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신과 인간’

왜 이리 믿음은 쓰라립니까?

<2015-09-27 가톨릭신문>


▲영화 '신과 인간' 포스터


1996년 알제리에서 트라피스트 수사 7명이 이슬람 무장단체에 납치되어 잔인하게 처형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신과 인간’은 알제리에서 평화의 보루였던 아틀라스수도원이 순교의 무덤이 되기까지, 목자이신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수사들의 마지막 여정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는 “주님, 제 입술을 열어주소서”라는 기도로 시작되는 수사들의 평범한 하루일과를 첫 장면으로 삼는다. 그들의 기도와 노동은 오랫동안 평온하게 짜여진 씨줄과 날줄처럼 마을공동체와 깊이 연결된 것이었고, 티비린의 보건소였던 수도원은 사람들의 몸과 영혼을 치유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슬람 무장단체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공격과 살인이 무차별적으로 자행되면서 그들의 표적이 된 수도원은 존폐를 가르는 위기에 놓인다. 게다가 성탄절 전날 밤 들이닥친 무장괴한들의 위협에 시달린 수사들은 이제 합리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구할 것인지, 끝까지 남아서 무모한 순교라도 받아들일 것인지를 놓고 첨예한 갈등을 겪게 된다.

영화는 수사들의 이 고통스런 내면을 전례와 시편기도로 표현하고 점점 조여드는 현실상황과 번갈아 보여주면서 한 편의 숭고하고 예술적인 수난극을 완성한다. 다큐멘터리처럼 현장음으로만 처리된 영화의 끝부분에 처음으로 들려오는 음악 ‘백조의 호수’를 배경으로 수사들의 미소가 눈물로 변하는 침묵의 만찬은 십자가의 길에 들어선 그들과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명장면이다.

이 영화를 하나의 순교극 정도로만 예상했던 나는 이 안에서 또 하나의 복음서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양떼를 이끄는 목자로서, 하느님께 봉헌된 자로서 자신들이 있어야할 곳이 어디인지 공동체가 함께 식별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괴롭혔던 두려움과 이기심이 신앙과 형제애로 극복되고, 결국 마을의 운명에 끝까지 함께할 것을 선택한 그들의 모습에서 이 시대를 동반하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피를 흘리지는 않지만 매 순간 정직하게 자신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그분께서 건네신 희망에 힘입어 끝까지 사랑하는 일은 언제나 낡고 이기적인 자아의 죽음이 따르는 일이기에 백색순교라 불린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당시 많은 유럽의 젊은이들이 교회로 돌아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불의한 세상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묻는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과 그분을 닮은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놓는 백색순교의 삶이야말로 그들이 갈망하는 진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김경희 수녀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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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천국의 속삭임’

‘본다’는 것의 의미
[2015-09-06 가톨릭신문]


 영화 '천국의 속삭임' 포스터

이탈리아의 한 작은 마을, 책을 읽으라는 아빠에게 텔레비전을 사달라고 조르는 미르코는 영화를 사랑하는 8살짜리 소년이다. 어느 날 집에 있던 장총을 잘못 건드려 눈에 큰 상처를 입은 미르코는 사랑하는 부모와 친구들을 떠나 맹아학교에 들어간다.

갑작스레 엄격한 규칙과 낯선 환경에 던져진 미르코는 희미하게나마 보이던 시력도 완전히 잃고 마음마저 어둠 속에 갇혀버리는데, 선천적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친구 하나가 그에게 다가온다.

