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불평 멈추고 해결책 찾기 위해 행동하자

가톨릭평화신문 2020.05.03 발행 [1562호]

살보 노에 지음·이창욱 옮김 / 바오로딸

불평하는 것도 성격의 범주에 들어갈까? 불평은 성격이나 인품의 특성이 아니다. 자동으로 나오는 반사적인 습관이다. 그렇다면 자동으로 나오는 불평이 부정적인 감정에서 해방시켜주는 분출이 될 수 있을까?

이탈리아의 심리학자 살보 노에는 불평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불평은 문제에만 골몰하고, 해결책에는 관심이 없다. 끊임없이 문젯거리를 기억하면서 경험과 연결된 부정적인 감정을 되새긴다. 에너지를 현재에 쏟지 않고 과거에 있었던 나쁜 경험에 매여있게 한다. 행동은 막으면서 고심하게만 한다.”

저자는 왜 불평하는지, 누가 불평하는지, 불평을 멈추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소개했다. 불평을 멈추는 것은 단순히 인내심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고, 행동하는 것이다. 불평하는 이유는 자기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깊은 공허감에 빠져 있어 만족하지 못하고, 공감 부족에서 비롯된 뿌리 깊은 자기 중심주의 때문이다.

어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와 “망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예기치 못한 일들을 불행이 아닌 성장의 기회로 보면 어려움에 속박당하지 않을 수 있다.

저자는 “우리 삶의 중심은 신앙, 신뢰, 잠재력을 성장시키고 다른 이들을 돕는 데 있어야 한다”며 “교육, 가족, 인간관계, 노동의 세계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고,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촉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 책이 이런 의식을 뿌리내리게 하는 데 긍정적인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불평 멈추기’는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수동적으로 감내하라는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기 위해 말하고, 합당하지 않은 일은 반대하며, 역량과 실력을 높이고,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고 지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130쪽)

이지혜 기자

▶ 기사 원문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778183&path=202004

 

반복되는 불평 멈추고 해결책 찾기 위해 행동하자

불평하는 것도 성격의 범주에 들어갈까? 불평은 성격이나 인품의 특성이 아니다. 자동으로 나오는 반사적인 습관이다. 그렇다면 자동으로 나오는 불평이 부정적인 감정에서 해방시켜주는 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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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수도자들이 꼽은 ‘성소의 뿌리가 된 도서들’

가톨릭평화신문 2020.05.03 발행 [1562호]

하느님의 부르심은 책 속 활자에도 숨어 있다. 3일 성소 주일을 맞아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자신의 ‘성소 꿈나무’에 물과 햇빛을 부어준 책들을 소개한다.

레벤북스 편집장 김동주(성바오로수도회) 수사


-헨리나웬 「제네시 일기」(바오로딸)

-장 바니에 「공동체와 성장」(성바오로)

헨리나웬의 「제네시 일기」는 제가 수도원에 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에 나오는 수도자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여겨질 만큼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침묵과 봉헌, 사도직을 통해 하느님을 갈망하는 시간을 저도 가져보고 싶었습니다. 28살, 수도원에 들어올 때 목마른 사슴처럼 무언가를 찾았는데 이 책에 답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토마스야, 수도생활을 해보겠니?”라고 초대해준 책이었습니다.

장 바니에의 「공동체와 성장」도 수도원에 대한 갈망을 일으킨 책입니다. 공동체를 통해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가톨릭출판사 사장 김대영 신부

 

- 테오 코부쉬 「그리스도교 철학 : 주체성의 발견」(가톨릭출판사)

여러 철학적 관념과 그리스도교 신학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독일어권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저자는 ‘주체성’이라는 철학적 관념의 원천이 다름 아닌 교부들의 발견, 즉 그리스도교에 있음을 밝히며 이처럼 신학에는 철학적인 의미와 개념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철학과 신학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두 학문이 분리되어 독립적인 영역을 만들어가는 현 상황과 철학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많은 이들을 향해, 저자는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철학과 신학에 대한 통합적인 통찰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준비하는 신학생들에게 그리스도교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앙적 유산을 통찰하는 계기이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신학생 정석원(다니엘, 서울대교구)


-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경세원)

저에게 고백록은 성경을 제외하고 모든 역사를 통틀어 인간이 펜을 쥐고 쓴 책 중에 가장 잘 쓴 책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대부분의 성직자와 달리 30대에 자신의 성소를 발견했습니다. 삶의 여정에서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나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욕구를 발견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은 고백록은 늦게 성소의 길을 발견하고 걷고자 했던 저에게 큰 내적 공명을 일으켰습니다. 신학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심어주었고,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사제가 되고자 하는 열망도 곁들여 생겼습니다.

