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올해는 성탄시기의 여운이 사라지자마자 사순시기를 마음에 품어야 하는 전례를 맞이합니다들떠있고 넘쳐나는 소비의 향유 속에서 뭔가를 내 안에서부터 차별화된 영적 걸음을 내 딛기 위한 준비가 덜되었다고 해서 게으름을 피우기에는 정말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겠구나 싶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대림에 이어 안셀름 그린 신부는 사순길잡이인 내면의 샘에서 그 길을 하나하나 짚어사며 구체적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비유로 든 이 이라는 말이 좋은 이미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언제나 찰랑거리며 차오르기 위해서는 내면 깊은 곳에서 그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근원지를 찾는 수고로움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신부님을 강조하고 계신 것부터 천천히 숙독하노라면 그 말의 의미가 사순절의 초입에서부터 아주 쉬운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각자에게 굳어진 딱지처럼 익숙해진 습관들 중에 단식이라는 권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가 새롭습니다. 외부적으로 흩어졌던 수많은 먹거리의 유혹과 내가 쏟아놓은 말들과 행동 하나 하나와 자신과 타인에 대한 판단과 선입견들이 어떻게 제 길을 다시 찾아야 하는 지 거부감 없이 작업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음식섭취 안에 길들여진 과잉의 것들을 정화시키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말씀 앞에 멈추어 서서 소홀했던 삶의 습관의 샘을 더 깊게 파들어 가 참 된 물을 찾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식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시작으로 사순 제1주간부터 제5주간까지는 한 가지 주제로 일주일 동안 묵상과 실천을 하도록 해주는 내용들은 우리 삶과 직결되는 소소하면서도 쉽지않은 일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손가락 하나로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는 시대, 모든 게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음으로 인한 과유불급, 정도가 지나침 등 사순 시기 동안 하나하나 내려놓고 몸과 정신을 비우는 방법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이 초대 앞에서 이번 사순절엔 기꺼이라는 응답을 드릴 수 있을까요?

저자가 이끄는 대로 단식과 기도, 가족과 함께 집 안에 있는 물건이나 주변을 정리하고, 각자 사순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나누고, 함부로 남을 평가하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의 발을 씻어주는 등 다양한 실천을 통해 우리는 부활절에 새롭게 부활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포기할 수 있는 작은 일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작은 것부터 포기해 본다면 내적인 자유를 느낄 수 있있고, 이 보다 더 좋은 영적효과는 없겠습니다. 일상의 무거운 걸음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일부러 낸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안셀름 그륀 신부는 성주간 동안 더욱 그 묵상의 깊이를 심화시키기 위해 전례의 말씀을 따라가며 그 목적지에 다다르게 합니다. 결국 걸음마다 궁극적인 집으로 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영원히 이곳에 눌러앉을 수 없는 순례자로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를 향한 여정 중에 있는 순례자들임을 일깨워주는 내면의 샘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향하는 여정의 길에서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화, 자유의 맑은 샘물을 맘껏 마실 수 있기 위한 수고로움. 비로소 하느님과 나, 이웃과 하나로 어우러지는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보물 같은 체험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전영금 세실리아 수녀

[가톨릭문화산책]<13>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하느님을 목말라 하는 인간 

자신의 욕망과 어둠 극복하고 하느님 만나는 영적 여정 


우리는 늘 인생이라는 화두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길 좋아한다. 

그것이 내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그 삶을 살아온 시간과 공간속의 이야기. 

이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그런 면에서 자기 자신과의 싸움과 같은 

시간성과 그만이 소유한 공간의 체험이 무엇을 말해주는지에 대한 

길고도 지루한 여정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영화 속의 파이를 보고 있으면 만약에 내가 저 주인공이 된다면… 이라는

가정법의 상황 속에 묶어버리는 매력의 2시간 내내 나를 괴롭힌다. 

죽음의 경지를 체험하고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산자들의 처지도 결국은 주인공과 같은 삶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존재라는 아이러니한 진리를 수긍하게 한다. 

인간 속에서 낯설게 펼쳐 놓은 역동적인 하느님의 마음이 드러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줄거리


인도에서 자란 힌두교·기독교·이슬람을 모두 믿는 

인도 소년 파이의 원래 이름은 '피신 몰리토 파텔'이다. 

그 이름이 영어로 '오줌싸다'라는 뜻의 '피싱'(Pissing)과 발음이 비슷해서 

'오줌싸개'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받게 된다. 

