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이자 신경인류학자 박한선 박사님이 저희 책 <칠층산>을 읽고 서평을 보내주셨습니다. "정작 필요한 것은 깨끗이 비워내는 것"일 경우가 많다는 말이 마음을 울리네요. 박한선 박사님은 2019.11.13. JTBC 차이나는 클라스 133회 "마음의 진화, 약하니까 인간이다"에 강사로 출연하기도 하셨습니다.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은 단테의 신곡, 연옥편에 나오는 산입니다. 교만과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색욕의 일곱 죄를 모두 정화하는 곳이죠.

연옥의 연(燃)은 불태운다는 뜻이지만, 라틴어로는 purgatorium이라고 합니다. 불로 정화한다는 뜻일텐데, 핵심은 불이 아니라 정화입니다. 의학에서는 설사약을 하제, purgative라고 합니다. 장을 깨끗이 비워낸다는 뜻이죠. 비워야 깨끗해집니다.

칠죄종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진화적 본성입니다. 연옥에서 올라야 하는 일곱 층의 산은 사실 우리의 일곱 본성을 통찰하는 삶의 과정을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숙명으로서의 죄는 어느 누구에게 용서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두운 본성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면서 조금씩 비워내는 것일까요?

토마스 머튼은 트라피스트 수도회 수사입니다. 1948년 자전적 전기를 출판했고, 2009년 정진석 추기경이 번역서를 냈습니다. 제 2차 대전이라는 세계사적 비극 속에서 저자가 겪은 시련과 슬픔, 고민과 갈등, 그리고 깨달음의 과정이 잘 녹아있습니다.

곳곳에 통찰적인 구절이 있습니다만,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다음입니다.

"최상의 것의 부패는 최악이다. corruptio optimi pessima. 무릇 악이란 선의 결핍이다. 곧 응당 있어야 할 선이 없는 것이 악이다. 따라서 최상의 선이 부패된 곳에 최대의 악이 발견되는 것이다."

정신과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은 흔히 무엇인가 좋은 것을 얻어가려고 잔뜩 기대하곤 합니다. 의사의 입을 쳐다보며 묵직한 통찰과 풍성한 지혜를 퍼담기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깨끗이 비워내는 것, 즉 정신의 하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종종 스스로 좋은 것이 가득 차 있다는 사람은, 나쁜 것이 가득 차 있는 사람만큼이나 위험합니다.

2020.0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