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자 씨 얼굴에 활짝 핀 웃음, 모란꽃을 닮았다!


10월 28일(화) 오후 2시 명동 바오로딸 서원에서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을 펴낸 김청자 씨의

기자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성악가 김청자’를 알고 있는 나는 가까이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가슴이 설렜습니다. 드디어 김청자 씨를 본 순간, 반가움과 남다른 포스에 하마터면 우와~ 하는 탄성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습니다. 음악으로만 듣다가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눌 수 있어 영광이었답니다~^^ 가톨릭신문, 평화신문 ․ 방송, 코리아헤럴드, 뉴스원 등 교회 ․ 일반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간담회에서 김청자 씨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공연을 위해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말라위 아이들. 밤에 불이 번쩍번쩍 켜져 있는 것을 보고 한국 사람들은

잠은 언제 자냐며 놀라워했다던 아이들. 그렇게 그들 눈에 한국은 신기하고 ‘정말 잘사는’ 나라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삶이 곧 저주요, 불행이요, 결핍 투성이라고 생각해 왔던 아이들을 보며 이 아이들 곁에서 평생 살리라 다짐하고 선택한 ‘내 영혼의 고향 아프리카’라고 말하는 김청자 씨.

노래와 춤으로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는 아프리카라는 곳은 나에게 영적인 훈련을 받는 장소, 끝나지 않는 피정, 끝나지 않는 다이어트를 하는 곳, 언제나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늘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에 살이 찔 수 없다며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그곳에서 살고 있는 한 끊임없이 해야 할 일들이 많다면서, 첫째 음악 대학, 둘째 기숙사, 셋째 미션 센터, 넷째 초등학교 교실, 다섯째 성당, 그리고 여섯째 병원이라고 말하는 그.

학생들이 후에 지도자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유학을 보내는 등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싶고, 성당을 지어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을 변화시키고, 천국처럼 만들고 싶다는 그는 내 소망 안에 하느님의 계획이 있음을 확신한다며 눈빛을 반짝였습니다.

이번 자서전에 대해,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준비하였다고 말하는 김청자 씨는 책에도 나와 있지만, 두 번의 이혼을 겪었던 아픔과 하나밖에 없는 아들 다니엘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은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 아픔, 아이가 성장할 시기에 함께 많은 시간을 나누지 못한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지금은 그런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주는 아들이 곁에 있어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숙연해지는 순간이었지요...

지금 떠나도 후회가 없다는 그는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이 책 속에 자신의 열정, 사랑, 온 인생이 담겨 있다고 고백합니다. 

 

 


신앙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하는 김청자 씨.

아프리카 아이들이 ‘엄마’ 김청자를 통해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이보다 더 확실한 선교가 어디 있을까요?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김청자 씨의 멋진 인생에 엄지손가락을 번쩍 올리는 이유입니다.

 

바오로딸 홍보팀 최인순 제노베파


• 책이 궁금하시다면~

http://www.pauline.or.kr/bookview?gubun=A01&gcode=bo100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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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행복한 미소

발행일 : [조선일보 2014.10.22]


아프리카서 인생 2막 성악가 김청자… 책 내고 말라위 아이들과 서울 음악회



고희(古稀), 일흔 할머니의 미소에서 '여성으로서 매력'이 느껴진다. 최근 생애 첫 책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바오로딸)을 펴낸 성악가 김청자(70)씨다. 젊을 때, 화려한 무대에 섰을 때보다는 전기조차 없는 동(東)아프리카 말라위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사진 속 얼굴의 행복감은 찬란하게 빛난다.

"저는 스스로 생각해도 참 진취적이라고 생각해요. '넌 시집가면 남편이 돈 많이 들겠다. 얼굴이 넓어서'라고 놀림 받을 정도로 얼굴 크고, 미간(眉間) 넓은 것이 어릴 때 엄청난 콤플렉스였어요. 그래도 웃으며 여기까지 왔어요. 하느님이 주신 DNA일까요?"

