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2019-10-11 18:00

▲ 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 제작, 판매하는 잠자는 요셉상. (사진=바오로딸 홈페이지)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정제천 예수회 한국관구장 신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숙면 비결 `잠자는 성 요셉상` 신심 덕분

걱정거리 쪽지에 적어 요셉상 밑에 두고 자

요셉 성인의 전구로 평온한 삶으로 인도하는 좋은 선교도구

잠자는 요셉상 신심? 매일 하느님 손길 느끼는 것

다리 구부린 채 자는 성 요셉상, 친근한 한국 남성 모습


[인터뷰 전문]

걱정거리나 고민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루는 때가 종종 있으시죠?

잠자는 동안 누군가 내 근심을 해결해 준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근심 해결사가 있다고 하네요. 항상 평안하게 잠이 든다고 하던데요.

그 비결을 전파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지난 2014년 교황 방한 때 바로 옆에서 수행과 통역을 맡으셨던 분이셨죠.

예수회 한국관구장 정제천 신부님 연결해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신부님 요즘 현대인들이 잠이 부족할 만큼 바쁘고 근심거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많은데요. 신부님께서는 푹 주무시는 편이십니까?

▶예, 저는 잠을 잘 자는 편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다가 깨는 일이 가끔 생기긴 합니다만 조금 있다가 다시 잠을 자곤 합니다.


▷어떻게 잠이 들기 전에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까?

▶저는 하루 생활을 돌아보면서 제가 응답을 했는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을 했는지 그렇지 못한 부분은 뭔지 돌아보면서 하루를 정리하고 잠을 잡니다.


▷그러시군요. 요즘에 숙면을 돕는 베개, 마사지부터 숙면솔루션 강좌까지 있을 정도인데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남다른 꿀잠 비결이 있다고 하던데 그 비법을 신부님께서 신자들에게 전수를 하고 계신다면서요. 교황님의 숙면 비결, 꿀잠 비결은 뭡니까?

▶네, 교황님은 잠을 잘 주무신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교황님 방한 마지막 날 서울 공항에서 배웅을 나왔던 정부 고위 관계자가 방한 일정이 빠듯했는데 힘들지 않으셨냐고 그렇게 인사말을 건네시더라고요. 그때 교황님께서 하신 대답은 ‘저는 잠을 잘 자니까 괜찮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저에게 개인적으로 당신은 하루에 6시간을 자는데 그거면 충분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황님이 하루에 6시간의 숙면을 취하시는 것이 습관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숙면의 비결을 필리핀 방문하셨을 때 2015년이죠. 강론하시면서 일반인들에게 밝히셨죠. 그것은 잠자는 성요셉상과 관계가 있습니다. 당신 머리맡에 잠자는 성요셉상이 놓여 있는데요. 이런저런 걱정거리가 있을 때 쪽지 적어서 그 요셉상 밑에 넣어두고 주무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시다시피 꿈에서 천사를 만나기도 했던 요셉 성인이 도와주신다는 거죠. 하느님께 기도해 주시고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게 도와주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요셉 성인께서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 함께 전구해 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신다는 거네요.

▶네, 그렇습니다.


▷교황님께 잠자는 요셉상은 인디안 원주민들의 좋은 꿈만 꾸게 한다는 드림캐처가 있고요. 걱정 들어 주는 걱정인형 같은 것도 있는데 이거와는 완전히 다른 점이 있네요.

▶그렇다고 봅니다. 재미있는 비교를 해주셨는데요. 그래도 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말씀해 주신 드림캐처가 걱정인형은 판타지 세계에 속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요셉 성인은 비록 2000년 전 과거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실존했던 인물이지 않습니까? 그런 점이 다르고 또 문제해결 하는 방식도 말씀하신 그것들은 그것들이 직접 해결해 준다고 믿는 반면에 요셉 성인은 어디까지 나 우리 걱정을 하느님께 전달해 준다는 거죠. 중재인입니다.

그래서 잠자는 요셉상의 신심은 다름이 아니고 요셉상을 믿는다거나 요셉을 믿는다거나 하는 것보다는 의로우신 의인이신 성요셉이 우리를 대신해서 하느님께 기도를 해주시면 그것이 큰 힘을 낸다고 하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결국 하느님에 대한 신심의 하나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요셉 성인이나 성요셉상을 믿는 건 아니니까요. 요셉성인이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긴 것처럼 저희도 성요셉을 통해서 하느님께 고민을 전하는 그런 게 됐으면 좋겠는데요.

신부님께서 보시기에 현대인들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도 잠자는 요셉상 신심이 필요하다고 보시는 건데 왜 필요하다고 보시는 겁니까?