성바오로딸수도회 김경희 수녀(기획지원팀, 팟캐스트 전 ‘수도원 책방’ 지기)


-M.아가다 「빵나무」(바오로딸)

아주 어릴 때 수도자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보자기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는 곧잘 수녀 흉내를 내곤 했는데요.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한 삶을 하느님과 함께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책은 10살 무렵에 읽은 책 「빵나무」입니다. 주일학교에서 받은 책이었는데요. 집에 가지고 와 단숨에 읽고 마음이 뭉클해져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따뜻한 책이죠. 빵나무에 나오는 가족이 우리 같았고, 어머니 같았어요. 도움을 청하는 이웃에게 항상 베푸셨던 어머니를 보고 자란 까닭일 겁니다. 나그네를 대접한 그 가난한 집에 나그네가 떠나면서 준 세 개의 씨앗으로 빵나무가 열려, 이 가난한 가족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하면서 가슴이 뜨거웠던 그때를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수녀원에 입회해 알았네요. 바오로딸이 만들었다는 걸요. 참,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지금은 개정되어 예쁜 색깔로 더 곱게 단장한 이 책, 「빵나무」를 우리 아이들과 부모님들께 추천합니다. 코로나19로 힘든 때에 더 소중한 이야기에요.


이 밖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이태식 부제의 유고집 「태시기가」(가톨릭시보사)를 읽고 사제 성소의 꿈을 키웠다고 밝힌 바 있다. 성바오로수도회 한국관구장 황인수 신부는 한 수녀의 성소 이야기를 1인칭으로 풀어쓴 소설 「떠날 수 있다면 떠나시지요」(가톨릭출판사)를 추천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 기사 원문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778174&path=202004

 

성직자·수도자들이 꼽은 ‘성소의 뿌리가 된 도서들’

하느님의 부르심은 책 속 활자에도 숨어 있다. 3일 성소 주일을 맞아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자신의 ‘성소 꿈나무’에 물과 햇빛을 부어준 책들을 소개한다. 레벤북스 편집장 김동주(성바오로수도회) 수사 -헨리나웬 「제네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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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2019-10-11 18:00

▲ 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 제작, 판매하는 잠자는 요셉상. (사진=바오로딸 홈페이지)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정제천 예수회 한국관구장 신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숙면 비결 `잠자는 성 요셉상` 신심 덕분

걱정거리 쪽지에 적어 요셉상 밑에 두고 자

요셉 성인의 전구로 평온한 삶으로 인도하는 좋은 선교도구

잠자는 요셉상 신심? 매일 하느님 손길 느끼는 것

다리 구부린 채 자는 성 요셉상, 친근한 한국 남성 모습


[인터뷰 전문]

걱정거리나 고민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루는 때가 종종 있으시죠?

잠자는 동안 누군가 내 근심을 해결해 준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근심 해결사가 있다고 하네요. 항상 평안하게 잠이 든다고 하던데요.

그 비결을 전파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지난 2014년 교황 방한 때 바로 옆에서 수행과 통역을 맡으셨던 분이셨죠.

예수회 한국관구장 정제천 신부님 연결해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신부님 요즘 현대인들이 잠이 부족할 만큼 바쁘고 근심거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많은데요. 신부님께서는 푹 주무시는 편이십니까?

▶예, 저는 잠을 잘 자는 편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다가 깨는 일이 가끔 생기긴 합니다만 조금 있다가 다시 잠을 자곤 합니다.


▷어떻게 잠이 들기 전에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까?

▶저는 하루 생활을 돌아보면서 제가 응답을 했는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을 했는지 그렇지 못한 부분은 뭔지 돌아보면서 하루를 정리하고 잠을 잡니다.


▷그러시군요. 요즘에 숙면을 돕는 베개, 마사지부터 숙면솔루션 강좌까지 있을 정도인데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남다른 꿀잠 비결이 있다고 하던데 그 비법을 신부님께서 신자들에게 전수를 하고 계신다면서요. 교황님의 숙면 비결, 꿀잠 비결은 뭡니까?

