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하느님의 섭리(천향길 수녀, 성바오로딸 수녀회)


2018.12.16 발행 [1494호] 가톨릭 평화신문


“책 많이 파셨어요?” 도서선교를 나가면 신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처음엔 듣기 불편했습니다. 출판 사도직이란 특수성 때문에 수도생활을 시작했다가 길을 바꾸는 자매도 봤고, 수도회를 아예 옮기는 자매도 봤습니다. 그 까닭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었는데 저희는 다른 형태의 가난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종신서원을 앞두고 제가 받은 성소에 충실하기 위해서 강한 체험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출판 사도직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는 표징을 보여 주십사고. 그러면 고작 ‘책 파는 수녀’라는 말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만든 매체를 누구에게나 무료로 나눠줄 수 있다면 이런 고민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질투가 났습니다! 아는 수녀님이 ‘요셉의 집’이라고 무료급식소를 운영하시는데, 당신은 매일매일 하느님의 섭리를 만난다고 하셨습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을 예수님처럼 맞이하시는데, 예수님이 굶을까 봐 쌀이 떨어지면 쌀이 들어오고 손이 필요하면 봉사자가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그 일을 계속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정말 부러웠습니다.

드디어 만났습니다! 시몬 형제님을 만난 건 본당 도서선교의 자리였습니다. 그분은 책을 통해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며 저희에게 점심을 사 주셨습니다. 당신 삶의 역사를 들려주시면서 성경 다음으로 가브리엘 보시의 「그와 나」를 많이 읽었다고 하셨습니다. 닳을 대로 닳은 책에는 완독한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앞뒤 면지에 빼곡했습니다. 그때의 뜨거움과 전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주님은 눈에 보이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구의 체험이 아니라 저만의 고유한 체험이 필요했기에 주님은 힘을 주셨습니다. 그림책을 썼을 때도, 라디오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도, 또 인터넷 서점을 운영하며 전자우편 서비스를 하는 지금도 저는 주님의 섭리에 의지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노력합니다.

주님은 초대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도 자선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책을 기획하고 출판하려면 저희의 노동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력도 필요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바오로딸 출판 사도직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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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아버지의 집(천향길 수녀, 성바오로딸 수녀회)


2019.01.01 발행 [1496호] 가톨릭 평화신문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저는 늘 빈자리를 느꼈습니다. 이 ‘원체험’은 나이보다 일찍 철들게 했고 삶을 스스로 개척하게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엔 외롭고, 쓸쓸하고, 혼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웃으면서 하느님이 저를 키웠다고 말하지만, 가끔은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라면 성가정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늘에서 온 가족이 아침저녁으로 기도하고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친가와 외가 모두 다 구교집안이라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혼인성사와 병자성자, 성품성사 등 삶에서 칠성사의 은총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아무리 큰 사랑을 받고 자랐어도 부모 없이 자랐다고 욕할까 봐 뭇시선에 위축되곤 했습니다. 더 반듯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편견이 좀 심하잖아요?

어느 날 요한복음 14장 1-7절을 묵상하는데 ‘아버지의 집’, ‘거처할 곳’, ‘자리’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통증이 왔습니다. 예수님께 여쭸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제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지….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성체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주님은 위로를 주셨고 치유해 주셨습니다.

저는 한 번도 제 집이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집도 제 집이 아니었고, 작은아버지 집도 제 집이 아니었습니다. 동생이 결혼해서 가정을 가졌지만, 동생 집도 제 집이 아니었고요. 하느님의 집이라고 수도원에 들어왔지만, 제가 생각했던 가정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원체험이 너무 아파서 어디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사는 저를 주님께서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나와 함께 아버지의 집에 살자고요.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그 사이 호주제가 폐지되고 세상의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혼족, 혼밥이란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삶의 패턴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맞아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겨 봅니다. 그 어디에도 집이 없어 외롭고 쓸쓸했던 저처럼 어쩌면 그들도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할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그러기에 아버지 집으로 가는 확실한 길은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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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사랑의 ‘비스코티’(천향길 수녀, 성바오로딸 수녀회)



