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신과 인간’

왜 이리 믿음은 쓰라립니까?

<2015-09-27 가톨릭신문>


▲영화 '신과 인간' 포스터


1996년 알제리에서 트라피스트 수사 7명이 이슬람 무장단체에 납치되어 잔인하게 처형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신과 인간’은 알제리에서 평화의 보루였던 아틀라스수도원이 순교의 무덤이 되기까지, 목자이신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수사들의 마지막 여정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는 “주님, 제 입술을 열어주소서”라는 기도로 시작되는 수사들의 평범한 하루일과를 첫 장면으로 삼는다. 그들의 기도와 노동은 오랫동안 평온하게 짜여진 씨줄과 날줄처럼 마을공동체와 깊이 연결된 것이었고, 티비린의 보건소였던 수도원은 사람들의 몸과 영혼을 치유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슬람 무장단체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공격과 살인이 무차별적으로 자행되면서 그들의 표적이 된 수도원은 존폐를 가르는 위기에 놓인다. 게다가 성탄절 전날 밤 들이닥친 무장괴한들의 위협에 시달린 수사들은 이제 합리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구할 것인지, 끝까지 남아서 무모한 순교라도 받아들일 것인지를 놓고 첨예한 갈등을 겪게 된다.

영화는 수사들의 이 고통스런 내면을 전례와 시편기도로 표현하고 점점 조여드는 현실상황과 번갈아 보여주면서 한 편의 숭고하고 예술적인 수난극을 완성한다. 다큐멘터리처럼 현장음으로만 처리된 영화의 끝부분에 처음으로 들려오는 음악 ‘백조의 호수’를 배경으로 수사들의 미소가 눈물로 변하는 침묵의 만찬은 십자가의 길에 들어선 그들과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명장면이다.

이 영화를 하나의 순교극 정도로만 예상했던 나는 이 안에서 또 하나의 복음서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양떼를 이끄는 목자로서, 하느님께 봉헌된 자로서 자신들이 있어야할 곳이 어디인지 공동체가 함께 식별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괴롭혔던 두려움과 이기심이 신앙과 형제애로 극복되고, 결국 마을의 운명에 끝까지 함께할 것을 선택한 그들의 모습에서 이 시대를 동반하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피를 흘리지는 않지만 매 순간 정직하게 자신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그분께서 건네신 희망에 힘입어 끝까지 사랑하는 일은 언제나 낡고 이기적인 자아의 죽음이 따르는 일이기에 백색순교라 불린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당시 많은 유럽의 젊은이들이 교회로 돌아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불의한 세상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묻는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과 그분을 닮은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놓는 백색순교의 삶이야말로 그들이 갈망하는 진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김경희 수녀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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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천국의 속삭임’

‘본다’는 것의 의미
[2015-09-06 가톨릭신문]


 영화 '천국의 속삭임' 포스터

이탈리아의 한 작은 마을, 책을 읽으라는 아빠에게 텔레비전을 사달라고 조르는 미르코는 영화를 사랑하는 8살짜리 소년이다. 어느 날 집에 있던 장총을 잘못 건드려 눈에 큰 상처를 입은 미르코는 사랑하는 부모와 친구들을 떠나 맹아학교에 들어간다.

갑작스레 엄격한 규칙과 낯선 환경에 던져진 미르코는 희미하게나마 보이던 시력도 완전히 잃고 마음마저 어둠 속에 갇혀버리는데, 선천적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친구 하나가 그에게 다가온다.

