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싶은 명작 12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

월터 J. 취제크 | 최진영 | 125*185 | 652| 16,000| 2017. 8. 10. 발행


책 소개

러시아의 수용시설에서 23년간 강제노동을 한 가톨릭 신부의 생생한 체험기.

고난과 핍박의 참담한 생활을 하면서도 끝까지 지켜낸 신앙의 빛을 비추고자 한다.

 

요약

다시 읽고 싶은 명작 시리즈 열두 번째. 러시아에서 간첩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취제크 신부. 철의 장막 뒤편에서 오랜 기간 동안 심문과 고문, 견딜 수 없는 굴욕과 기아로 얼룩진 생활을 하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은 그의 감명 깊은 체험담.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

다시 그를 만난다

 

196310, 나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23년이라는 긴 세월을 러시아에서 지냈고, 그중 15년을 러시아의 교도소와 시베리아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보냈다.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 사람들은 나에게 두 가지를 묻는다. 첫째 러시아에서의 생활이 어떠했습니까?’ 하는 것과, 둘째 도대체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하도 여러 사람이 똑같이 묻기에 나는 마침내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취제크 신부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다.

책 속에는 어렸을 때의 가정생활, 부모와의 관계, 고민하며 방황하던 청소년 시절, 예수회 회원으로서 처음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았을 때의 기쁨, 그리고 23년 동안의 경험, 이 모든 것이 조금도 가식 없이 생생하게 그대로 드러나 있다. 놀라운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이 책은 결코 소설이 아니라 근대 예수회 역사상 가장 자랑할 만한 감명 깊은 체험담이다. 간결하고 꾸밈없는 문장이기에 독자의 가슴에 더욱 힘 있게 파고든다.

1939년에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믿기 어려울 만큼 극적인 사건으로, 거의 한 세대에 가까운 긴 기간이다. 취제크 신부가 가족, 친구, 교회, 심지어 모국의 정부에서조차 모르고 있던 철의 장막 뒤편에서 오랜 기간 동안 고난과 핍박의 생활을 하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고 러시아인들에게 신앙의 빛을 비추었다는 것은 한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가 주저 없이 하느님의 섭리라고 말하고 있듯 하느님의 뜻이 있었고, 그 뜻에 따르는 그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미국 국적의 취제크 신부는 신학생 시절 예수회에 입회한 후 로마 유학 중에 무신론이 팽배한 러시아 선교를 꿈꾸며 폴란드로 간다.

곧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그가 사목하는 곳이 나치 독일 점령지가 되기에 이르렀고, 그 위기의 와중에도 신분을 속인 채 전쟁 물자의 보고라 할 우랄산맥 지대 노동자 모집에 자원해 본래 목표대로 러시아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때부터 비밀경찰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그는 우랄에서 1년여에 걸쳐 신앙의 불씨를 일구던 중 체포당한다. 모스크바 정치범형무소 루비안카에서 오랜 심문과 취조를 받고 예정된 대로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진다. 그것도 최악이라 할, 북극에 가까운 혹독한 추위가 정신과 육체를 할퀴는 두딘카와 노릴스크로! ...

1947년 예수회 사망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장례미사까지 치르게 된 그는, 1963년 미국으로 돌아오는데...

취제크 신부님, 이제 다시 미국 시민이 되셨습니다.”

정말입니까?”

, 정말입니다. 다시 미국 시민이 되셨습니다.”

이건 무슨 동화 같은 얘기군요.”

, 동화 같은 얘기지요. 아주 훌륭한 동화지요. 그러나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고 사실입니다.”

머리는 거의 백발이 되었고, 광산과 공장에서의 노동 때문에 손은 거칠 대로 거칠어졌지만, 그의 정신은 꺾이지 않고 꿋꿋했다. 그가 하느님의 은혜로 이겨낸 오랜 세월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그리스도의 사랑은 국경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산 증인으로서 그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우리는 깊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취제크 신부는 죽음에서 기적처럼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러시아에서 하느님 말씀대로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갔다가 간첩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취제크 신부. 끝없는 심문과 고문, 견딜 수 없는 굴욕과 기아로 얼룩진 교도소 생활. 북극의 얼음과 눈과 강풍 속에서 짐승처럼 노동을 강요당하던 기나긴 수용소 생활에서도 그는 한 번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증오하지 않았다. 줄곧 신앙을 지키며, 그를 찾는 이들에게 신부로서 맡은 바를 다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유머와 따뜻한 인간미를 잃지 않고 핍박하는 이들에게 용기 있게 대항했다.

취제크 신부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이 책이 다시 새롭게 개정판으로 나와 독자들을 만난다.

오랜만에 고전의 깊고 진한 향수를 느껴보기 바라며.

목차

머리말

1부 소년 시절

신부답지 않은 신부/ 봄에는 러시아로/ 가명 리핀스키 블라디미르/ NKVD의 손아귀에 잡히다

2부 모스크바의 교도소

무서운 루비안카/ 사라토프에서/ 세도프의 유죄판결/ 루비안카대학교/

부틸카에서 살게 되다/ 루비안카에서의 마지막 날들

3부 노릴스크의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시베리아로 가는 길/ 예인선 스탈린 호/ 석탄을 싣던 두딘카Dudinka/ 북극 광산에서 보낸 1/ 노릴스크의 공사장/ 4수용소와 구리공장/ 병원 근무/ 폭동/ 수용소 생활이 끝나다

4부 제한을 받아야 하는 자유인

노릴스크의 노동연맹 회원/ 나의 본당 노릴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의 박해/

아바칸에서의 새 출발/ 누이가 방문을 제안하다

5부 귀향

도무지 알 수 없는 KGB/ 귀빈 대우를 받다/ 러시아여, 축복을

번역을 끝내고

 

지은이_ 월터 J. 취제크(Walter J. Ciszek, 1904-1984)

1937624일 로마에서 서품. 예수회 신부로서 러시아 선교를 위해 폴란드로 건너갔다. 1940년 위장 이주노동자로 소련 잠입에 성공했으나, 1941NKVD(소련 내무성 비밀경찰)에 체포된다. 루비안카 독방 감옥에서 5년간 장기 취조를 받고, 15년 동안 소련 노동수용소 굴락(Gulag)에서 극한의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강제노동을 했다. 마침내 석방되었으나 제한된 지역에서 감시를 받으며 선교활동을 수행했다. 러시아 체류 23년 만에 미국과 소련 사이에 인적 교환이 이루어져 1963년 귀환했고 영성지도자로 활동하다 1984년 선종했다. 1990년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는 취제크 신부에 대해 시복 시성 조사를 시작했으며, 현재 하느님의 종칭호로 불린다.