▶제가 몇 년 전에 우연히 어떤 습관을, 담배 피우는 습관을 가진 분을 알게 됐는데요. 그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 애를 쓰다가 결국은 정신과에 입원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도와드리려고 하는데 놀랐어요. 빈자리가 없더라고요. 대형병원에 갔는데. 그래서 아는 분을 통해서 겨우 자리를 마련했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었습니다. ‘아, 이렇게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정신병원을 많이 찾고 있다.’ 그것은 뭐냐. 불면증이나 우울증. 신경쇠약, 요새 결정장애라는 표현도 있던데요. 삶의 고비에 힘들어 하는 이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바쁜 도시생활은 우리가 근본에서 멀어지게 하는 일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이런 일도 신경 계통에 정신과 계통에 이런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잠자는 성요셉상 신심은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우리 곁에 하느님께서 계시다. 그 하느님의 손길을 나날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데요. 그래서 평온하게 내일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좋은 도구가 된다고 생각이 돼서 소개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그런 분들에게라도 선물로 좋은 뜻으로 하게 되면 요셉 성인을 통해서 무언가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결국 믿음의 기본적인 구조를 통해서 믿음도 생기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해서 좋은 선교의 도구도 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서 여기저기 전파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러셨군요. 신부님 말씀 듣다가 문뜩 생각나는 겁니다. 요셉이 ‘하느님을 돕다’ 이런 뜻이라고 알고 있는데 하느님을 돕는 그 역할을 저희들도 할 수 있도록 요셉성인께서 함께 전구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선부님 천주교 신자들이야 요셉 성인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비신자분들이 청취자 분들 중에도 듣고 계신 분들에게 천주교 신자들이 왜 요셉 성인을 특별히 공경하고 그분의 삶을 묵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요셉 성인은 2000년 교회 역사에서 잘 알려진 성인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양부로서 숨은 성인이었죠. 그러니까 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예수님이시고 그 예수님을 낳으시고 기르신 성모님까지는 강조가 조금이라도 됐는데 요셉 성인은 목소리 한번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숨은 의인 성요셉. 그 분이 없었더라면 마리아가 어떤 고초를 겪었겠는가. 그리고 성 가정이 도대체 성립할 수 있었겠는가. 이집트로 피신을 가고 헤로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도록 하시고 다 어느 정도 크자 나자렛으로 돌아오셔서 세상살이를 가르쳐주신 성요셉도 방파제로 때로는 스승으로 인생의 길잡이로 역할을 해주셨다. 이렇게 믿는 것이죠.


▷그런데 교황님의 잠자는 요셉상과는 또 다른 모습이더라고요. 제가 홈페이지를 통해서 봤습니다. 보니까 성바오로딸수도회의에서 수녀님들이 제작해서 판매를 하시는 거로 아는데요. 교황님의 잠자는 요셉상과는 또 다른 친근한 성상 같기도 하고 마음에 드십니까?

▶첫 번째 받은 인상은 잠자기는 하는데 무릎 꺾인 각도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까지는 못 봤습니다.

▶90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보니까 안쓰러웠어요. 외국의 성요셉상은 다리를 뻗고 주무시거든요. 보는 이로 하여금 넉넉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반면에 한국의 성요셉상은 다리가 90도로 꺾여서 자고 있어요. 잘 때도 편안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떤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요셉상을 앞에 모시고. 그랬더니 어떤 자매님이 그걸 보시더니 ‘아, 신부님 제 남편이 잘 때 이렇게 자요.’ 그래서 영락없이 한국 남자들 한국의 남편들을 그린 것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인가 김유리 작가님이라는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요.

작가님이 이것을 성요셉을 외국인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맥락에서 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목수인 성요셉은 동네 사람들이 식탁이나 탁자 걸상 이런 것이 부서지거나 하면 고쳐달라고 가져올 것이고 선반, 문짝 고쳐달라고 집에 초대하면 그런 걸 달아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했을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서민들의 애환을 들어주고 편안하게 이웃이 되어 주는 그런 분이었을 거라는 거죠. 우리나라로 하자면 6, 70년대의 동네의 구멍가게나 전파상이 있었는데 그런 데서 일하는 아저씨 같은 그런 분이 아니었을까.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분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구상을 했다고 합니다.

