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글, 박지훈 그림, 『밥데기 죽데기』, 바오로딸, 2004
사람을 만드는 책
나는 책을 좋아한다. 어릴 때 쉬운 만화책부터 시작하여 각종 동화책까지… 그렇게 몸에 익힌 것이 내 안에서 자리를 잡아 쉬 흔들리지 않는다. 수녀원에서도 가끔 동기 수녀들이 자신이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의 내용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면서 고마워하며 그 시절에 잠기곤 한다. 그런 신앙서적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형성해 나간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이런 체험이야말로 책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산골 솔뫼 마을에 인간으로 변하여 살고 있는 늑대 할머니가 달걀 두 개를 시장에서 사와 그 달걀로 사내아이를 만들면서 시작된다. 자신의 남편을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아이들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들이 [밥데기 죽데기]다. 이른바 달걀귀신인 것이다.
달걀로 사람을 만드는 과정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을 따라가 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사람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두 아이와 할머니는 원수를 갚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고 거기에서 또 다른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황새 아저씨를 만난다. 원수를 갚는 과정을 통해 말하기 어려운 핵문제, 일본 위안부 문제 그리고 남북한의 통일 문제들을 어렵지 않게, 너무 어둡지 않게 얘기하고 있다. (권정생 선생님은 진짜로 글을 잘 쓰신다.)
이 상황 앞에서 늑대 할머니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모든 문제들을 해결한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이 부분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다.
경제가 우선하고 인터넷과 영상물이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고, 모든 것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설정되어 있는 지금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현실과 동떨어져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얘기들이다. 과거 없이 미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가 풍요로우려면 과거부터 풍요로워야 한다. 미래의 풍요로움은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아동문학가이셨던 권정생 선생님의 이 책은 ‘어린이 권장도서’로 선정되어 꾸준히 보급되고 있다. 그리고 읽은 친구들이 모두 재미있어 한다.
아이들의 인격을 형성해 주고 사람과 세상을 올바로 보게 하면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나를 포함해 어른들의 삶도 새롭게 만들어가는 책이다.
- 황현아 클라우디아 수녀
*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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