 

옮긴이_ 최진영

서울대학교 문리대 영문과 졸업, 동 대학원 영문학 박사. 미국 North Carolina대학 영문학 석사.

St. Augustine’s college 영문학 전임강사, Catawba college 영문학 전임강사, 중앙대 명예교수.

              부르면 희망이 되는 이름

 



기획의도

보이는 것이 전부인 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감사와

겸허한 자세로 살아가는 사제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 주제 분류 : 문학, 수필. 사목체험


♢ 키워드 : 하늘, 꿈, 아름다움, 사제, 성체, 십자가, 바보, 희망, 아마추어


♢ 요약

한 본당사제의 인간적이고 소박한 순간의 발자욱이 담겨져 있는 생활수필이다.

말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노력과 자기 성찰이 돋보이고 국내와 아프리카에서의 사목활동을 하면서   체험한 이야기 중심으로 엮어졌으며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을  곁들였다.

 

내용

한 본당사제의 인간적이고 소박한 순간의 발자욱이 담겨져 있는 생활수필이다.

 말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노력과 자기 성찰이 돋보이고 국내와 아프리카에서의 사목활동을 하면서   체험한 이야기 중심으로 엮어졌으며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을  곁들였다. 

 평범한 시간이 그에게 가져다준 하늘에는 후회보다는 희망이, 안타까움보다는 소중함이 그려진다.

우리의 일상에 새로움이 느껴지지 않을 때 소중한 이의 이름을 불러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자. 새로운 일상이 이미 곁에 와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요 너의 불행은 곧 나의 불행’이 시소놀이입니다.

너를 높여주면 나도 높임을 받습니다. 그러나 너를 무시하면 나도 무시당합니다. 그래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마태7,12)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시소놀이의 삶입니다.

                                                                             본문 ‘시소놀이’에서

 

차례

글을 시작하며  ‘얼마나’보다 ‘어떻게’

하늘을 날지 않는 비둘기/ 시소놀이/ 꽃은 져도/ 마음의 주름살/ 힘 잃은 위력

모두가 소중한 사람/ 바뀐 꿈/ 아름다운 모습/ 오늘 밤은 거룩한 밤

새벽부터 가슴에 손을 얹어달라던 여인/ 살아가느냐 죽어가느냐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는 분/ 십자가의 삶/ 바보 같은 신부

헌금 없는 주일/ 유난히 빛나던 아프리카의 밤하늘 / 의로운 사람

부르면 희망이 되는 이름/ 치마 입은 남자의 책임감/ 아마추어의 삶

사랑하는 양회 신부에게


♢ 대상

평신도, 일반비신자, 신학생 성소자.


지은이: 김양회

쓸쓸할 때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듣고, 즐거울 때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를,

비오는 날에는 마일즈 데이빗의 재즈를,  맑은 날 흐린 날, 낮과 밤, 언제나 음악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갑니다.

꽃이 좋고, 나무가 좋고, 하늘과 바다, 바람과 이슬이 좋아

카메라를 손에 들면 또한 행복한 시간입니다.

사진전을 열고 후원을 받아 아프리카 모잠비크와 아이티에 학교를 세워

500명의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어서 보람됩니다.

광주에서 태어나 1988년 사제품을 받고 지금은 해남성당에서 사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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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청춘을 위하여] 인간에 대한 사랑이 곧 리더의 자격

「천국의 열쇠」



▨천국의 열쇠
(A.J. 크로닌/바오로딸/1만 2000원)


   청소년들을 위한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자마자 제 머리에는 한 권의 책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천국의 열쇠」(A. J. 크로닌)였습니다.

 저 역시 여러분 나이 때에 읽은 책이기도 합니다. 고3 시절 수능시험을 치르고 난 뒤, 성당 선배들이 "마음을 살찌울 수 있는 책"이라며 추천했기 때문입니다. 시선을 끄는 제목만큼이나 전개도 흥미진진해 자리를 뜨지 않고 한 권을 다 읽어내고야 말았지요. 이제는 20년도 더 지났지만, 당시 책장을 덮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후 A. J. 크로닌의 책은 모조리 구해서 읽어보게 되었지요.

 작가는 놀라운 통찰력으로 신과 인간, 구원과 삶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주인공은 치셤이라는 남자입니다. 그는 불우한 소년기를 보내고 실연까지 당한 뒤 사제가 됩니다. 신부가 된 뒤에도 여러 갈등을 겪고, 중국 오지에 선교사로 파견됩니다. 치셤 신부는 선교지에서도 끊임없이 어려움에 부닥치지만 인내와 청빈, 용기로 고난을 극복합니다. 그 기저에는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너무나도 퇴색된 요즘 그의 삶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더욱 큰 감동을 줍니다.

 저는 매년 수험생 피정에서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을 만납니다. 많은 친구들이 그동안 공부 때문에 신앙을 멀리 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만,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친구라면 이 책에서 기쁘게 신앙생활을 시작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꾸준히 신앙생활을 해 온 친구에게는 자신의 믿음을 한 단계 더 성숙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요.