2018.12.25 발행 [1495호] 가톨릭 평화신문


내일 밤이면 아기 예수님이 오십니다. 마중 나갈 채비는 다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바쁘고 분주하게 지냈습니다. 한 해 중 대림시기가 가장 바쁜 것 같습니다. 인터넷 서점 사도직 특성상 삶에서 오는 피곤함을 기꺼이 봉헌하고 저의 부족함을 보속의 정신과 기도로 채우며 기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성탄 축제를 준비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으리라 생각됩니다.

인터넷 서점이 시작된 지 벌써 스무 해가 지났습니다. 이를 먼저 기억하고 챙겨주신 분은 원장 수녀님과 주방 수녀님이셨습니다. 주방 수녀님이 처음 인터넷 서점을 시작하셨거든요. 올해 성탄 이벤트는 이탈리아 쿠키인 ‘비스코티(biscotti)’입니다. 선교사로 러시아와 이탈리아에서 살았던 원장 수녀님이 어느 해 처음 만들어 주셨는데 바삭바삭한 식감이 참 좋았습니다. 비스코티는 다른 쿠키와 달리 오븐에 두 번 굽습니다.

원장 수녀님은 인터넷 서점 회원을 위해서도 꼭 한 번 쿠키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주방 소임을 해 봤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원의 바쁜 살림과 대식구를 위해 매 끼니를 준비하는 것도 어려운데 덤으로 쿠키를 굽다니요.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기꺼이 반죽을 준비해 주신 수녀님과 함께 쿠키를 구워주신 수녀님들, 또 예쁘게 포장해 주신 수녀님도 고마웠습니다.

저는 아기 예수님께 드릴 구유 예물로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가 일치를 이루며 기쁘게 살 수 있었던 것과 피곤을 봉헌하며 이웃에게 기쁨을 줄 수 있었던 것을…. 때로는 공동체 생활 자체가 힘겹고 십자가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함께하기에 힘든 일도 쉽게 넘을 수 있고 웃을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 마음자리에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시리라 믿습니다.

성탄의 가장 큰 신비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주님이 계신다고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감사송은 이렇게 초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깨어 기도하고 기쁘게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탄 축제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하셨다”고요.

큰 빛이 오십니다. 주님은 어두운 세상에 하늘을 열고 오십니다. 그분은 선물처럼 우리 기다림을 채워주셨습니다. 안드레아 슈바르츠는 「성탄이 왔다!」에서 신비이신 하느님께 시간과 공간을 내어드리자고 초대합니다. 이 신비를 내 삶 속으로 모셔올 때 비로소 성탄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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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LOVE MYSELF”(천향길 수녀, 성바오로딸 수녀회)


2018.12.09 발행 [1493호] 가톨릭 평화신문


수녀원에 들어오기 전 좋아했던 가수는 ‘이동원’씨입니다. 앨범 대부분을 소장할 만큼 그 시절, 그의 노래는 저에게 ‘성사’였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비롯해 정지용 시인의 ‘향수’ 등 아름다운 노랫말이 가진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분이 부른 많은 노랫말은 시인들의 시어(詩語)였습니다. 그 가사를 음미하며 힘을 얻었습니다. BTS(방탄소년단)를 좋아하는 대부분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저는 요즘 방탄소년단의 ‘덕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미(Army)’로 활동하진 않지만 조용하게 열렬히 좋아하고 있습니다. 아이돌 가수가 얼마나 되는지? 그룹명은 물론 가수 이름도 모르는 저에게 그들은 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거듭되는 행보를 접할 때마다 정말 놀랍습니다. 그들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멤버들 간의 공동체성, 노랫말 메시지로 ‘랩’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저에게도 귀를 열게 했습니다.