'피신 몰리토 파텔'은 수학적으로 원주와 지름의 비율을 뜻하는 '파이'. 

수학적으로 정의되지 않는 무한소수인 파이를 자신의 이름의 뜻임을 설득하게 되고 

결국 '전설의 파이'로 불리게 되다.

그의 부모는 동물원을 운영하던 중 정부의 지원이 끊기자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 

동물들을 싣고 캐나다로 항해하던 중에 폭풍우에 화물선은 침몰하고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탄 파이만 목숨을 건지게 된다. 

결국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파이만 보트에 남아 

망망대해에서 천신만고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 폭풍우 속에서 파이가 하느님께 소리치고 있다.


▲ 폭풍 후 평온한 바다에 있는 파이. 

▲ 길들인 호랑이와 있는 파이. 


목마름


마마지에게서 하느님의 존재를 믿게 할 이야기라는 소개를 받은

캐나다 작가는 파이가 들려주는 체험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은 생의 극한 상황 속에서 만난 하느님과 자신과의 이야기이자 

영화 분석적으로 말한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보는 이들이 처한 현실과 맞물려 

다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암시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어떤 사투 속에서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깨끗한 영혼을 갖고 싶다면 피신 몰리트 수영장에서 수영하라는 마마지의 말을 되새기며 

어린 파이는 수영을 배우는 중에 무엇이든 해치는 것은 공포심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배운다. 

무한하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거처야 하는 두려움의 과정을 어떻게 뛰어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파이는 먼저 힌두교를 통해 하느님을 소개 받고 알라신을 통해 기도하는 법을 배운다. 

어린 파이가 성당에서 성수를 마실 때 신부님은 “목마르겠구나.”말하며

마실 물을 주는 장면에서 성수(聖水)는 하느님 생명과 은혜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파이가 호랑이에게 지어준 이름도 ‘목마름’이었던 것도 우연이 아님을 복선으로 깔았다. 

인간은 언제나 하느님에 대한 목마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시편구절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 왜 자기 아들을 보내서 인간의 죄 때문에 고통받게 해요?

- 우릴 사랑하셔서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거야 우리 인간들은 전능하신 주님을 이해 할 순 없어도 

  예수님과 그분의 고통을 이해 할 순 있으니까,

-인간의 죄를 위해 아들을 희생시킨다구요? 무슨 사랑이 그래요?

  (예수님이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파이는 그 이후 예수님의 존재를 지울 수 없었다. 

 파이는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믿음의 여행, 하느님 만나는 영적여행을 떠난다. 


자신과의 끊임없는 투쟁


인간은 엄마의 아늑한 에덴과 같은 자궁 속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파이에게 더 이상 그 같은 낙원은 없다. 

어둔 밤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 파이는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홀로 남겨진다. 

작가는 파이와 호랑이는 자신이었다고 말한다. 호랑이 눈에 비친 것은 파이의 욕망이고 

호랑이는 하느님께 나가는 영적 여정 중에 만나게 되는 내면의 투쟁이자 어둠이다. 

끊임없이 일어서는 욕망은 살아남기 위한 자기와의 싸움, 

어쩌면 프로이드가 말하는 무의식 속에 자리를 틀고 있던 이드의 거세와 훈련된 자아 

그리고 초자아에로 승화되는 내면의 작업을 뜻한다고도 보겠다. 

무엇에 잡혀 먹히느냐에 따라 나는 참 자아의 성장과 평화라는 항구에 빨리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이 주시는 위로


폭풍우가 물러가고 바다위엔 오렌지 빛 햇살이 찬란한 장면이다. 

바다위에 떠있는 보트를 버즈 아이 뷰(bird's eye view)로 보여준다. 

하느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화의 상징이다. 

우리는 고요 속에서만 진정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주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계속 으르렁 대는 호랑이 ! 

아직 내면의 나는 욕망과 맞서고 있음을 직시하고 파이는 하느님과 대화한다. 

“하느님이시여 절 받아 주소서. 전 당신의 종입니다 …보여 주세요.” 


나 자신 길들이기


파이는 서바이벌 가이드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배운다. 

식사와 휴식시간, 마음의 여유 등 체력이 고갈되지 않도록 애쓰면서 무엇보다도 호랑이를 다루는 법, 

소통의 훈련에 심혈을 기울인다. 

나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읽어내고 조절하는 비유적인 훈련이다.