작가분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훨씬 더 친근감이 느껴지고 우리 눈으로 신앙을 봐야겠다는 그런 마음이 새로 생겨서 신앙생활의 깊이를 더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그랬군요.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잠자는 성요셉상 신심을 전파하고 성상의 제작과 보급을 제안하신 정제천 예수회관구장 신부님 만났습니다. 신부님, 오늘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cpbc 김유리 기자(lucia@cpbc.co.kr) | 최종업데이트 : 2019-10-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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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제천 신부 "`잠자는 성 요셉상` 신심…평온한 삶 이끌어"

▲ 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 제작, 판매하는 잠자는 요셉상. (사진=바오로딸 홈페이지)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정제천 예수회 한국관구장 신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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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하느님의 섭리(천향길 수녀, 성바오로딸 수녀회)


2018.12.16 발행 [1494호] 가톨릭 평화신문


“책 많이 파셨어요?” 도서선교를 나가면 신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처음엔 듣기 불편했습니다. 출판 사도직이란 특수성 때문에 수도생활을 시작했다가 길을 바꾸는 자매도 봤고, 수도회를 아예 옮기는 자매도 봤습니다. 그 까닭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었는데 저희는 다른 형태의 가난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종신서원을 앞두고 제가 받은 성소에 충실하기 위해서 강한 체험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출판 사도직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는 표징을 보여 주십사고. 그러면 고작 ‘책 파는 수녀’라는 말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만든 매체를 누구에게나 무료로 나눠줄 수 있다면 이런 고민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질투가 났습니다! 아는 수녀님이 ‘요셉의 집’이라고 무료급식소를 운영하시는데, 당신은 매일매일 하느님의 섭리를 만난다고 하셨습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을 예수님처럼 맞이하시는데, 예수님이 굶을까 봐 쌀이 떨어지면 쌀이 들어오고 손이 필요하면 봉사자가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그 일을 계속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정말 부러웠습니다.

드디어 만났습니다! 시몬 형제님을 만난 건 본당 도서선교의 자리였습니다. 그분은 책을 통해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며 저희에게 점심을 사 주셨습니다. 당신 삶의 역사를 들려주시면서 성경 다음으로 가브리엘 보시의 「그와 나」를 많이 읽었다고 하셨습니다. 닳을 대로 닳은 책에는 완독한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앞뒤 면지에 빼곡했습니다. 그때의 뜨거움과 전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주님은 눈에 보이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구의 체험이 아니라 저만의 고유한 체험이 필요했기에 주님은 힘을 주셨습니다. 그림책을 썼을 때도, 라디오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도, 또 인터넷 서점을 운영하며 전자우편 서비스를 하는 지금도 저는 주님의 섭리에 의지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노력합니다.

주님은 초대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도 자선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책을 기획하고 출판하려면 저희의 노동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력도 필요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바오로딸 출판 사도직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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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아버지의 집(천향길 수녀, 성바오로딸 수녀회)


2019.01.01 발행 [1496호] 가톨릭 평화신문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저는 늘 빈자리를 느꼈습니다. 이 ‘원체험’은 나이보다 일찍 철들게 했고 삶을 스스로 개척하게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엔 외롭고, 쓸쓸하고, 혼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웃으면서 하느님이 저를 키웠다고 말하지만, 가끔은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라면 성가정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늘에서 온 가족이 아침저녁으로 기도하고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친가와 외가 모두 다 구교집안이라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혼인성사와 병자성자, 성품성사 등 삶에서 칠성사의 은총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아무리 큰 사랑을 받고 자랐어도 부모 없이 자랐다고 욕할까 봐 뭇시선에 위축되곤 했습니다. 더 반듯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편견이 좀 심하잖아요?

어느 날 요한복음 14장 1-7절을 묵상하는데 ‘아버지의 집’, ‘거처할 곳’, ‘자리’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통증이 왔습니다. 예수님께 여쭸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제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지….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성체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주님은 위로를 주셨고 치유해 주셨습니다.

저는 한 번도 제 집이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집도 제 집이 아니었고, 작은아버지 집도 제 집이 아니었습니다. 동생이 결혼해서 가정을 가졌지만, 동생 집도 제 집이 아니었고요. 하느님의 집이라고 수도원에 들어왔지만, 제가 생각했던 가정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원체험이 너무 아파서 어디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사는 저를 주님께서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나와 함께 아버지의 집에 살자고요.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그 사이 호주제가 폐지되고 세상의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혼족, 혼밥이란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삶의 패턴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맞아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겨 봅니다. 그 어디에도 집이 없어 외롭고 쓸쓸했던 저처럼 어쩌면 그들도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할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그러기에 아버지 집으로 가는 확실한 길은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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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사랑의 ‘비스코티’(천향길 수녀, 성바오로딸 수녀회)



2018.12.25 발행 [1495호] 가톨릭 평화신문


내일 밤이면 아기 예수님이 오십니다. 마중 나갈 채비는 다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바쁘고 분주하게 지냈습니다. 한 해 중 대림시기가 가장 바쁜 것 같습니다. 인터넷 서점 사도직 특성상 삶에서 오는 피곤함을 기꺼이 봉헌하고 저의 부족함을 보속의 정신과 기도로 채우며 기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성탄 축제를 준비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으리라 생각됩니다.

