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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속 바오로딸

<소프라노 김청자, 아프리카 '루세케로'가 된 사연>

by 바오로딸 2014. 10. 20.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출간  



(서울=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김청자(70) 씨는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섰던 유명한 메조소프라노였다.

1963년 외국 신부의 도움으로 독일 간호조무사로 가게 된 그는 "내 꿈은 음악 공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돌보던 환자를 통해 기적처럼 음악계의 은인을 만났고, 독일에 간 지 다섯 달 만에 레오폴트 모차르트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 공부를 시작했다.

독일 카를스루 국립오페라단원 생활을 비롯해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16년간 이름을 날리면서 뒤셀도르프 오페라단의 프리마돈나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뉴욕,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등에서 독창회도 열었다. 

1973∼1978년 중앙대와 연세대 음대 성악과 교수, 1994∼2010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교수로 재직했다. 

이렇게 '잘 나가던' 성악가였던 김 씨는 최근 펴낸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바오로딸출판사)에서 왜 모든 것을 버리고 돌연 아프리카로 떠났는지 털어놓는다.

그가 처음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나이 예순이던 2005년.

안식년을 맞아 은퇴 후 삶을 준비하며 세계 곳곳을 여행하던 중 아프리카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 그런 환경에서 춤과 노래를 잃지 않는 아름다운 삶을 보면서 "이곳이 내 영혼의 고향이 될 것"이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2010년 2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정년퇴임 하자마자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후원회'를 만들었고 그해 9월 혼자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말라위에서 고아들을 돌보면서 그들을 위한 음악학원을 세우고 한국 유학의 길을 열어주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아이들은 그를 '마미', '마마'라 부른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메조소프라노 가수가 아니라 사랑과 화해, 감사의 삶으로 새로운 무대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에게 말라위 추장은 '루세케로'란 이름을 지어줬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여인이란 뜻이다. 

김 씨는 30여 년 동안 써온 일기를 토대로 책을 써내려 가면서 아프리카 생활뿐 아니라 인생 전반을 돌아본다.  

"이 나이에 40도의 불볕더위와 온갖 불편함을 참아내며 이곳에 살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 달려온 길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완전하고도 영원한 사랑을 만났습니다. 이 책은 그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328쪽. 1만5천원.  

공병설기자(kong@yna.co.kr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0/20/0200000000AKR20141020072000005.HTML?from=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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