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인문학 강좌

  "침묵" 책과 영화 속 하느님

 

4월 1일 명동 북앤샵에서 의정부교구 최대환 신부님을 모시고 인문학 강의가 있었습니다.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서 강의 자료를 공유합니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과 영화 사일런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태 5,3-4)

 

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게 가까이 계시고

넋이 짓밟힌 이들을 구원해 주신다. (시편 34)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꺽인 마음을 하느님, 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시편 51)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2코린, 12,9-10)

 

인간이 이토록 슬픈데 / 주여, 바다가 너무도 푸르릅니다. –엔도 슈사쿠 침묵의 비

 

, 비는 쉴 새 없이 바다에 내립니다. 그리고 바다는 그들을 죽인 뒤에도 무섭게 침묵만 지키고 있습니다. – 엔도 슈사쿠 침묵

 

내가 그 사랑을 알기 위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지금도 최후의 그리스도교 신부다. 그리고 그분은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설령 그분은 침묵하고 있었다 해도 나의 오늘날까지의 인생이 그분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까. – 엔도 슈사쿠 침묵

 

엔도 슈사쿠의 예수 (“예수의 생애에서)

같은 메시지이지만 세례자 요한의 외침은 위협에 가득 차 있다. 광야의 외침이다. 이 위협 속에는 좋은 결실을 맺지 않는 자에 대하여 불 속에 던져질 것이라는 하느님의 심판, 분노, 벌이 암시되어 있다.

반면 예수의 메시지는 복음이다. 복음이란 문자 그대로 기쁜 소식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세례자 요한의 메시지처럼 듣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위협적인 말은 없으며, 하느님의 분노나 벌 따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요한이 그랬듯이 예수도 회개하라고 선포했지만, 예수의 회개하고라는 메시지는 오히려 망설이지 말고라고 해석해도 될 정도이다.

예수의 메시지와 요한의 메시지를 비교해 보면, 우리는 어두운 숙명을 짊어진 구약의 세계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긴 밤이 밝아, 여명의 빛이 비쳐 오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한 번이라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유다 광야의 풍경과 전혀 다른 갈릴래아 호수 주위의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예수가 이 선언을 한 갈릴래아 호반, 그곳은 나무 하나, 풀 한 포기 없는 사해 근처 불모의 유다 광야와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사람들의 생활은 가난하고 비참하지만 이곳의 풍경은 온화하고 아름답다. 양떼가 풀을 뜯는 완만한 언덕, 호수에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있는 키 큰 유칼리 숲, 그 숲에 바람이 스쳐간다. 들판에는 노란 국화나 빨간 코크리크 꽃이 만발해 있고 호수 저쪽의 수면에는 고기잡이 배가 떠 있다. 삶은 이렇게 애처러운데 자연은 아름답기만 하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마태 11,28)


마태오 복음서에 쓰인 예수의 이 말을 대할 때, 우리는 양 손을 벌리고 호숫가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의 외침은 호수를 스치는 바람결에 실려 가난에 쪼들리는 호숫가의 마을이나 부락에 전해진다. 그 소리를 들은 노인이나 여자, 절름발이, 소경이 어두운 집 안에서 나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영화 침묵에 관한 단상 (의정부 교구 주보 3.26)

촬영 전 부터 교회 안 팎에서 화제가 되었던 거장 마틴 스코르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를 다행히 놓치지 않고 극장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작품성 있고 의미있는 영화를 꾸준히 상영하는 극장이 많지 않은 게 아쉬운 우리나라 영화계의 현실이어서, 영화가 개봉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이제 소수의 극장에서만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이왕 보시려 하셨던 분들께 한번 시간과 수고를 들여 꼭 한번은 극장에서 보시기를 권합니다. 특별히 영화의 뒷 부분은 근래 드물게 영화를 통해 묵상의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데, 크고 어두운 극장에서 그 체험은 일상과는 다른 밀도를 가지게 됩니다.

