시며,
열망해야 할 생명으로 받드나이다.

당신은 저의 모든 것이오니, 
지성과 의지와 마음을 다하여
저는 당신 안에 머물고자 하나이다.

- 바오로가족기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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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오만과 편견 

오해와 편견이 이해와 사랑으로 바뀌는 만남의 은


오만과 편견(Pride & Prejudice, 2005년) / 감독 : 조 라이트/ 제작국가 : 프랑스ㆍ영국 / 등급 : 12세 이상/ 상영시간 : 127 분/

장르 : 로맨스, 드라마


인간은 누구나 만남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관계가 형성된다. 이 사이에 끼어드는 내면의 불청객이 있다면 오만과 편견이 아닐까?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만남의 신비」에서 "만남이란 하나의 신비이며, 이 만남 안에는 진귀한 보물과도 같은 사랑ㆍ용서ㆍ구원ㆍ감사ㆍ생명ㆍ희망ㆍ평화ㆍ기쁨 등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남녀간 사랑 역시 만남에서 시작되고 헤어짐의 발단도 만남에서 비롯된다. 수많은 인간 군상들 속에 펼쳐지는 만남의 진실을 보여주는 영화 「오만과 편견」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첫 무도회에서 첫 만남을 갖게 되는 다시와 리지.



▲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리지와 다시는 격렬하게 부딪친다. 

리지 역은 키이라 나이틀리가, 다시 역은 매튜 맥퍼딘이 맡았다.



▲ 떠오르는 아침 햇살은 두 사람의 미래를 예고하듯 환히 비춘다. 

오해에서 이해로, 교만에서 겸손으로, 용서와 사랑으로의 과정은 은총이었다.


줄거리

 사랑이 싹틀 무렵 남자들이 빠지기 쉬운 실수는 '오만'이고, 여자들은 깨기 힘든 '편견'에 사로잡히기 일쑤다. 이 모든 것을 넘어선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진전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엘리자베스'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결혼까지 이어지는 것임을 굳게 믿고 있는 자존심 강하고 영리한 소녀다. 좋은 신랑감에게 다섯 딸을 시집보내는 것을 부모의 목표로 생각하는 극성스러운 어머니와 자식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너그러운 아버지를 중심으로 화목한 베넷가(家)의 다섯 자매 중 둘째 딸이다. 조용한 시골에 부유하고 명망 있는 가문의 신사 '빙글리'와 그의 친구 '다시'가 여름 동안 대저택에 머물게 되고, 그곳에서 열리는 댄스파티에서 처음 만난 '엘리자베스'와 '다시'는 서로에게 야릇한 호감을 품지만 자존심 강한 '엘리자베스'와 무뚝뚝한 '다시'는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저울질만 한다. '다시'는 아름답고 지적인 그녀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되는데…. 폭우가 쏟아지는 날, 비바람이 몰아치는 언덕에서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둔 뜨거운 사랑을 그녀에게 고백한다. 결혼의 조건은 오직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 '엘리자베스'는, '다시'가 그의 친구 '빙리'와 그녀의 언니 '제인'의 결혼을 앞두고 '제인'이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한 것을 알게 된다. 이로 인해 그를 오만하고 편견에 가득 찬 속물로 여기며 외면하고….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골이 깊어지는데 '엘리자베스'와 '다시'는 과연 서로의 진심을 알고 사랑을 키워갈 수 있을까….

 첫 만남

 영화의 첫 장면은 소설책을 읽으며 걷는 리지(엘리사베스를 엘리자나 리사, 리즈, 리지, 베스, 베티 등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를 클로즈업하며 시작된다. 그녀의 성격을 드러내는 단순하면서도 짙은 색감의 드레스! 아침 햇살이 그녀를 환히 비춘다. 자신의 선입견을 넘어가듯 다리를 건너 집으로 향하는 그녀를 따라 카메라는 롱테이크(long take)로 베넷 집안으로 들어간다. 천진한 모습으로 뛰어 다니는 딸들! 엉망인 집안! 거기에 개까지 집 안을 들락거린다. 집안으로 들어가려던 리지는 자기만의 창을 통해 타인을 바라보듯 창문을 통해 엄마, 아빠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는다. 부각되는 장면은 베넷가 집 밖 전경으로 이어진다. 집 앞에는 연륜을 드러내는 깊게 주름진 표피의 큰 나무 밑둥치가 양쪽에 서 있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뿌리 깊은 인간 내면의 대결을 상징하듯이….