나무와 바람과 하늘이 어떤 것인지 묻는 친구에게 기억 속 풍경들을 하나씩 꺼내어 소리와 감촉으로 설명해준 미르코는 우연히 발견한 녹음기를 통해 계절과 풍경을 소리로 담아내는 법을 알아낸다. 미르코가 창조한 소리의 세계에서 샤워기의 물은 마른 땅을 적시는 빗물이 되고, 입술로 부는 바람은 꿀벌의 아름다운 날갯짓으로 변하며 제철소 용광로의 무시무시한 굉음은 포악한 용이 뿜어내는 거대한 불로 변해 한편의 소리연극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미르코를 따돌리던 아이들까지도 합세해서 훌륭하게 완성된 모험담은 마침내 부모들을 초대한 무대 위에 올려지고, 부모들은 눈을 가린 채 아이들만의 독특한 언어로 들려주는 이야기에 흠뻑 빠진다. 비로소 아이들이 느끼고 꿈꾸는 세계와 소통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새로운 빛의 세계로 아이들을 인도해준 이는 담임 신부였다. 몸과 마음의 눈이 활짝 열린 그는 후천적 시각장애인 교장과 대비된다. 그는 자기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과거의 틀에 얽매여서 내면의 시력까지 상실한 채 아이들의 미래까지도 어둡게 만들었지만, 맹아들의 시각에서 또 다른 빛을 발견한 신부는 그들만이 볼 수 있는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되찾아준 것이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음향감독인 미르코 멘카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만든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이미지는 소리를 보여주는 그림이 되고,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기억과 상상의 소리는 그야말로 ‘천국의 속삭임’으로 소곤거린다. 실제로 미르코가 주도한 소리공연은 이탈리아의 맹아법을 바꾸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눈보다 귀를 더 활짝 열어야만 더 잘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본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사실 인간의 감각은 얼마나 상대적이고 왜곡되기 쉬운가. 예수님께서도 지적하셨듯이 스스로 볼 수 있다고 자만하는 이들의 영적 어둠은 또 얼마나 심각한가. 그동안 내가 보아온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나와 다른 눈, 다른 감각을 가진 사람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공유하고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영화는 화면을 해설해주는 음성과 대사 및 음악, 소리정보를 알려주는 한국어 자막을 넣어 시청각장애인들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만든 배리어프리(Barrier-free) 버전으로도 감상할 수 있다.(배리어프리 영화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http://www.barrierfreefilms.or.kr) 

김경희 수녀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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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암살’(2015)

가슴 뭉클한 외침 ‘대한독립만세’

<2015.08.16 가톨릭 신문>


 ▲ 영화 ‘암살’ 포스터.

영화 ‘암살’은 1933년 일제강점기시대, 세 명의 독립군이 경성에서 조선주둔군 사령관과 친일자본가를 암살하는 작전을 그린 액션영화이다. 구체적인 사건과 인물은 허구지만 1930년대 만주와 상해를 배경으로 펼쳐졌던 독립운동에 대한 세세한 묘사와 당시 김구, 김원봉 등 실존인물들이 등장함으로써 마치 역사의 잃어버린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하다.


일제시대를 다룬 영화들이 여러 편 있었지만 이토록 재미있으면서도 역사와 정의에 대한 명확한 해석과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은 없었기에 ‘암살’은 대중영화에 맡겨진 최고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양한 볼거리와 풍성한 이야깃거리에서 이제껏 우리가 잊었거나 모르고 지내왔던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현란한 반전의 묘미에 빨려들다가도 문득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어둠 속에 남겨진 우리 현실을 마주하게 되니 말이다.

만주참변을 겪은 후 독립군이 된 저격수 안옥윤, 마지막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와 황덕삼, 친일파 아버지를 없애려다 실패하고 무정부주의 킬러가 된 하와이 피스톨과 영감 등은 그 시대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며 일제에 맞서다 희생된 독립운동가의 모습이다. 또한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된 뒤 밀정이 된 변절자 염석진이 해방 후 경찰간부로 떳떳하게 사는 모습이나 오로지 경제개발논리로 나라의 부강을 돕겠다면서 결국 자신의 배만 채우는 친일자본가 강인국의 권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상징적인 인물을 처단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영화는 우리 민족의 쌓인 한과 작금의 정치현실에 대한 실망과 무력감을 일시적이나마 해소시키고 나아가 이 나라에 남겨진 과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짚어낸다.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인 최동훈 감독에게 독립군이 새롭게 조명되었다는 것은 관객으로 누릴 수 있는 축복이자 행운일 것이다. 특히 안옥윤과 그의 어머니, 아네모네마담 등으로 대표된 여성독립투사에 대한 조명은 참 신선하고 고마웠다. 옥윤과 쌍둥이인 미츠코처럼 모던한 양장차림에 철없는 쇼핑과 빈곤한 역사의식의 낭만주의자로 고착될 뻔한 신여성의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해방을 맞이하는 순간 김원봉이 술잔에 불을 붙이며 죽은 동지들을 추모할 때 “너무 많이 죽었어요. 사람들에게서 잊히겠죠”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목적을 분명히 한다. 다른 인물들을 통해서도 이 역사를 ‘잊지 말자’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들보다 더 많은 역사를 안고 있는 우리는 독립된 대한민국 시대를 살면서도 끊이지 않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하고 부정한 이들의 궤변 속에 억울하게 죽어가는 양심과 정의를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한국 최고의 흥행작으로 새롭게 등록될 이 영화가 신파와 애국이데올로기로 무장해서 눈물 흘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관 밖으로 확장된 역사의식과 더욱 풍성해진 담론을 통해 역사교육과 과거 청산문제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촉매제로서 더욱 활활 타오르기를 바란다. 