이 영화는 엔도 슈사쿠의 소설인 침묵을 충실히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이 소설에 대한 일반적인 평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신의 침묵인간의 약함이 순교라는 상황과 만났을 때 드러나는 신앙의 역설과 고뇌를 집요하게 질문하는 문제작. 이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이 신학교에 입학했을 즈음이니 갓 스무 살 정도의 나이였습니다. 그 후로 긴 세월의 간격을 두고 몇 번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사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고 또 나름 그 작품세계를 이해하려 노력한 시기들이 있었고, 이제는 이 소설이 그 처절한 박해와 순교의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끝없는 어머니와 같은조건없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엔도 슈사쿠가 다른 책에서 썼듯이 하느님은 논리로 증명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손길로서 체험하게 되는 분이라는 신앙의 원체험이 이 소설의 기저에 흐르는 정신이라 생각합니다. 엔도 슈사쿠는 후에 소설 침묵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신의 침묵에 대한 작품이라 평하는 것에 당혹스러웠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는 자신의 의도는 신은 침묵이 아니라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그리는 것이며, ‘침묵이라는 제목은 침묵의 소리를 함축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작가 역시 각고의 시간 속에서 이런 통찰을 얻었을 것이고, 독자 역시 그런 수고를 건너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감독 마틴 스코르세지가 이 소설을 처음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아 영화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난 후 실제로 그 바람을 이루게 되는데 까지 수 십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세월동안 아마 그는 이 작품의 가장 깊은 곳에서 빛나는 것이 자비와 구원이라는 것을 발견하였고, ‘침묵은 사실은 침묵의 소리라는 신앙의 깊은 신비를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극적이고 처절한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났을 때 관객은 깊은 위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영화를 보며 저에게 가장 깊은 감명을 준 것은, 영화가 끝나고, 영상은 사라지고 까만 화면 위로 글자들이 올라가는 제법 긴 시간동안 끊임없이 제 귀를 울리고 마음을 어루만지던 잔잔한 바다 물결 소리 였습니다. 그 소리는 우리를 두렵게 하고 절망하게 하는 신의 침묵이 아니라, 소리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다가오시는  ‘침묵 속의 하느님을 상징하는 것 같았습니다.

 

주제에 대한 묵상과 성찰을 위해

 ( 2014년 성주간 매일미사묵상에서)

1. 성주간이 벌써 눈 앞에 와 있구나 생각하며 오늘 독서와 복음을 듣습니다. 도처에서 달려드는 고발자와 박해자에게 쫓기는 예언자 예레미아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향해 신성모독이라 외치며 돌을 던지려는 이들의 적개심을 대하며 차오르는 긴장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저 멀리서부터 나에게로 무섭게 다가서는 십자가의 그림자를 바라보게 됩니다. 김애란 한 소설의 시작 부분에 이런 문장이 스쳐가듯 있던 것을 기억합니다. ”배신이라 말할 때, 지는 해를 따라 길어지는 십자가의 그림자를 상상하는 것.” 가끔은 왜 이리도 십자가의 그림자 조차도 보기 싫었던지 그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예언자의 수난과 예수님의 고통과 사람들의 폭력과 적개심을 감당하기 어려워서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내 안에 있는 그분을 배신하는 약한 모습과 그걸 알기에 슬퍼지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그림자를 보면서 떠올릴 수 밖에 없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갖가지 아픔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십자가를 대하며 느끼는 나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복잡한 심경을 일본 작가 엔도 슈샤쿠의 글을 만나면서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입니다.  

나가사키의 바다가 굽어 보이는 언덕에 그의 그 유명한 작품 침묵의 한 구절을 새긴 침묵의 비가 있습니다.인간이 이토록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도 푸르릅니다.”   이 작가의 고백을 거듭해서 되뇌면서 먹먹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떠올립니다. 그는 긴 시간이 지나서 자신의 소설 깊은 강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믿을 수 있는 건, 저 마다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아픔을 짊어지고 깊은 강에서 기도하는 이 광경입니다. 그 사람들을 보듬으며 강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강. 인간의 깊은 강의 슬픔. 그 안에 저도 섞여 있습니다.”

