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후감]

발행일 : <가톨릭신문> 2014-06-22 [제2900호, 17면]

 


「희망의 기도」를 읽고

베트남의 구엔 반 투안 추기경님의 옥중 서신 ‘희망의 기도’. 투옥이라는 절박한 현실 앞에서도 사제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묵상과 기도를 이어나가신 추기경님의 글은 그 한 글자 한 글자의 무게감이 매우 무겁게 느껴지는 글입니다.

이 책은 거의 ‘기도문’ 형식으로써, 주님을 향한 열성적이고 참회적인 글들이기 때문에 독자 자신이 마음의 준비 상태가 거룩한 상태에서 읽을 수만 있다면 많은 은총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셨습니다.”

“비겁한 신앙인은 ‘반쪽 그리스도인’입니다.”

결코 부담스럽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글들을 되새기면서 우리도 힘들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예수님을 관상하면서 그분의 가르침들을 따라야 함을 본받게 됩니다.

신앙지식은 지혜



「그러니 십계명은 자유의 계명이다」를 읽고

책을 덮는 순간 행복했다. 나 혼자 읽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책을 읽으며 반성과 회개, 나를 돌아다보는 참 여유로운 시간을 누린 것 같다.

나는 감히 간절히 기도드린다. 책 읽는 계기로 선교도 할 수 있게 되기를 빈다. 아들과 딸이 꼭 이 책을 읽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청년부도 이 읽기운동에 참여하며 깨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난 시간, ‘봉사하면서, 말과 행동으로만 참 분주했었구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책 속에서 주님을 만나듯 나는 조용하고 차분해졌다. 무엇보다도 회개하는 시간, 나를 들여다보는 좋은 계기가 되어 감사드린다.

이후 내가 인도하는 예비신자를 위해 묵주기도 5단을 봉헌했다. ‘이 좋은 친구를 당신께 봉헌하오니, 함께 신심서적 읽기를 해서 꿀같이 단 주님 말씀을 꼭 전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 예비신자에게 나는 ‘신심서적33권읽기’에 관해 소개하고 내가 읽은 책도 빌려줬다. 티타임을 가지며 나눈 대화 중 나는 접착식 메모지에 써서 주방벽면에 붙여둔 성경 구절도 읽어주며 공감대를 나눴다. 우린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시간을 가지겠다고 서로 약속했다.

독서운동에 참가한 여러분들께도 부탁드린다. 이 예비신자를 위해 함께 기도해주길. 나 또한 끊임없이 기도할 것을 예수님께 약속드린다.

손동숙(유스티나·수원교구)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61695&ACID=710&S==

 

http://www.pauline.or.kr/bookview?code=07&subcode=04&gcode=bo0022173 

[나의 독후감] 「세상 속 신앙 읽기」를 읽고

발행일 : <가톨릭신문> 2014-04-20 [제2891호, 19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호기심 반, 흥미 반으로 시작했던 신심서적 읽기를 통해서 접하게 된 여러 가지 책들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가톨릭 신자로 살아오며 생각하거나 느끼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알고 있었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행함’의 중요성을 느꼈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나 자신을 보며, 신심서적 읽기를 시작한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읽은 책에서 ‘종교인이 된다’ 혹은 ‘종교인으로 살아간다’라는 주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면서, 말로는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어도 사실은 종교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알게 모르게 간과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진정한 ‘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돌아보며, 과연 내가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희망하며 살고 있는지 깨닫고 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그 이후에 이 세상은 내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도 깨닫고, 이를 통해 타인과 교감하고 배려하면서 사랑을 나누고 자신을 희생하는 법을 배우면서 용서와 화해를 체험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 속에서 거룩함이 무엇인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직접 체험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세상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그것을 알아채고 응답하면서, 곧 거룩함과 아름다운 사랑으로 세상의 사람들을 구원하며 그 행함을 보여주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그분의 제자들처럼 그분 안에서 완성된 종교인의 삶을 보고 참된 자아 완성의 길을 깨달아 나 자신의 삶의 희망과 믿음, 그리고 참된 사랑을 발견했다는 기쁨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사람이어야 한다.