▶네, 교황님은 잠을 잘 주무신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교황님 방한 마지막 날 서울 공항에서 배웅을 나왔던 정부 고위 관계자가 방한 일정이 빠듯했는데 힘들지 않으셨냐고 그렇게 인사말을 건네시더라고요. 그때 교황님께서 하신 대답은 ‘저는 잠을 잘 자니까 괜찮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저에게 개인적으로 당신은 하루에 6시간을 자는데 그거면 충분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황님이 하루에 6시간의 숙면을 취하시는 것이 습관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숙면의 비결을 필리핀 방문하셨을 때 2015년이죠. 강론하시면서 일반인들에게 밝히셨죠. 그것은 잠자는 성요셉상과 관계가 있습니다. 당신 머리맡에 잠자는 성요셉상이 놓여 있는데요. 이런저런 걱정거리가 있을 때 쪽지 적어서 그 요셉상 밑에 넣어두고 주무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시다시피 꿈에서 천사를 만나기도 했던 요셉 성인이 도와주신다는 거죠. 하느님께 기도해 주시고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게 도와주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요셉 성인께서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 함께 전구해 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신다는 거네요.

▶네, 그렇습니다.


▷교황님께 잠자는 요셉상은 인디안 원주민들의 좋은 꿈만 꾸게 한다는 드림캐처가 있고요. 걱정 들어 주는 걱정인형 같은 것도 있는데 이거와는 완전히 다른 점이 있네요.

▶그렇다고 봅니다. 재미있는 비교를 해주셨는데요. 그래도 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말씀해 주신 드림캐처가 걱정인형은 판타지 세계에 속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요셉 성인은 비록 2000년 전 과거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실존했던 인물이지 않습니까? 그런 점이 다르고 또 문제해결 하는 방식도 말씀하신 그것들은 그것들이 직접 해결해 준다고 믿는 반면에 요셉 성인은 어디까지 나 우리 걱정을 하느님께 전달해 준다는 거죠. 중재인입니다.

그래서 잠자는 요셉상의 신심은 다름이 아니고 요셉상을 믿는다거나 요셉을 믿는다거나 하는 것보다는 의로우신 의인이신 성요셉이 우리를 대신해서 하느님께 기도를 해주시면 그것이 큰 힘을 낸다고 하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결국 하느님에 대한 신심의 하나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요셉 성인이나 성요셉상을 믿는 건 아니니까요. 요셉성인이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긴 것처럼 저희도 성요셉을 통해서 하느님께 고민을 전하는 그런 게 됐으면 좋겠는데요.

신부님께서 보시기에 현대인들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도 잠자는 요셉상 신심이 필요하다고 보시는 건데 왜 필요하다고 보시는 겁니까?

▶제가 몇 년 전에 우연히 어떤 습관을, 담배 피우는 습관을 가진 분을 알게 됐는데요. 그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 애를 쓰다가 결국은 정신과에 입원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도와드리려고 하는데 놀랐어요. 빈자리가 없더라고요. 대형병원에 갔는데. 그래서 아는 분을 통해서 겨우 자리를 마련했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었습니다. ‘아, 이렇게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정신병원을 많이 찾고 있다.’ 그것은 뭐냐. 불면증이나 우울증. 신경쇠약, 요새 결정장애라는 표현도 있던데요. 삶의 고비에 힘들어 하는 이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바쁜 도시생활은 우리가 근본에서 멀어지게 하는 일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이런 일도 신경 계통에 정신과 계통에 이런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잠자는 성요셉상 신심은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우리 곁에 하느님께서 계시다. 그 하느님의 손길을 나날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데요. 그래서 평온하게 내일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좋은 도구가 된다고 생각이 돼서 소개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그런 분들에게라도 선물로 좋은 뜻으로 하게 되면 요셉 성인을 통해서 무언가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결국 믿음의 기본적인 구조를 통해서 믿음도 생기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해서 좋은 선교의 도구도 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서 여기저기 전파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러셨군요. 신부님 말씀 듣다가 문뜩 생각나는 겁니다. 요셉이 ‘하느님을 돕다’ 이런 뜻이라고 알고 있는데 하느님을 돕는 그 역할을 저희들도 할 수 있도록 요셉성인께서 함께 전구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선부님 천주교 신자들이야 요셉 성인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비신자분들이 청취자 분들 중에도 듣고 계신 분들에게 천주교 신자들이 왜 요셉 성인을 특별히 공경하고 그분의 삶을 묵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요셉 성인은 2000년 교회 역사에서 잘 알려진 성인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양부로서 숨은 성인이었죠. 그러니까 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예수님이시고 그 예수님을 낳으시고 기르신 성모님까지는 강조가 조금이라도 됐는데 요셉 성인은 목소리 한번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숨은 의인 성요셉. 그 분이 없었더라면 마리아가 어떤 고초를 겪었겠는가. 그리고 성 가정이 도대체 성립할 수 있었겠는가. 이집트로 피신을 가고 헤로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도록 하시고 다 어느 정도 크자 나자렛으로 돌아오셔서 세상살이를 가르쳐주신 성요셉도 방파제로 때로는 스승으로 인생의 길잡이로 역할을 해주셨다. 이렇게 믿는 것이죠.