이제 나의 약함과 인간의 약함, 나의 슬픔과 인간의 슬픔, 나의 악함과 인간의 악함, 이 모든 가련하고 비참한 현실을 담고 있는 십자가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성주간을 기다립니다. 그 드리워진 그림자를 이제는 피해 도망치지 않고 그 밑으로 곧바로 들어가 십자가를 바라보리라 다짐해봅니다.  

 

4. 요한 복음은 유다가 주님을 팔아넘기려 나가는 뒷 모습을 보여주며 때는 밤이었다 라고 말합니다. 밤이 너무 깊어져서 낮이 있었음을 기억하기 조차 어려울 때, 빛이 다시 비추리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 마저 포기하려 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성삼일 파스카의 신비를 절실하게 체험하게 되리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유다를 둘러싼 밤은 그의 마음의 밤이기도 했습니다. 희망을 생각할 수 없게 하는 깜깜한 절망의 밤, 두려움과 위협과 폭력과 악의가 주인된 밤에 완전히 자신을 넘긴 사람의 마음은 그 자체로 그러한 밤이 되어버립니다. 유다의 불행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완전히 닫혀진 밤 속으로 전적으로 몸을 던지는 상황, 그래서 예수님 마저 그를 애처롭게 여기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는 그 완전한 절망의 마음이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는 성서 말씀의 의미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며 밤과 침묵을 대면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밤과 침묵이 우리를 절망으로 이끌도록부르짖음은 답 없는 메아리를 만날 뿐이고 희망은 영원히 차가운 어둠 속에 묻힌 채로 질식되어 끝나는 것이 우리 삶의 숙명이라 속삭이는 것이 악마의 목소리입니다. 현대의 가장 심오한 영화를 창조하였던 스웨덴의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은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겨울빛’, ‘침묵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영화들에서 신의 침묵, 인간의 절망이라는 인간이 대면하는 근원적인 고통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가톨릭 작가 조르쥬 베르나노스는 자신의 대작 사탄의 태양 아래서에서 죄의 무게가 모든 빛을 차단하고 자기 자신을 최종적으로 포기하는 유혹으로 이끄는 절망을 보여줍니다이러한 위대한 예술가들이 예감하였듯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밤과 침묵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파스카의 신비로 걸어가는 사람은 밤에서 빛과 생명을 발견합니다.

파스카는 죽음과 절망이 모든 힘을 잃게 하는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파스카의 길은 우리가 처한 밤과 침묵을 통해 나 있습니다. 그 밤은 결코 빛이 사라진 곳이 아니라 빛을 기다리는 희망의 밤입니다. 침묵은 영원히 답없는 공허와 절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겉꾸민 해답이 아닌 내면 깊은 곳에서 우리를 치유하시는 사랑의 주님을 소리없이 체험하는 자리입니다. 빛을 향한 희망을 가지고 이렇게 우리는 밤에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5. 성 목요일의 독서에서 성체성사 제정에 대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전승을 주의 깊게 들으며 우리는 우리가 믿는 구원의 신비가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부께 건너가실 때를 아시고 제자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그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장면에 이르러 깊은 감동을 받고 오래 멈추어 섭니다. 구원의 신비가 섬김과 아낌없는 희생에 있음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그리고 예수님이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자비가 얼마나 크신지, 우리가 얼마나 큰 자비를 입은 이들인지를 눈물겹게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나의 주님이 세상의 어둠에 넘겨지는 이 밤의 만찬 상에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자비 그 자체이신 주님 앞에서 우리는 우리와 세상의 죄를 슬퍼하며 자비를 청합니다

다윗이 죄를 진 후 읊는 참회 시편 51장은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라고 노래합니다. 이 시편에 르네상스 시대의 작곡가 알레그리가 노래를 붙인 곡 미제레레 (Miserere ) ”는 주님의 희생제사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구원의 은총을 더없이 신비하고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원래는 교회전례에서 성 금요일 아침 기도에 노래하게 되는 이 곡을 이 밤에 들으며 나의 주님이 넘겨지는 것을 보기만 해야 하는 비통함과 그분의 사랑과 자비가 신비로이 내 안에서 차오르며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것을 함께 느낍니다. 나의 주님이 떠나간 빈 자리에 오로지 자비가 남아서 나를 기다립니다.