종교인으로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 가톨릭 신자로 살아가는 기쁨을 깨닫지 못했거나, 우리 삶을 감싸고 있는 하느님의 사랑과 신앙의 신비를 느끼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서울 남부교도소 김영훈(요한·가명)



언제나 기쁨·희망 잃지 말자

하느님은 많은 이름을 가지셨다. 우리가 바라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하느님은 이름이 없으시다. 그분은 우리의 바람이나 희망에 담아둘 수 없는 영원한 신비이시다.

내 삶은 하느님이 함께 계시기에 결코 혼자가 아니며, 그러기에 세상 속에 내가 행하는 일들과 수많은 업적도 내가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닌 주님께서 이루어 주신 것임을 매순간 느껴왔다. 내 필요에 의해 부르는 하느님이 아닌 나를 위해 대신 돌을 맞아주시고 내 십자가를 받쳐드신 주님께 감사하는 기적이 그분께 돌려드릴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의 믿음은 우리가 겪는 현실의 모순과 고통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살고 있다는 확신에서 시작된다.

내 삶에 강렬하게 남은 하느님 사랑의 체험도 중요하지만, 날마다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참된 기쁨과 평화를 청하며 살 수 있는 마음도 성령께서 주시는 중요한 은사이다.

신앙인이란 땅을 밟고 살면서 하늘을 바라보는 삶에 참된 행복이 있음을 깨닫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작은 것 하나도 귀히 여기며 소중히 감사하는 우리는 각박하고 힘든 세상 속에서도 언제나 기쁨과 희망을 잃지 말아야겠다.

마리아 막달레나(seohk65)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60663&ACID=710&S==

[나의 독후감] 「주름을 지우지 마라」를 읽고

“나는 너희를 꽃처럼 키웠다”

 

발행일 : <가톨릭신문> 2014-03-23 [제2887호, 16면]

 

오래 전 알고 있던 지인으로부터 이제민 신부님의 ‘교회-순결한 창녀’라는 책을 추천 받았다. 제목만으로도 자극적인 책, 내용은 제목만큼 자극적이지는 않았다. 중간 중간 읽다가 후일을 기약하고 덮어 두었다. 책이라는 것이 당장은 읽기가 곤혹이지만, 가끔 시간이 그것을 해결해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부산 출장 길, 카페 회원님의 독후감을 읽고 용기를 내어 완독에 도전했다.

밀양에 위치한 명례성지를 지키시며 그곳을 방문하시는 어르신 신자들과 연로하신 부모님에 대한 내용이 묵상의 주제였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애틋하다. 어렸을 적 먹을 것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신 엄마는 어쩌다 형제들이 집에 온다하면 음식을 만드시느라 부산스럽게 움직이신다. 그분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자식들에게 주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언젠가 말씀을 많이 아끼시던 아빠가 불만 가득한 자식들에게 한숨을 쉬며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그래도, 나는 너희를 꽃처럼 키웠다.”

부모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부모님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 주신 신부님께 감사드린다.

KTX가 밀양역을 지날 때 창밖을 유심히 살폈다. 혹 명례성지가 보일까 싶어서.


하중(pure2013com)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60259&ACID=710&S= 

 [나의 독후감]

「주름을 지우지 마라」를 읽고

모든 것이 축복이며 사랑해야 할 것들

 

발행일 : <가톨릭신문> 2014-03-16 [제2886호, 16면]

 

사람 없이 이 세상이 지금처럼 형성될 수 없었듯이, 늙음과 죽음이라는 것은 사람의 일생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사람에게 있어 늙고 죽는다는 것이 어찌 보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 견해는 하느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간 분들 또한 나이 든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물론 나이와 신앙의 깊이가 정비례하진 않지만, 오랜 세월 살아오며 겪고 듣고 느끼며 축적한 내면적 깊이는 젊은이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소중한 재산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그것이 두려울 수도 있겠지만, 죽음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임을 깨닫고 그로 인해 자신을 비우고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죽음 역시 행복한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이 세상에서 잠시 내가 살았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돌이켜보니 내 인생에는 늘 젊음과 늙음, 어른과 아이가 만나고 공존하고 있었다. 생과 사가 만나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축복이며 우리가 사랑해야할 것들이다. 늙음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신비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으로 만들면 인생이 아름답다고, 인생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고.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바쳤을 때, 그 근본과 진리를 잃지 않는다면 저자의 바람처럼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를 하며 편안하게 주님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김광환(제노)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60190&ACID=710&S= 