나무와 바람과 하늘이 어떤 것인지 묻는 친구에게 기억 속 풍경들을 하나씩 꺼내어 소리와 감촉으로 설명해준 미르코는 우연히 발견한 녹음기를 통해 계절과 풍경을 소리로 담아내는 법을 알아낸다. 미르코가 창조한 소리의 세계에서 샤워기의 물은 마른 땅을 적시는 빗물이 되고, 입술로 부는 바람은 꿀벌의 아름다운 날갯짓으로 변하며 제철소 용광로의 무시무시한 굉음은 포악한 용이 뿜어내는 거대한 불로 변해 한편의 소리연극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미르코를 따돌리던 아이들까지도 합세해서 훌륭하게 완성된 모험담은 마침내 부모들을 초대한 무대 위에 올려지고, 부모들은 눈을 가린 채 아이들만의 독특한 언어로 들려주는 이야기에 흠뻑 빠진다. 비로소 아이들이 느끼고 꿈꾸는 세계와 소통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새로운 빛의 세계로 아이들을 인도해준 이는 담임 신부였다. 몸과 마음의 눈이 활짝 열린 그는 후천적 시각장애인 교장과 대비된다. 그는 자기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과거의 틀에 얽매여서 내면의 시력까지 상실한 채 아이들의 미래까지도 어둡게 만들었지만, 맹아들의 시각에서 또 다른 빛을 발견한 신부는 그들만이 볼 수 있는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되찾아준 것이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음향감독인 미르코 멘카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만든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이미지는 소리를 보여주는 그림이 되고,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기억과 상상의 소리는 그야말로 ‘천국의 속삭임’으로 소곤거린다. 실제로 미르코가 주도한 소리공연은 이탈리아의 맹아법을 바꾸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눈보다 귀를 더 활짝 열어야만 더 잘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본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사실 인간의 감각은 얼마나 상대적이고 왜곡되기 쉬운가. 예수님께서도 지적하셨듯이 스스로 볼 수 있다고 자만하는 이들의 영적 어둠은 또 얼마나 심각한가. 그동안 내가 보아온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나와 다른 눈, 다른 감각을 가진 사람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공유하고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영화는 화면을 해설해주는 음성과 대사 및 음악, 소리정보를 알려주는 한국어 자막을 넣어 시청각장애인들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만든 배리어프리(Barrier-free) 버전으로도 감상할 수 있다.(배리어프리 영화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http://www.barrierfreefilms.or.kr) 

김경희 수녀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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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암살’(2015)

가슴 뭉클한 외침 ‘대한독립만세’

<2015.08.16 가톨릭 신문>


 ▲ 영화 ‘암살’ 포스터.

영화 ‘암살’은 1933년 일제강점기시대, 세 명의 독립군이 경성에서 조선주둔군 사령관과 친일자본가를 암살하는 작전을 그린 액션영화이다. 구체적인 사건과 인물은 허구지만 1930년대 만주와 상해를 배경으로 펼쳐졌던 독립운동에 대한 세세한 묘사와 당시 김구, 김원봉 등 실존인물들이 등장함으로써 마치 역사의 잃어버린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하다.


일제시대를 다룬 영화들이 여러 편 있었지만 이토록 재미있으면서도 역사와 정의에 대한 명확한 해석과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은 없었기에 ‘암살’은 대중영화에 맡겨진 최고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양한 볼거리와 풍성한 이야깃거리에서 이제껏 우리가 잊었거나 모르고 지내왔던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현란한 반전의 묘미에 빨려들다가도 문득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어둠 속에 남겨진 우리 현실을 마주하게 되니 말이다.