데뷔한 지 5년 만에 그들이 어떻게 세계 정상에 설 수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평범한 그들이 뮤지션으로 성장한 성공신화를 보니까 그 중심에 팬들과 허물없이 소통하고 또래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공감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었고 거기에 ‘케이팝 고유 가치를 지키며 기본에 충실했던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특히 방탄소년단 리더 김남준의 UN 연설은 훌륭했습니다.

인권주일인 오늘, 그 내용을 떠올려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 어린이와 청소년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LOVE MYSELF 캠페인을 유니세프와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체험으로 말문을 엽니다. “LOVE YOURSELF 앨범을 발매하고, LOVE MYSELF 캠페인을 시작한 후 우린 전 세계 팬들로부터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들었다”고요. “우리의 메시지가 그들에게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랑하게 되는 데 어떠한 도움이 되었는지를….” 거기서 그는 ‘말의 힘’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평범한 소년이던 자신이 어떻게 해서 꿈을 잃어버렸고, 어떻게 다시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되었는지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은 걸 정말 행운이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결점이 있고 두려움이 있지만, 온 힘을 다해 자신을 끌어안고 천천히 조금씩 사랑해보려고 한다고요. 저는 방탄소년단에게 배우고 싶습니다.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말입니다. 그들은 내 안에 열정과 가능성을 일깨워 주었고, 삶의 자리에서 내가 먼저 변화될 때,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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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성탄을 기다리며(천향길 수녀, 성바오로딸 수녀회)

2018.12.02 발행 [1492호] 가톨릭 평화신문


기다림은 희망입니다. 그리움 또는 설렘입니다. 성탄을 생각하면 어릴 적부터 그랬습니다. 공소가 있는 시골 마을에서도 대림절이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 성극을 준비하고 성탄의 기쁨을 나누곤 했습니다. 먼 기억 속의 성극을 소환한 건 순전히 외가 방계 형제들을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6년 전부터 11월 마지막 토요일이면 형제 모임이 있습니다. 첫 모임이 이태원에서 있었는데, 저는 연락도 없이 수녀원에 들어온 지 스무 해가 넘어 처음 보는 자리라 서먹서먹했습니다. 다들 저보다 머리도 희끗희끗하고, 오랜만이라 선뜻 말을 놓기도 어려웠습니다. 어색함을 떨치고자 초등학교 때 본 성극 중에 대사로 부른 노래가 아직 생각난다고 했더니 갑자기 어수선해졌습니다.

“그때 내가 솔로몬 역할을 했었는데”, “난 아기”, “난 가짜 엄마”, “난 진짜 엄마”, “어,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도 나도!!” 여기저기서 말문을 열더니 순식간에 분위기가 환해졌습니다. “하느님보다 엄마가 더 무섭다”는 동생이 있는가 하면 “신앙의 자유를 갖고 싶다”는 동생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순식간에 세월을 뛰어넘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겐 공통의 기억이 있었습니다. 거기 모인 형제 중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요. 명절에 자식들이 다니러 가면 성체를 영하는지 영하지 않는지 눈여겨보신다는 친척 어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1801년 이전부터 교우촌을 형성해 살아온 그곳은 현재 노인들만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공소 회장이라는 직분을 봉사했기에 길 가는 사람 아무에게나 “회장님” 하고 부르면 뒤를 돌아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그 시절, 우리는 넉넉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부유했고, 다들 신앙만큼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지키며 살아가는 걸 보면 역시 신앙은 최고의 유산인 것 같습니다. 냉담한 지 45년 만에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외숙부를 봐도 그렇고, 누가 하느님을 떠나 살더라도 언젠가는 아버지의 집으로 꼭 돌아오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아직도 사순절이면 바쁜 농번기에도 불구하고 매일 저녁 교우들이 모여 성로신공(聖路神功, 십자가의 길)을 바친다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방학이라 꾀를 부리고 싶어도 면제되지 않았던 기도생활, 새벽이면 조과를, 저녁이면 만과를 온 가족이 함께 바쳤던 시간이 향수로 남아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판공을 준비하고 공소에 모여 축제를 준비하던 그때의 설렘으로 돌아가 성탄을 기다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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