[나의 독후감]「주름을 지우지 마라」를 읽고

늙음은 하느님의 신비

 

발행일 : <가톨릭신문> 2014-02-09 [제2881호, 17면]


 

늙음은 축복이며 늙음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인생은 완성된다는 늙음의 미학, 그러나 우리 시대를 잘 풍자한 요즘 유행하는 노랫말에 노인들의 마음은 더 처량해지려한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요즈음 부쩍 늘어난 노년층이 즐겨 부르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런데 며느리들은 이렇게 바꿔 부른다 한다.

“네 나이가 어때서 딱 죽을 나이인데…”

이런 노래를 듣는 노인들은 늙음이 주님의 축복이라면서 하느님의 선물로 마냥 기쁘게만 받아들이기가 쉽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더 젊어지고 싶어 주름살도 없애고 열심히 체력단련도 한다. 저자는 주름을 지운다는 것은 연륜으로 쌓은 인생을 지우는 것으로 스스로 자기 인생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단호히 말하고 있지만, 그렇게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볼 수만은 없는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 하느님이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신 것을 깨닫지 못하기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죽음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임을 안다면 자신을 비울 수 있고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코헬렛서, 지혜서를 묵상해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길이 보이게 되고 자신의 젊어지려는 허망한 욕망은 자연히 상쇄될 것이다.

늙고 죽음에 너무 호들갑 떨 필요가 없고 미화시키지도 말며 예찬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죽음도 현재가 되니까 지금 제대로 하느님의 뜻에 맞는 내적인 삶을 살면 죽음도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조용히 찾아오지 않을까?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삶의 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는 중요한 자각을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저자의 바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죽을 때 “하느님 감사합니다”하는 기도로 세상을 찬미하며 눈감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독후감] 「주름을 지우지 마라」를 읽고

늙음에 대한 올바른 자각이 필요한 때

 

발행일 : <가톨릭신문> 2014-01-19 [제2879호, 16면]


 

우리가 생각하는 노년이란, 힘없고 어눌하고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죽음이 얼마 남지 한 사람으로 이미지가 떠오른다.

나 역시 농촌지역에서 많은 어르신들을 대하며 생활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왜 저렇게 살아가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늙음에 대한 뚜렷한 자각 없이 살아온 결과물이 아닐까?

「주름을 지우지 마라」를 읽으며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인용한 신부님의 한 구절 한 구절 말씀이 바로 모두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할 희망의 등불이라 생각한다.

늙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미지의 세계를 꿈꾸며 맑은 영혼, 모든 것을 초월하는 내려놓음의 미학 연륜을 쌓아가는 모습에서 ‘황혼의 늙음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통해, 그분들의 깊게 드리어진 주름진 얼굴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세상풍파,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 인연의 끈, 서러움…. 이 모든 것이 아닌듯하다. 부인할 수 없지만 고통 속에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연민의 정만을 느낀 듯 하여 회한이 앞선다.

재물, 권세, 출세 등에 목말라 하며 현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아름다움의 세계를 관조하고 또 가꿔가는 어르신들의 여유로움과 세상의 부귀영화를 내려놓고 초연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우리의 늙어감에 대한 과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하느님께 모든 삶을 맡기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노후를 아름답게 마무리 하는 과정이 아닐까?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쨍쨍이(ljs591119)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59209&ACID=710&S= 

[나의 독후감] 「부르면 희망이 되는 이름」을 읽고

김양회 신부님께 드리는 편지

 

발행일 : <가톨릭신문> 2013-11-03 [제2868호, 16면]

 


신부님! 안녕하세요?

