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편의 영화, 복음으로 투영시키다

예수회 사제인 저자의 영화 속 ‘영신수련’의 길

<들소리 신문> 2014.07.10 발행 [1518호] 


▲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김상용 지음/바오로딸 펴냄


“내가 영화관에 가는 행위를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일종의 거룩한 전례에 참여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나는 영화관에 늘 혼자 간다. 이것은 마치 기도하기 위해 경당에 혼자 머무는 것과 비슷하다.”

예수회 소속 사제이자 예수회 매체홍보 사도직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저자의 얘기다. 저자는 영화를 통한 ‘영신수련’ 피정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보면 좋을 만한 영화 33편을 뽑아 그 여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했다.

△우리 영혼이 감각해 낸 삶의 근원,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어거스트 러쉬’ △두터운 무의식의 안개를 헤치고 대면해야 하는 우리의 실존 ‘미스트’ △짊어질 수 없는 삶의 무게에 괴로워하는 모든 이에게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거대한 침묵 속에 만나는 내면의 자아 ‘위대한 침묵’ 등의 영화를 통해 영적으로 심화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영화 이야기 외에 자신의 체험을 풍부하게 곁들임으로써 인간에 대한 실존적 이해를 돕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날 수 있도록 이끈다. 또한 각 영화마다 마무리 부분에 ‘이 영화에 어울리는 복음’을 소개하고 그에 따른 ‘묵상 요점’을 제시함으로써 영신수련의 걸음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한 현실에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현존을 깊이 깨닫기를 희망한다. 또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깃든 흔적을 발견하고 그분 사랑의 속삭임에 마음을 열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대중예술로서 접하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비로소 ‘인간이 될 기회로서의 영화 보기’를 꿈꾸며 희망하는 것이 전혀 낯선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이 기회를 은총으로 살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기도하러 영화관에 가는 이유”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앞으로 영화관에 갈 때는 이전과 다른 무엇이 분명 보일 것 같은 기대가 생길 것이다.

편집부 기자  |  dsr123@daum.net

http://www.deulsori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589


 영화: 오만과 편견 

오해와 편견이 이해와 사랑으로 바뀌는 만남의 은


오만과 편견(Pride & Prejudice, 2005년) / 감독 : 조 라이트/ 제작국가 : 프랑스ㆍ영국 / 등급 : 12세 이상/ 상영시간 : 127 분/

장르 : 로맨스, 드라마


인간은 누구나 만남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관계가 형성된다. 이 사이에 끼어드는 내면의 불청객이 있다면 오만과 편견이 아닐까?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만남의 신비」에서 "만남이란 하나의 신비이며, 이 만남 안에는 진귀한 보물과도 같은 사랑ㆍ용서ㆍ구원ㆍ감사ㆍ생명ㆍ희망ㆍ평화ㆍ기쁨 등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남녀간 사랑 역시 만남에서 시작되고 헤어짐의 발단도 만남에서 비롯된다. 수많은 인간 군상들 속에 펼쳐지는 만남의 진실을 보여주는 영화 「오만과 편견」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첫 무도회에서 첫 만남을 갖게 되는 다시와 리지.



▲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리지와 다시는 격렬하게 부딪친다. 

리지 역은 키이라 나이틀리가, 다시 역은 매튜 맥퍼딘이 맡았다.



▲ 떠오르는 아침 햇살은 두 사람의 미래를 예고하듯 환히 비춘다. 

오해에서 이해로, 교만에서 겸손으로, 용서와 사랑으로의 과정은 은총이었다.


줄거리

 사랑이 싹틀 무렵 남자들이 빠지기 쉬운 실수는 '오만'이고, 여자들은 깨기 힘든 '편견'에 사로잡히기 일쑤다. 이 모든 것을 넘어선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진전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엘리자베스'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결혼까지 이어지는 것임을 굳게 믿고 있는 자존심 강하고 영리한 소녀다. 좋은 신랑감에게 다섯 딸을 시집보내는 것을 부모의 목표로 생각하는 극성스러운 어머니와 자식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너그러운 아버지를 중심으로 화목한 베넷가(家)의 다섯 자매 중 둘째 딸이다. 조용한 시골에 부유하고 명망 있는 가문의 신사 '빙글리'와 그의 친구 '다시'가 여름 동안 대저택에 머물게 되고, 그곳에서 열리는 댄스파티에서 처음 만난 '엘리자베스'와 '다시'는 서로에게 야릇한 호감을 품지만 자존심 강한 '엘리자베스'와 무뚝뚝한 '다시'는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저울질만 한다. '다시'는 아름답고 지적인 그녀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되는데…. 폭우가 쏟아지는 날, 비바람이 몰아치는 언덕에서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둔 뜨거운 사랑을 그녀에게 고백한다. 결혼의 조건은 오직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 '엘리자베스'는, '다시'가 그의 친구 '빙리'와 그녀의 언니 '제인'의 결혼을 앞두고 '제인'이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한 것을 알게 된다. 이로 인해 그를 오만하고 편견에 가득 찬 속물로 여기며 외면하고….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골이 깊어지는데 '엘리자베스'와 '다시'는 과연 서로의 진심을 알고 사랑을 키워갈 수 있을까….

 첫 만남

 영화의 첫 장면은 소설책을 읽으며 걷는 리지(엘리사베스를 엘리자나 리사, 리즈, 리지, 베스, 베티 등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를 클로즈업하며 시작된다. 그녀의 성격을 드러내는 단순하면서도 짙은 색감의 드레스! 아침 햇살이 그녀를 환히 비춘다. 자신의 선입견을 넘어가듯 다리를 건너 집으로 향하는 그녀를 따라 카메라는 롱테이크(long take)로 베넷 집안으로 들어간다. 천진한 모습으로 뛰어 다니는 딸들! 엉망인 집안! 거기에 개까지 집 안을 들락거린다. 집안으로 들어가려던 리지는 자기만의 창을 통해 타인을 바라보듯 창문을 통해 엄마, 아빠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는다. 부각되는 장면은 베넷가 집 밖 전경으로 이어진다. 집 앞에는 연륜을 드러내는 깊게 주름진 표피의 큰 나무 밑둥치가 양쪽에 서 있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뿌리 깊은 인간 내면의 대결을 상징하듯이….

 모든 남자들은 단순하면서도 멍청한 속물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리지는 무도회에서 다시와 첫 만남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 그녀가 다시에게 용기를 내어 춤 파트너가 되어주길 신청하지만, 그는 무뚝뚝하게 정중하고도 냉정하게 거절한다. 더욱이 그가 친구에게 리지의 외모에 대해 폄하하는 말을 엿듣고는 불쾌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친절한 구석이라곤 없어 보이는 무뚝뚝하고 잘난 척하는 다시, 언제나 검은 정장에 흐트러짐 없는 반듯함을 지닌 귀족의 풍모를 지닌 그는 고상함과 완벽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여자는 완벽해야 하고 그림이나 춤, 피아노도 할 줄 알고, 독서로 지성도 쌓아야 한다며 베넷 가문의 여자들을 속물로 바라본다. 그는 누구의 말에도 동요되지 않으며 쉽게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다시가 오만한 사람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히게 된 리지는 위크햄을 만나 다시와의 관계를 듣는다. 그의 거짓말을 진실로 믿는 리지는 다시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을 더 굳힌다. 콜린즈의 청혼을 당당히 거절한 그녀는 맨발로 집 뒤뜰 그네에 앉아 빙글빙글 꼰다. 편견에 대한 집착에 가득 차 계속 주변의 모든 것들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느 날 다시의 숙모를 돕는 피츠윌리암을 만나게 되는데 리지는 언니 제인의 결혼을 파경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 다시라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와 실망의 어두움에 깊이 빠져든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비에 흠뻑 젖은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들의 만남! 둘은 언성을 높이며 극한으로 치닫는다. 이 공방전을 통해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다시는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리지를 향해 사랑을 고백하며 청혼한다. 하지만 언니를 불행에 빠트린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하는 리지!


 난 장님이었어 

 다시와 헤어진 리지는 아주 캄캄한 방안에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허공을 응시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거울 이론과도 같은 심리적 갈등 속에서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바라보는 리지. 그 모습을 부각시킴으로써 리지의 내면을 관객에게 들키는 효과와 함께 관객 또한 그녀와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상징했다.