인터넷 서점이 시작된 지 벌써 스무 해가 지났습니다. 이를 먼저 기억하고 챙겨주신 분은 원장 수녀님과 주방 수녀님이셨습니다. 주방 수녀님이 처음 인터넷 서점을 시작하셨거든요. 올해 성탄 이벤트는 이탈리아 쿠키인 ‘비스코티(biscotti)’입니다. 선교사로 러시아와 이탈리아에서 살았던 원장 수녀님이 어느 해 처음 만들어 주셨는데 바삭바삭한 식감이 참 좋았습니다. 비스코티는 다른 쿠키와 달리 오븐에 두 번 굽습니다.

원장 수녀님은 인터넷 서점 회원을 위해서도 꼭 한 번 쿠키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주방 소임을 해 봤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원의 바쁜 살림과 대식구를 위해 매 끼니를 준비하는 것도 어려운데 덤으로 쿠키를 굽다니요.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기꺼이 반죽을 준비해 주신 수녀님과 함께 쿠키를 구워주신 수녀님들, 또 예쁘게 포장해 주신 수녀님도 고마웠습니다.

저는 아기 예수님께 드릴 구유 예물로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가 일치를 이루며 기쁘게 살 수 있었던 것과 피곤을 봉헌하며 이웃에게 기쁨을 줄 수 있었던 것을…. 때로는 공동체 생활 자체가 힘겹고 십자가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함께하기에 힘든 일도 쉽게 넘을 수 있고 웃을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 마음자리에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시리라 믿습니다.

성탄의 가장 큰 신비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주님이 계신다고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감사송은 이렇게 초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깨어 기도하고 기쁘게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탄 축제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하셨다”고요.

큰 빛이 오십니다. 주님은 어두운 세상에 하늘을 열고 오십니다. 그분은 선물처럼 우리 기다림을 채워주셨습니다. 안드레아 슈바르츠는 「성탄이 왔다!」에서 신비이신 하느님께 시간과 공간을 내어드리자고 초대합니다. 이 신비를 내 삶 속으로 모셔올 때 비로소 성탄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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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성탄을 기다리며(천향길 수녀, 성바오로딸 수녀회)

2018.12.02 발행 [1492호] 가톨릭 평화신문


기다림은 희망입니다. 그리움 또는 설렘입니다. 성탄을 생각하면 어릴 적부터 그랬습니다. 공소가 있는 시골 마을에서도 대림절이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 성극을 준비하고 성탄의 기쁨을 나누곤 했습니다. 먼 기억 속의 성극을 소환한 건 순전히 외가 방계 형제들을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6년 전부터 11월 마지막 토요일이면 형제 모임이 있습니다. 첫 모임이 이태원에서 있었는데, 저는 연락도 없이 수녀원에 들어온 지 스무 해가 넘어 처음 보는 자리라 서먹서먹했습니다. 다들 저보다 머리도 희끗희끗하고, 오랜만이라 선뜻 말을 놓기도 어려웠습니다. 어색함을 떨치고자 초등학교 때 본 성극 중에 대사로 부른 노래가 아직 생각난다고 했더니 갑자기 어수선해졌습니다.

“그때 내가 솔로몬 역할을 했었는데”, “난 아기”, “난 가짜 엄마”, “난 진짜 엄마”, “어,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도 나도!!” 여기저기서 말문을 열더니 순식간에 분위기가 환해졌습니다. “하느님보다 엄마가 더 무섭다”는 동생이 있는가 하면 “신앙의 자유를 갖고 싶다”는 동생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순식간에 세월을 뛰어넘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겐 공통의 기억이 있었습니다. 거기 모인 형제 중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요. 명절에 자식들이 다니러 가면 성체를 영하는지 영하지 않는지 눈여겨보신다는 친척 어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1801년 이전부터 교우촌을 형성해 살아온 그곳은 현재 노인들만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공소 회장이라는 직분을 봉사했기에 길 가는 사람 아무에게나 “회장님” 하고 부르면 뒤를 돌아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그 시절, 우리는 넉넉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부유했고, 다들 신앙만큼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지키며 살아가는 걸 보면 역시 신앙은 최고의 유산인 것 같습니다. 냉담한 지 45년 만에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외숙부를 봐도 그렇고, 누가 하느님을 떠나 살더라도 언젠가는 아버지의 집으로 꼭 돌아오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아직도 사순절이면 바쁜 농번기에도 불구하고 매일 저녁 교우들이 모여 성로신공(聖路神功, 십자가의 길)을 바친다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방학이라 꾀를 부리고 싶어도 면제되지 않았던 기도생활, 새벽이면 조과를, 저녁이면 만과를 온 가족이 함께 바쳤던 시간이 향수로 남아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판공을 준비하고 공소에 모여 축제를 준비하던 그때의 설렘으로 돌아가 성탄을 기다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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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 초월한 말씀의 학교…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 40주년

성바오로딸수도회, 14일 감사 미사 봉헌

2018. 04. 08발행 [1459호]



▲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의 신약 입문 2학기 연수회에 참여한 수강생들이 성경공부를 하면서
느낀 소감을 말하고 있다. 성바오로딸수도회 제공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말씀에 맛 들이게 해주는 학교인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이 14일 40주년을 맞는다.