김경희 수녀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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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

타인에게 다가가는 사랑의 여정

<가톨릭신문 2015-07-26>


▲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 포스터


바야흐로 휴가와 여행의 계절이다.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한 해의 절반을 정리하고 보내며 후반전을 준비하는 여유가 필요한 때다. 묵은 때를 털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여행만큼 좋은 처방도 없겠지만, 당장 떠날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여행영화를 하나 추천하고 싶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은 우리가 여행에서 기대할만한 요소들을 두루 갖춘 여행기로, 종횡무진 낯선 곳을 누비며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코믹하면서도 꽤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 ‘꾸뻬’라고 이름 붙인 원래 주인공 헥터는 자로 잰 듯 틀에 박힌 일상에서 별 탈 없이 지내는 것에 만족하는 정신과 의사다. 다른 사람들이 놓쳐버린 행복을 찾아주는 직업을 가졌지만 정작 본인의 행복은 희미하게 사라진지 오래다. 진료비가 저렴한 탓인지 매일 똑같은 레퍼토리를 되풀이하는 환자들에게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낸 헥터는 어느 날 가면처럼 쓰고 있던 미소를 던져버리고 무작정 탈출을 감행한다.

그것도 아주 멀리 영국에서 중국으로, 남아프리카와 티베트와 미국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어떤 이는 돈과 일에서, 어떤 이는 가족과 공동체에서 그 행복을 찾는가 하면 누군가에게는 행복이라는 단어조차 사치스러운 현실임을 대면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기만의 틀에서 벗어나 난생처음 접한 낯선 땅과 낯선 사람들에게서 얻어낸 행복의 비결은 그의 재기발랄한 스케치와 함께 15가지로 기록된다. 아프리카에서 강도에게 납치돼 죽을 고비를 넘겼을 때 비로소 ‘살아있음’의 희열을 만끽하며 춤을 췄던 그는 티베트의 고승에게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의무가 있다’는 깨달음도 얻는다.

하지만 길고 장황했던 여행을 통해 얻은 교훈들은 그의 과거 속에 묻어두었던 갈망과 원초적 두려움을 발견한 것에 비하면 사소해 보인다. 마지막 여행지에서 만난 옛 애인을 통해 그는 여전히 사랑받고 사랑하기를 두려워하는 어린애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헥터의 내면 아이와 강아지는 ‘행복여행’의 실제적 주인공이다. 버림받을까봐 무서워서 숨겨왔던 사랑을 고백하고 마침내 그 불안한 감정과 고통스런 환희를 받아들였을 때 헥터는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고 자신만의 진정한 행복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꾸뻬씨의 행복여행’은 공간에서 시간으로, 타인에게 다가가는 사랑의 여정이다. 그 여행이 행복하려면 그저 불행을 피하려고 하거나 두려움에 갇혀있어서는 안 된다고 영화는 말해준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1요한 4,18). 


김경희 수녀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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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2015)

포기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희망
핵으로 파괴된 지구
물·기름 가진 자의 지배
쫓고 쫓는 현란한 영상 속
‘삶’ 향한 탈출 여정 그려

<2015.07.05 가톨릭신문>


▲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한 장면.


영화가 보여주는 인류의 미래는 대체로 비관적이다. 외계인이 침공한다거나, 기계문명의 지배를 받거나, 자본과 권력가의 노예로 전락하거나, 자연재해로 지구가 멸망하는 모습들이 그렇다.

미래사회에 대한 암울한 전망과 예언적 상상력은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과 경고로 볼 수도 있는데, 이러한 관심은 역시 인간존재를 탐구하는 본능에 뿌리를 둔 것 같다.