 인생이란 깨달아 가는 과정으로 점철된 역사라고 말하고 싶다. 이 역사는 언제나 만남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으로 이뤄진다. 리지는 언니 제인에게 고백한다. "난 장님이었어." 다시는 잠옷 바람으로 리지의 거실을 찾아와 오해를 풀기 위한 편지 한 통을 놓고 간다. 언니와 빙리와의 관계, 위크햄의 거짓말로 빚어진 오해가 얽혀 있었음을 깨닫는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새로운 마음의 시선으로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그날 밤 오렌지색의 둥근 원과 어두운 그림자들이 빅 클로즈업(big closeup)된 리지의 눈동자 속에서 춤을 추며 스쳐지나 간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벌판을 지나 절벽에 올라 바람을 쏘이는 리지! 이제 편견에서 해방된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은총의 만남

 캐서린 부인의 방문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리지는 다음날 새벽 안개 자욱한 벌판에 서 있다. 멀리 저편에서 풀어헤친 셔츠 바람으로 급하게 그녀를 향해 오고 있는 다시! 캐서린 부인의 무례함으로 고통 받았을 리지를 위로하며 사랑을 거듭 고백한다. 어두운 밤의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정화된 사랑의 순수함이 드러난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은 두 사람의 미래를 예고하듯 환히 비춘다. 오해에서 이해로, 교만에서 겸손으로, 용서와 사랑의 과정을 겪은 진솔한 만남이며, 은총의 시간이다.

 다시는 오만했던 마음을 비운 겸손한 모습으로 리지를 기다리고, 청혼 허락을 받기 위해 리지 역시 진심을 말한다. "그분은 교만하지 않아요. 제가 오해한 거예요…. 우리 서로가 잘못 봤던 것이에요…. 제가 분별력을 잃었어요. 둘 다 고집이 센 점이 많이 닮았어요."

 예수님은 인간 그 자체를 믿으셨기에 모든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으셨고 편견의 잣대로 저울질하지 않는 분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모든 관계는 참된 만남에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은 TV 미니시리즈로 네 번이나 영국 BBC에서 제작돼 인기를 모았고, 영화로도 제작됐다. 2005년 영상의 귀재이자 탐미적 낭만주의자인 감독 조 라이트는 이 영화를 맡기 전 오스틴의 작품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문학보다 시각예술과 그 문법에 익숙한 사람으로서 영화 「오만과 편견」 한 장면 한 장면에 정성을 기울였다. 사랑 받는 작품들은 모두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고, 세대를 초월해 공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진실을 담아내고 있다.

 사랑의 관계는 남녀 관계뿐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이기도 하다. 이 만남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고 진실하려면 다음의 성경 말씀을 마음에 품어야 할 것이다.



이복순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


평화신문 :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98140&path=201402


영화: 도쿄소나타

크고 작은 시련의 터널 끝에는 언제나 찬란한 빛이


도쿄 소나타(Tokyo Sonata, 2009년, 감독 : 구로사와 기요시, 제작 국가 : 일본, 네덜란드, 등급 : 12세 이상, 상영시간 : 119분 ,

장르 : 드라마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서 많은 소시민들은 경제적으로 좀 더 삶이 나아지길 꿈꾼다. 소시민들에게는 화합과 소통을 꿈꾼다는 말은 어쩌면 사치스런 말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만큼 힘든 상황과 어려운 처지의 고통이 희망을 품을 힘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잠시 '인간이 넘어진다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고 다시 일어선다는 것은 신적인 것'이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시작의 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새롭게 걸어갈 용기를 가진 이들의 영화 '도쿄 소나타' 속에서 그 답을 찾는다.


▲ 영화는 거짓말과 의심, 불통이 이미 그 가족의 식탁에서부터 시작한다는 평범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 도둑과 바닷가에 있는 엄마 메구미. '구구는 고양이다'로 많은 사랑을 받은 코이즈미 쿄코가 엄마 역을 맡아 최고의 열연을 선보였다.


▲ 쓰레기더미에 쓰러져 있는 아빠 류헤이는 희망이 없는 가운데서도 희망을 찾으려 한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 배우로 도약하는 연기파 배우 카가와 테루유키가 가족에게도 해고 당한 사실을 숨기는 아빠 역할을 맡았다.

줄거리

 들리나요, 희망이 오는 소리가…. 며칠 전 실직 당한 아빠, 언제나 외로운 엄마, 갑자기 미군에 지원한 형, 남몰래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나. 우리 가족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주인공은 고백한다. 초등학교 6학년 켄지에겐 꼭꼭 감춰둔 비밀 한 가지가 있다. 켄지의 천재적 재능을 발견한 선생님은 음악학교 오디션을 권하지만, 아빠의 반대 때문에 몰래 피아노학원을 다니던 켄지는 계속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 그런데 비밀은 켄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해고된 아빠, 어느 날 사라진 엄마, 미군에 지원한 형까지 모두 숨겨둔 비밀이 있었는데…. 과연 켄지는 아름다운 꿈인 피아노 연주를 계속할 수 있을까? 거짓말쟁이 켄지 가족 불협화음의 조율이 시작된다!

 폭풍우가 치네

 세찬 폭풍우가 몰아치며 열린 거실 문으로 빗줄기가 들이치고 신문지와 잡지는 바람에 휘날려 뒹군다. 황급히 문을 닫으려던 엄마 메구미는 휘청거리는 나뭇가지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이어지는 장면은 아빠 류헤이의 사무실. 그는 "폭풍우가 치네" 하며 중얼거린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한다. 아니나 다를까 저임금 정책에 따라 중국인을 채용한 회사는 총무과장이었던 아빠를 권고 퇴직시킨다. 갑작스런 해고로 가장으로서 권위와 자존심이 무너지자 그는 이 사실을 가족에게 비밀에 부친다. 아침이면 넥타이에 양복을 차려 입고 출근하는 것처럼 집을 나선다. 노숙자들 틈에 끼어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때우며 고용지원센터를 찾아다닌다.

 가족만을 위해 헌신하던 엄마 메구미는 정성을 쏟아 도넛을 만들지만 식구들은 관심이 없다. 그녀는 어느 날 소파에 누워 "일으켜 줘, 누가 나 좀 일으켜 줘" 하며 외로움과 무료함에 절규해보지만 간절한 손짓은 그저 허공을 맴돌 뿐이다.

 초등학교 6학년 켄지는 아빠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몰래 급식비를 피아노 레슨비로 사용하며 쓰레기통에서 고장난 전자 피아노를 주워 열심히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연습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평범한 사사키 가족이지만 일본 중산층 가족의 상징으로 보인다. 이들이 사는 집의 내부 역시 그들의 심리를 드러낸다. 집을 둘러싼 전깃줄, 집 뒤를 지나가는 전차가 내는 굉음과 진동은 삶의 굴곡을 의미한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공간인 식탁은 계단과 부엌의 선반이 가로질러 있어 꽉 막힌 느낌을 준다. 거리의 대형 쇼핑센터와 도쿄라는 도시 또한 생명력이 없어 보인다. 류헤이는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쇼핑센터 화장실 청소 일을 하게 되는데, 가장으로서 권위를 지키느라 넥타이 차림으로 출ㆍ퇴근하는 위선적 태도를 드러낸다. 큰아들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세계평화를 지키겠다는 포부를 내세워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미군에 자원 입대한다.
 
 새로운 시작의 징검다리

 시련의 어둡고 갑갑한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류헤이는 어느 날 쇼핑센터 화장실 청소를 하던 중 돈 봉투를 발견한다. 돈 봉투를 움켜쥔 그는 어디론가 달려가다 쓰레기더미에 부딪쳐 뒹굴며 외친다. "어떻게 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 다시 시작하고 싶어…." 일어나 뛰다가 그는 자동차에 부딪쳐 정신을 잃는다. 한밤중이었다.

 한편 도둑의 인질로 잡힌 메구미는 도둑이 시키는 대로 훔친 차를 대리 운전해 먼 바닷가에 도착한다. 그 밤에 그녀는 도둑의 진실한 속내를 듣게 된다. 자신은 이제 구제불능이라며 자살하려는 도둑에게 "자기 자신은 하나뿐이에요"하며 용기를 주던 그녀는 눈을 들어 수평선을 바라보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라며 자문하듯 중얼거린다.

 설상가상으로 켄지마저 아빠에 대한 반항으로 가출해 고속버스 짐칸에 몰래 숨어든 죄로 지하 감방에 갇힌다. 모든 상황은 무거운 침묵을 자아내는 분위기다.

 혹독한 사회 현실, 실패와 좌절 속 사사키 가정은 분열되고 상처만 가득하다. 하지만 어둔 밤이 서서히 밝아올 무렵 이들 마음 안에도 서광의 동이 터 온다. 

 불기소 처분으로 석방된 켄지도, 거친 파도가 밀려드는 바닷가에 있던 메구미도 새벽 햇살을 받으며 집으로 향할 결심을 한다. 만신창이가 돼 길 옆에 쓰러져 있던 류헤이도 정신을 차리고 주머니 속 돈뭉치를 유실물함에 넣고 집으로 돌아온다. 악몽 같은 어둔 터널을 체험한 이들은 집과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며 식탁에 둘러 앉아 함께 식사를 한다. 미군에 입대한 큰 아들만 빼고….