성바오로딸수도회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원장 오경은 수녀)은 14일 오후 2시 30분 서울 강북구 오현로7길 34 수도원에서 구요비(서울대교구 보좌) 주교 주례, 통신성서교육원 강사진 및 평가 봉사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40주년 감사 미사를 봉헌한다.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요한 17,21)를 주제로 봉헌하는 미사에는 수도자, 평신도 봉사자, 졸업생 등 80여 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이 걸어온 40년 발자취에 함께 해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자리다.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은 한국 천주교회 안에 성경공부 교육과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1970년대부터 우편과 온라인을 활용해 하느님 말씀을 전해온 ‘말씀의 학교’다. 성바오로딸수도회 설립자인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에 의해 1963년 로마에서 시작된 성경공부 과정 ‘Ut Unum Sint(하나 되게 하소서)’가 그 시초이다. 한국에는 1978년 서울 가톨릭교리신학원 병설기구로 설립됐다. 그러다 2004년 교리신학원에서 독립한 뒤로는 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해왔다.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http://uus.pauline.or.kr)의 성경공부 과정은 크게 ‘우편 학습’과 인터넷을 활용한 ‘이러닝(e-learning) 학습’으로 이뤄져 있다. 2001년부턴 연령대에 맞는 쉬운 성경공부 과정인 ‘어르신을 위한 새로 나는 성경공부’도 개설됐다. 신ㆍ구약 기초반인 ‘입문 과정’이 각각 2년 과정으로 구성돼 있고, 입문 과정을 심화하는 ‘중급 과정’은 4년이다. 입문과 중급 6년 과정을 마친 수강생들은 다시 2년 과정의 ‘성바오로신학 영성 과정’을 수강할 수 있다. 강사진은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한 최광희(서울대교구) 신부를 비롯해 로마와 프랑스, 독일에서 공부한 성경 전문가들로 꾸려졌다.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은 2017년부터 휴대폰이나 태블릿 등의 모바일 기기만으로도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입문 및 중급 교육 과정도 개설했다. 모바일 성경공부 과정은 이동하면서도 성경공부를 할 수 있어 본당 성경공부 모임에 출석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매우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편과 온라인을 통한 성경공부라 해서 강사와 대면하는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수강생들의 중도탈락 예방과 소속감 강화를 위해 오프라인 강의를 겸한 연수회도 연다. 입문 과정은 1년에 2차례, 중급 과정은 연 1회씩이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많은 해외 거주 신자들도 장소 제약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통신성서 수강생들이다.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장 오경은(헬레나) 수녀는 “시공간을 초월해 하느님 말씀을 공부할 수 있는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을 통해 말씀 안에서 힘과 위로와 지혜를 얻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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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연 신부 「왜 우리는 통하지 않을까」 신간 내고 따뜻한 말이 가진 힘찬 생명력 강조

<2015.07.05 평화신문>


▲ 황창연 신부

평소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스타 강사 황창연(수원교구 성필립보생태마을 관장) 신부가 요즘 개점휴업(?) 상태다. 다 그놈의 메르스 때문이다. 성필립보생태마을 6월 피정 일정이 전부 취소됐다. 

▲ 「왜 우리는 통하지 않을까」


최근 「왜 우리는 통하지 않을까」(바오로딸/9000원)라는 신간을 낸 황 신부를 6월 21일 서울의 한 공연장에서 만났다. 강연을 하러 온 게 아니라 뮤지컬을 보러 온 황 신부는 밝은 표정에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TV에서 보던 그대로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하잖아요? 요즘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공연을 보러 올 수도 있잖아요. 정말이지 오랜 만의 휴식입니다.”

황 신부는 1년에 평균 300회 정도 강의를 한다. 기본적으로 생태마을에서 하는 강의, 그리고 외부 특강과 외국에 나가서 하는 강의를 합친 숫자다.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기업이나 대학 같은 외부에서 요청하는 강연은 3분의 1 정도밖에 소화를 못 한다. 그렇게 바쁘게 살았으니, 뜻하지 않은 휴가가 꿀맛 같을 수밖에 없다.

책은 황 신부가 지난 한해 강의 주제로 삼았던 대화와 소통에 관한 것이다. 강의 초안을 토대로, 다른 이의 방해를 받지 않아도 되는 외국행 비행기와 외국 현지에서 주로 썼다. 황 신부는 보통 1년 중 3개월을 강연차 해외에서 보낸다. 
황 신부는 우리 사회 불통의 주된 원인을 가부장적 문화에서 찾았다. 

