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 전 3년간 이야기 담은 미국 베르나르딘 추기경의 고백록
평화의 선물 (J.L. 베르나르딘 지음/강우식 옮김/바오로딸/172쪽/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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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는 J.L. 베르나르딘(1928~1996) 추기경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고백록이다. 베르나르딘 추기경은 책에서 선종하기 직전 3년간 일어난 일을 서술하며 이 시기를 소설가 찰스 디킨스 말을 빌어 '최고의 시기이자 최악의 시기'라고 했다. 교계 안팎에서 신임 받는 시카고대교구장이던 그에게 1993년 한 남성이 나타나 그를 성추행으로 고소했다. 1970년대 베르나르딘 추기경에게 성추행 당했다고 언론에도 밝혔다. 평탄했던 베르나르딘 추기경 삶은 그날부터 어둠의 골짜기에 빠져들었다. 물론 베르나르딘 추기경은 결백했다. 조사 결과 고소 사건은 계획된 음모로 밝혀졌다. 베르나르딘 추기경이 고소한 남성을 찾아가 용서하고 화해의 미사를 집전하기까지 1년 남짓한 시간은 시련의 시기이면서도 하느님을 체험한 은총의 시기였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나는 어려운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고,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힘든 시기를 보내며 하느님께서 나를 차지하시도록 그 어느 때보다 철저히 자신을 비웠다."(63쪽) 성추행 소동이 가라앉을 무렵인 1995년 베르나르딘 추기경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수술과 치료를 병행해 한때 병세가 호전되기도 했지만 암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간으로 전이했다. 이미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 베르나르딘 추기경은 암 앞에서도 의연했다. 그는 입원해 있는 동안 암환자와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병자성사를 주고 미사를 집전하며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줬다. 그는 투병생활 마지막까지 사목에 전념했다. "하느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은총은 어려운 상황을 잘 받아들이도록 하는 힘이었다. 특히 허위 고소 사건 때 그랬고, 지금은 암으로 그렇다. 이런 것이 바로 그분이 내게 허락하신 평화의 은총이다. 그 보답으로 나는 투병하는 이들이 하느님 평화를 누리며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나가게 도움을 주고 싶다."(111쪽) '최악의 시기'를 은총으로 여기며 '최고의 시기'로 만든 베르나르딘 추기경의 믿음과 희망이야말로 그가 남긴 최고의 선물이다.
평화신문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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