 몇 개월 후 켄지는 음대부속중학교 실기시험에서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하게 되는데 심사위원들과 청중은 켄지의 연주에 심취한다. 권위와 자존심의 상징이던 넥타이도 없이 입시 시험장에 함께한 류헤이는 아들의 천부적 소질에 놀라 눈물을 글썽인다. 하느님의 영을 상징하는 빛은 연주장을 가득 채우며 생기를 돋운다. 연주를 마친 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류헤이와 메구미…. 세 식구가 연주장에서 걸어 나오는 영상 뒤로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이들의 발자국 소리만 특별한 음향으로 깔린다. 이 소리는 희망을 향해 계속 걸어갈 미래를 암시한다.

 하느님은 언제나 다시 시작할 기회를 마련하신다. 어떤 처지에서도 실망하지 않은 이들 안에서 새로운 창조를 이루시는 하느님을 떠올리라는 초대가 아닐까 한다.
 
 꿈과 희망을 안고

 '도쿄 소나타'는 2008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 2009년 아시아 필름 어워드 최우수 각본상과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세계적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감독은 이 영화는 꿈과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시나리오 작가 맥스 매닉스가 쓴 작품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각본을 수정한 작품이다. 엄마의 비중을 높이고 큰아들 캐릭터를 추가로 등장시켰다. 크고 작은 시련의 터널을 지나 '도쿄 소나타'의 가족들에게 찾아온 희망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용기의 메시지를 함축한 영화다.


 성경구절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로마 8,24) 

이복순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

평화신문 <가톨릭 문화산책><48>영화(10) 도쿄 소나타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92338&path=201401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92338&path=201401




'영화 속 복음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요한 23세 >  (0) 2014.04.03
영화: 오만과 편견  (0) 2014.03.01
영화, 도쿄소나타  (0) 2014.01.16
영화, 크래쉬  (0) 2013.12.07
영화 엔딩노트  (0) 2013.11.01
'터치'- 생명을 살아가는 작은 숨결들  (0) 2013.09.12

[가톨릭문화산책[<43> 영화(9) 크래쉬

메마른 광야에도 사랑과 화해의 오아시스가 있기에


크래쉬(Crash, 2004년) 

감독 : 폴 해기스,  제작국가 : 미국ㆍ독일 ,  등급 : 15세 이상 , 상영시간 , 112분 , 장르 : 드라마 ㆍ범죄ㆍ미스터리 

 

 고도의 기술문명은 세상을 더 편리하고 광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변화시켰다. 그 휘황한 불빛의 뒷모습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다. 잔악한 폭력과 불신, 착취와 파괴의 거대한 암초가 숨어 있다. 예수회 송봉모 신부는 「광야에 선 인간」이라는 책에서 세상은 광야이며 그 속성은 두 얼굴을 지닌 장소라고 했다. 힘겨움과 황량함, 외로움 등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고통의 장소를 뜻하는 것이다. 놀라운 하느님의 섭리와 보살핌이 드러나는 장소이자 인간 갈등이 서로 부대끼는 도시를 광야에 비유한 영화 '크래쉬'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온 몸을 투신해 크리스틴을 구출하는 백인 경찰 라이언.



▲ 이란인 파라드에게 총을 맞는 멕시코 출신 열쇠수리공인 대니얼과 딸. 그러나 그 어린 딸은 기적적으로 다치지 않는다.


▲ LA에 메마른 사막을 포근하게 적시는 축복 같은 눈이 내린다. 세상 삶은 광야지만, 그 안에는 하느님 은총이 깃든다.


줄거리

 여덟 쌍이 겪으며 보여주는 갈등과 충돌, 8색의 트라우마를 만나게 한다. 늦은 밤 LA 근교의 한 도로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현장에 도착한 흑인 수사관 그레이엄의 표정이 당혹과 슬픔으로 일그러진다.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은 36시간 전, 15명의 삶, 8가지 사건의 얽힘, 8색의 상처를 교차시키며 무관한 듯하면서도 연결고리가 이어지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영화는 어둔 밤, 푸른 수은등과 함께 현란한 불빛들이 서로 겹쳐지면서 부딪쳤다 사라지고 다시 충돌해 검푸른 나뭇가지 상처를 빛 속에 남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밤은 위험과 위협을 암시하는 듯해 두렵다. 밤의 공포와 같은 8개의 충돌 이야기를 빛으로 암시했다.


 백인 부부 릭과 진 : 지방검사 릭과 그의 아내 진이 두 흑인 청년에게 차를 강탈당한 밤, 두려운 진은 집 열쇠수리공 멕시코인 대니얼을 의심하고 가정부에겐 짜증을 내다 계단에서 구르는 사고를 당한다. 정치적 성공에 몰두한 남편 릭은 그녀의 외로움을 감싸줄 시간이 없다.


 흑인 부부 카메론과 크리스틴 : 같은 시각, 흑인이자 방송국 PD인 카메론과 아내 크리스틴은 강탈당한 지방검사 릭의 차와 같은 차종이라는 이유로 백인 경찰 라이언과 핸슨에게 검문을 당한다. 크리스틴은 라이언의 몸수색으로 성적 모욕을 받는다. 그러나 카메론은 자신의 지위에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오히려 수치를 당한 아내에게 짜증을 내며 아내를 피한다.


 백인 경찰 라이언과 핸슨 : 라이언은 병든 아버지로부터 받는 아픔에 대한 화풀이로 흑인 크리스틴에게 수치심을 준다. 후배 경찰 핸슨은 선배 라이언의 행동에 격분하지만 자신도 역시 편견과 두려움에 순진한 흑인 피터를 살해한다.


 이란인 파라드와 멕시코인 대니얼 : 서툰 영어와 중동인이라는 이유로 자주 멸시를 당한 파라드는 자신의 가게를 지키기 위해 사들인 총구를 무죄한 멕시코인 대니얼에게 들이대고 총을 쏜다.


 흑인 형사 그레이엄 : 백인 사회에서 성공을 위해 가족으로부터 스스로 소외를 선택한 그이지만, 지금 그 앞엔 동생의 시체와 함께 "동생을 죽인 살인자는 너"라는 어머니의 비난만 남아 있다.


 피부색ㆍ인종ㆍ계급ㆍ직업ㆍ성별이 서로 다른 이들이 부대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충돌한다. 이들은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이 누구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 자문하지 않는다. 소통의 문을 닫고 편견과 관계의 단절 속에 갇혀 산다. "날마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나도 정말 모르겠어"라고 절규하는 진은 고독과 두려움에 진저리를 낸다. 분노ㆍ소외ㆍ편견ㆍ집착ㆍ두려움ㆍ외로움으로 꽉 들어찬 그들의 메마른 마음이 엿보인다.


 "정이 그리워서 그러는 거야! 다른 도시에선 길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정 드는데…. LA는 삭막하잖아! 늘 차 안에 갇혀 살고 사람의 체취가 그리워 서로 충돌하고 상처 주고…."


 교통사고 현장에서 흑인 형사 그레이엄이 애인에게 하는 말이다. 이들은 고통스럽고 힘겹게 사막을 걷고 있다. "인간의 절망은 하느님을 만나는 기회다"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의 광야, 인생의 광야는 은총의 장소이기도 하다.


 은총의 장소


 인간이 접촉하거나 충돌하지 않는다면, 그 삶은 무인도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충돌은 갈등을 일으키지만 화해와 사랑의 꽃을 피운다.


 태양은 LA를 밝게 비추며 이들 안에 감춰져 있던 선한 마음을 드러낸다. 백인 경찰 라이언은 온몸을 던져 위기에 처한 크리스틴을 극적으로 구출하고, 백인 경찰 핸슨은 위기에 처한 유색인 PD 카메론을 친구라며 목숨을 구해준다. 백인 경찰의 도움을 받은 카메론은 소홀했던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전화를 한다. 더운 지역인 LA에 눈이 내린다. 눈송이들이 쌓여 더러운 마음과 죄를 덮어주며 메마른 사막을 포근하게 적신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지방검사의 아내 진은 유색인 가정부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에 고마움을 표현하며 그녀를 끌어안고 이렇게 고백한다. "난 바보였나 봐! 당신이 가장 좋은 친구란 걸 몰랐다니…." 편견의 벽을 허물고 화해하는 축복의 시간이다.


 강탈범 앤서니는 탈취한 자동차에 실린 불법 이주민들을 풀어주며 자신의 모든 돈까지 털어 준다. 그가 구원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이다.


 이란인 파라드는 열쇠수리공인 멕시코인 대니얼을 도둑으로 단정하고 대니얼의 집으로 달려가 총을 쏘는데 대니얼의 어린 딸이 대신 총에 맞는다. 파라드의 총에 맞는 대니얼과 딸 뒤로 환한 빛이 비치며 기적과 같은 말이 이어진다. "아이를 쐈어! 애는 안 다쳤어. 애는 천사야! 나의 구세주…. 우릴 지키러 온거야"라고. 파라드는 자신의 하느님 체험을 딸에게 고백한다. 황량한 사막은 은총의 장소로 변화됐다.