“가부장적 문화에 젖어 사느라 기본적인 토론과 나눔이 자리를 잡지 못했어요. 일방적 지시가 있을 뿐입니다. 상명하달식 군대 문화도 큰 몫을 했습니다. 그런 문화에서 마음의 문을 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약한 자의 목소리는 더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황 신부는 “무엇보다 먼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대화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데, 대다수 부모가 그 중요한 일을 학교와 학원에 맡겨 버리고 ‘나 몰라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소통을 위한 첨단 기기인 스마트폰이 오히려 불통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소통의 달인이 되기 위한 비법은 무엇일까. 황 신부가 꼽은 비법은 바로 ‘긍정적인 말’이다. 

“말에 복이 있습니다. 복은 말에서 나옵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합니다. 긍정적인 말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부정적인 말에는 기쁨과 평화가 없어요. 부정적인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과는 같이 있고 싶지 않을 겁니다. 제 별명이 ‘황긍정’입니다. (웃음)” 

‘긍정’이 아주 뇌리에 박히도록 책에 나온 한 구절을 더 인용해본다. 

“말은 습관이다. 평소 말을 곱게 하는 사람은 자다가도 말이 곱게 나오고, 입버릇이 비판과 냉소로 일관하는 사람은 좋은 말을 할지라도 듣는 사람 기분을 어쩐지 씁쓸하게 한다. 인간에게 말은 곧 생명이다. 따뜻하고 풍성한 말은 힘찬 생명력을 전파하며 세상을 향기롭게 만든다.” (24~25쪽)

황 신부는 말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글도 잘 쓰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2011년에 낸 행복 길라잡이 「사는 맛 사는 멋」(바오로딸)은 15만 권 넘게 팔렸다. 지금은 10년 전에 선보인 「농사꾼 신부 유럽에 가다」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지은 책이 한두 권이 아니다. 황 신부 강의처럼 하나같이 쉽고 재미있다. 

황 신부는 대학생 의료선교팀을 꾸려 18일 아프리카 잠비아로 봉사 활동을 떠난다. 잠비아에 1주일가량 있다가 미국과 캐나다로 건너가 순회강연을 할 계획이다. 다니는 게 즐거워 맨날 노는 것 같단다. 

황 신부는 경기도 여주의 52만 5600㎡ 부지에 제2생태마을을 짓고 있는데, 3년 후에 완공될 예정이다. 종파를 초월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피정 센터로 조성하는 게 꿈이다. 수도권과 가까워 많은 이가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황 신부의 올해 강의 주제가 궁금했다. 

“한마디로 사람을 존중하자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 일례가 되겠지요. 특히 사회적으로 보잘것없는 지위의 사람은 더 낮춰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황 신부의 강한 긍정의 기운을 듬뿍 전수받은 유쾌한 인터뷰였다. 황 신부의 강의 동영상이든 책이든 직접 접하면 같은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글ㆍ사진=남정률 기자 http://njyul@pbc.co.kr


[완전한 사랑](11)성 바오로 딸 수도회

파란 수도복 입은 편집인·VJ·PD… 미디어 선교의 주역


<평화신문 2015.04.05 발행>

파란 수도복 입은 편집인·VJ·PD… 미디어 선교의 주역


▲ 성 바오로 딸 수도원의 녹음실.


▲ 3월 3일 ‘행복한 책읽기’ 모임에 참석한 서울 마장동본당 신자들이 이 요셉피나 수녀와 책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책 만드는 수녀들


부슬비가 내리던 지난 3월 어느 날, 서울 미아동 바오로딸출판사에는 베일을 쓴 수녀들이 한창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글자 크기를 더 키울까요?” “이미지는 이게 더 낫지 않겠어?” 수녀들이 컴퓨터에 원고를 띄워놓고 의견을 나눈다. 수녀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모습이 상상이 잘되지 않지만, 바오로딸에는 포토샵이나 인디자인 같은 프로그램도 능숙하게 다루는 수녀들이 많다. 

‘출판 사도직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성 바오로 딸 수도회는 책의 기획부터 제작, 편집, 판매까지 전 과정을 수녀들이 담당한다. 영성과 신학, 성경, 철학, 심리ㆍ교육, 아동문학 등의 서적부터 음반과 영상, 인터넷 성경공부 프로그램까지 수녀들이 담당하는 분야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성 바오로 수도회와 함께 오디오방송 팟캐스트를 시작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 바오로 딸 수도회 홍보 담당 이 레나타 수녀는 “바오로딸은 모든 매체에 선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담아 교회뿐 아니라 이 시대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며 “특히 시대와 지역의 특성에 따라 적절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찾아내 활용하는 것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바오로딸의 사도직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진화해가고 있다. 1980년대부터는 본당에서 교리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동영상을 제작해왔고 1990년대 컴퓨터가 보급되면서는 교회 소식을 전하는 것은 물론 수녀들이 고민 상담을 해주는 ‘가톨릭마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2011년부터는 인터넷을 통해 성경 공부를 할 수 있는 ‘이러닝 학습’을 실시하면서 사도직의 범위를 점점 넓혀가고 있다.