 

읽어 볼 책과 글들

엔도 슈사쿠의 작품 중에서:

소설

침묵 (김윤성 옮김, 바오로딸, 2009), 사해부근에서 (이석봉 옮김, 바오로 딸, 2011), 깊은 강 (유숙자, 민음사, 2007)

예수의 생애 (이평아 옮김, 가톨릭 출판사, 2003), 그리스도의 탄생 (이평아 옮김, 가톨릭 출판사)

엔도 슈사쿠 단편 선집 (이평춘 옮김, 어문학사, 2015)

바다와 독약 (박유미 옮김, 창비, 2014), 신의 아이 (백색인), 신들의 아이 (황색인) (이평춘 옮김, 어문학사 2010), 내가 버린 여자 (이평춘 옮김, 어문학사, 2007)


에세이

침묵의 소리 (김승철 옮김, 동연, 2016)

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맹영선 옮김, 성바오로, 2017)

인생에 화를 내봤자 (장은주 옮김, 위즈덤 하우스, 2015)

남편 엔도 슈사쿠를 말하다 (엔도 준코, 신영언 옮김, 성바오로, 2004)

 

엔도 슈사쿠에 대한 연구

김승철, 엔도 슈사쿠와 건너는 깊은 강- 흔적과 아픔의 문학 ( 24)

(기독교 사상, 2015-17, 2월호/ 특히, 10-13, 24)

박문성, 엔도 슈사쿠의 작품세계

(사목연구 (가톨릭대학 사목연구소), 2012년 겨울 ( 30))

 

감독과 영화에 대하여

마틴 스코르세지 인터뷰 ( 예수회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  

치빌타 카톨리카“ (20171 10일자 인터넷, 한국판 http://laciviltacattolica.kr)

마틴 스코르세지 인터뷰 (예수회 제임스 마틴 신부) – Creating ‚Silence’

(America MagazineDec.19-26, 2016

/ http://www.americamagazine.org/faith/2016/12/10/full-transcript-martin-scorsese-discusses-faith-and-his-film-silence)

리처드 시켈, 마틴 스코세이지와의 대화 (이태선 옮김, 비즈앤비즈, 2012)

데이비드 톰슨 외, 마틴 스콜세지: 영화로서의 삶 - 비열한 거리 (임재철 옮김,한나래 출판사, 1994)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영화 '터치'- 생명을 살아가는 작은 숨결들

흔들리는 인간 마음을 터치하는 '그 손길'

터치(Touch, 2012) ,감독 : 민병훈 ,상영시간 : 100분 ,장르 : 드라마 ,등급 : 18세 이상 



몇 년째 자살률이 부동의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 2011년 서울시에서 자살한 사람은 2722명으로, 하루 평균 7.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3시간마다 1명이 자살한 셈이다. 너무 빈번해 이제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면 보도도 되지 않는다. 민병훈(바오로)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그날그날 세상을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그저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의 낮고 작은 숨결이 모여 이룬 것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 신의 영역이라면, 그 생명을 지키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이런 메시지를 살리려고 애쓴, 소시민의 이야기 같은 영화 '터치' 속으로 들어가 보자.


 줄거리

 국가대표 사격 선수를 지냈지만 점차 알코올 중독자가 된 후 모든 걸 잃고 중학교 사격코치를 하는 남편 동식(유준상)과 간병인 일을 하며 쪼들리는 삶이지만 금실 좋은 부부로 살아가는 아내 수원(김지영)의 이야기다. 수원은 병원 몰래 돈을 받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환자들을 무연고자로 속여 요양원에 입원시키기도 한다. 어느날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있는 동식은 코치 재계약 문제로 이사장이 주는 술을 어쩔 수 없이 마시고 음주 운전을 하다가 자신이 가르치던 사격부 학생 채빈을 치게 되자 당황한 나머지 뺑소니를 쳤다가 경찰에게 잡힌다. 동식의 교통사고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원은 자신이 돌보는 노인환자의 끈질긴 성관계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하지만 이 사실이 발각돼 수원은 결국 병원에서 퇴출당한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수원은 딸 주미가 없어졌음을 알게 되고 수소문 끝에 낯선 집에서 주미를 발견하는데….