 모든 남자들은 단순하면서도 멍청한 속물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리지는 무도회에서 다시와 첫 만남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 그녀가 다시에게 용기를 내어 춤 파트너가 되어주길 신청하지만, 그는 무뚝뚝하게 정중하고도 냉정하게 거절한다. 더욱이 그가 친구에게 리지의 외모에 대해 폄하하는 말을 엿듣고는 불쾌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친절한 구석이라곤 없어 보이는 무뚝뚝하고 잘난 척하는 다시, 언제나 검은 정장에 흐트러짐 없는 반듯함을 지닌 귀족의 풍모를 지닌 그는 고상함과 완벽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여자는 완벽해야 하고 그림이나 춤, 피아노도 할 줄 알고, 독서로 지성도 쌓아야 한다며 베넷 가문의 여자들을 속물로 바라본다. 그는 누구의 말에도 동요되지 않으며 쉽게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다시가 오만한 사람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히게 된 리지는 위크햄을 만나 다시와의 관계를 듣는다. 그의 거짓말을 진실로 믿는 리지는 다시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을 더 굳힌다. 콜린즈의 청혼을 당당히 거절한 그녀는 맨발로 집 뒤뜰 그네에 앉아 빙글빙글 꼰다. 편견에 대한 집착에 가득 차 계속 주변의 모든 것들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느 날 다시의 숙모를 돕는 피츠윌리암을 만나게 되는데 리지는 언니 제인의 결혼을 파경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 다시라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와 실망의 어두움에 깊이 빠져든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비에 흠뻑 젖은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들의 만남! 둘은 언성을 높이며 극한으로 치닫는다. 이 공방전을 통해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다시는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리지를 향해 사랑을 고백하며 청혼한다. 하지만 언니를 불행에 빠트린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하는 리지!


 난 장님이었어 

 다시와 헤어진 리지는 아주 캄캄한 방안에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허공을 응시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거울 이론과도 같은 심리적 갈등 속에서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바라보는 리지. 그 모습을 부각시킴으로써 리지의 내면을 관객에게 들키는 효과와 함께 관객 또한 그녀와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상징했다.

 인생이란 깨달아 가는 과정으로 점철된 역사라고 말하고 싶다. 이 역사는 언제나 만남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으로 이뤄진다. 리지는 언니 제인에게 고백한다. "난 장님이었어." 다시는 잠옷 바람으로 리지의 거실을 찾아와 오해를 풀기 위한 편지 한 통을 놓고 간다. 언니와 빙리와의 관계, 위크햄의 거짓말로 빚어진 오해가 얽혀 있었음을 깨닫는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새로운 마음의 시선으로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그날 밤 오렌지색의 둥근 원과 어두운 그림자들이 빅 클로즈업(big closeup)된 리지의 눈동자 속에서 춤을 추며 스쳐지나 간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벌판을 지나 절벽에 올라 바람을 쏘이는 리지! 이제 편견에서 해방된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은총의 만남

 캐서린 부인의 방문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리지는 다음날 새벽 안개 자욱한 벌판에 서 있다. 멀리 저편에서 풀어헤친 셔츠 바람으로 급하게 그녀를 향해 오고 있는 다시! 캐서린 부인의 무례함으로 고통 받았을 리지를 위로하며 사랑을 거듭 고백한다. 어두운 밤의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정화된 사랑의 순수함이 드러난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은 두 사람의 미래를 예고하듯 환히 비춘다. 오해에서 이해로, 교만에서 겸손으로, 용서와 사랑의 과정을 겪은 진솔한 만남이며, 은총의 시간이다.

 다시는 오만했던 마음을 비운 겸손한 모습으로 리지를 기다리고, 청혼 허락을 받기 위해 리지 역시 진심을 말한다. "그분은 교만하지 않아요. 제가 오해한 거예요…. 우리 서로가 잘못 봤던 것이에요…. 제가 분별력을 잃었어요. 둘 다 고집이 센 점이 많이 닮았어요."

 예수님은 인간 그 자체를 믿으셨기에 모든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으셨고 편견의 잣대로 저울질하지 않는 분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모든 관계는 참된 만남에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은 TV 미니시리즈로 네 번이나 영국 BBC에서 제작돼 인기를 모았고, 영화로도 제작됐다. 2005년 영상의 귀재이자 탐미적 낭만주의자인 감독 조 라이트는 이 영화를 맡기 전 오스틴의 작품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문학보다 시각예술과 그 문법에 익숙한 사람으로서 영화 「오만과 편견」 한 장면 한 장면에 정성을 기울였다. 사랑 받는 작품들은 모두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고, 세대를 초월해 공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진실을 담아내고 있다.