만주참변을 겪은 후 독립군이 된 저격수 안옥윤, 마지막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와 황덕삼, 친일파 아버지를 없애려다 실패하고 무정부주의 킬러가 된 하와이 피스톨과 영감 등은 그 시대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며 일제에 맞서다 희생된 독립운동가의 모습이다. 또한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된 뒤 밀정이 된 변절자 염석진이 해방 후 경찰간부로 떳떳하게 사는 모습이나 오로지 경제개발논리로 나라의 부강을 돕겠다면서 결국 자신의 배만 채우는 친일자본가 강인국의 권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상징적인 인물을 처단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영화는 우리 민족의 쌓인 한과 작금의 정치현실에 대한 실망과 무력감을 일시적이나마 해소시키고 나아가 이 나라에 남겨진 과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짚어낸다.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인 최동훈 감독에게 독립군이 새롭게 조명되었다는 것은 관객으로 누릴 수 있는 축복이자 행운일 것이다. 특히 안옥윤과 그의 어머니, 아네모네마담 등으로 대표된 여성독립투사에 대한 조명은 참 신선하고 고마웠다. 옥윤과 쌍둥이인 미츠코처럼 모던한 양장차림에 철없는 쇼핑과 빈곤한 역사의식의 낭만주의자로 고착될 뻔한 신여성의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해방을 맞이하는 순간 김원봉이 술잔에 불을 붙이며 죽은 동지들을 추모할 때 “너무 많이 죽었어요. 사람들에게서 잊히겠죠”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목적을 분명히 한다. 다른 인물들을 통해서도 이 역사를 ‘잊지 말자’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들보다 더 많은 역사를 안고 있는 우리는 독립된 대한민국 시대를 살면서도 끊이지 않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하고 부정한 이들의 궤변 속에 억울하게 죽어가는 양심과 정의를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한국 최고의 흥행작으로 새롭게 등록될 이 영화가 신파와 애국이데올로기로 무장해서 눈물 흘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관 밖으로 확장된 역사의식과 더욱 풍성해진 담론을 통해 역사교육과 과거 청산문제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촉매제로서 더욱 활활 타오르기를 바란다. 


김경희 수녀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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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

타인에게 다가가는 사랑의 여정

<가톨릭신문 2015-07-26>


▲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 포스터


바야흐로 휴가와 여행의 계절이다.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한 해의 절반을 정리하고 보내며 후반전을 준비하는 여유가 필요한 때다. 묵은 때를 털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여행만큼 좋은 처방도 없겠지만, 당장 떠날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여행영화를 하나 추천하고 싶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은 우리가 여행에서 기대할만한 요소들을 두루 갖춘 여행기로, 종횡무진 낯선 곳을 누비며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코믹하면서도 꽤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 ‘꾸뻬’라고 이름 붙인 원래 주인공 헥터는 자로 잰 듯 틀에 박힌 일상에서 별 탈 없이 지내는 것에 만족하는 정신과 의사다. 다른 사람들이 놓쳐버린 행복을 찾아주는 직업을 가졌지만 정작 본인의 행복은 희미하게 사라진지 오래다. 진료비가 저렴한 탓인지 매일 똑같은 레퍼토리를 되풀이하는 환자들에게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낸 헥터는 어느 날 가면처럼 쓰고 있던 미소를 던져버리고 무작정 탈출을 감행한다.

그것도 아주 멀리 영국에서 중국으로, 남아프리카와 티베트와 미국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어떤 이는 돈과 일에서, 어떤 이는 가족과 공동체에서 그 행복을 찾는가 하면 누군가에게는 행복이라는 단어조차 사치스러운 현실임을 대면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기만의 틀에서 벗어나 난생처음 접한 낯선 땅과 낯선 사람들에게서 얻어낸 행복의 비결은 그의 재기발랄한 스케치와 함께 15가지로 기록된다. 아프리카에서 강도에게 납치돼 죽을 고비를 넘겼을 때 비로소 ‘살아있음’의 희열을 만끽하며 춤을 췄던 그는 티베트의 고승에게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의무가 있다’는 깨달음도 얻는다.

하지만 길고 장황했던 여행을 통해 얻은 교훈들은 그의 과거 속에 묻어두었던 갈망과 원초적 두려움을 발견한 것에 비하면 사소해 보인다. 마지막 여행지에서 만난 옛 애인을 통해 그는 여전히 사랑받고 사랑하기를 두려워하는 어린애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헥터의 내면 아이와 강아지는 ‘행복여행’의 실제적 주인공이다. 버림받을까봐 무서워서 숨겨왔던 사랑을 고백하고 마침내 그 불안한 감정과 고통스런 환희를 받아들였을 때 헥터는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고 자신만의 진정한 행복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꾸뻬씨의 행복여행’은 공간에서 시간으로, 타인에게 다가가는 사랑의 여정이다. 그 여행이 행복하려면 그저 불행을 피하려고 하거나 두려움에 갇혀있어서는 안 된다고 영화는 말해준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1요한 4,18). 


김경희 수녀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김경희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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