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페어플레이가 그리운 세상 / 민남현 수녀

발행일 : 2012-05-13 [제2795호, 23면]

인생의 축소판인 운동경기

운동감각이 둔한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은 걷기다. 그럼에도 운동경기를 보는 것은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기회가 있으면 즐겨본다. 운동경기는 인생의 축소판 같아 선수들의 몸놀림과 경기 운영방식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스포츠든 패하기 위해 하는 경기는 없기에 승부욕은 매우 중요하다. 승부욕은 집념과 도전정신에 가까운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승부욕에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신사도다. 최선을 다해 싸우면서도 깔끔하게 규칙을 지키는 모습은 감동 자체로 새겨진다. 좋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정당한 대결이다. 운동경기가 정정당당하고 개운하게 마무리되었을 때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수 있다. 인생 여정이 성공과 실패의 높낮이로 이루어지듯이 운동경기 또한 이기고 지는 것이 자연스런 과정이다.

나는 스포츠를 삶과 분리된 놀이로 보지 않는다. 어느 선수가 운동실력 이외에 훌륭한 인격을 갖추었다고 칭찬 받으면 그 자체로 반갑고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마치 ‘인생은 바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하며 직접 행동으로 가르쳐 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어느 신문의 사설

얼마 전에 이런 생각과 다른 신문 사설을 보았다. 논문 표절 문제에 휩싸인 한 금메달리스트의 경우를 언급하면서, 그는 학자가 아니라 ‘체육인’임을 감안해서 보아달라는 관대한 충고(?)였다. 이 글을 읽으면서 ‘각 사람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문제부터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고작 거짓으로 꾸민 하루살이의 찬란함일까? 객관성 없는 동정론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수에 대면하는 자세

물론 인간은 실수하면서 살아간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다. 그런데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실수한 후에 이를 대면하는 자세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오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이를 후회하는 마음이 있을 때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다시 살아난다.

때로 치명적인 잘못 앞에서 너무 부끄러워 ‘죄송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할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설사 사과와 용서가 말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눈빛이나 태도에서 그 마음이 읽혀질 때 많은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일어난 사태의 경우, 사건 당사자의 태도에서 이러한 페어플레이를 볼 수 없다는 씁쓸함이 마음의 골을 깊게 한다. 운동경기와 삶의 페어플레이가 서로 무관한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현실을 가늠하게 하는 반응들

이 사건에 대한 몇몇 반응들 또한 우리 사회의 윤리의식을 가늠하게 하는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국익을 손상시키면서까지 이 비리를 폭로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 제기다. 몇 년 전, 국제 과학 잡지에 실린 한국 논문조작 사건이 크게 요동을 칠 때도 일부에서는 국익을 위해 이 일을 덮어주는 것이 애국주의적 행위라는 이상한 논리를 폈다.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덮어주는 것이 나라의 이익에 정말 도움이 될까? 또한 거짓의 생명이 영원할 수 있을까? 다른 나라에 우리의 치부가 알려지면 부끄럽기 때문에 마치 없는 척 감추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국수주의적 발상이며 열등의식의 표현으로 보일 뿐이다.

또 다른 하나는 논문표절 대상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 대자보의 내용이다. 그 글에 드러난 심각한 도덕성 부재는 정신세계의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제보자를 처벌하라’는 제목 아래 ‘진상을 규명하고 학교 명예를 실추시킨 A씨를 색출해 처벌할 것’을 요청한다는 내용이다. 이 벽보가 등장한 시점이 논문표절심사 결과가 발표되기 하루 전인 것으로 보아 사실이 아님을 믿고 싶는 마음에서 나온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표절 수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된 상태이기 때문에 무조건적 낙관론을 전재로 한 이런 요청은 현실적 시각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생들의 얼룩진 생각

나에게 특히 심각하게 다가온 사실은 이 표현 뒤에 숨어 있는 생각이다. 논문표절 자체는 문제시하지 않고 이를 드러낸 것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맑은 지성을 갖추어야 할 대학생들의 생각이 많이 얼룩졌다는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더욱 아프다. 어둠은 결코 어둠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아프고 부끄러워도 밝게 드러내고 사죄할 때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민남현 수녀(엠마·성바오로딸수도회)

 

원문 보기: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44001&S=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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