▷그런데 교황님의 잠자는 요셉상과는 또 다른 모습이더라고요. 제가 홈페이지를 통해서 봤습니다. 보니까 성바오로딸수도회의에서 수녀님들이 제작해서 판매를 하시는 거로 아는데요. 교황님의 잠자는 요셉상과는 또 다른 친근한 성상 같기도 하고 마음에 드십니까?

▶첫 번째 받은 인상은 잠자기는 하는데 무릎 꺾인 각도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까지는 못 봤습니다.

▶90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보니까 안쓰러웠어요. 외국의 성요셉상은 다리를 뻗고 주무시거든요. 보는 이로 하여금 넉넉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반면에 한국의 성요셉상은 다리가 90도로 꺾여서 자고 있어요. 잘 때도 편안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떤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요셉상을 앞에 모시고. 그랬더니 어떤 자매님이 그걸 보시더니 ‘아, 신부님 제 남편이 잘 때 이렇게 자요.’ 그래서 영락없이 한국 남자들 한국의 남편들을 그린 것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인가 김유리 작가님이라는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요.

작가님이 이것을 성요셉을 외국인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맥락에서 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목수인 성요셉은 동네 사람들이 식탁이나 탁자 걸상 이런 것이 부서지거나 하면 고쳐달라고 가져올 것이고 선반, 문짝 고쳐달라고 집에 초대하면 그런 걸 달아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했을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서민들의 애환을 들어주고 편안하게 이웃이 되어 주는 그런 분이었을 거라는 거죠. 우리나라로 하자면 6, 70년대의 동네의 구멍가게나 전파상이 있었는데 그런 데서 일하는 아저씨 같은 그런 분이 아니었을까.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분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구상을 했다고 합니다.

작가분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훨씬 더 친근감이 느껴지고 우리 눈으로 신앙을 봐야겠다는 그런 마음이 새로 생겨서 신앙생활의 깊이를 더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그랬군요.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잠자는 성요셉상 신심을 전파하고 성상의 제작과 보급을 제안하신 정제천 예수회관구장 신부님 만났습니다. 신부님, 오늘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cpbc 김유리 기자(lucia@cpbc.co.kr) | 최종업데이트 : 2019-10-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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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제천 신부 "`잠자는 성 요셉상` 신심…평온한 삶 이끌어"

▲ 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 제작, 판매하는 잠자는 요셉상. (사진=바오로딸 홈페이지)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정제천 예수회 한국관구장 신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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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신학생'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신학은 나의 신앙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삶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길입니다.


[신앙단상]“LOVE MYSELF”(천향길 수녀, 성바오로딸 수녀회)


2018.12.09 발행 [1493호] 가톨릭 평화신문


수녀원에 들어오기 전 좋아했던 가수는 ‘이동원’씨입니다. 앨범 대부분을 소장할 만큼 그 시절, 그의 노래는 저에게 ‘성사’였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비롯해 정지용 시인의 ‘향수’ 등 아름다운 노랫말이 가진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분이 부른 많은 노랫말은 시인들의 시어(詩語)였습니다. 그 가사를 음미하며 힘을 얻었습니다. BTS(방탄소년단)를 좋아하는 대부분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저는 요즘 방탄소년단의 ‘덕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미(Army)’로 활동하진 않지만 조용하게 열렬히 좋아하고 있습니다. 아이돌 가수가 얼마나 되는지? 그룹명은 물론 가수 이름도 모르는 저에게 그들은 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거듭되는 행보를 접할 때마다 정말 놀랍습니다. 그들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멤버들 간의 공동체성, 노랫말 메시지로 ‘랩’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저에게도 귀를 열게 했습니다.