 얼마 전에는 대통령 선거도 치렀지요? 청소년 여러분은 아직 선거권은 없지만, 어느 후보가 우리나라를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한 번쯤 고민해 봤을 것입니다. 진정한 리더란 어떤 사람을 뜻할까요? 치셤 신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이 리더의 기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책을 읽으며 우리 시대 진정한 리더의 자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정재희 수녀(살레시오수녀회, 마산교구 청소년국)


원문 보기: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35281&path=201212


조선일보 9월 5일자 '신문은 선생님' 지면 <동화를 써보세요> 코너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친구들, 개학해서 매일 학원다니랴, 숙제하랴 많이들 바쁘겠지요. 친구들에게 어떤 숙제가 가장 어렵냐고 물어보면 ‘글쓰기요!’하는 대답이 제일 많습니다. 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작가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글쓰는 일이 매번 쉽지 않은 까닭은 바로 상상력 때문이지요. 어른들은 쉽게 우리들에게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렴’이라고 말을 하지만, 막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글로 옮길수 있는 상상력은 다르답니다. 도대체 상상력이 뭘까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상상력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기원전 8세기 쓰여졌던 그리스•로마 신화는 서양인들의 상상력의 창고라고 평가받습니다. 이 책에는 여러 신(神)들의 이야기가 나오지요. 이 이야기속에는 세계가 어떻게 생겨났는가, 인간이 왜 불행해졌는가 등에 대한 고대인들의 대답이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에는 ‘페가소스’라는 날개 달린 천마가 나옵니다. 이 천마가 죽은후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 페가소스가 되었답니다. 하늘의 별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떠오르는 것 같지요. 3000년전 신화속 주인공 페가소스는 전세계 어린이들의 베스트셀러인 해리포터 시리즈3편 ‘아즈카반의 죄수’에도 ‘벅빅’이라는 괴물로 다시 등장합니다. 

평생 동화작가로 사셨던 권정생 선생님의 ‘밥데기 죽데기’란 작품속에는 기괴한 달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할머니는 오두막을 깨끗이 쓸고 닦은 다음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그러고는 장에서 사 온 달걀을 쑥과 마늘을 넣은 솥에다 삶았습니다. 달걀을 삶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쑥과 마늘을 함께 넣다니요. 언뜻 본다면 ‘할머니 입맛이 참 특별하네’ 하고 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기 마련입니다. 

삶은 달걀 두 개를 물에다 깨끗이 씻고는 소반 위에 올려 놓고 일곱 번 절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달걀 두 개를 정성스럽게 삼베 헝겊에 잘 싸서 할머니가 똥을 누는 뒷간 똥통에다 담갔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퉤퉤’ 먹는 달걀을 냄새나는 똥통에 담다니요. 갈수록 할머니가 하시는 거동이 수상합니다. 똥통에 한달 담갔다가, 개울물에 또 한달 담그고, 등꽃나무 밑에다가 다시 한달을 묻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질경이 기름에 열흘을 더 적셔 두었다나요. 그렇게 백일을 꼬박 채웠습니다.

마침내 달걀에 뭐가 들었길래 할머니는 이런 행동을 하셨을까, 드디어 그 정체가 드러납니다.

할머니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자꾸자꾸 빌었습니다. 한참이 지났습니다. 갑자기 푸른 불꽃 속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뭉게 구름같이 방 안 가득 연기가 들어 찼습니다. 아름다운 꽃향기가 사방에서 퍼져 올랐습니다. 할머니가 눈을 떠 보니 눈앞에 벌거숭이 예쁜 아이 둘이 서 있었습니다. 

아. 권정생 선생님이 달걀 요술을 부리셨네요. 이 대목에서 고구려의 주몽신화가 떠오르는 친구들이 있을 겁니다. 주몽왕은 기원전 1세기 고구려를 세운 왕으로, 알을 깨고 나왔다고 전해지지요. 권정생 선생님이 이 신화를 떠올리셨는지 알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상상력은 또 다른 상상력과 맞닿아 있는 것 같네요.



그런데 꼭 명심할 게 있습니다. ‘알에서 아이가 나왔어!’‘난 어제 하늘을 날았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대로 무턱대고 말로 쏟아냈다가는 듣는 이들이 ‘말도 안 돼!’ 하고 무시할 게 뻔합니다. 아직은 그냥 엉뚱한 생각일 뿐이니까요. 이런 상상이 이야기가 되려면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할수 있어야 합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이를 위해 늑대할미와 달걀 귀신을 만들어냈습니다. 달걀속에서 나온 두 아이는 사실은 사람이 아니고 달걀귀신입니다. 할머니도 사람은 아니었죠. 사람에게 식구를 잃고 원수를 갚기 위해 변신한 늑대할미였습니다. 그러니까 ‘밥데기죽데기’는 달걀귀신 아이와 늑대할미가 벌이는 복수 이야기로군요. 

이렇듯 어떤 상상을 할 때는, ‘나는 왜 그런 상상을 했는가?’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듯한 구조를 만들어 생명력을 불어 넣어야 된다는 말이죠. 그래야만 상상이 더 멋지게 날개를 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을 이야기로 생생하게 꾸며 내려면 많은 경험이 있어야 하는건 당연합니다. 권정생 선생님도 어린시절부터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등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일들이 선생님 작품속에 그대로 녹아 있을 겁니다. 친구들도 많은 책을 읽고, 즐거운 경험들을 해보는 것이 글을 잘 쓰는 첫째 조건이 될 겁니다. 김기정•동화작가

(온라인 서비스가 되지 않는 지면이라 원문 링크를 하지 않습니다.)



공선옥 지음, 김옥순 그림, 『달맞이꽃 울엄마』, 바오로딸, 2006


이 책의 주인공은 태아입니다. 엄마 뱃속에 든, 태어나기 이전의 생명 말이지요.

태아가 생각을 하고 감정을 털어놓는 것은 소설 속 설정입니다. 그러나 연간 몇 십만 태아가 낙태되는 시대에 이 이야기는 큰 울림을 줍니다. 태아가 살아있다고, 엄마 뱃속의 우주라고, 하느님이 보내신 선물이라고.