김씨는 입지전적 삶의 대명사다. 성악가를 지망했지만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간호사로 취업해 독일로 갔다. 거기서 신부와 수녀의 도움으로 음대에 진학, 장학생으로 성악을 공부해 유럽 무대에 데뷔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가 문을 열 때 귀국해 65세까지 후학을 가르치고는 아프리카로 건너갔다. 동생들 공부시키고 어머니 모시느라 유일하게 남은 경기도 양지 전원주택도 처분했다. 집 판 돈 5억원 중 2억원은 말라위 청소년 돕기 후원회에 내놓고 아예 삶의 근거를 아프리카로 옮겨버렸다.

그는 '열한 살 때 성당에서 만난' 하느님과 피아노(음악)란 선물을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정년퇴직 후 찾은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는 상수(常數), 최근의 에볼라 바이러스는 변수(變數)이다. 역경을 만날 때마다 '극복' 혹은 '포기' 양자택일로 돌파해온 그다. 이번에도 그의 선택은 '극복'이다. 수년 전 결성한 후원회 이름을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으로 지은 것도 '조금이라도 알려진 내 이름'을 팔기 위해서다.

김씨는 말라위 청소년 11명을 데려와 22~24일 국립극장에서 공연한다. 악보 볼 줄은 몰라도, 듣기만 하면 그대로 따라 하는 독특한 천재들이다. 그는 "내 무덤은 아프리카"라고 했다. "평생 예술가로 살아왔는데 마지막도 멋진 퍼포먼스로 끝내야죠." 책과 공연 티켓 판매 수익은 모두 아프리카 말라위 청소년을 위해 쓰인다. (02)523-9095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22/20141022000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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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 김청자 씨 "홀로 떠난 아프리카…영혼의 고향을 느꼈어요"

발행일 : [한국경제 2014.10.21 A37면]



말라위 고아들 돌보며 '제 2의 인생' 사는 성악가 김청자 씨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책 펴내

한국인 첫 유럽무대 선 소프라노
2010년 한예종 퇴임, 말라위 정착
청소년 밴드 이끌고 내한 공연 



“이 나이에 40도의 불볕더위와 온갖 불편함을 참아내며 이곳에 살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그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김청자 씨(70·사진)가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이란 책을 내놨다. 김씨는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선 유명한 메조소프라노였다. 평소 음악공부가 꿈이었던 그는 1963년 독일에 간호조무사로 갔다가 은인을 만나 레오폴트 모차르트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 공부를 시작했다. 독일 카를스루 국립오페라단원을 비롯해 스위스 이탈리아 등에서 16년간 이름을 날리며 프리마돈나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1973~1978년 중앙대 및 연세대 성악과 교수, 1994~20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교수로 지냈다. 이렇게 ‘잘나가는’ 성악가였던 김씨는 이번에 출간한 책에서 왜 모든 것을 버리고 돌연 아프리카로 떠났는지 털어놨다.

그는 안식년을 맞아 은퇴 후 삶을 준비하며 세계 곳곳을 여행하던 2005년 아프리카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 그런 환경에서 춤과 노래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곳이 내 영혼의 고향”이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2010년 2월 한예종에서 퇴임하자마자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후원회’를 만들고 그해 9월 혼자 아프리카로 갔다. 말라위 고아들을 위한 음악학원을 세우고 한국 유학 길을 열어주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에게 아이들은 ‘마미’ ‘마마’라고 부른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메조소프라노 가수가 아니라 사랑과 화해, 감사의 삶으로 새로운 무대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에게 말라위 추장은 루세케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여인’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김씨는 “사랑을 얻기 위해 달려온 길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완전하고도 영원한 사랑을 만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렇게 자식처럼 돌보는 말라위 청소년으로 구성된 ‘루수빌로(희망)’ 밴드를 이끌고 22~24일 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재즈, 아프리카 음악 등 공연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102044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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