 시기는 성탄절. 아기 예수 구유 벽화와 모형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 트리, 그리고 성탄 캐럴이 흐른다. 편견의 벽을 허물고 인간을 만나러 하느님이 내려오신 성탄절이다. 구세주의 탄생으로 광야에 샘물이 흐른다. 서로에 대한 편견과 고립의 껍질을 깨고 나와 화해와 관용, 사랑과 이해의 새로운 길을 택한 것이다.


 영화는 부감(high angle)기법으로 시내 한복판에서 다시 교통사고로 아귀다툼하는 현장을 빙 돌아 나오며 끝난다. 이 세상 삶의 장소가 광야이지만 그 안에 하느님의 은총이 깃들어 있음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광야는 하느님 섭리의 장소


 2006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 편집상을 수상한 '크래쉬'는 폴 해기스 자신이 경험한 기억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자동차 강도를 당했던 그는 집 안의 자물쇠를 모두 바꿨고, 그 강도의 시점에서 LA를 바라보는 작품을 쓰기로 결심했다. '멜팅 팟(melting pot)'이라는 미국의 LA! 다양한 종족,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이들은 함께 섞여 살며 선입견과 편견으로 서로 부딪치고 충돌한다. 이들은 인간 군상의 한 단면이다.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내 안의 광야는 무엇일까? 이 광야를 용감하게 직면하고 받아들인다면 이곳은 하느님 섭리의 장소가 될 것이다.


 성경구절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바싹 마른 땅은 샘터가 되며 승냥이가 살던 곳에는 풀 대신 왕골이 자라리라"(이사 35,1-7).



이복순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

평화신문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86046&path=201312



'영화 속 복음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오만과 편견  (0) 2014.03.01
영화, 도쿄소나타  (0) 2014.01.16
영화, 크래쉬  (0) 2013.12.07
영화 엔딩노트  (0) 2013.11.01
'터치'- 생명을 살아가는 작은 숨결들  (0) 2013.09.12
영화(6) 맨오브 스틸(Man of Steel)  (0) 2013.08.02

 영화(8) 엔딩노트 

죽음, 하느님께로 가는 아름다운 길

엔딩노트(Ending Note, 2011) , 감독 : 스나다 마미(砂田麻美), 상영시간 : 90분 , 장르 : 다큐멘터리 , 등급 : 전체 관람가 



인간은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일회적 삶을 사는 인간에게 죽음은 반복될 수 없는 사건이기에 삶이 의미가 있다면 죽음 또한 분명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스나다 도모아키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엔딩노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줄거리

 정년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던 스나다 도모아키는 건강검진을 통해 말기암 판정을 받아든다. 예상치 못한 죽음 통보 앞에 망연자실해 하며 슬퍼하기보다 그는 성실하고도 꼼꼼하게 자신만의 '엔딩노트'를 준비한다. '평생 믿지 않았던 신을 믿어보기', '한 번도 찍어보지 않은 야당에 표 한 번 주기', '일만 하느라 소홀했던 가족들과 여행 가기' 등 목록을 작성하며 그는 가족들과 소중한 추억을 쌓는다. 그렇게 '엔딩노트'가 채워질수록 가족과의 긴 이별 시간은 점점 가까워진다


▲ 말기암 판정을 받고 나서도 해변가에서 손녀들과 머슴놀이 실컷 해주는 주인공 스나다 도모아키.


▲ 하느님을 믿기 위해 사제를 찾아가 세례를 받고 싶다고 고백하는 스나다 도모아키(왼쪽).


▲ 임종 직전, 주인공 스나다 도모아키는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 막내딸에게 세례받는 주인공.


죽음 준비는 내 일상의 일부


 영화의 첫 장면은 카메라 파인더를 서서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기며 촬영하는 패닝(panning)기법으로 막을 올린다. 청명한 하늘에 정갈히 건축된 높은 빌딩을 낮은 데서 올려다보며 찍다가 장례식장인 성당으로 화면을 옮겨가며 오버랩(Overlap)한다.

 그는 죽어서도 문상객을 자상히 챙긴다. "바쁘신 와중에도 저를 위해 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마실 건 충분한가요? 부족한 건 뭐든 말씀하세요.… 덕분에 이날을 맞을 수 있게 됐습니다."

 대학에서 경제학부를 나와 민간 화학제조사 영업부에서 40년간 많은 프로젝트를 기획해온 그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일생일대의 마지막 프로젝트"라며 엔딩노트를 만든다.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무엇이든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는 꼼꼼한 그였기에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잘 죽을 수 있을까, 사람은 왜 죽을까?"하는 질문을 던지고 죽음을 적극적으로, 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하나하나 준비해 나간다. 장례식장도 자신이 직접 답사해 빈틈없이 준비한 그는 94세 어머니께 알려드린다. "장례식은 조용하고 간단히 할 거예요. 노래도 부를 거예요. 지인들만 모시고, 부의금은 받지 않겠습니다.…"

 밝은 성격과 심각한 일일수록 유머를 잊지 않았던 그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체력은 떨어지고 몸은 야위지만 부정하려고도 하지 않고 자포자기하지도 않으며 분노하지도 않고 오히려 유쾌하게 죽음을 맞는다. 장례식에 초대할 사람들을 미리 컴퓨터에 정리해 두고 혹시나 해서 여벌받기까지 해 둔 명단을 아들에게 넘겨주며 말한다. "장례식에서 주빈(Main guest)은 나니까." "…장례식 도중에 잘 모르겠으면 나한테 전화해"하며 늘 웃음을 잃지 않는다. 올해를 넘길지 모르니 연하장하고 부고장을 같이 보내겠다며 친구에게 전화한다. 


 잊고 있던 중요한 것들을 회복하기


 자신의 부주의로 태어난 막내딸! 그러나 문제인 이 딸을 통해 그동안 무심했던 하느님과의 관계를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직접 사제를 찾아가 말한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곳을 찾다 보니 이렇게 의지하게 됐습니다. 이곳에서 세례를 받고 여기서 편안히 보내주신다면…." 그러고나서 사제가 권하는 기도문을 매일 정성들여 바친다.

 "제가 세상을 뜰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가장 걸리는 건 가족이죠!" 그는 소홀했던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힘들지만 마지막 가족여행을 떠난다. 그동안 멀리서 홀로 살았던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며 많은 대화를 나눈다. 대화 중에 가장 중요했던 건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것. 그리고 불교 신도인 그가 세례를 받기로 한 사실과 성당에서 장례식을 할 것이라는 소식 등이다. 바쁜 직장생활로 평소 소원했던 아내에게도 쑥스럽지만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내 준코는 "같이 가고 싶어. 당신이 이렇게 좋은 사람인줄 너무 늦게 알았어. 더 많이 사랑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하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부인에게 "같이 살아줘 고맙다"고 자신의 노트에 기록한다.

 가족들 역시 끝까지 온 힘을 다하는 그가 흔들리지 않고 남은 생을 편하게 보내도록 최선을 다한다. 모두 그의 둘레에 모여 행복한 옛 추억을 담은 비디오를 보며 아름다운 삶의 기억을 되살린다. 아버지 주위에 모인 가족들! 손녀들은 "할아버지 덕분에 많이 웃었어요.… 하늘나라에 가시게 됐지만 할아버지랑 굉장히 즐거웠어요.…"하며 할아버지가 아름다운 죽음을 맞도록 돕는다. 그는 어머니께도 작별 인사를 한다. "오랫동안 고마웠어요.… 어머니보다 먼저 가서 죄송해요.…" 가족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쁨을 느낀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관계가 있는 한 죽음은 끝이 아니다. 

 평소 스쳐 지나치던 일이지만 죽음 앞에서는 매시간이 소중하며 은총이었다. 방학 중 미국에서 찾아온 손녀들 앞에서 암에 걸렸다고 누워만 있을 순 없다며 손녀들 머슴노릇으로 재미있게 최선을 다해 놀아준다. 임종을 앞둔 그을 위해 미국에서 자신을 보러 찾아온 손녀들에게 애정을 표시하며 연신 "고맙다…. 감격스럽다! 할아버지 감격!! 만나서 감격!!"하며 두 손을 들어 올려 기쁨을 표현한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한 삶이었기에 모든 것이 감사로울 뿐이어서 그는 끊임없이 그와 관계한 모든 이들에게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는 죽기 하루 전 세례를 받는다. 그가 상상했던 장엄한 성당도, 오르간 음악도 없는 병실에서 막내딸에게 세례(대세)를 받는다. 온 가족이 모인 병실! 부인과 세 자녀, 큰 아들의 세 아이까지! 창가에 비치는 햇살 속에서 죽음에 대한 어린 손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렇게 웃고 있으니까 여기가 천국 같다. 정말 그러네"하고 말한다.