미혼모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열아홉 살에 교도소에서 아기를 낳은 K의 이야기였습니다. K는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 받고 입양되었습니다. 그러나 양부모마저 이혼했습니다. 청소년 보호시설과 찜질방, 고시원을 전전하며 지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순대국밥집과 김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군밤 장사도 했습니다. 이도 저도 안 될 때는 도둑질을 했지요. 그러다 실형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아기 아빠는 K에게 아기를 지우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K에게는 가족이 있습니다. 아기를 낳았으니까요. 교도소 안에서 아기를 키우는 것은 녹록치 않지만, 엄마 되기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아기는 K가 살아갈 이유가 됐습니다.

『달맞이꽃 울엄마』에 나오는 엄마도 아기를 사랑합니다. 아버지가 반대하시는 데다 나쁜 짓을 해서 교도소에 들어간 사람의 자식이지만, 그 이상의 인연과 뿌리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오솔길을 걸으며 아기를 지울까 고민합니다. 풀벌레 울음소리를 들으며 부른 배를 끌어안습니다. 다리 부러진 방아깨비를 보며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아기가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줄 사람은 엄마뿐입니다.

‘생명’과 ‘사랑’은 하나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만드신 것들을 통합하려 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엄마들은 소중합니다. 모든 아기들도 소중합니다. 하느님의 손을 거드는 이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꽃피우는 이들이니까요. 책 속 엄마가 달맞이꽃 언덕에 올라 아기를 안고 노래하는 장면은 이러한 메시지를 잔잔하게 보여줍니다.

“아가아가 이쁜아가 비단을 헤실어서 너를 주까. 아가아가 이쁜아가 공단을 지어내서 너를 주까. 아가아가 이쁜아가 삼단 같은 요 내 머리 풀어헤쳐서 너를 주까”

책은 미혼모에 대한 차갑고 일방적인 시선 또한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이 소중한 생명에게 사슬이 되고 감옥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지요. 누군가는 아기의 태생을 추적하는 감시자의 눈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는 아기의 흙바탕까지 감싸 안는 보호자의 눈을 지니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떤 눈으로 엄마와 아기를 바라보아야 할까요?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네요.

“모든 생명은 생명을 받기 전부터 이미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받고 있어야만 한다.”


- 홍보팀 고은경 엘리사벳


 

야나기야 게이코 지음, 표동자 옮김, 이지현 그림, 『하얀 돌멩이 일곱 개, 바오로딸, 2008

 

힘이 되어준 동화책 한 권

언젠가 동기 수녀랑 한 공동체에 함께 산 적이 있다. 그 동기 수녀는 자주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뭘 들어?”하고 묻곤 했다. 그러면 그 수녀는 “음악”이라고 아주 자연스럽게 얘기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나는 음악이랑 별로 친하지 않다. 그래서 음악은 나를 정리하고 마음을 모으고 차분히 생각을 한다거나 하는 것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때로는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 그러기에 나는 동기 수녀를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생각에 생각을 더해도 살아내기가 힘든데…’라는 생각으로 동기 수녀를 판단하곤 했다.

삶의 연륜이 생기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모두가 다 다르다는 것을 체험하며 동기 수녀에게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는 삶 안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들도 각자의 방식대로 대면하고 풀어간다. 수도자의 삶을 살면서 혼자 겪어내야만 하는 어려움을 대면하고 풀어나가는 건강한 방법은 꼭 한 가지씩 있다. 오랫동안 성당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산에 가는 사람, 또는 무작정 걸어보는 사람, 하루 종일 음악을 듣는 사람 등등…

나는 주로 책을 읽는다. 그 안에서 나는 순간순간 위로를 받기도 하고 때론 아무것도 없이 책과 함께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러다 보면 어느 틈엔가 힘겨움을 견디어 내고 있다. [하얀 돌멩이 일곱 개]와 더불어 어린이 책들을 다시금 읽었다. 매우 착한 사람들이 나오는 착한 동화다. 그런 착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세상의 일에 시달려 잊어버렸던 나의 착한 마음을 만나게 된다. 세상에 그런 착한 사람이 살아줘서 고맙고 그래서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나도 그런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동화를 어린 시절에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착한 마음을 단단하게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읽어야 하는 이유는 – 하느님께서는 아이를 돌보게 하시면서 읽게 하시는 듯하다 – 그렇게 뿌리내린 착한 마음을 통해 세상에 빛을 주기 위함이다.

최근에 다가온 무력감 등으로 인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편한 동화책이라도 읽자’고 생각하며 시작한 일이 어느 틈엔가 나를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있었다.

[하얀 돌멩이 일곱 개]가 참 고마운 날이다.

 

- 황현아 클라우디아 수녀

*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에 실린 글입니다.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 바로가기

 

  1. 공감공유 2012.08.22 08:44

    가족이 다 천주교라 반가운 책이네요 ㅎㅎ

    • BlogIcon 바오로딸 2012.08.22 09:16 신고

      공감공유 님, 반갑습니다.^^ 때로는 동화책이 어떤 무게 있는 글보다 힘이 되어주지요. 가족과 함께 든든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첫 소설집 인세 전액 기부한 한영국 재미 소설가

“아이들 아픔 극복할 위로·희망 전할 것”
발행일 : 2012-08-19 [제2808호, 21면]

 ▲ 한영국씨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눔을 실천하는데 쓰고 싶었습니다.”

재미(在美) 소설가 한영국(율리안나)씨가 최근 자신의 첫 소설집인 동화 「동글동네 모돌이」의 인세 전액을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내 ‘어린이학교’에 기증했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뚜렷한 활동을 하지 못해 늘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이었지요. 그러다 제일 잘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통해 교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마음먹었지요. 가톨릭대학교 간호대학이 제 모교이기도 하고요.”

‘어린이학교’는 장기 입원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하거나, 잦은 결석 때문에 유급을 당하는 환아들에게 지속적인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장이다. 한씨가 기부한 인세는 ‘어린이학교’의 각종시설 및 입원 환아들을 위한 교육환경 개선과 환아들이 영적·심리적 평안을 찾는 일에 쓰이게 된다.