▲ 사슴을 죽인 동식이 두려움과 죄책감에 오열한다.



▲ 무릎 끓은 동식을 창 밖으로 보며 수원은 따스한 미소를 보낸다.


▲ 가톨릭노인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수원이 깨끗이 치유된 여인의 손을 잡아준다.


민초들의 삶

 영화의 첫 장면은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 만신창이가 돼 흔들리는 들풀로 시작한다. 세파에 시달리며 가정을 지키는 소시민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장례미사를 드리는 성당 안 풍경이다. 검정색 포에 덮인 관, 아빠 품에 안긴 어린이의 해맑은 미소가 스쳐 가지만 수원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사제는 강론을 계속한다. "…하지만 사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나서야 합니다.… 영혼 속 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의 눈은 좀 더 밝아질 것입니다. 영혼 속 신과 연결된 끈을 놓지 않는다면…." 강론은 영화의 흐름을 암시한다.

 장례미사 도중 돌아가신 할머니의 아들이 성당 밖으로 나와 고통스러워한다. 수원이 말을 건넨다. "어머님은 좋은 데로 가셨을 거예요." 그러나 아들의 질문은 날이 서 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그때 뭔가 수원의 양심을 건드린다. 사랑과 용기의 영이 그녀를 터치한 것이다.

 수원은 몰려오는 피곤을 감수하며 간병 일에 힘을 소진한다. 먹고 살기 위해 불법 의료행위까지 하며 늘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래서 수원은 자신에게 불신의 눈길을 던지는 사제나 수녀의 눈길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그녀의 긴장된 삶을 거친 숨소리와 함께 핸드 헬드 카메라로 클로즈업하며 따라가는데, 이들 장면 속에는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거나 이웃을 괴롭혀 상처를 주지 못하는 수원의 착한 심성과 강인함의 양면성을 겹쳐서 보여준다. 그녀는 간신히 남편을 출옥시킨 뒤 노인 복지센터를 그만둔다.

 동식이 사격코치를 하던 부유한 집안 여학생 채빈은 자신의 속옷을 훔쳐 달아나는 남학생(장정원)을 사격용 총으로 쏜다. 정원이는 폐병에 따른 합병증으로 다리가 썩어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달동네 학생이다. 동식은 정원이를 쏜 채빈의 뺨을 때리며 야단친다. "빈총이라도 사람에겐 겨누지 않는다." 

 수원의 노력으로 출옥한 동식은 사냥 포수로 돈벌이를 한다. 그러던 어느날 덫에 걸려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어린 사슴을 보며 생명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동식은 두려움과 신비로움의 체험을 사슴이라는 상징을 통해 하느님 영에 터치된다. 인간의 쓰러짐은 인간적인 것이고, 다시 일어섬은 신적인 것이다.

 

 절망의 끝에서 찾아온 희망

 주미의 행방불명을 알게 된 수원은 절규하며 딸을 찾아 나선다. 그때 딸의 생일선물 인형을 매달고 가는 남학생을 미행한다. 학생이 다다른 가난한 달동네 정원이의 집 벽장에서 주미를 발견한 수원은 두려움과 분노 속에 도망치듯 딸을 끌고 나온다. 그때 방바닥에서 방치된 한 여인을 본다. 더러운 오물 냄새 속에 다리가 썩어가는 여인의 꺼져가는 신음 소리가 수원의 양심을 건드린다. 그때 성당 마당에서 본 사슴이 떠오른다. 수원은 자신의 마음을 터치하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낀다. 그래서 다시 그 여인을 찾아간다. 더럽고 악취가 진동하는 어두운 방 창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어오는 햇살은 수원과 그녀를 비춘다. 어쩌면 우리 영혼 속에 깃들고 싶어 하는 하느님 빛의 초대인지도 모른다.

