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9월 5일자 '신문은 선생님' 지면 <동화를 써보세요> 코너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친구들, 개학해서 매일 학원다니랴, 숙제하랴 많이들 바쁘겠지요. 친구들에게 어떤 숙제가 가장 어렵냐고 물어보면 ‘글쓰기요!’하는 대답이 제일 많습니다. 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작가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글쓰는 일이 매번 쉽지 않은 까닭은 바로 상상력 때문이지요. 어른들은 쉽게 우리들에게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렴’이라고 말을 하지만, 막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글로 옮길수 있는 상상력은 다르답니다. 도대체 상상력이 뭘까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상상력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기원전 8세기 쓰여졌던 그리스•로마 신화는 서양인들의 상상력의 창고라고 평가받습니다. 이 책에는 여러 신(神)들의 이야기가 나오지요. 이 이야기속에는 세계가 어떻게 생겨났는가, 인간이 왜 불행해졌는가 등에 대한 고대인들의 대답이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에는 ‘페가소스’라는 날개 달린 천마가 나옵니다. 이 천마가 죽은후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 페가소스가 되었답니다. 하늘의 별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떠오르는 것 같지요. 3000년전 신화속 주인공 페가소스는 전세계 어린이들의 베스트셀러인 해리포터 시리즈3편 ‘아즈카반의 죄수’에도 ‘벅빅’이라는 괴물로 다시 등장합니다. 

평생 동화작가로 사셨던 권정생 선생님의 ‘밥데기 죽데기’란 작품속에는 기괴한 달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할머니는 오두막을 깨끗이 쓸고 닦은 다음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그러고는 장에서 사 온 달걀을 쑥과 마늘을 넣은 솥에다 삶았습니다. 달걀을 삶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쑥과 마늘을 함께 넣다니요. 언뜻 본다면 ‘할머니 입맛이 참 특별하네’ 하고 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기 마련입니다. 

삶은 달걀 두 개를 물에다 깨끗이 씻고는 소반 위에 올려 놓고 일곱 번 절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달걀 두 개를 정성스럽게 삼베 헝겊에 잘 싸서 할머니가 똥을 누는 뒷간 똥통에다 담갔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퉤퉤’ 먹는 달걀을 냄새나는 똥통에 담다니요. 갈수록 할머니가 하시는 거동이 수상합니다. 똥통에 한달 담갔다가, 개울물에 또 한달 담그고, 등꽃나무 밑에다가 다시 한달을 묻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질경이 기름에 열흘을 더 적셔 두었다나요. 그렇게 백일을 꼬박 채웠습니다.

마침내 달걀에 뭐가 들었길래 할머니는 이런 행동을 하셨을까, 드디어 그 정체가 드러납니다.

할머니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자꾸자꾸 빌었습니다. 한참이 지났습니다. 갑자기 푸른 불꽃 속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뭉게 구름같이 방 안 가득 연기가 들어 찼습니다. 아름다운 꽃향기가 사방에서 퍼져 올랐습니다. 할머니가 눈을 떠 보니 눈앞에 벌거숭이 예쁜 아이 둘이 서 있었습니다. 

아. 권정생 선생님이 달걀 요술을 부리셨네요. 이 대목에서 고구려의 주몽신화가 떠오르는 친구들이 있을 겁니다. 주몽왕은 기원전 1세기 고구려를 세운 왕으로, 알을 깨고 나왔다고 전해지지요. 권정생 선생님이 이 신화를 떠올리셨는지 알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상상력은 또 다른 상상력과 맞닿아 있는 것 같네요.



그런데 꼭 명심할 게 있습니다. ‘알에서 아이가 나왔어!’‘난 어제 하늘을 날았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대로 무턱대고 말로 쏟아냈다가는 듣는 이들이 ‘말도 안 돼!’ 하고 무시할 게 뻔합니다. 아직은 그냥 엉뚱한 생각일 뿐이니까요. 이런 상상이 이야기가 되려면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할수 있어야 합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이를 위해 늑대할미와 달걀 귀신을 만들어냈습니다. 달걀속에서 나온 두 아이는 사실은 사람이 아니고 달걀귀신입니다. 할머니도 사람은 아니었죠. 사람에게 식구를 잃고 원수를 갚기 위해 변신한 늑대할미였습니다. 그러니까 ‘밥데기죽데기’는 달걀귀신 아이와 늑대할미가 벌이는 복수 이야기로군요. 

이렇듯 어떤 상상을 할 때는, ‘나는 왜 그런 상상을 했는가?’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듯한 구조를 만들어 생명력을 불어 넣어야 된다는 말이죠. 그래야만 상상이 더 멋지게 날개를 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을 이야기로 생생하게 꾸며 내려면 많은 경험이 있어야 하는건 당연합니다. 권정생 선생님도 어린시절부터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등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일들이 선생님 작품속에 그대로 녹아 있을 겁니다. 친구들도 많은 책을 읽고, 즐거운 경험들을 해보는 것이 글을 잘 쓰는 첫째 조건이 될 겁니다. 김기정•동화작가

(온라인 서비스가 되지 않는 지면이라 원문 링크를 하지 않습니다.)


권정생 글, 박지훈 그림, 『밥데기 죽데기』, 바오로딸, 2004

 

사람을 만드는 책

나는 책을 좋아한다. 어릴 때 쉬운 만화책부터 시작하여 각종 동화책까지… 그렇게 몸에 익힌 것이 내 안에서 자리를 잡아 쉬 흔들리지 않는다. 수녀원에서도 가끔 동기 수녀들이 자신이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의 내용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면서 고마워하며 그 시절에 잠기곤 한다. 그런 신앙서적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형성해 나간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이런 체험이야말로 책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산골 솔뫼 마을에 인간으로 변하여 살고 있는 늑대 할머니가 달걀 두 개를 시장에서 사와 그 달걀로 사내아이를 만들면서 시작된다. 자신의 남편을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아이들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들이 [밥데기 죽데기]다. 이른바 달걀귀신인 것이다.

달걀로 사람을 만드는 과정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을 따라가 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사람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두 아이와 할머니는 원수를 갚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고 거기에서 또 다른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황새 아저씨를 만난다. 원수를 갚는 과정을 통해 말하기 어려운 핵문제, 일본 위안부 문제 그리고 남북한의 통일 문제들을 어렵지 않게, 너무 어둡지 않게 얘기하고 있다. (권정생 선생님은 진짜로 글을 잘 쓰신다.)

이 상황 앞에서 늑대 할머니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모든 문제들을 해결한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이 부분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다.

경제가 우선하고 인터넷과 영상물이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고, 모든 것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설정되어 있는 지금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현실과 동떨어져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얘기들이다. 과거 없이 미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가 풍요로우려면 과거부터 풍요로워야 한다. 미래의 풍요로움은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아동문학가이셨던 권정생 선생님의 이 책은 ‘어린이 권장도서’로 선정되어 꾸준히 보급되고 있다. 그리고 읽은 친구들이 모두 재미있어 한다.

아이들의 인격을 형성해 주고 사람과 세상을 올바로 보게 하면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나를 포함해 어른들의 삶도 새롭게 만들어가는 책이다.

 

- 황현아 클라우디아 수녀

*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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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작가 남시언 2012.06.15 10:05 신고

    권정생 선생의 도서를 참 좋아해요.
    제 고향이 안동이라 더욱 애착이 ^^

    • BlogIcon 바오로딸 2012.06.25 09:28 신고

      답글이 늦었지요~ 더운 날씨에 잘 지내고 계시나요?^^
      그렇지 않아도 티몰스 님 블로그에 있는
      안동 이야기들 재밌게 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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