책을 출판한 바오로딸에서도 한씨의 마음에 공감, 한씨의 소설집을 ‘어린이학교’에 기증했다. 「동글동네 모돌이」는 아빠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모돌이가 수도원의 수사님들,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낯선 환경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극복해나가는 신앙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한씨는 이 책을 읽을 환아들에게도 고통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힘을 전달하고 싶다고.

“아이들이 이 책 속에서 아픔을 극복하는 위로와 희망이 있다는 점을 읽어내길 바랍니다.”

가톨릭신문 이우현 기자 (helena@catimes.kr)

 

원문 보기: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46136

 

 

김문태 지음, 『세 신학생 이야기, 바오로딸, 2012

 

삶의 뿌리가 되는 이들

오래도록 유교 집안이던 우리 가족은 성당에 처음으로 나가신 큰오빠로 인해 대부분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

몇 년 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하고 많은 신자분들과 우리 수도회 수녀님들의 방문과 기도를 받으며, 우리 가족은 신앙을 가진 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체험했다.

그때 큰오빠는 내게 “내가 제일 먼저 신자가 되었다”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응, 오빠 고마워”라고 대답했다. 오빠는 내게,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손수 아침을 차려주는 섬세하신 예수님 같았다. 늘 나를 잘 챙기고 또 우리 집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런 오빠가 한 달 전에 너무 젊은 나이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슬픔을 견디어 나가면서 오빠가 내게 남겨준 것을 하나둘씩 발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오빠는 흔들리는 내 삶을 지켜주고, 나를 하느님께로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게 이끌어 주었다. 지식으로만 존재하던 구원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문제 등 모든 것을 하느님 안에 희망을 두며 다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삶에 대한 정립을 하게 했다.

그런 오빠의 세례명이 ‘대건 안드레아’다. 오빠는 우리 가족의 신앙의 튼튼한 뿌리가 되어 주었다. 뿌리 없이 나무가 자랄 수 없고 뿌리가 튼튼하면 할수록 나무는 튼튼해지고 하늘을 향해 키를 높일 수 있다.

내 오빠처럼 한국 교회 초창기 성인들 또한 내 신앙의 뿌리가 되셨음을 최근에 읽은 [세 신학생 이야기]를 통해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생 최방제, 최양업, 김재복(나중에 대건이 된다) 세 명의 신학생 이야기다. 그들이 신부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과정 그리고 세 명이 만나서 친해지고 마카오로 가는 과정, 최방제의 죽음까지 작가의 세심한 추리와 상상으로 쓰여 있다.

그들의 노고와 아픔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최방제의 마지막 모습! 모두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나지막이 “모든 사람의 아버지와 같은 신부님이 되고 싶었는데”라는 말을 남기며 하늘나라로 가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막연하게 알았던 세 신학생의 노고와 고통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최양업 신부님과 김대건 신부님이 훌륭한 사제가 되는 데에 최방제의 죽음이 뿌리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제가 되고 1년 만에 하늘나라로 가신 김대건 신부님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우리 삶의 튼튼한 뿌리가 되어주었기에 한국 교회가 이렇게 성장하고 있음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우리도 각자가 처한 상황 안에서 튼튼한 뿌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월 5일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이다. 큰오빠가 하늘나라로 가고 첫 번째 맞는 축일이다. 내 신앙의 뿌리가 되어준 오빠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싶다.

 

- 황현아 클라우디아 수녀

*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에 실린 글입니다.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 바로가기

성인, 지옥문에서 하느님을 만나다
<성인 지옥에 가다>, 질베르 세스브롱, 바오로딸, 2012
2012년 07월 11일 (수) 11:04:07 한상봉 기자 isu@catholicnews.co.kr

사랑이 우리를 불태우지 않았다면
예기치 않았던 산불이 우리를 태우고 갔으리

착한 열정으로 우리가 넘치지 않았다면
이름도 모르는 파도가 우리를 휩쓸고 갔으리

가난했지만 민망할 정도로 가난하여
겨울바람도 우리의 냉기를 비켜갔지만

때 묻지 않은 마음 우릴 가득 채우지 않았다면
어지러운 바람 이 골짜기 끝없이 몰아쳤으리

도종환 시인이 지은 ‘청년’이란 시다. 시인은 민망할 정도로 가난한 가운데서도 사랑으로 자신을 불태우고, 착한 열정을 일으켜 세우며, 때묻지 않은 마음으로 가득 차길, 그 힘으로 파란만장한 바다에서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그예 몸을 다쳐 충청도 보은 산속, 해인(海印)으로 들어갔다. “해인에서 거두어 주시어 풍랑이 가라앉고 경계에 걸리지 않아 무장무애하게 되면 다시 화엄의 숲으로 올 것”이라고 했다. “그때는 화엄과 해인이 지척”이라고 했다(도종환, ‘해인으로 가는 길’ 참조). 여기서 해인이란 지혜의 바다이며, 화엄이란 실천적 삶이라 불러도 좋겠다. 해인이 성(聖)이라면, 화엄은 속(俗)이고, 해인이 종교라면 화엄은 일상이며, 해인이 하느님이라면 화엄은 그분을 드러내는 성사(聖事)다.

