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버리는 손도 두려우시죠? / 민남현 수녀

발행일 : 2012-03-04 [제2785호, 22면]

 ▲ 민남현 수녀

 

동네 골목길을 지나다가 벽에 붙은 글을 보았다. ‘쓰레기 무단 투기 신고’라는 제목 아래 세 줄의 글이 굵직한 글씨로 진하게 새겨져 있다. 무심코 바라보았는데 그 메시지가 글씨의 두께만큼이나 강하게 메아리쳤다. 순간 글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속성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버리는 손도 두려우시죠? 우리 좀 더 떳떳한 구민이 되자구요. 누가 뭘 버리는 것을 보고 있잖아요.”

처음 이 글을 읽고 나선, 작성자가 쓰레기 버리는 손을 보고 있는 존재를 누구라고 상상한 것일까 궁금했다. 시공간을 초월해 현존하시는 주님의 눈을 항상 기억하며 스스로 책임 있는 삶을 살라는 권고일까?

남의 시선에 매여 있는 삶

당연히 이와는 거리가 먼 일반적인 경고의 말임에 틀림없다. 주위의 누군가가 드러나지 않게 떳떳하지 못한 행위를 하는 나를 보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충고다. 우리의 문화적 심성과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은 글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메시지를 통해 우리의 일상 행위가 얼마나 남의 시선에 매여 있는지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함께 살아가는 공간에서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것은 예의와 배려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을 지닌다. 그러나 동시에 내 행위의 동기가 순수한 가치 판단에서 나온 자유롭고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서 받을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

이 글은 적절하지 않은 장소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옳지 않음을 행위자 자신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두려운 마음’의 표현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그 행위를 포기하게 하는 근본 요인은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타인의 평가라는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곧 올바른 행위의 선택이 객관적 도덕 가치보다는 ‘타인의 눈’을 의식한 결과임을 말하는 이 글은 우리 안에 자연스레 형성된 윤리의식이 무엇을 바탕으로 세워졌는지 여과 없이 보여준다.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소극적 자세가 삶을 대처하는 하나의 기술로 받아들여지기에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는 오히려 서로가 적정선에서 질서를 유지하며 살도록 교육하는 방식에서 늘 강조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남을 강하게 의식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자연스런 분위기다.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몰래 하게 될 때 대부분 ‘누가 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으로 스스로를 자제하거나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라는 말로 다른 사람한테 충고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타인의 눈을 의식하여 내 삶의 행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좋은 일이고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동기는 최소의 기준이지 최대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자신의 확신에서 나온 진정한 가치 판단이 아닌 타인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선택하는 행위의 연속이라면, 그 삶은 불안정하고 자아 정체성까지 잃을 수 있는 나약함에 휘청거리게 된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힘

벽에 붙은 세 줄의 글을 읽으면서 씁쓸함을 강하게 느낀 이유는, 아마도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건강한 도덕성 상실이 바로 이러한 외적 명분만을 중시하는 문화적 요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 듯하다. 과대포장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욱 심각한 부패와 부조리로 치닫게 하는 요인이 된다.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힘은 하느님의 마음과 가까운 깨끗한 양심이다. 내 마음의 진정한 평화는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 점수에 좌우되지 않고, 양심이 일러주는 가치대로 삶의 내용을 선택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삶의 선택 기준을 생각하고 있자니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이 불현듯 떠오른다.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주님의 말씀이 우리 행위의 기준이 될 때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 타인의 눈을 의식한 겉치레 행위는 소용가치를 잃는다. 나에 대한 주님의 평가 점수가 일차적으로 중요하다고 느낄 때 내 존재 가치가 보장되고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며 평화로운 마음을 소유하게 된다.


민남현 수녀 (엠마·성바오로딸수도회)


원문 보기: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37996&S=민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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