‘행복한 책읽기’

바오로딸의 새로운 사도직 중 하나가 미디어를 통한 영성 교육이다. 5년 전부터 ‘행복한 책읽기’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는 독서 모임은 바오로딸의 출판 사도직이 진화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책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상처를 치유하면서 신앙을 성숙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행복한 책읽기는 지역별로 10명 정도의 소그룹이 수녀 1명과 10주 동안 만남을 이어간다. 1주에 1권씩 책을 읽고 나눔을 하는 식이다.

행복한 책읽기를 통해 그동안 멀리했던 책을 가까이 두게 된 이들이 많다. 평소 책을 잘 읽지 않았던 이인숙(마리아, 서울 마장동본당)씨는 모임을 시작한 뒤 침대맡에 항상 책을 놓게 됐다. 이씨는 “남편과 아이들이 제가 책을 들고 있는 것만 보고도 깜짝 놀라곤 한다”며 “책은 여전히 잘 읽히지 않지만 예전보다 책과 친해진 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씨가 모임에 꾸준히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모임을 이끌어주는 이 요셉피나 수녀 덕분. 행복한 책읽기 회원들은 하나같이 “수녀님이 있어 모임이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나눔이 훨씬 풍요로워진다”고 입을 모은다.

요셉피나 수녀는 매주 책 내용과 관련해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을 준비해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말하도록 한다. 어떤 경우에도 말을 중간에 끊거나 토를 다는 법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책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기 마음을 읽고,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요셉피나 수녀는 “책은 읽어도 자기 마음까지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내 안의 숨기고 싶은 부분까지 하느님과 이웃들에게 말하면서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이끄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성 바오로 딸 수도회

1915년 6월 15일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가 이탈리아에서 창립한 성 바오로 딸 수도회는 성 바오로 수도회와 스승 예수의 제자 수녀회,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사도의 모후 수녀회와 4개의 재속회, 협력자회와 함께 바오로 가족에 속해 있다.

시작은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이탈리아 알바의 한 집에서 재봉 기술과 교리를 가르치던 여성 모임이었다. 성 바오로 수도회의 인쇄기술학교에서 인쇄한 서적들을 보급하면서 모임 인원이 늘어나자 테클라 메를로(초대 총원장) 수녀의 지도 아래 첫 번째 서원을 개설했다. 2015년 현재 전 세계 50여 국가에 진출해 있다.



한국에는 1960년 진출해 1961년 서울 충무로에 서원을 열면서 매스미디어 사도직에 투신해왔다. 출판 사도직 외에 음반과 영상을 만들거나 인터넷서점을 운영하고 통신성서교육원을 통해 우편 학습과 성경 공부(사이버 성경 공부)도 직접 제작한다. 2013년에는 가톨릭 콘텐츠를 무료로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홈페이지 및 애플리케이션 ‘바오로딸 콘텐츠’를 개설했다.


현재 한국관구에는 서울 미아동 본원 외에 인천, 일산, 원주, 부산 등 10개 지역에 분원이 있으며 전국에 15개 서원을 운영하고 있다. 3월 기준으로 국내에 종신서원자 204명, 유기서원자 24명이 있으며 해외선교사로 28명이 파견돼 있다.

바오로딸의 로고는 지구 모양과 알파벳 ‘P’자로 구성돼있다. 이는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바오로딸의 사명을 상징한다. ‘P’는 ‘바오로의 딸’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Pauline’의 머리글자이자 알베리오네 신부가 성 바오로 딸 수도회의 모범이며 스승이 되기를 바랐던 바오로(Paulus) 사도의 머리글자이기도 하다.



글ㆍ사진=김유리 기자 lucia@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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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중국에서 활동하는 이태종 신부, 「차쿠의 아침-소설 최양업」발간


발행일 : <평화신문> 2014-09-21 [제1282호, 21면]



한국교회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에 푹 빠진 후배 사제가 최 신부를 다룬 소설을 냈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이태종(청주교구) 신부가 3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펴낸 「차쿠의 아침-소설 최양업」(바오로딸/1만 4000원)이다. 한국교회에서 사제가 종교소설을 쓰기는 윤의병 신부의 「은화」에 이어 두 번째다. 

“최 신부님이 사제품을 받고 조선에 입국할 때까지 7개월간 사목한 중국의 차쿠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최 신부님과 김대건 신부님의 죽고 못 사는 애틋한 우정도 널리 전하고 싶었고요.”