 이어 그는 편안하게 죽음의 문을 넘어 영원한 나라로 간다. 죽음은 축복이자 은총이다.

 그리고서 어둑어둑해지는 도시 하늘에 한 마리 새가 하늘로 훨훨 날아 사라진다. 장례차가 가족 곁을 지날 때 그는 손녀들에게 말한다. "할아버지 앞에 너희들이 나타나줘 정말 행복하단다. 하늘의 별이 돼 너희들 크는 걸 지켜볼게…."

 

영화에 대해서

 다큐멘터리 영화 '엔딩노트'는 감독이자 주인공 막내딸인 스나다 마미 감독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직접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다. 다큐멘터리를 공부한 그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밑에서 배운 이후 데뷔작에서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 준비, 임종을 그렸다. '엔딩노트'는 최대한 인물에 가깝게 다가가면서도 거리를 두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의 모습을 습관처럼 계속 카메라에 담아온 스나다 마미 감독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 계획은 없었지만 촬영 과정에서 아버지가 죽음을 맞던 모습과 죽음을 함께 마주하는 가족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고자 영화화를 했다고 밝힌다. 죽음은 관계의 회복이자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며, 하느님께 가는 아름다운 길임을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그룹대화  

 1. 인생을 마무리하는 주인공 죽음에 대해 느끼는 바는 무엇인가?

 2. 주인공의 마지막 프로젝트, 엔딩노트는 무엇인가?

 3. 나의 엔딩노트에 첫 번째는 무엇인가?


 성경구절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끝이 좋고 죽음의 날에 복을 받으리라"(집회 1,13).




이복순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

평화신문 [가톨릭 문화산책]<38>: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80592&path=201310



[신간 1]〈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고〉

발행일 : 들소리신문

   2013-08-29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고〉
크리스토프 에닝 지음/전유미 옮김/바오로딸 냄


“신의 침묵에도 이어간 헌신의 삶”

  영화 ‘신과 인간’ 실제 주인공들의 이야기


세계 곳곳에서는 지금도 종교 간의 갈등으로 인해 전쟁이 벌어지고 무고한 목숨이 쓰러지고

있다. 수천 년 간 이어져온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여기에 그 해답이 있다.

1991년에 시작된 알제리 내전은 알제리 정부와 여러 이슬람주의 무장단체들의 무력충돌로

10여 년 간 지속됐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고〉는 알제리 아틀라스산맥의 지맥에 위치한

시토회 티비린 수도원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신과 인간’의 실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이곳 수도원 9명의 수도사들은 알제리의 무슬림 마을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이슬람교인들

속에서, 관상수도회의 소명에 따라 더욱 기도에 몰두했다. 그러면서도 주민들과 땅을

공동경작하고 사람들을 치료해 주며 인간미 넘치는 삶을 살아갔다. 박해와 순교로 고통을

겪는 알제리 가톨릭교회의 중심부에서 관상생활을 하는 그들은 다른 민족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고 교류하며 관계를 맺어나가는 담대한 신앙의 내기를 벌였던 것이다.



          티비린 수도원 정원에서의 9명 수사들이 함께.


그러나 그들의 마을 주민들과의 조화로운 삶은 1996년 3월 끝이 났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한 테러리스트들이 벌인 무자비하고 끔찍한 살인 소식이 전해지면서

마을은 어수선해졌고, 알제리 정부는 수도사들에게 이 나라를 떠날 것을 통보했다.

수도사들은 수도원에 남느냐, 떠나느냐는 문제를 놓고 신께 어찌해야 할지 물었다.

하지만 어떠한 답도 얻지 못했다.

수도원 원장인 크리스티앙 드 셰르제는 마을 사람들과의 만나 “우리 수사들은 새가 나뭇가지

위에 깃들이듯이 알제리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갑니다”라고 밝히고 하나님께 드린 그들의

삶을 충실하게 살기 위해 마을 사람들과 살며 고통도 함께 겪기로 결정, 그동안 해온 대로

일상을 이어갔다.


1996년 3월 7명의 수사들이 무장이슬람단체의 습격을 받았고, 납치·감금당한 지 56일 만인

5월 21일 결국 잔인하게 살해됐다.

그들이 죽고 난 후 비로소 세상은 죽음의 위협 속에서 물러서지 않고 이슬람교도와

그리스도인이 서로 대화하도록 탐구하고 평화를 갈구한 신학적이고 실천적이었던 그들의

노력을 보게 되었다.

주간지 ‘순례자’ 기자로 수도원의 시작과 수사들의 일상, 그리고 납치되어 순교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한 저자는 “수사들이 바친 삶은 헛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그는 “수사들은 자신들의 죽음뿐 아니라 이슬람교 땅에서 겸손하게 살았던 삶으로

그리스도교의 형제 사랑과 평화를 증거했다”며 침묵을 지키고 노동하고 기도하며 아주

겸손하게 산 그들의 삶에서 ‘신앙의 영속’을 발견했고, 그들로 인해 예수께서 당부하신

사랑의 일치를 앞당겼다고 보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15년이 지났고 알제리 내전은 끝났지만 수도원은 알제리 정부의 감시 속에

아직도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폭력의 한가운데서 적의를 버린 채 살아간 이 수사들의 삶은 알제리·수단·극동지역·

유럽·인도의 그리스도인들과 선의를 지닌 사람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며

이들이 남긴 정신은 도처에서 일어나는 종교 간 서로를 향한 대화 시도를 통해

열매 맺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정찬양 기자

http://www.deulsoritimes.co.kr/?var=news_view&page=1&code=501&no=27242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고

영화 <신과 인간> 실제 주인공들의 이야기

기획의도

 알제리에 자리 잡은 시토회 수도원의 역사와 이곳 수사들의 삶을 돌아보는 가운데 참 신앙은 이웃의 종교를 따지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사랑임을, 따라서 종교를 초월한 우정을 가능하게 함을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 주제 분류 : 전기, 영성


♢ 키워드 : 신과 인간 영화 주인공들의 이야기, 알제리, 시토수도회, 티비린 수도원, 수도자, 수사, 시련, 납치, 살해, 봉헌, 믿음, 희망, 사랑


♢ 요약: 영화 <신과 인간> 실제 주인공들의 이야기

1996년 3월 알제리의 무장이슬람단체가 티비린 수도원의 일곱 수사를 납치 살해하는 사건이 나고서야 비로소 이들의 삶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수사들은 자신의 소명인 관상수도생활을 하면서도 이웃인 알제리인들과 온전히 함께하는 삶을 통해 이슬람교를 믿는 알제리 국민을 참되게 사랑했다. 짧고도 강렬한 삶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한 수사들의 이야기!


내용

 1996년 3월 알제리의 무장이슬람단체가 티비린 수도원의 일곱 수사를 납치 살해하는 일이 생겼다. 이 수사들은 열심히 기도하는 이슬람교인들 속에서, 관상수도회의 소명에 따라 더욱 기도에 몰두하여 살았다. 인간미 넘치는 그들은 알제리 시골 주민들과 땅을 공동경작하고 의료봉사와 헌신적 삶으로 그들과 친하게 지내며 하느님에 대한 강렬한 신앙으로 살던 수사들이었다. 박해와 순교로 고통을 겪는 알제리 가톨릭교회의 중심부에서 관상생활을 하는 그들은 다른 민족과 종교와 사람들과 대화하고 교류하며 관계를 맺어나가는 담대한 신앙의 내기를 벌였던 것이다.


“무장이슬람단체가 사나운 기세로 수사들을 잔인하게 죽였다고 전하는 뉴스를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그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까지 수사들은 적의에 찬 저 산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실제로 그들은 이웃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형제 사랑으로 정답게 나누며 살기를 바랐다. 이는 수많은 갈등과 분쟁상태에 있는 알제리 국민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수사들의 새로운 소명이었다. 수사들은 하느님께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가 서로 대화할 수 있다고 확신했고, 이를 순수하게 구현했다.” -본문-


차례

추천글

한국 독자들에게

서론

알제리에서 태어난 시토회 수도원

티비린 수도원의 수사들

만남 

1993년 성탄 전야에 닥친 시련 

남아 있기로 하다

1996년 3월, 납치되다

오랜 기다림

봉헌한 삶

믿음과 희망

하느님께서 주신 대화의 선물

결론 

크리스티앙  수사의 신앙 유언

연대기

옮긴이 주

아틀라스의 성모 수도원의 일곱 수사

참고서적

옮기고 나서


♢ 대상

모든 이, 신과 인간의 관계를 알고 싶은 이,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이, 수도자에 대해 알고 싶은 이. 타종교인과의 대화와 협력에 관심있는 이, 현대의 선교에 대해 알고 싶은 이.