핵전쟁으로 파괴된 지구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인류와 인간본성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과 희망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온통 사막으로 변해버린 땅에서 한정된 물과 기름을 소유한 독재자 임모탄과 그의 아내들을 데리고 탈출하는 여전사 퓨리오사의 대결로 펼쳐지는 한 편의 격렬한 추격전이다. 아내와 딸을 잃은 충격과 고통으로 절규하는 이들의 환영에 시달리면서 사막을 방랑하다가 임모탄 부하들에게 붙잡혀서 그들의 피주머니가 된 주인공 맥스가 퓨리오사의 조력자로 나서게 된 이야기다.

올해 가장 큰 화제작인 만큼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지만, 특별히 인간의 믿음과 희망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다. 임모탄은 시타델을 지배하는 왕이자 신으로 자처하는 폭군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교주가 된 왕에게 순종하며 가끔씩 은혜를 입는 처지에 만족하거나, 워보이들처럼 임모탄의 전사가 돼 그와 함께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전장에서 순교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

한편으로 거대한 전투트럭에 미래의 씨앗이 될 여자들과 함께 시타델을 탈출한 퓨리오사의 마음에는 어릴 적 고향으로 기억하는 ‘녹색땅’(green place)에 대한 갈망과 신념이 있다. 어릴 때 시타델로 납치돼 노예로 살면서도 그 땅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녀는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드디어 고향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곳을 지키고 있던 여인들에게 녹색땅의 비보를 접하게 된 퓨리오사는 다시 절망하고, 그들을 추격하는 적들과 앞에 펼쳐진 소금땅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진다. 그때 맥스가 제안한 길은 유턴(U-turn) 하자는 것, 아마도 반전의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 아닌가 싶다.

고통스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누구나 이상향을 꿈꾸고 달아나지만 구원은 결국 ‘저기’가 아닌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워보이들처럼 현실에 안주하거나 우상에 중독돼있다면 ‘지금 여기’에 숨겨진 보물은 여전히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시종일관 달리고 쫓기고 파괴되는 현란한 영상 속에서도 끝까지 ‘서로 돕고 성장하며 희생할 줄 아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통쾌한 작품이다. 


김경희 수녀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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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뮤직 네버 스탑’

음악이 선사한 화해와 소통

<가톨릭신문 2015.03.22 발행>


 ▲ 영화 ‘뮤직 네버 스탑’ 포스터.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나의 삶’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죽음을 앞둔 심경을 고백하는 글을 써 화제가 된 사람이 있다. 그는 다름 아닌 미국의 유명한 뇌신경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뉴욕대 신경과 교수 올리버 색스다. 마침 진행하고 있는 팟캐스트에서 그의 저서 중 특히 「화성의 인류학자」에 실린 ‘마지막 히피’를 원작으로 한 영화 ‘뮤직 네버 스탑’(The music never stopped)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연구에 관심을 두었던 터였기에 더욱 마음이 갔다.

2011년 선댄스영화제 초청작이고, 같은 해 제천 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인 짐 콜버그 감독의 영화 ‘뮤직 네버 스탑’은 요즘 영화의 흥행요소인 음악영화, 힐링영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등 요건을 제대로 갖추었음에도 그다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영화다. 다른 영화처럼 많은 제작비를 쏟아 붓지도 않았고, 스펙터클하거나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보고 있는 내내 귀가 즐겁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임엔 틀림없다. 1960년대 전설적인 뮤지션인 비틀즈, 밥 딜런, 롤링스톤즈, 그레이트풀 데드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영화가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영화는 1986년 미국을 배경으로 20년 전 아버지 헨리와 다툰 후 집을 나간 아들 가브리엘의 소식을 전하는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다. 20년 만에 찾은 아들은 뇌종양에 걸려 수술을 하지만 그의 기억은 15년 전으로 멈춰버리고 타인과의 대화도 불가능한 상태다. 그러나 뇌기능 손상에 음악치료법이 있다는 기사를 본 아버지 헨리는 한 대학 교수와 함께 아들이 좋아하던 음악으로 잠자는 아들을 깨우기 시작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아들도 좋아할 거라 생각했던 아버지는 자신의 음악을 내려놓고 아들의 음악 안으로 들어간다.