데뷔한 지 5년 만에 그들이 어떻게 세계 정상에 설 수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평범한 그들이 뮤지션으로 성장한 성공신화를 보니까 그 중심에 팬들과 허물없이 소통하고 또래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공감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었고 거기에 ‘케이팝 고유 가치를 지키며 기본에 충실했던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특히 방탄소년단 리더 김남준의 UN 연설은 훌륭했습니다.

인권주일인 오늘, 그 내용을 떠올려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 어린이와 청소년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LOVE MYSELF 캠페인을 유니세프와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체험으로 말문을 엽니다. “LOVE YOURSELF 앨범을 발매하고, LOVE MYSELF 캠페인을 시작한 후 우린 전 세계 팬들로부터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들었다”고요. “우리의 메시지가 그들에게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랑하게 되는 데 어떠한 도움이 되었는지를….” 거기서 그는 ‘말의 힘’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평범한 소년이던 자신이 어떻게 해서 꿈을 잃어버렸고, 어떻게 다시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되었는지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은 걸 정말 행운이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결점이 있고 두려움이 있지만, 온 힘을 다해 자신을 끌어안고 천천히 조금씩 사랑해보려고 한다고요. 저는 방탄소년단에게 배우고 싶습니다.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말입니다. 그들은 내 안에 열정과 가능성을 일깨워 주었고, 삶의 자리에서 내가 먼저 변화될 때,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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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기도가 무르익는 ‘기도의 오솔길’

새 진행자 전영금 수녀 월~금 오후 5시

“방송을 시작했을 땐 인사 정도만 나누던 청취자들의 기도 내용이 점점 깊어지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껴요.”


1월 26일 서울 중구 삼일대로 본사 9층 라디오 주조정실에서 방송을 마친 직후 만난 ‘기도의 오솔길’ 새 진행자 전영금(체칠리아,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가 방송 시작 한 달을 맞은 소감을 전했다. 

전 수녀는 1월 1일부터 월~금요일 오후 5시 생방송으로 청취자들과 만나고 있다. 전 수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민거리와 걱정거리와 같은 가슴 속 문제들을 털어놓는 청취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방송을 하면 할수록 하느님께서 제 안에서 일하시는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저는 그저 도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 수녀가 가톨릭평화방송과 인연을 맺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라디오방송 개국 초기인 1992년 오전 프로그램인 ‘평화음악실’ 진행을 맡았었다. 이후 대구 가톨릭평화방송과 광주 가톨릭평화방송에서도 ‘그대가 있어 행복한 아침’, ‘질그릇에 담는 기도’를 맡는 등 방송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기도의 오솔길은 청취자 참여 프로그램이다. 청취자가 문자(#1053)나 cpbc빵 앱을 이용해 기도 사연을 보내면, 전 수녀는 이를 소개하고 청취자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주님께 은총과 사랑을 청한다. 인터뷰가 있던 날은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가 일어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영혼과 유가족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사연이 유독 많았다. 게다가 며칠간 점점 추워진 날씨로 몸이 아픈 연로한 부모님들과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사연도 뒤를 이었다. 티모테오 성인 축일을 맞아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자는 사연, 수험생들의 합격 기원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메시지도 소개됐다.

“천주교 신자뿐 아니라 아직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감동으로 다가갈 수 있는 좋은 방송을 만들고 싶습니다. 사연에 따라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꼭지를 만드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기도의 오솔길에 더욱 많은 관심과 사랑을 청합니다.” 이힘 기자 

[출판] 중국에서 활동하는 이태종 신부, 「차쿠의 아침-소설 최양업」발간


발행일 : <평화신문> 2014-09-21 [제1282호, 21면]



한국교회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에 푹 빠진 후배 사제가 최 신부를 다룬 소설을 냈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이태종(청주교구) 신부가 3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펴낸 「차쿠의 아침-소설 최양업」(바오로딸/1만 4000원)이다. 한국교회에서 사제가 종교소설을 쓰기는 윤의병 신부의 「은화」에 이어 두 번째다. 

“최 신부님이 사제품을 받고 조선에 입국할 때까지 7개월간 사목한 중국의 차쿠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최 신부님과 김대건 신부님의 죽고 못 사는 애틋한 우정도 널리 전하고 싶었고요.”