지은이

크리스토프 에닝

주간지 「순례자」 기자다. 작품으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짧은 생애」,

장 마리 라소스와 함께 쓴 「티비린의 밭 일꾼」외에 많은 저서가 있다.

 

 

http://www.pauline.or.kr/bookview?gubun=A01&gcode=bo0024202

'꼼꼼한 보도자료 >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0) 2013.10.21
예수님, 나도 있었어요!  (0) 2013.10.21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고  (0) 2013.08.19
[도서] 아주 특별한 순간  (0) 2013.02.28
[도서] 신약 외경 입문  (0) 2013.02.04
[도서] 만남  (0) 2012.12.21

영화(6) 맨오브 스틸(Man of Steel)  

대중 문화 속 하느님 구원 역사.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악 물리치는 '구원자' 그려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 2013) : 감독 : 잭 스나이더 : 상영 시간 : 148분 : 장르 : 액션ㆍ모험ㆍ판타지ㆍSF :

등급 : 12세 이상




과학자들은 지구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경고한다. 오존층이 파괴되고, 열대림은 소멸하며, 지구 온난화와 산성비 등 가시적 변화가 지구촌 도처에서 나타난다. 남극과 북극해를 뒤덮은 얼음은 예상보다 빠르게 녹아 해수면이 점점 상승한다. 홍수와 가뭄, 혹한이 정상적 기상 흐름을 잃은 지 오래다. 근대문명의 발달로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가 부상했고 자본과 권력은 신자유주의를 낳았다. 생명윤리를 외면한 유전자 조작과 생명 복제라는 비윤리적 생명공학이 현대 과학문명의 괴물로 자리를 틀고 있다.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인 '맨 오브 스틸'에서 말하고자 하는 파멸된 크립톤 행성 이야기는 이런 맥락에서 읽어내야 할 경고가 아닐까 싶다.

 #줄거리

 무차별적 자원 개발로 멸망 위기에 처한 크립톤 행성. 이 행성 최고의 과학자 조엘은 그래서 갓 태어난 아들 칼엘을 지구로 보낸다. 자신의 존재를 모른 채 지구에서 클라크라는 이름으로 자란 칼엘은 남다른 능력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소외를 당한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탄생과 성장 과정의 비밀을 듣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한편 크립톤 행성의 반란군 조드 장군은 파괴된 행성을 다시 재건할 수 있는 모든 유전자 정보가 담긴 코덱스(codex)가 칼엘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찾아 부하들을 이끌고 지구에 온다. 이제 칼엘은 자신을 외면하던 사람들이 사는 지구의 보루가 돼 최강의 적 조드 장군과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전쟁을 시작한다.



                                  ▲ 사제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는 칼엘.



▲ 크립톤 행성에서 몇백 년 만에 자연 출산을 한 칼엘의 부모 조엘과 라라



▲ 지구 아버지 켄트에게 감정 절제와 분별력, 능력의 균형 있는 활용 등에 대해 배우는 칼엘.


#새로운 시작 

 영화는 한 생명이 태어나는 장면에서 비롯된다. 수백 년 만에 산고를 겪으며 자연출산한 아이는 엘(EL) 가문의 아들이었다. 이름은 칼엘(Kal EL). 아버지 이름은 조엘(Jor EL)이었다. 'EL'은 엘로힘의 고대어로, 하느님과 같은 보통 명사이며 일반적으로 신성(神性)을 뜻하고, 동시에 고유명사로서 단 한 분뿐인 하느님을 지칭하기도 한다. 조엘과 칼엘은 하느님을 은유한다.

 크립톤인들은 행성 표면의 자원을 모두 고갈시킨 후 그것도 모자라 행성의 중심핵까지 파내려가 결국 행성이 붕괴직전까지 간다. 이같은 급박함에도 조엘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크립톤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지구인들이 자신의 행성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아들을 지구로 보낸다. 크립톤 행성의 파괴는 오늘날의 생태계와 환경호르몬으로 죽음의 위기를 겪는 지구를 보여주는 비유(metaphor)이기도 하다.

 조엘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칼엘에게 말한다. "가슴의 'S' 마크는 '엘'가문의 상징인 '희망'을 의미하지. 그 안에 믿음이 있어. 선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네가 그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음을 믿어라"하고 말한다. 어머니 라라도 칼엘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새롭게 재생될 믿음과 희망을 암시하는 시작이다.

 

#공존의 길 

 크립톤 행성의 대장 조드는 크립톤 행성만 살리는 데 목숨을 건다. 그는 힘을 앞세워 살상과 반란의 칼을 휘두른다. 조드는 자신의 종족을 구하고 영원히 번영하기 위해 열등한 혈족은 제거하고 우열족만을 살리려 한다. 한편 북극에서 만난 칼엘에게 조엘은 이렇게 말한다. "10만 년 동안 번영했었지…. 기적을 일궈냈던 거지…. 인위적으로 인구 조절을 했고, 아이들은 사회에서의 역할이 정해졌지. 노동자와 군인, 지도자 전부 말이야. 네 어머니와 나는 뭔가 중요한 걸 잃었다고 생각했지. 선택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 소중한 가치를…."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칼엘이라고 말한다. 조엘은 모든 생명체의 공존, 크립톤 종족과 지구인, 모두의 중요성을 칼엘에게 말한다. "넌 크립톤의 자식이자 지구의 자식이기도 해. 네가 원한다면 두 세상의 자식이 되어 다오." 그리고 두 종족 간에 다리가 돼 구원자의 역할을 하길 바란 것이다. 지구인들은 또한 거대 문명의 지배 속에서 충분히 폭력적이었고, 생태계를 파괴한 결과로 멸망 위기를 겪고 있다. 새로운 지구 건설은 모든 생명체가 함께 나누고 누리며 숨 쉬는 세계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그는 던진다.

 칼엘은 캔자스 주 스몰빌에 내려와 클라크라는 이름으로 산다. 신적 능력을 간직하고 있지만,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소박한 지구의 삶을 지구 부모에게 습득한다. 지구 아버지 켄트는 아들이 감정을 절제하고 분별력있게, 또 능력을 균형 있게 활용하라고 조언하며 신뢰로 동반한다.

 그러나 칼엘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지구에 살고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 켄트는 클라크에게 칼엘의 현존 자체가 기적이고, 지구 외에도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해준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이유를 알게 될 때를 기다리게 한다. 열등한 인종도, 우열한 인종도, 심지어 미생물까지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칼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때가 도래해야 함을 말한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투신  

 칼엘은 자신의 초능력을 감추고 살아가지만 위험에 처한 약자들을 위해 흘러넘치는 사랑을 숨기지 못한다. 통학버스가 강에 빠지자 어린이를 구해 주고, 유조선이 폭발하자 초능력으로 철근을 막아낸다. 그의 사명은 악만 빼고 누구든지 살리는 일이다.

 드디어 그의 때가 왔다. 칼엘은 북극에 숨겨진 크립톤 비행선에서 아버지 조엘을 만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 뒤 그의 눈빛과 몸에서 초능력을 감지한다. 이때 조드 장군이 지구를 찾아와 크립톤 행성의 유전자 정보가 담긴 코덱스를 24시간 안에 찾아오라고 명령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를 멸망시키겠다고 위협한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칼엘은 "넌 평범하지 않아. 언젠가 선택의 날이 올 거야"라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

 칼엘은 신부를 찾아가 자신의 번민을 털어 놓는다. 등 뒤로 보이는 겟세마니 예수님 그림은 고뇌하는 칼엘의 심정과 겹치는 상징이다. 신부는 오로지 믿음에 따라 행동할 것을 권한다. 칼엘은 지구와 인류를 위해 투쟁할 것을 결심한다. 둘 중 하나가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결전에 나선다. 싸움 중 조드가 칼엘에게 한 말을 기억해보자. "네가 받아들인 인간들을 고통받게 해 주마. 인간을 그렇게까지 사랑한다면 그들 죽음에 눈물이나 흘려." 불을 뿜어대는 악의 상징이다. 칼엘은 죽어가는 인간을 바라보며 그의 말대로 눈물을 흘린다. 천신만고 끝에 칼엘은 승리한다. 여기서 마지막 장면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다. 평범하지 않는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주시해야겠다.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칼엘의 모습. 드러나지 않지만 누룩과도 같은 존재, 오늘날 구석구석에서 선을 퍼뜨리는 또 다른 우리 중의 누구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맨 오브 스틸'은 전형적인 미국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다. 따라서 미국적 강인함과 불굴의 영웅상을 연출했다. 이 영웅상은 타 문화에 대한 개방과 위기를 극복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된 메시지가 도드라진다. 그래선지 웅장하고 화려한 서사 구조와 극적인 장면들은 다소 지루해 보이기도 하고, 무자비하게 그려진다. 진정한 관용이 어디쯤에서 발휘돼야 할지 묻고 싶어지는 부분이 적잖은 영화다.