무조건 방어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교감을 통한 방법이란 달래기도, 

때로는 엄한 조련사처럼 먹이를 위해 낚시하는 법도 교육시킨다. 

‘리처드 파커만 없었다면 난 죽었을 거다. 

난 녀석을 보며 긴장했고 녀석을 돌보는 것에 삶의 의미를 두었다, 

무엇보다 희망을 잃어선 안 된다.’며 그의 존재를 감사한다. 


전부 다 내려놓고


그나마 잔잔하던 삶이 다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반전의 상황이 벌어진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쓰고 있던 사투의 기록 쪽지가 날아가 버린다. 

자신의 과거마저 놓아버린 파이는 하느님께 외친다.  

“하느님 전 가족을 잃었어요. 전부다 잃었다고요. 굴복 했잖아요…” 

폭풍 속 밤하늘엔 한 줄기 빛이 환하게 비추고 번개가 번쩍인다. 

“하느님이 우리한테 오셨어 이건 기적이야.” 파이의 고백이다. 

우리의 영적 위기와 믿음의 시련 속에서도 당신을 보여주신다는 중요한 장면이다. 

이제 의존할 것을 모두 잃은 파이를 버즈 아이 뷰(bird's eye view)로 망망대해의 아주 작은 보트가 떠있는 것을 연출한다. 

무한하신 하느님 앞에 놓인 인간의 모습이다. 

폭풍우가 지난 뒤 파이는 쓰러져있는 호랑이머리를 무릎에 놓고 쓰다듬어준다. 

영적투쟁에서 표효하던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자기 힘에 의존했던 기운이 빠져나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납죽 엎드린 상태, 

이제야 하느님이 자신의 삶을 이끌어주심을 느낀다. 

“하느님 절 창조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젠 돌아갈 준비가 됐어요.”

 그리고 화면은 검은색으로 변한다. 죽음을 지나 하느님의 빛 속으로 옮겨 가는 순간이다.

 

지켜보고 계시는 하느님


보트머리에 누워 있는 파이얼굴에는 눈부신 햇살이 비치고 식충 섬에 도착한다. 

파이는 이곳에서 사랑했던 아난디가 준 팔지를 풀어 나무에 묶어놓는다. 

아난디와의 인연마저 놓아준다. “하느님이 날 버리셨다 생각했는데 지켜보셨던 거죠, 

내 고통에 무심하다 생각했는데 지켜보신 거죠. 

구조될 희망을 버렸을 때 휴식을 주시고 여행을 계속하란 계시를 내리셨죠.” 라고 파이는 중얼거린다. 

죽은 듯 늘어진 파이는 멕시코 해변에 도착한다. 

그의 험난한  여정은 끝나 보인다. 하느님의 따뜻한 품속에 안긴 듯한 마지막 그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나를 잡아먹으려던 잔인한 친구는 내 삶에서 영영 사라졌죠. 영영 자취를 감추고 말았죠.’


이젠 당신의 스토리


<라이프 오브 파이>는 얀 마텔의 원작 소설 <파이 이야기>를 리안 감독이 3D로 영화화 한 것이다. 

줄거리 자체가 개연성과 일관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서사로써 

이성과 마음, 동물과 식물이 공존하고 여러 종교와 우주가 공존하도록 펼쳐놓는다. 

모든 것을 열어놓음으로 이야기는 계속 이어간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한 소년이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다 구조된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가 있고 

성장한 파이는 과거를 회상하며 재구성한 캐나다 작가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캐나다 작가는 나름대로 재구성해 이야기를 할 것이고 

관객은 각자 나름대로 풀어내면서 자신의 일부분을 이야기 할 것이다. 

파이는 일본 보험조사단에게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캐나다 작가에게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 

영화는 관객의 결정에 그 결말을 맡겨 놓으며 끝을 맺는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이 많은 이야기들을 신앙의 시점에서 다시 풀어 미디어가 던져주는 이야기에 

나의 삶을 스토리텔링해보면 어떨까 한다.


그룹대화 :


- 파이가 들려준 두 가지 이야기 중 어느 것을 좋아하는가?

-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 파이의 이야기가 나에게 주는 의미를 나누어 보자


성경구절 :


 “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살펴보시어 아십니다. 

제가 앉거나 서거나 당신께서는 아시고…제가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당신께서는 헤아리시고…” (시편 139,1-3)


이복순 수녀(성바오로딸 수도회)


평화신문 :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48420&path=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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