건강을 위해 운동은 하고 계신지요? 일교차가 심한데 운동하실 때 조심하세요. 저는 나름 약간 찬 듯한 공기를 좋아한답니다. 찬 공기는 긴장감도 주고 때때로 희열도 느끼게 해 주거든요.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눈 내리고 추운 계절이 오면 고생할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 또한 무거워집니다. 좀 더 제 이웃의 고통을 나누며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아직 놓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르면 희망이 되는 하느님 안에서 내일이면 조금씩 달라질 저를 기대합니다. 신부님의 프로의 삶을 살려는 유혹이 생긴다는 솔직하고 겸손하신 말씀에 다시 숙연해짐을 느낍니다.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유혹이 유혹인줄 모르고 살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고,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으려고 예수님의 빛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또한 부르면 희망이 되는 하느님 안에서 변화되리라 기대합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시소놀이의 삶이라고 하신 신부님 말씀. 네가 올라가면 내가 내려오고 내가 올라가면 네가 내려온다는 시소놀이의 삶을 제 삶의 순간순간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책 마무리에 신부님 당신께 쓰신 편지는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도 제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며 아직까지 찾지 못했던 더 멋진 하느님 안에서의 삶의 구도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부님의 유머와 여유있는 성품에 웃으며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신부님, 글로나마 신부님을 만나 뵐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오랜만에 쓰는 편지에 무례했던 표현이 있었으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한 사람이라고 너그러이 봐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느님 안에서 평화를 빕니다. 안녕히 계세요.

 에밀리아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57979

 [나의 독후감] 「부르면 희망이 되는 이름」을 읽고


주님을 부르며 주님을 찾아 나서는 삶


발행일 : 가톨릭신문 2013-09-01 [제2860호, 16면]

 

이 책을 받아들고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왠지 느낌이 좋았다. ‘희망’이라는 단어에 기대와 설렘이 일었고. 또 책장을 넘기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읽어 갈수록 이 책은 가벼이 할 수 없는 무거움 즉 아름다운 사제의 삶이 곳곳에 녹아 있었다.


신부님은 주변의 사물을 단순하게 넘기지 않고 심안(心眼)으로 보면서 깊은 묵상의 사색으로 예수님의 삶을 우리 생활과 접목했다. 놀이기구에 불과한 시소에서 ‘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다’라는 보편타당한 말을 시소원리를 들어 가르침을 전했고, 꽃을 보면서는 우리 마음속에 아름다운 꽃님으로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또 얼굴에 생긴 주름은 ‘사랑’이라는 보톡스로 없애자는 재치 있는 비유로 사랑실천을 강조하셨고, 목욕탕에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면서 고해성사의 은혜를 끌어내셨다.


아울러 신부님은 늘 곁에 계시는 주님을 만나면서 살고 있는지 자문하며 희망이신 주님을 기필코 만나야겠다는 각오도 대단했다. 이런 신부님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몇 년 전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를 잃어버린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그날 밤새 강아지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며 찾아다녔다. 온갖 불안한 생각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한낱 강아지를 찾기 위해서도 밤새 찾아 헤매면서도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밤새 주님 이름을 불러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애타게 부르면 만날 수 있는 주님인데도 몇 번 부르다가 단지 응답이 없다는 이유로 원망만 하지 않았나 반성했다. 부르기만 해도 희망으로 내게 오실 주님, 불러주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다 먼저 다가오시는 주님이건만 말이다.


이 책의 맨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는 ‘자신에게 쓰는 편지’는 신선했다. 자신에게 쓰는 편지는 자신을 마주 대하지 않고는 결코 쓸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부님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세례자 요한처럼 아마추어의 삶, 주님을 부르며 주님을 찾아 나서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또 신부님은 이 책을 펴냄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살아가겠습니다’라고 공표하신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신부님이 세상 다하는 끝날까지 의롭고 아름다운 사제로 살아가시길 기도한다.



최순자(체칠리아)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5708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