성인, 지옥에 가다

   

이처럼 화엄에서 해인을 보고, 해인 안에서 화엄을 만난 사제가 있다. 가난한 노동자의 얼굴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하느님 안에서 ‘지옥’으로 간 사제가 있다. 질베르 세스브롱의 소설 <성인 지옥에 가다>(바오로딸, 2012)에 등장하는 피에르 신부다. 이 책은 공장 지대인 사니 마을의 노동사제가 마침내 지옥문처럼 열려 있는 탄광촌 갱도에 이르러 '고향 같은' 하느님의 땅을 발견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세스브롱은 책을 펴내면서 “같은 언어를 가진 사람들끼리도 소통이 어렵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중재자를 죽이는 시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지라도 찢어야 하는 시대, 예수 없는 십자가가 군림하는 이 시대에 나는 어느 편에도 가담하고 싶지 않다”고 전했지만, 피에르 신부의 입을 빌어 한탄할 만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건져 올리고 있다. 세스브롱이 “이 책이 어떤 사람에게는 비위에 거슬리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결국 나이브하게 ‘복음’을 말하던 이들에게 심각한 걸림돌이 될 게 뻔한 소설이다. 그리고 고난받는 백성들과 더불어 이승을 순례하는 이들에게는 깊은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난 그분과 함께 있지 않아. 난 그분과 함께 있고 싶어, 피에르.” 전임 사제로서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혼신을 다하던 베르나르 신부가 용기를 잃고 공단을 떠나 자신이 소속되었던 수도원으로 되돌아가고, 피에르 신부가 이 마을에 파견되었다. 먼저 인근 공장에 취업해서 일하며, 퇴근 이후에 자신의 집에 모여드는 이들에게 하룻밤 지낼 숙소를 주선하고, 필요한 서류도 작성해 주고, 노동자들과 마주 앉아 조촐한 미사를 봉헌하며 이들에게서 그리스도의 눈빛을 가늠한다.

“피에르는 팔을 벌리고 웃는 얼굴로 그들에게 손짓했다. 그가 본당에 있을 때 몇 달 동안 신자들 앞에서 미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신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미사를 드렸으며, 제대에 오르는 계단과 성가대 사이에 철책이 있어 신자들과 신부를 갈라놓았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는 똑같이 피로를 느끼며 똑같은 요구를 가진 공장 친구들과 얼굴을 맞대고 미사를 드리는 것이다. 같은 손을 가진 그들, 그리스도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분이 사람들 사이에 계실 때 그분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그분의 눈빛밖에 없었다.”

노동사제 운동의 시작, ‘미션 드 프랑스’(Mission de France)

   
▲ 쉬아르 추기경(Emmanuel Suhard)은 1941년 ‘미션 드 프랑스’(Mission de France)를 설립해 노동사제를 양성했다.

프랑스에서 노동사제운동이 시작된 것은 1941년 7월이었다. 산업사회가 낳은 비참한 노동현실 속에서 빈민층과 노동자들의 복음화를 위해 파리 대주교인 쉬아르 추기경(Emmanuel Suhard)은 ‘미션 드 프랑스’(Mission de France)를 설립했다. 비그리스도교적 환경에 복음의 누룩을 심는 선교 활동이었다. 여기에 사명감을 느끼는 사제들을 양성해서 도시빈민지역이나 공단지대에 사제들을 파견했다. 이들은 직접 공장 생활을 하며 노동자들과 삶을 나누었다.

중요한 것은 사제로 대변되는 교회가 노동자들과 친밀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제들이 현장에 직접 투신한다는 의미와 그들과 나누는 우정의 중요성을 갈파하는 것이다. 시몬 베유가 <노동일기>에서 드러내고 있듯이, 직접 공장 노동에 투신해야 그들을 ‘정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해가 되어야 ‘참된 사귐이나 우정’이 가능하다. 여기서 예수회의 노동사제였던 반 브뢰크호벤 신부가 지은 <우정일기>(대구 가르멜 수녀원 옮김, 계성 출판사, 1986)의 한 대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언제 어떻게 사람들에게 가야 할지를 모색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방식이 불완전해도, 원숙하게 재검토를 못했더라도,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다. 누군가를 향하여 간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 이것만이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요, 그들 마음을 채워주고 감동과 행복을 전해 준다. 이것은 크리스챤적인 메시지, 즉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진실은 흔히, 달갑지 않은 듯한 상황에서 더 잘 증명된다. 타인들에게로 이와 같이 가는 것이 사도직이다.”

피에르 신부가 처음 입사하던 날 만난 인사과장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남겼다. “자신이 선하고 하느님이 저기 편인 줄 믿고 있는 이 외로운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다.” 그 사람은 양심의 가책 없이 자기 의무에 충실하다고 믿고 일한다. 가능한 많은 이익을 내도록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관심사이며, 그 밖의 것은 상관이 없다. 그러나 피에르가 보기에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장에서, 환기도 되지 않는 숨막히는 창고에서 죽음을 코앞에 두고 하루 끼니를 걱정하면서 일했지만 그들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살고 있어 결코 외롭지 않았다.”

이는 단지 사니의 공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공장 노동자들은 작업라인에서 다른 노동자를 협력자로, 동료로 만난다. 급기야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 유성기업과 콜트·콜텍에서 보듯이, ‘해고’라는 같은 어려움에 처할 때, 해고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을 ‘같은 고난을 넘어가려는’ 혈육처럼 느끼며, 희망버스에서 보듯이 선한 이들의 연대를 체험한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나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다른 이들의 세상마저 따뜻하게 품어낼 마음을 낸다.

이런 점에서 노동사제는 축복 가운데 있다. 그리스도가 사랑하던 그 ‘가난한’ 얼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형제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상징’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랑도 ‘상징적인 사랑’이 아니다. 그들은 구체적인 인간을 만나고, 시간과 돈과 몸을 내어놓고 구체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더 이상 사니 마을에서 선교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피에르 신부가 다시 본당으로 가지 않고 광산으로 발길을 옮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당 사제들은 너무 쉽게 강론대에서 ‘사랑’을 설교하고, 이런 관념적 사랑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하느님이 발생(發生)하지 않는다. 복음서의 최후 심판 이야기에서 예수가 거론한 것은 ‘구체적인 사랑’이었다.

그리스도인은 '양떼' 인가 '군대'인가?

이 소설에서는 본당사제와 노동사제 사이에 빚어질 만한 갈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날 그 지역의 본당 보좌신부인 르부아쇠르 신부가 피에르 신부를 찾아와 하소연한다. “전 본당에서 숨이 막혀요. 어린애들과 축구나 하고 부자들의 장례나 치러주기 위해 신부가 된 건 아닌데…….” 사제직에 대한 갈등을 빚고 있는 보좌신부 때문에 급기야 본당 신부가 본당 수녀를 대동하고 피에르 신부의 집으로 찾아왔다. ‘불안정한 사도직’으로 기울어지는 보좌신부를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것이다.