베트남 전쟁과 히피 문화, 로큰롤이 영화의 배경이지만 영화는 우리에게 ‘화해와 소통이 시작된 사랑’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는 주인공 가브리엘이 세상과 소통을 시작하는 첫 곡이며 곧 관객과 소통을 시작하는 곡이기도 하다. 음악 때문에 단절되었던 아버지와의 관계는 다시 음악으로 이어진다. 음악은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 가브리엘에게 아버지라는 존재와 함께했던 새로운 시간들을 새겨놓는다. 늘 자신의 인생에 최악의 상황만을 선물했던 아버지가 아들의 세계에 들어와 아들이 좋아하는 밴드 그레이트풀 데드의 공연에 함께함으로써 아버지는 아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다면, 그래서 관계가 어그러지고 고통스럽다면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나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 타인이 있는 세상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실타래가 엉키듯 우리 삶이 꼬여있고, 지금 이 사회가 소통하지 않는 건 각자의 세계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각자 다른 노래를 부르지만 그 다른 노래에 귀 기울여 들어줄 때, 상대의 마음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노래에 나의 추억과 삶이 담겨있듯 그가 부르는 노래에는 그의 삶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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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다이빙벨’ -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또 다른 팽목항의 진실

<가톨릭신문 2015.04.12 발행>



‘다이빙벨’은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앞에서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 대표와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다이빙벨 투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사건 이후 보름 동안 세월호 구조를 둘러싼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이 작품은 세월호 침몰 당시 주류 언론에서 보도된 것과는 전혀 다른 팽목항의 진실을 보여준다. 사고 초기 ‘전원 구조’ ‘사상 최대 구조 작전’, ‘178명의 잠수인력 동원’ 등으로 도배한 언론보도는 사실과 정반대였다. 사실 국가는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것이다.

사고 발생 며칠 후 JTBC ‘뉴스 9’에 출연한 이종인씨는 잠수부들이 수중에서 오랜 시간 작업할 수 있게 만든 다이빙벨을 소개한다. 그리고 전 재산을 털어 장비를 싣고 팽목항을 찾아간다.

      ▲ 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하지만 사고현장을 지휘하는 해경은 이종인씨의 도움을 거부하고 그를 돌려보낸다. 얼마 후 유가족들의 요구로 다이빙벨의 재투입과 협조를 어렵게 성사시키지만, 약속과는 달리 해경은 위치를 거짓으로 알려주는 등 구조작업을 지연시킨다. 그뿐 아니라 작업 중에 있는 다이빙벨 바지선에 해경선이 갑자기 접근해서 부딪히거나, 산소공급용 호수가 절단되는 등 잠수부들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연출한다.

그럼에도 다이빙벨은 어렵게 세월호에 접근해서 50분 정도 연속작업을 하는데 성공하지만, 육지에서는 이미 언론플레이로 다이빙벨은 실패했다는 소식이 판을 치고 있었다. 2차 투입 때는 작업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2차 투입도 실패했다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결국 이종인씨는 1차 작업으로 실종자를 찾아오지 못한 것에 대해 실패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고, 자기 사업을 위해 세월호 사건을 이용한 죄인으로 낙인찍힌 채 비난과 야유를 받으며 팽목항을 떠난다. 영화는 이종인씨와 다이빙벨을 둘러싼 상황만을 보여주지만,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그를 둘러싼 거대 권력의 냉혹하고 기만적인 모습이다. 수많은 이들의 피눈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의 뻔뻔함과 모든 부조리를 부추기는 언론의 횡포는 또 얼마나 잔인했던가.

476명의 승객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한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생존 172명, 사망 295명, 실종 9명, 이 사건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그동안 세월호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로 떠들썩했지만, 정작 중요한 진상규명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침몰 위기에 놓여있다.

여전히 유가족들의 고통이 모욕당하고 그들의 상처가 유린되는 현실을 묵도하기란 참으로 괴롭다. 지금도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외치며 눈물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 영화가 침몰한 세월호의 진실을 인양하는데 더 큰 힘이 되기를 바란다. 다이빙벨을 철수시키며 이종인씨가 남긴 말이 사무치게 들려온다. “그러면 안 돼. 자리가 뭐가 그렇게 체면이 중요해요. 권력이 한없이 가냐고. 그러면 안 돼요. 이러면 안 되는 거였어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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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스틸 앨리스’(2014)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아름답다
‘치매’로 도망쳐만 버리는 기억
쌓아온 인생을 붙들기 위한 사투


세계적 추세의 고령화 사회를 맞이하면서 노년기에 대한 영화도 부쩍 늘어났다. 특히 노인병이라고 여겨졌던 치매, 즉 알츠하이머병이 젊은 사람도 걸릴 수 있는 뇌질환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기억이 지워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꾸준한 관심을 얻고 있다. 살아있어도 과거가 지워진 사람과는 맺어온 관계도 지워지기 때문이다.