 사랑의 관계는 남녀 관계뿐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이기도 하다. 이 만남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고 진실하려면 다음의 성경 말씀을 마음에 품어야 할 것이다.



이복순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


평화신문 :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98140&path=201402


[방주의 창] 페어플레이가 그리운 세상 / 민남현 수녀

발행일 : 2012-05-13 [제2795호, 23면]

인생의 축소판인 운동경기

운동감각이 둔한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은 걷기다. 그럼에도 운동경기를 보는 것은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기회가 있으면 즐겨본다. 운동경기는 인생의 축소판 같아 선수들의 몸놀림과 경기 운영방식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스포츠든 패하기 위해 하는 경기는 없기에 승부욕은 매우 중요하다. 승부욕은 집념과 도전정신에 가까운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승부욕에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신사도다. 최선을 다해 싸우면서도 깔끔하게 규칙을 지키는 모습은 감동 자체로 새겨진다. 좋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정당한 대결이다. 운동경기가 정정당당하고 개운하게 마무리되었을 때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수 있다. 인생 여정이 성공과 실패의 높낮이로 이루어지듯이 운동경기 또한 이기고 지는 것이 자연스런 과정이다.

나는 스포츠를 삶과 분리된 놀이로 보지 않는다. 어느 선수가 운동실력 이외에 훌륭한 인격을 갖추었다고 칭찬 받으면 그 자체로 반갑고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마치 ‘인생은 바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하며 직접 행동으로 가르쳐 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어느 신문의 사설

얼마 전에 이런 생각과 다른 신문 사설을 보았다. 논문 표절 문제에 휩싸인 한 금메달리스트의 경우를 언급하면서, 그는 학자가 아니라 ‘체육인’임을 감안해서 보아달라는 관대한 충고(?)였다. 이 글을 읽으면서 ‘각 사람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문제부터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고작 거짓으로 꾸민 하루살이의 찬란함일까? 객관성 없는 동정론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수에 대면하는 자세

물론 인간은 실수하면서 살아간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다. 그런데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실수한 후에 이를 대면하는 자세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오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이를 후회하는 마음이 있을 때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다시 살아난다.

때로 치명적인 잘못 앞에서 너무 부끄러워 ‘죄송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할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설사 사과와 용서가 말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눈빛이나 태도에서 그 마음이 읽혀질 때 많은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일어난 사태의 경우, 사건 당사자의 태도에서 이러한 페어플레이를 볼 수 없다는 씁쓸함이 마음의 골을 깊게 한다. 운동경기와 삶의 페어플레이가 서로 무관한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현실을 가늠하게 하는 반응들

이 사건에 대한 몇몇 반응들 또한 우리 사회의 윤리의식을 가늠하게 하는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국익을 손상시키면서까지 이 비리를 폭로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 제기다. 몇 년 전, 국제 과학 잡지에 실린 한국 논문조작 사건이 크게 요동을 칠 때도 일부에서는 국익을 위해 이 일을 덮어주는 것이 애국주의적 행위라는 이상한 논리를 폈다.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덮어주는 것이 나라의 이익에 정말 도움이 될까? 또한 거짓의 생명이 영원할 수 있을까? 다른 나라에 우리의 치부가 알려지면 부끄럽기 때문에 마치 없는 척 감추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국수주의적 발상이며 열등의식의 표현으로 보일 뿐이다.

또 다른 하나는 논문표절 대상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 대자보의 내용이다. 그 글에 드러난 심각한 도덕성 부재는 정신세계의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제보자를 처벌하라’는 제목 아래 ‘진상을 규명하고 학교 명예를 실추시킨 A씨를 색출해 처벌할 것’을 요청한다는 내용이다. 이 벽보가 등장한 시점이 논문표절심사 결과가 발표되기 하루 전인 것으로 보아 사실이 아님을 믿고 싶는 마음에서 나온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표절 수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된 상태이기 때문에 무조건적 낙관론을 전재로 한 이런 요청은 현실적 시각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생들의 얼룩진 생각

나에게 특히 심각하게 다가온 사실은 이 표현 뒤에 숨어 있는 생각이다. 논문표절 자체는 문제시하지 않고 이를 드러낸 것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맑은 지성을 갖추어야 할 대학생들의 생각이 많이 얼룩졌다는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더욱 아프다. 어둠은 결코 어둠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아프고 부끄러워도 밝게 드러내고 사죄할 때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민남현 수녀(엠마·성바오로딸수도회)

 

원문 보기: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44001&S=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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