 

 차가운 현실

 죽음이 임박한 듯한 여인을 위해 수원은 주민센터도 찾아가고 병원 응급실도 찾아가지만 관료적인 그들의 태도는 답답하기만 하다. 수원은 소리친다. "그럼, 돈 없으면 치료도 받지 말라는 건가요?" 이 말은 사회에 던지는 절규다. 마지막으로 가톨릭노인복지센터에 전화 다이얼을 돌린다. 그러나 그동안 수원이 저지른 거짓에 속아온 사제는 그 여인의 입원을 거절한다. 수원은 가슴을 에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직접 여인에게 안락사 주사를 놓아주려 하지만 두려움이 엄습한다. 절망의 순간에 양심을 건드리는 하느님! 수원은 자신이 생명도, 죽음도 책임질 수 없는 존재임을 절감한다. 이때 죽음에 임박한 여인은 떨리는 손으로 수원의 볼을 조용히 건드린다. 그를 위해 애쓰는 수원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터치다. 그때 요양원 구급차가 도착한다.

 요양원에 도착한 여인은 세례를 상징하는 물속에 잠긴다. 그동안 몸과 마음의 상처가 깨끗이 씻긴 것이다. 수원은 그의 손을 잡아준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여인은 아들 정원을 보살펴줄 것을 수원에게 부탁한다. 그의 고달픈 삶을 위로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한다. 은은한 성가를 뒤로한 채 수원은 지친 몸을 이끌고 밤차를 타고 집에 돌아온다.

 한편 동식은 채빈의 사격 성공에 환성을 지르며 또 술을 마신다. 취중에 교통사고로 쓰러진 아이를 총으로 쏜 동식은 갓길에 쓰러진다. 아침 햇살이 동식이의 어깨를 환히 비춘다. 잠을 깬 동식은 몽롱한 눈으로 자동차 문을 여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신에게 생명의 경외감을 안겨준 사슴이다. 햇살은 동식의 눈과 사슴의 눈을 강하게 비춘다. 동식은 생명을 죽인 죄책감에 오열한다. 지친 몸으로 돌아온 수원을 밝고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비추고 수원 손에 들려진 생일 선물 인형이 클로즈업된다. 그때 원장신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잘 들어갔니? 방금 자매님이 편안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안나야, 고생했다. 정말 수고했다. 편히 쉬거라." 수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불편함을 주는 영화 

 러시아에서 영화 공부를 한 민병훈 감독의 작품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연출기법처럼 담백하고 함축적이다. 이 영화는 관객이 능동적으로 사유하게 하고, 곱씹으면서 깊은 의미를 끌어내게 한다. 영화 '터치'는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는 영화다. 직면하고 싶지 않은 어둔 현실의 갖가지 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진지한 영화이기에 재미로 감상하기에는 무겁고 감상하기 힘든 영화다. 이 영화는 각자의 현실 속에서 터치하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게 한다. 성찰적 예술성이 강한 작품이다.


 그룹대화  

 1. 오늘을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사회의 부조리한 문제들은 무엇인가?

 2. 이 영화에서 터치 받은 것은 무엇인가?

 3.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께서 터치한다고 생각하는가?


 성경구절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이복순 수녀 (성바오로딸수도회)


평화신문 <가톨릭 문화 산책>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성당 계단을 내려오다가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네가 왜 사람 때문에 그렇게 절망하느냐?'

그때, 그분이 내 곁에 계시고
그분이 내 모든 것을 알고 계심을 체험했다.

그때의 기쁨환희란!

 

* 다음주 화요일에 계속 *

 

이 사피엔자 수녀 | 그림 주 벨라뎃다 수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그림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 프랑스 선교 1  (1) 2012.06.21
15. 방송 사도직의 역할  (0) 2012.06.19
14. 내 모든 것을 알고 계신 그분  (0) 2012.06.14
13. 꾸중을 듣다  (0) 2012.06.12
12. 사도직  (2) 2012.06.07
11. 첫 서원  (0) 2012.06.05

그림 - 주 벨라뎃다 수녀

사순 제1주간 금요일(3/2) 묵상 주제

"예수님은 여전히 '그분, 하느님'을 부르십니다.
깊은 어둠 가운데에서도, 크나큰 절망 속에서도.
나는 절망 속에서 누구를 부릅니까?"

- 『사순절에 읽는 토빗 이야기』54쪽

 

☞ 사순절 묵상 릴레이 바로가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