소설은 사제 수품을 앞둔 김대건 신부와 최 신부의 차쿠에서의 마지막 만남(1845년 7월)을 시작으로 1849년 12월 최 신부의 조선 입국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증된 교회사 사료를 기반으로 최 신부의 인간적 면모와 신앙, 김 신부와의 혈육보다 진한 우정은 물론 시공을 초월하는 두 신부의 영적 친교를 감동적으로 그렸다. 차쿠는 최 신부는 물론 김 신부와도 깊은 인연을 간직한 중국 교우촌이다. 

이 신부는 “학창 시절 문예부장을 줄곧 맡을 만큼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소설 쓰기는 처음이어서 소설 작법 책도 읽어봤다”며 “소설 쓰느라 머리가 하얗게 다 셌다”고 웃었다.

이 신부는 2005∼2008년, 2011년부터 현재까지 두 차례 중국에 머무르는 동안 한국교회와 관련된 사적지는 거의 빼놓지 않고 찾아다녔다. 한국에서 연구하는 여느 교회사학자와 달리 중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차쿠와 백가점이 같은 곳임을 발견한 것도 그 덕분이다. 

“소설을 쓰면서 최 신부님께 점점 매료되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최 신부님은 소박한 일상을 승화시킨, 일상에서 순교의 모범을 보인 분입니다. 지금 제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최 신부님처럼 살아보는 것입니다.”

이 신부는 현재 중국 요녕대학 사회보장학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내년에는 차쿠로 들어가 어르신 2, 3명을 모시고 양로원을 시작하려고 한다. 중국도 노인 문제가 시급한 현안이다. 양로원은 중국을 가장 잘 도울 방법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차쿠를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개발하는 것이 이 신부의 꿈이다.

“차쿠는 안중근 의사가 갇혔던 여순감옥이나 압록강 관광도시인 단둥과 2시간 거리입니다.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췄습니다. 많은 분이 차쿠를 방문했으면 좋겠습니다.”

최 신부의 사목 보금자리인 충북 배티 근처에서 태어났다는 이 신부는 “기회가 된다면 이 소설에 이어 최양업 신부의 한국 선교활동을 다룬 소설을 꼭 쓰고 싶다”며 최 신부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을 드러냈다.


글ㆍ사진=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529490&path=201409


 <차쿠의 아침-소설 최양업> 저자 간담회


어제 8월 27일(수) 오후 2시, 명동 가톨릭회관 바오로딸 서원에서

<차쿠의 아침-소설 최양업> 저자 이태종 신부의 기자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가톨릭신문, 평화신문, 평화방송,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등

교회 언론사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는데요,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며 앞으로의 계획까지 이태종 신부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 보았습니다.


2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이 세상에 나온 <차쿠의 아침>을 보는 순간,

아들을 하나 낳았다고나 할까, 아님 딸을 시집보낸 아비의 마음이 이럴까,

대견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는 이태종 신부.

 

 


머리에 하얀 눈이 내려앉은 신부를 보고 휴가 가서 뵌 아버님이 처음에는 “글쎄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어유.” 하시더니 1년 반이 더 지나 뵈었을 때는, “아유 할아버지 신부님 오셨시유?” 하더랍니다. 이 우스갯소리는 소설을 준비하면서 이태종 신부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까를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왜 이토록 뼈를 깎는 고통으로 최양업 신부에 대한 소설을 썼을까요?

한마디로 ‘차쿠’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고, 김대건과 최양업, 두 분의 애틋한 우정을 세상에 외치고 싶었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이유요 동기입니다.

“일상생활이라는 소박한 밭”에서 생명의 진주를 캐어내는 ‘최양업 영성’을 거듭 강조하는

이태종 신부는 무엇보다 차쿠에서 제일 해보고 싶은 것은 최양업처럼 살아보는 일,

최양업 신부님 흉내 내며 그분처럼 말하고, 그분처럼 세상을 대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최양업 신부처럼 살면 기쁘고, 그렇지 못하면 후회가 밀려왔다고 고백하면서,

여유와 기다릴 줄 아는 너그러움을 주시고 자신을 변화시켜 주신 분이기에...