 그룹대화  

 1. 생명공학을 앞세워 파괴되는 지구 환경과 유전자 조작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2. 나는 주체적으로 지구 위기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3. 유전자 조작을 막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성경구절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묵시 21,1). 



                                                               이복순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


평화신문  [가톨릭 문화산책]<28>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66447&path=201307

[가톨릭문화산책]<23>

영화(5) 더 헌트 - 뒤틀린 소통의 관계

군중 심리에 가려진 '진실' 알아보는 혜안 필요


더 헌트(2012, 덴마크)
 감독 : 토마스 빈터베르그 
 상영 시간 : 115분 
 장르 : 드라마(15세 관람가)



 인간은 끊임없이 소통한다. 한순간도 소통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침묵도 하나의 언어로 뭔가를 계속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구두로, 몸의 언어로 소통하며 이웃과의 관계, 공동사회 전반과

관계를 맺으며 관계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소통이 없는 관계는 이미 생명을 포기한 관계이며 죽은 집단의 사회다.

살아 있는 소통은 상대방을 읽어내는 것이자 건네지는 말에 대한

경청이다. 소통은 상대방을 인식하고 신뢰하는 타자 중심의 관계를

형성케 한다. 이것이 진정성을 동반하는 소통이며 생명을 살리는 소통이다.

사랑에 메말랐던 어린 아이의 즉흥적 거짓말이 한 사람을 이웃으로부터

매장시키는 '뒤틀린 소통'의 관계를 다룬 영화

'더 헌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줄거리

이혼 후, 고향으로 내려온 유치원 교사 루카스는 새 여자 친구를 사귀며

아들 마커스와 함께하는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루카스의 친구 딸 클라라의 사소한 거짓말이 들불처럼

소문으로 번지며 루카스는 유치원 원장과 마을사람들로부터 의심과 함께

누명을 뒤집어쓴다. 그것도 아동 성추행이라는 누명이었다.

루카스는 마을 사람들의 눈총과 집단 따돌림, 폭력을 견뎌내며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신화

루카스는 유치원 교사다. 원생들과 허물없이 놀아주고 대소변까지

닦아주는 이성적이고 따뜻한 감성을 지닌 균형 잡힌 사람이다.

루카스의 절친한 친구 테오의 다섯 살 된 딸 클라라는 부부싸움이 잦은

가정에서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외롭게 지낸다.

자기 생각에 자주 몰두하는 상상력이 풍부한 클라라는 가끔씩 길을

잃기까지 한다. 친절한 루카스는 그녀를 유치원과 집으로 데려다준다.

이런 루카스 아저씨에게 클라라는 애정을 품고 있다.

어느 날 클라라는 하트(♡) 모양을 만들어 루카스의 코트 주머니에

몰래 넣어두고 루카스에게 입맞춤을 한다. 루카스는 부드럽게 클라라를

타이른다. 하트는 엄마에게 주거나 만든 사람한테 돌려주고 입술 뽀뽀는

엄마, 아빠에게만 하는 거라고 분명한 가르침을 준다.

거절당한 클라라는 원장에게 루카스가 자신에게 하트를 선물했고

루카스의 성기를 봤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는 클라라 오빠들이 보여준 남성 성기 사진을 떠올리며 말한 것.


유치원 마당을 나오던 루카스는 아이들 놀이공에 뒤통수를 맞는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예고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원장은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신화적 믿음에 사로잡혀

루카스의 성추행을 의심한다. 루카스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가족과 마을, 학교 전체에서 진솔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일방적 단죄의 상황에 휘말린다.

원장은 이 거짓된 사건을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확대시키고,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고자 클라라를 아동심리전문가와 인터뷰하게

한다. 심리전문가가 추궁하는 질문에 클라라는 어린아이로서의 불안과

억압충동을 느끼며 "그랬던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하며 그저 고개를

끄덕임으로 반응한다. 어리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의 영악한 태도가

섬뜩하다.

원장은 이 사건을 더 부풀려 성학대를 당했다고 단정한 뒤 다른

피해자가 있는지를 살핀다. 언제나 사회는 선과 악이 묘한 충돌을 일으켜

진실을 가리는 때가 많다. 중요한 사안일수록 그런 어리석음을 범한다.

하지만 인간은 군중심리에 휘말려 진실을 보지 못한다. 특히 어린이,

또는 통념적인 약자 편에 동조하기 마련이다. 진실은 그 뒤에 숨겨질

때가 종종 있다. 그것도 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유치원을 찾아가던 날 아침, 햇살은 루카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춘다. 루카스의 진실을 입증해 주는 상징적 햇살이다.

 

 #친구들이 뭐 이래, 친구도 아냐!


인간이 의사소통을 하는 데 비언어적 몸짓과 얼굴 표정, 눈 등은 많은

진실을 말해준다. 클라라의 아버지 테오는 맹세코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는 루카스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딸은 거짓말이라곤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며 루카스를 몰아부친다. 그러던 어느 날 클라라는

"아저씨는 잘못 없어. 내가 바보 같은 말을 했는데, 이젠 다른 애들까지

이상한 말을 하고 있어"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지만, 엄마는 아이 말을

흘려듣는다. 인간은 들려오는 많은 말뿐 아니라 움직임에서 드러나는

많은 것을 관찰하고 사유하지 않는다.


아들 마쿠스의 외침 속에 진실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

"친구들이 뭐 이래요. 친구도 아냐!"


철저히 아동 성범죄자로 내몰려 고립과 막막함, 슬픔이 배어나는

루카스의 얼굴이 압권이다. 인간은 저마다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고

타인의 작은 잘못에 대해선 엄격히 단죄한다. 여럿의 잘못된 판단과

증언으로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기는 순식간이다. 더구나 군중의

힘이 결집될 때는 더 깊고 큰 상처를 남긴다.

  

▲ 손을 잡고 친절하게 클라라를 유치원에 데려가는 루카스.


▲ 클라라가 유치원장 앞에서 아동심리 전문가와 인터뷰를 하며 상담을 받고 있다.


▲ 성탄 밤 성당에서 그간 핍박을 당해온 감정이 폭발해 눈물을 흘리는 루카스.


 #진실의 눈빛

마켓에서 부당한 모욕과 폭행을 당한 루카스는 돌아와 자신의 방에서

피를 흘리며 앉아 있다. 크게 부각된(big close up) 그의 두 눈은

죽은 자의 눈처럼 정지돼 있다. 거울 앞에서 옷과 핏자국을 닦아낸

루카스는 구두끈을 단단히 매고는 성탄 밤 마을 사람들이 모인 교회로

간다. 유치원 아이들이 부르는 캐럴을 들으며 그는 테오에게 자신의 눈을

똑바로 보라고 소리친다. 슈퍼 직원들에게 폭행당해 부서진 안경은 이제

필요 없다. 진실된 눈, 거짓 없는 눈으로 테오에게 외친다.


"내 눈을 봐. 내 눈을 보라고. 뭐가 보여? 뭐가 보이기나 해? 없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그만 괴롭혀…." 가슴속 깊은 절규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가 말하는 눈은 인간 내면을 반추하는 거울이자 오해와

편견으로 굽어진 사람들을 향한 양심의 외침이다.


그날 밤 테오는 결국 루카스에게 음식을 싸들고 찾아온다.

순간, 무겁고 깊은 침묵이 흐른다. 루카스가 먼저 테오가 들고 온 성탄절

음식을 맛본다. "맛있군…." 이 한 마디가 화해와 용서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마음을 추스른 루카스는 테오의 집으로 간다.

성탄 파티를 여는 가족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클라라를 본다.

여전히 바닥에 새겨진 복잡한 사선 무늬에 신경 증세를 보이며 계단

끝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클라라에게 루카스는 장난스럽게 말한다.

"난이도가 높구나. 선이 얼키고 설켜 있네. 이 많은 선들을 어떻게

피하겠니?" 하며 클라라를 안아 건네준다. 진실이 거짓까지도 끌어안아

선을 넘어가게 하는 포용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오늘의 희생양


1년 뒤, 루커스는 마을 사람들, 아들 마커스와 함께 사슴 사냥을 간다.

사슴을 쫓고 있는 그때, 누군가 루커스를 겨냥해 총을 쏜다.

갑작스런 상황을 피하며 산 위를 바라보지만 역광 속 언덕으로 사라지는

누군가는 아주 상징적이다. 거짓된 소문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일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암시를 주는 듯하다.

 

사회 공동체의 집단 본성을 과감하게 드러낸 '더 헌트'는

덴마크 어느 마을 이야기만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주위에도 온라인 마녀사냥, 이른바 '네카시즘(Netizen+McCarthyism)'이 있지 않은가.