피에르 신부는 본당이 시내 중심가에 사는 몇몇 신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빈민 지역을 포함한 모든 주민들을 위한 본당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본당 신부는 “먼저 있는 것부터 지키고 구원하도록 해야지, 나머지는… 뒤에 해야지 한꺼번에 모든 걸 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난 이 본당의 양떼를 책임지고 있소. 그것을 지키고 하느님 앞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내 임무요.”
"그들은 양떼가 아니라 군대입니다. 제각기 방법이 다를 뿐이지 모든 그리스도인은 똑같은 직책을 갖고 있습니다."
“신자가 모두 ‘투사’란 말인가? 나도 알고 있소, 현대 유행어를.”
“‘구제회’라는 것이 옛날에 유행어였습니다. 그럼 아직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 ‘사도직’은 어떻습니까?”
“이 거리에서 사도직인지 뭔지는 당신 마음대로 하되 본당은 침범하지 말라는 것이오.”
본당신부의 고운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본당신부는 노동사제 베르나르 신부가 지역에서 노동자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예전에 본당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마들렌이 본당을 떠난 것, 그리고 본당 보좌신부가 ‘복음적 삶’에 대한 갈증으로 방황하기 시작한 책임을 피에르와 같은 노동사제들에게 돌렸다. 피에르 신부는 답답한 교회 현실을 생각하며 “그들의 귀를 막고 있는 유리창을 깨드릴 수만 있다면! 돈, 특권, 관습, 심지어 의무라는 이름을 가진 유리창을!”이라고 읊조렸다.

피에르 신부는 노동자가 되었다. 그리고 “경찰과 노동자, 집주인과 셋방살이하는 사람들, 기업주와 날품팔이꾼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교회나 난방이 잘 된 안락한 아파트, 하늘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공장이나 셋집이나 감옥에서는 동료를 배반하지 않고는 다른 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는 게 ‘노동자 세계’의 비극이라고 여겼다.

문득, 지난 6월 25일 명동대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 착좌식을 행한 염수정 대주교가 강론에서 “나는 특정 계층을 위한 목자가 아니라 노인에서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의 구별 없이 모든 이들이 더불어 사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라고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한 게 떠올랐다. 이런 발언 역시 안온한 교구청이나 윤택한 주교관에서나 가능한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며 슬퍼졌다. 언젠가 그도 추기경을 꿈꿀 것이다.

   
 ⓒ한상봉 기자

사제보다 아름다운 '대주교'

때로는 사제보다 아름다운 주교가 있기 마련이다. 아들보다 사랑스러운 아버지가 있기 마련이다. 사니 마을에서 동맹파업이 시작되면서 피에르 신부가 동료 노동자들과 더불어 도움을 청하러 파리의 대주교였던 추기경을 방문했다. 창백하고 마른 노인이었던 추기경에게 피에르 신부가 “죄송합니다. 피로하시다는 말씀을 듣고도…”하며 사과하자, 추기경은 “당신들은 피곤하지 않은가요?”라며 되묻는다.

추기경은 요청을 듣고서 “아버지는 특별히 한 자식만 사랑해서는 안 되는 법”이라면서 “마음속으론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강한 놈들한테 항상 맞고 아무한테도 사랑받지 못하는 자식을 특별히 더 생각하지만 겉으로는 공평해야 한다”고 말한다. 추기경은 그 자리에서 피에르 신부에게 어떤 약속도 해주지 않았지만, 본당신부들에게 기업주들의 최근 회계장부를 수집하게 하고, 이를 회계사에 맡겨 분석한 뒤에 행동할 것이라고 언질을 주었다. 일행이 떠나려고 하자 추기경은 “언제든지 오시오. 되도록 자주……” “혹시 내가 침대에 누운 채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당신들을 만나겠소.” 하였다.

다음 주일에 추기경의 명령으로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파리의 성당 문 앞에서 파업한 노동자들의 가족을 위한 모금이 있었다. 추기경의 메시지는 성당에서, 사무실에서, 술집에서, 정당에서, 살롱에서 검토되었고, 어떤 이들은 “추기경이 제 정신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수많은 신자들은 처음으로 “정치적 편견 없이” 노동자들의 조건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으로 노동자들한테서 자기의 형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 파리의 많은 주민은 새옷을 입고 승용차를 몰며 기름진 얼굴을 들고 다닐 때 그들 주변에 있는 가난하고 헐벗은 외곽지대를 언짢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 그들 가운데는 진실로 양심과 영혼의 고통을 느끼는 이가 생겨났다. 그들은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라고 자처할 수 없게 되었다.” 

"대주교님, 며칠 동안만 저희 사이에서 살아보시면…"

그러나 이윽고 추기경이 이승을 떠나고 새로운 교구장이 임명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새로운 대주교는 피에르 신부를 불러 제일 먼저 “몇 사람이나 세례를 주었소? 몇 사람에게 혼배성사를 주었고 미사에는 몇 명이나 모였소?”라고 물었다. 피에르 신부는 “매우 소수입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형제애가 싹트고 이해관계를 떠난 생활태도와 사랑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바로 복음을 살고 있습니다. 그 밖의 것은 자연히 따라올 것입니다. 대주교님, 며칠 동안만 저희 사이에서 살아보시면… 공장에서, 식당에서, 셋방에서, 회합에서… 아, 정말로 온 마을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하고 전했다.

그러나 “우리는 초대교회에 살고 있는 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대주교는 “그분은 죽음까지도 순명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오! 피에르 신부, 질서문란은 위험한 함정이오. 그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니오?”라고 질책했다. 결국 피에르 신부는 사니 마을을 떠나야 했다. 후임으로 전에 본당보좌였던 르부아쇠르 신부가 노동사제로 부임한다는 전갈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혼신을 다해 일했던 사니를 떠나야 한다는 게 피에르 신부에게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피에르 신부는 베르나르 신부처럼 수도원으로 달아나지도, 안온한 본당사제를 택하지도 않았다. 그가 추운 겨울을 택해 힘차게 돌아서서 간 곳은 ‘지옥문’이었다. 탄광촌이었다.