소설은 사제 수품을 앞둔 김대건 신부와 최 신부의 차쿠에서의 마지막 만남(1845년 7월)을 시작으로 1849년 12월 최 신부의 조선 입국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증된 교회사 사료를 기반으로 최 신부의 인간적 면모와 신앙, 김 신부와의 혈육보다 진한 우정은 물론 시공을 초월하는 두 신부의 영적 친교를 감동적으로 그렸다. 차쿠는 최 신부는 물론 김 신부와도 깊은 인연을 간직한 중국 교우촌이다. 

이 신부는 “학창 시절 문예부장을 줄곧 맡을 만큼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소설 쓰기는 처음이어서 소설 작법 책도 읽어봤다”며 “소설 쓰느라 머리가 하얗게 다 셌다”고 웃었다.

이 신부는 2005∼2008년, 2011년부터 현재까지 두 차례 중국에 머무르는 동안 한국교회와 관련된 사적지는 거의 빼놓지 않고 찾아다녔다. 한국에서 연구하는 여느 교회사학자와 달리 중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차쿠와 백가점이 같은 곳임을 발견한 것도 그 덕분이다. 

“소설을 쓰면서 최 신부님께 점점 매료되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최 신부님은 소박한 일상을 승화시킨, 일상에서 순교의 모범을 보인 분입니다. 지금 제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최 신부님처럼 살아보는 것입니다.”

이 신부는 현재 중국 요녕대학 사회보장학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내년에는 차쿠로 들어가 어르신 2, 3명을 모시고 양로원을 시작하려고 한다. 중국도 노인 문제가 시급한 현안이다. 양로원은 중국을 가장 잘 도울 방법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차쿠를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개발하는 것이 이 신부의 꿈이다.

“차쿠는 안중근 의사가 갇혔던 여순감옥이나 압록강 관광도시인 단둥과 2시간 거리입니다.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췄습니다. 많은 분이 차쿠를 방문했으면 좋겠습니다.”

최 신부의 사목 보금자리인 충북 배티 근처에서 태어났다는 이 신부는 “기회가 된다면 이 소설에 이어 최양업 신부의 한국 선교활동을 다룬 소설을 꼭 쓰고 싶다”며 최 신부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을 드러냈다.


글ㆍ사진=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529490&path=201409


 <차쿠의 아침-소설 최양업> 저자 간담회


어제 8월 27일(수) 오후 2시, 명동 가톨릭회관 바오로딸 서원에서

<차쿠의 아침-소설 최양업> 저자 이태종 신부의 기자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가톨릭신문, 평화신문, 평화방송,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등

교회 언론사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는데요,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며 앞으로의 계획까지 이태종 신부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 보았습니다.


2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이 세상에 나온 <차쿠의 아침>을 보는 순간,

아들을 하나 낳았다고나 할까, 아님 딸을 시집보낸 아비의 마음이 이럴까,

대견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는 이태종 신부.

 

 


머리에 하얀 눈이 내려앉은 신부를 보고 휴가 가서 뵌 아버님이 처음에는 “글쎄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어유.” 하시더니 1년 반이 더 지나 뵈었을 때는, “아유 할아버지 신부님 오셨시유?” 하더랍니다. 이 우스갯소리는 소설을 준비하면서 이태종 신부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까를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왜 이토록 뼈를 깎는 고통으로 최양업 신부에 대한 소설을 썼을까요?

한마디로 ‘차쿠’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고, 김대건과 최양업, 두 분의 애틋한 우정을 세상에 외치고 싶었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이유요 동기입니다.

“일상생활이라는 소박한 밭”에서 생명의 진주를 캐어내는 ‘최양업 영성’을 거듭 강조하는

이태종 신부는 무엇보다 차쿠에서 제일 해보고 싶은 것은 최양업처럼 살아보는 일,

최양업 신부님 흉내 내며 그분처럼 말하고, 그분처럼 세상을 대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최양업 신부처럼 살면 기쁘고, 그렇지 못하면 후회가 밀려왔다고 고백하면서,

여유와 기다릴 줄 아는 너그러움을 주시고 자신을 변화시켜 주신 분이기에...

 

 

 

 

 

 

이 모든 일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이라고 말하는 그의 순박한 웃음 위로

‘반딧불이’가 반짝거리며 일제히 날아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차쿠를 널리 알리고, 최양업 신부를 닮고자 노력하는 이태종 신부,

몇 년 뒤 다시 소설가 이태종 신부로 만나 보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 책이 궁금하시다면~

http://www.pauline.or.kr/bookview?code=18&subcode=01&gcode=bo1001304

 

저자 간담회를 위해 애써 주신 홍보팀 책임 이 레나타 수녀님~

첫 간담회 문을 잘 열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찍고 쓰고 올리고

바오로딸 홍보팀 제노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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