다수의 네티즌이 특정 개인이나 단체 등에 일방적으로 여론몰이를 통해 공공의 적으로

매도하는 현상에 대해 사회 정보윤리적 차원에서 깊이 새겨볼 일이다.

 

 그룹대화 :

 -우리 가족이나 동네, 직장, 학교, 교회에서 누군가를 따돌린 체험이 없는지 대화 나누기.
 -검증되지 않은 뜬소문에 대해 우리의 반응은 어땠는지.

 성경구절 :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



복순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60169&path=201306

[가톨릭 문화산책]<18>영화] (4) 늑대아이, 하느님의 모성성에 대하여

하느님 사랑 닮은 엄마 하나의 숭고한 자기희생적 모성 그려


늑대아이(2012)
 감독 : 호소다 마모루
 상영시간 : 117분
 장르 : 판타지, 어드벤처, 애니메이션, 멜로ㆍ로맨스, 드라마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서
 어머니라는 단어는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어머니라는 단어에는 그리움이 배어나온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얼굴이 엄마이고, 처음 듣는 것도 엄마 목소리다. 첫 마디도 엄마라는 말이다. 산고를 겪으며 '나'를 있게 하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절대적 대상이자 모든 것이다. 문학엔 그래선지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이 수없이 많다. 애니메이션 '늑대아이'는 동화 같은 이야기이면서도 의인화한 메타포(Metaphor, 은유와 상징, 비유, 함축적 내포 등의 의미)가 뛰어난 영화다.
 
 

  #줄거리
 대학생이던 하나는 우연히 들판에서 인간 모습으로 변한 '늑대 인간'과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 사랑의 결실로 두 아이를 낳는데, 눈이 내리던 날에 태어난 누나는 '유키', 비가 내리던 날에 태어난 남동생은 '아메'라고 이름을 붙인다. 이들 남매에게는 절대 비밀이 있었다. 인간이면서도 늑대인 두 모습이 내재된 생명을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유키와 아메는 '늑대 아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엄마, 아빠와 함께 도시 변두리에서 조용하지만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그 행복은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한순간에 사라진다. 이에 엄마는 유키, 아메 남매가 인간들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

 #너니까!(받아들이는 마음)
 엄마가 운명적 사랑에 빠진 남자는 늑대 인간이다. 그녀는 '있는 그대로' 늑대 남편을 "너니까"하며 받아들이고 사랑한다. 그러나 두 남매를 남겨놓은 채 늑대 아빠는 세상을 떠난다. 죽음은 그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거나 한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딸 유키와 아들 아메가 늑대 아이의 징후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복잡하고 곤란한 상황에 부딪힌다. 딸 유키는 왕성한 식욕과 활달한 행동이 왈가닥이고, 남동생 아메는 적게 먹고 유약하다. 두 아이는 툭하면 늑대로 변해 집안 가구를 물어뜯고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 사고뭉치다. 아메의 끊이지 않는 울음소리에 이웃집에서는 불만이 커진다. 한밤중 아이들이 울어대는 늑대 소리에 이웃집 사람들은 이상한 애완용 동물 키운다며 아우성이다. 하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심하던 끝에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 놀며 성장할 장소를 찾아 도시를 떠난다. 여기서 우리는 '받아들이는 마음'을 통해 하느님 섭리를 느껴볼 수 있겠다.  

▲ 늑대와 인간, 두 갈래 길에서 유키와 아메는 서로 다른 길을 가려 한다.

▲ 새 널빤지를 가져다 마루를 고치는 엄마 하나 곁에서 뛰어노는 유키와 아메 남매.


 #인간 할래, 늑대 할래?
 엄마 하나는 유키와 아메가 자유롭게 자신들의 길을 선택하기를 바랐기에 첩첩산중 산골로 이사한다. 두 아이는 동물적 기질을 더 많이 드러내기 시작한다. 인적이 드문 산골에서는 늑대 아이라는 존재를 숨길 필요가 없기에 더 많은 자유를 만끽한다. 유키는 자주 늑대로 변해 거침없는 행동을 한다. 반면 아메는 여자아이처럼 유약하고 소심하다. 하나는 자주 아들 아메를 안심시키기 위해 "괜찮아"라는 말을 되뇐다. 반복되는 엄마의 말은 구강기의 유아적 욕망을 만족시키는 기제로 작용, 아메에게 안정감과 용기를 준다. 하느님의 모성성은 인간을 위로하는 원천(이사 66,11 참조)이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결국 유키와 아메는 인간과 늑대 사이에서 확실한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학교를 가기 위해 마당을 나서면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유키는 오른쪽 길로 가자고 당기고, 아메는 왼쪽 길로 가려 한다. 이 장면은 이분화된 자아상을 하나로 확립해야 하는 긴장감과 심리적 갈등을 보여주는 연영(Sequence)이다. 늑대가 되느냐, 인간이 되느냐 하는 결정의 장면에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유키와 아메를 교차 편집해 그 갈등을 고조시킨다. 폭설로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 날, 아메는 뿔 호반 새를 잡으려다 죽을 뻔한 체험을 한 뒤 늑대로서의 삶을 갈망한다. 그는 엄마가 자신의 길을 선택하도록 돕기 위해 일하는 자연관찰원에서 처음으로 실물 늑대를 봤고,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 안에 있던 늑대 본성이 살아나자 숲으로 들어가 늑대 선생에게 훈련을 받는다. 하나는 아메가 가는 길을 존중한다. 아이가 택한 삶을 믿어준 것이다. 활달했던 유키와 연약했던 아메는 이 과정을 거치며 상반된 길을 선택한다. 여기서 자녀의 가능성을 발견하면 기꺼이 그 길을 밀어주는 진정한 모성애를 보여준다. 어머니인 하느님은 인간을 키우고 성장시키고 양육한다. 그 본질은 사랑 자체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선물로 줬고 그 선택을 언제나 존중했다는 깨우침을 우리에게 안긴다.
 
 

  #난 아직 너한테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어!
   아이들 성장을 위해 선택했던 숲속의 집을 생각해 보자. 그 집은 낡고 척박하기 그지없다. 그런 집을 쓸고 닦고, 빗물이 새는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고치며 노동의 가치를 가르친다. 모성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마음이 조급하다고 해서 성장이 더 빨라지는 것도 아니고, 실패한 듯 보일 때에도 믿음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뜻하지 않은 사건의 발단이 된 태풍의 밤, 새롭게 전학 온 남학생 후지 소헤이는 유키의 심상치 않는 비밀 냄새를 맡는다. 심리적으로 위협을 느낀 유키는 방어와 함께 공격적 태도를 보인다. 유키는 자신도 모르게 늑대 손톱을 세워 소헤이에게 상처를 입힌다. 이 일로 유키는 소헤이에게 자신이 늑대임을 고백하고, 소헤이는 이미 그 사실을 알면서도 비밀로 지켜왔음을 알게 된다. 긴장과 위기를 극복한 유키는 인간으로 살아갈 희망을 품는다. 같은 밤에 아메는 늑대 선생이 다쳐 죽게 되자 누군가 대장 역할을 해야 한다며 폭우를 뚫고 산속으로 달려간다. 아메가 걱정돼 아들을 찾아 산속으로 간 하나의 처절한 모습은 십자가 위의 예수님과 겹쳐지는 듯하다. "난 아직 너한테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어 아무것도…. 기다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 마음은 하느님의 아가페적 사랑을 닮았다. 무상적 사랑, 돌려받을 것을 요구하지 않는 하느님의 순결한 사랑의 반영이다.
 
 

   #서로 돕고 살아야지
 모성성은 원래 자기희생적이다. 옹졸하거나 이기적이지 않고 자기 세계에 갇혀 있지 않다. 하나는 언제나 무뚝뚝하고 엄격하다고 생각한 할아버지에게서 삶의 진수를 배운다. 이제 내면으로 깊어지고 성숙해진 하나는 엄격하고 무섭다고 생각한 할아버지와도 가까워진다. 처음으로 찾아온 나라사키 할머니 마음도 맞아들이고, 젊은 엄마들과 만나 어울리며 소통한다. 공동체성을 각인시키는 강인한 어머니로, 조화롭고 성숙한 어머니로 변모돼 간다.
 
 

  #마음의 고향을 찾아서
 애니메이션 '늑대아이'는 수려한 수채화의 이미지로 펼쳐놓은 아름다운 영화다. 줄거리는 다소 느리고 진부하지만, 동물이 의인화되는 구성이 돋보인다. 어린이 세계에서 어른 세계로 넘어가는 영화다. 늑대는 일본 문화에서 외로움과 고독한 인간 내면의 상징이라고 한다. 인간 내면의 가장 자연스런 사랑을 말하라면 그것은 모성일 터이다. 하느님 사랑을 닮은 그 원천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어머니는 이 세상의 마지막 보루와 같은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순수한 영화가 바로 '늑대아이'다.


복순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

 

http://web.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54212&path=2013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