지옥문에서 '다시' 만난 하느님

피에르 신부는 어린 시절부터 지옥의 영상으로 머릿속에 새겨진 탄광 갱도를 바라보았다. 지옥의 문에서는 눈만 하얗게 드러난 시꺼먼 광부들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자신의 상복을 입은 사람들, 그들의 발밑에 쌓인 석탄 먼지가 버석버석 소리를 냈다. 가장 불행한 이들에게로 가서 하느님을 다시 만나기로 작심한 노동사제 피에르.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반백의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무슨 용건이오?”
“일자리가 있습니까?”
“갱에 들어갈 수 있겠소?”
“네.”
“자리는 언제나 있지.”

어차피 예나 지금이나 ‘복음적 명령’을 따르는 이들은 소수다. 주교거나 사제거나 수도자거나 평신도거나 아무 상관없다. 김수환 추기경 마저 ‘복음적 청빈’을 살고자 했으나 용기가 부족했던 자신을 질책한 적이 있다. 주교들도 우리 안에 매인 양떼를 지키거나 우리 안에 더 많은 양들을 집어넣으려고 애쓸지언정, 우리 밖의 사정에 대해서는 무감하기 쉽다. 사제들 가운데 본당 살림 먼저 챙기고서 여유가 생기면 지역사회를 돌아보리라 마음‘만’ 먹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이들’과 ‘복음’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의심하지도 않는다. 종교를 부적처럼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다. 액땜을 하려고 봉헌금을 내고, 사제 생활을 철밥통으로 여기고, 짐짓 점잖은 체 하지만 결국 암투를 통해 주교좌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편에서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겸손’으로 언제나 낮은 곳으로 내려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던 백성을 나도 사랑한다”고 몸으로 증거하는 이들이 있다. 이를 두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눈먼 풀포기도 돌 사이에서 돋아날 것이고 슬픈 새도 우짖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 그리스도 역시 그런 슬픈 눈매를 가진 이들 가운데 한 분이셨다. 그분 역시 지옥문(화엄, 華嚴)에서 해인(海印)을 발견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원문 보기: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46

발행일: 2012.7.2 | 지은이: J.L. 베르나르딘 | 옮긴이: 강우식
판형: 128*188 | 쪽수: 172쪽 | 값: 7,000원

 

● 기획 의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오해와 비방과 판단 같은 극심한 어려움을 진실의 힘으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유를 살 수 있음을  베르나르딘 추기경을 통해 일깨운다.

주제 분류 : 신앙체험, 자전적 수기, 성찰록
 
키워드(주제어) - 무고( 誣告),모함, 성추행, 진실, 진리, 자유, 암, 고통, 죽음, 성찰, 사목자

요약 : 성추행의 음모에 휘말린 극한상황을 진실의 힘으로 극복하고 악성암 말기의 투병생활과 침착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공개한 베르나르딘 추기경의 성찰록.
 
상세 내용
이 글은 미국 시카고의 대주교인 J.L 베르나르딘 추기경이 1993년 1월 성추행으로 고소당한 사건에서부터 1995년 6월 악성암으로 판정 받은 후의 투병생활과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까지의 성찰록이다. 그 시기는 추기경에게 최고의 시기인 동시에 최악의 시간이기도 했다. 최악이었던 이유는 모욕과 육체적 고통, 근심걱정과 두려움을 겪은 것이고 최고였던 이유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은총과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지지에 힘입어 화해를 하고 사랑을 나누며 평화를 간직한 것이다. 이 반성의 시기는 인간의 상황 안에 항상 선과 악이 어떻게 공존하고 또한 우리가 자신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손길에 맡긴다면 궁극에는 선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목자들이 겪을 수 있는 오해와 비방과 판단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어떻게 평화의 선물을 누리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베르나르딘 추기경은 자신을 고발했던 청년이 1994년말 AIDS로 사망하기 직전, 그를 만나 화해하고 함께 기도했다. 다음해 6월에 베르나르딘은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화학요법 및 방사선 치료를 받은 뒤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지만, 얼마 후 암이 재발했다. 베르나르딘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공개하면서 두려움의 체험을 다른 이들도 공유하기를 원했다. 자신이 교구장이던 시카고 교구 사제단과 함께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면서 강론으로 인사를 하고 사제단의 강복을 받았다.

추기경은 끝까지 사목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침착하게 죽음과 맞서면서, 수많은 암환자와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으며 이 책을 마무리 한 뒤 평온한 죽음을 맞이했다.

“30여 년 동안 미국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발전을 주도한 인물이었던 베르나르딘 추기경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혔다. 위엄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죽음과 맞서면서 수많은 암환자와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다. 1996년 9월 대통령이 수여하는 자유훈장을 받았다.”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대상
모든 신자, 병고와 여러 가지 고통 중에 있는 이, 무고한 오해를 받고 평화를 찾고 싶어하는 이

지은이 : J.L. 베르나르딘
1928년 4월 2일 남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에서 태어나 1952년 찰스턴 교구에서 사제로 서품되었고 애틒랜타 부주교(1966-1968), 위싱턴 D.C.에 있는 미국 주교회의 사무총장(1968-1972), 시카고 교구장(19722-1982), 주교회의 의장(1982-1996)를 지냈으며 1983년에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돌아가시기 두 달 전인 1996년 9월에 백악관으로부터 민간인에게 주는 훈장 중에 가장 명예로운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수상했으며, 10월 중순경에 췌장암이 급속하게 몸속에 전이되어 사목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책을 마무리한 후,1996년 11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 강우식
1959년에 태어나 가톨릭대학을 졸업했으며, 현재 영어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 「치유를 위한 10가지 기도방법」「나에게 맞는 기도 방법 찾기」「루르드의 기적」「삶 아름다운 진실」「성령과 손에 손잡고」「가족이 함께하는 성지순례」「치유하는 고해성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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