사라져가는 기억 앞에서 자기 존재의미도 부정당하는 과정을 눈 뜨고 겪어야 하는 환자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가족이나 연인의 슬픔은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최근 극장가 한쪽에서는 ‘장수상회’가 치매를 겪는 가족의 비극을 다소 유별나고 소란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한 미국여성이 조용하면서도 사력을 다해 치매를 겪어내는 영화 ‘스틸 앨리스’가 상영되고 있었다.


      ▲ 영화 ‘스틸 앨리스’ 포스터     ‘스틸 앨리스’는 미국의 신경과학자이자 소설가인 리사 제노바가 쓴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큼 알츠하이머 증세의 전문가다운 안목으로 주인공 앨리스가 어떻게 기억을 잃어가고, 그로 인한 삶이 어떻게 변하며, 어떤 문제를 겪고, 가족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담담하게 그려냈다. 환자를 대상화시켜서 그를 지켜보는 가족이나 주변인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환자 본인의 상태를 함께 느끼고 충분히 동참하도록 끌어들였다.

앨리스는 결혼생활과 자신의 일 모두에 성공한 언어학자다. 50번째 생일을 축하받는 것으로 시작하는 첫 장면은 앨리스가 정말 ‘이상한 나라’에 들어서게 된 것을 알린다. 어느 순간부터 자기가 서 있는 곳을 못 알아보고, 단어를 잊어버리기 시작하면서 ‘조기성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는다.

세계적 명성에 걸맞은 인기와 실력을 인정받았던 그의 강의는 점점 엉망이 되어가고, 자신의 몸과 집도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른다. 앨리스는 자꾸만 도망쳐버리는 기억을 붙들고, 이제껏 자신이 쌓아온 인생의 보람을 붙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다.

하지만 자신이 증발되어버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사투에 가까운 노력으로 인간의 품위를 지키려는 앨리스는 상실과 무력을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사는 데 최선을 다한다.

이 영화는 리처드 글랫저와 워시 웨스트모어랜드가 함께 만들었는데, 루게릭병을 심하게 앓고 있던 리처드 글랫저는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이 영화를 찍었고 후에 사망했다. 그래서인지 ‘스틸 앨리스’는 그의 유언 같은 작품이다. 우리의 기억이 지워지거나 육체가 마비되더라도 우리 존재는 여전히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이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다독임이 잔잔한 위로처럼 다가오니 말이다. 

김경희 수녀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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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루르드’(Lourdes, 2009)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을
장애인 여성 순례길 따르며
기적과 신앙의 문제 탐구
<가톨릭신문 2015.05.24 발행>

 ‘루르드’는 프랑스 남쪽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성모발현성지로서 불치병을 치유 받은 사람들의 흔적이 숱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영화 ‘루르드’는 이 기적의 장소를 찾아온 한 여성의 순례길을 따라가면서 기적과 신앙의 문제를 탐구한다. 단순하고 절제된 미장센과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화면에서 대사로 전달되는 메시지보다 관객 스스로가 생각하고 찾아내야 할 것이 더 많은 작품이다.

주인공 크리스틴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신마비 환자다. 그런데 그에게는 치유나 기적에 대한 갈망이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비극을 하느님 탓으로 돌리며 우울하게 살아온 그녀는 순례길에서 마주치는 남자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순간, 누군가 자기를 불러낸 것처럼 혼자 몸을 일으켜 걷게 된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기적의 주인공이 된 크리스틴은 활력을 얻고 기뻐하지만 그녀
보다 더 간절한 기도와 희생으로 기적을 바랐던 사람들은 실망            ▲ 영화 ‘루르드’ 포스터.            과 질투의 눈길을 보낸다.

‘하느님이 전지전능하고 선하시다면 모든 이를 낫게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어떤 사람의 병은 고쳐주시고 어떤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두시는 건가?’,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순례단의 입을 통해 하느님과 기적에 대한 의문이 쏟아지고, 그 질문들에 공감하다 보면 어느새 관객인 자신도 토론에 참여하게 된다. 영화는 섣부른 답을 내놓기보다 순례단 신부를 통해 조심스럽게 말한다.

