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선 장소는 훈춘 장터, 암호는…”
김대건 신부 라틴어 편지 21통, 정진석 추기경이 1997년 번역
탄생 200주년 맞아 재출간… 긴박한 묘사, 첩보 소설 같아
조선일보 2021.04.08 03:00
접선 장소는 훈춘 장터. 식별 표지는 손에 흰 손수건, 허리띠엔 붉은 차(茶) 주머니. 암호는 ‘당신은 예수님 제자요?’
접선(接線) 실패, 재접선, 정보 인수인계, 밀항(密航). 한 편의 첩보 소설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다. 그러나 이는 최초의 한국인 천주교 사제 김대건(1821~1846) 신부가 파리외방전교회 스승 사제와 주교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올해 성(聖)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김 신부의 편지 모음 ‘이 빈 들에 당신의 영광이’(바오로딸)가 재출간됐다. 정진석 추기경이 1997년 청주교구장 시절 번역·출간했던 책을 다시 펴냈다. 정 추기경은 당시 한국교회사연구소장 고(故) 최석우 신부의 권유로 김대건 신부의 라틴어 편지 스물한 통을 완역했다. 편지가 쓰여진 시기는 1842년 2월 28일부터 1846년 8월 말까지 4년여. 사제로 서품(1845년 8월)되기 이전, 박해를 각오하고 조선으로 잠입하기 위해 애쓰던 시절에 쓴 편지가 대부분이다. 마지막 편지 세 통은 감옥에서 썼다.
편지에서 드러난 김대건 신부는 선교 열정이 넘치면서도 대담하고 임기응변에도 능한 모습이다. 국경에선 관리의 눈을 피해 소[牛] 뒤에 숨어서 통과하기도 하고, 검문에 걸리면 짐짓 호통을 쳐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신앙 때문에 부친은 순교하고 모친은 쫓겨 다닌다는 개인적 슬픔은 간략히 정리해 보고한다. 반면 중국과 만주, 조선의 정세에 대해선 상세히 적었다. 천주교에 대한 조선 내 벽파(僻派)·시파(時派)의 견해차, 당시 교인이 1만명에 이르렀다는 점 등이다. 자신보다 뒤에 올 선교사들을 위한 배려다. ‘성경, 매일 묵상 책, 십자고상(十字苦像), 묵주’ 등을 보내달라 요청하고, 프랑스 신부들에겐 ‘병풍, 놋요강, 조선빗, 붓 네 자루, 돗자리’를 보낸 것도 인상적이다.
순교를 앞두고 감옥에서 신자들에게 쓴 마지막 편지는 이렇게 끝난다. “천주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 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 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서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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