 

 

 

 

 

 

이 모든 일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이라고 말하는 그의 순박한 웃음 위로

‘반딧불이’가 반짝거리며 일제히 날아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차쿠를 널리 알리고, 최양업 신부를 닮고자 노력하는 이태종 신부,

몇 년 뒤 다시 소설가 이태종 신부로 만나 보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 책이 궁금하시다면~

http://www.pauline.or.kr/bookview?code=18&subcode=01&gcode=bo1001304

 

저자 간담회를 위해 애써 주신 홍보팀 책임 이 레나타 수녀님~

첫 간담회 문을 잘 열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찍고 쓰고 올리고

바오로딸 홍보팀 제노베파


 



성바오로딸수도회  민남현수녀님(나자렛예수 유년기 역자)이 

9월 24일(화) - 오늘의 PBC 뉴스인사이드에 출연하셨습니다.




















평화방송 뉴스인사이드 :

http://web.pbc.co.kr/home/PBC_VideoPlayer.html?brdcode=&brdname=%EB%89%B4%EC%8A%A4%EC%9D%B8%EC%82%AC%EC%9D%B4%EB%93%9C&brdcode2=1&mms=EycFVAGk99nV1WwMAvVYbPHUO&speed=low&menu_fid=6659&cid=474834&path=201309

[윤일마 수녀의 신나는 성경공부]<10>가장 큰 사람(마르 9,33-37)

스스로 낮추고 섬기는 위대한 삶

▲ 영화 '마르첼리노의 기적' 포스터.


예수님이 높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마르코 복음 9장에는 제자들의 무능력이 드러난다. 예수님이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했음에도 제자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제자들은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인지에 너무 관심을 갖고 있었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하면서 수난과 죽음에 대해 세 번이나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런 가르침이 제자들의 마음속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예수님 말씀에 힘과 권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자들이 딴생각을 하고 있어서다. 마음 깊이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나와는 다른 사람에게 해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자들은 많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고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에게 십자가와 죽음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따라다니는 예수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가 오면 예수님 옆에는 누가 앉을까에 더 관심이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예수님과 생각이 너무 달랐다. 그 제자들 모습이 우리 모습이다. 우리는 신앙생할을 열심히 하면서도 예수님 생각 따로, 우리 생각 따로인 것처럼 행동한다. 야고보와 요한은 수난을 당하려고 예루살렘에 가시는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르 10,37)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그 길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제자들의 알아듣지 못함이 내 모습은 아닌가 생각해보자. 세속적인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현세적 축복을 기대하는 제자들처럼 예수님이 아무리 당신 수난과 부활을 이야기하셔도 알아듣지 못한다. 예수님이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것은 당신의 죽음이 실패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자원하셨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두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용기를 주고자 하셨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통치자가 되시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자기들은 마땅히 그 다음가는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 마음은 어땠을까.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마르 9,33-34)

 그러나 제자들은 거리낌이 있어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설명해주신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신다. 삶을 진정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은 나눔의 삶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

 예수님은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가운데 세우신 다음, 어린이를 껴안으면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 9,37).

 어린이들은 서슴없이 예수님에게 간다. 이익을 따지지 않고 예수님께 곧장 갈 수 있는 마음은 우리 안에도 있다. 많은 사람이 통상적으로 천진무구하다. 예수님은 하느님 앞에서 가장 미소한 이의 상징이 어린이라고 말씀하신다. 

 영화 '마르첼리노의 기적'을 보면, 주인공 마르첼리노가 수도원 앞에 버려져 있다. 수사들은 마르첼리노를 데려다 키웠다. 수사들은 마르첼리노에게 다락방에는 올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마르첼리노는 다락방에 올라간다. 다락방에 올라가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고 마르첼리노는 놀란다. 옷을 걸치고 있지 않은 예수님에게 마르첼리노는 "예수님 춥죠? 예수님 배고프죠?"하고 묻는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어 마르첼리노가 가지고 온 빵을 같이 잡수신다. 우리 마음에도 분명히 예수님을 직면할 수 있는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이 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 눈에서 의심 없이 순수한 믿음을 보셨다. 어린이들처럼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갖고 살 때 누구라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선언하셨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스스로를 낮추고, 하느님의 종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분의 이름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어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 예수님은 가장 큰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대답해주셨다. 섬기러 오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느님과 이웃에게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진정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방송시간 : 화 오전 8시, 수 새벽 1시ㆍ오후 1시 40분, 금 오후 8시, 토 오후 10시

 ※교재 문의 : grace@pauline. or.kr, 02-944-0945 


평화신문 :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73170&path=201309




  1. BlogIcon job coaching 2013.09.20 18:37

    행복 경제학은 공공 정책의 성공을 평가할 때 공공 행복의 조치가 전통적인 경제 조치를 보완하기 위해 사용되어야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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