기적은 ‘외적 치유’만이 아니라 ‘내적 변화’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불현듯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도 기적이고 외적인 치유를 받았다 해도 그것을 통해 영혼까지 변화되지 않는다면 은총을 낭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베 마리아’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잘 정돈된 식탁 위로 음식이 놓이고, 식당 안에 한 사람 한 사람씩 등장하는 첫 장면은 서로 다른 상처와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교회의 모습이기도 하고, 다양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하늘나라의 잔칫상에 초대받은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 식탁에서의 기도처럼 일상 안에서 축복을 발견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할 때, 그것이 행복이고 기적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기적의 주인공으로 계속 서 있으려고 하다가 넘어진 크리스틴이 다시 평온하게 휠체어에 앉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하느님의 뜻을 알고 따르기 위해 기도하면서도 내가 바라는 표징을 요구하고, 나에게 주어진 은총은 외면한 채 남이 받은 것만 보고 부러워하면서 하느님의 능력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있지는 않는지 이 영화는 묻는다. 


김경희 수녀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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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늑대아이’

사랑하되 내려놓을 줄 아는 것

<가톨릭신문 2015.05.03 발행>


  

 ▲ 영화 ‘늑대아이’ 한 장면.

대소녀인 딸이 엄마를 회상하며 시작되는 애니메이션 ‘늑대아이’는 감동적인 모성애와 더불어 자녀를 통해 성장하는 여성들의 삶을 재조명해주는 수작이다. 사뭇 친숙하면서도 대립적인 조합으로 판타지 세계에 자주 등장하는 인간-늑대 커플이 여기에서는 엄마와 자녀관계로 변주되어 인위적인 통제와 자연의 섭리, 상실과 성장의 역동성을 눈부시게 아름다운 수채화로 펼쳐냈다.


주인공인 여대생 ‘하나’는 무뚝뚝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남학생과 사랑에 빠진다. 그의 정체가 늑대인간임을 알면서도 함께 가정을 이룬 하나는 유키라는 딸과 아메라는 아들을 낳는데, 이 아이들은 화가 나거나 흥분하면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쑥 내밀며 늑대로 변해버린다.

출산과 양육으로 허약해진 아내를 위해 사냥을 하던 남편이 어느 날 죽은 늑대의 모습으로 발견되고, 하나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혼자서 아이들과 씨름한다. 아이들의 성장과 더불어 거세지는 동물본성 때문에 더 이상 도시에 머물 수 없게 되자 남편의 고향인 산골로 이사한 하나는 거의 폐허가 된 집을 반짝거리는 새집으로 바꾸어놓고, 따뜻한 이웃들 도움을 받으며 전원생활에 적응해간다.

대자연을 무대로 뛰놀면서 엄청난 식욕을 자랑하는 유키와 소심하고 허약한 아메를 혼자서 키우는 일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지만, 남들과 다른 운명을 타고난 아이들이 각자 길을 찾아가게 해준 것은 남편과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힘이다.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며 숲 속의 작은 늑대처럼 놀던 유키는 학교에 들어가면서 점점 아리따운 소녀로 성장하고, 조용히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던 아메는 어느 날 자기 안에 숨어있던 본능을 깨달으면서 누나와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다.

‘늑대아이’는 전혀 다른 두 인격체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각각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홀연히 자기 곁을 떠나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아들을 눈물과 축복으로 떠나보낼 줄 알게 된 한 엄마의 눈물겨운 성장기다.

하나가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이제 자기 인생을 위한 과제를 풀어가는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영화를 보면서 태어나자마자 치열한 경쟁체제에 던져지는 우리나라 아이들과 자녀의 미래에 자신의 미래까지 걸고 사는 엄마들이 떠올라서 마음 한구석이 쓰렸다.

최선을 다해 돌보되 아이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는 것,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되 로봇처럼 조종하지 않는 것, 아이들을 사랑하되 집착을 내려놓을 줄 아는 것, ‘늑대아이’ 엄마에게 이런 육아법을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정상적인 교육체제가 너무나 견고하여 당장 바꿀 수는 없더라도 아이들 안에서 숨 쉬는 생명력과 자유만큼은 존중하고 믿어주는 부모가 많아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경희 수녀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기사보기 :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6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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