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 함께 걸은, 작은 것의 신비로 가득한 길
“나의 약함을 알기에 약함을 자랑할 줄 아는 작은 꽃, 소화 데레사의 손을 잡기로 했다.”(17쪽)
이 책은 순례의 여정을 소화 데레사의 영성, 곧 작은 길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로 묵상하고 성찰한 독특한 산티아고 순례기이다. 저자는 건강 등 여러 모로 자신의 한계를 많이 체험하며 살아가기에, 또 가르멜 재속회원으로서 소화 데레사를 비롯한 가르멜의 영성을 추구하기에 산티아고 순례에 앞서 프랑스 리지외를 먼저 들렀다고 말한다. 이 책은 남편과 함께 건강 등의 문제로 많은 구간을 걷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현실 앞에서도 하느님의 이끄심을 알아차린 기적 같은 이야기, 오랫동안 부부가 잃어버렸던 작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발견한 치유의 체험, 하느님 안에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고유함을 받아들이게 된 행복, 순례지에서 만난 작고 소소한 일들과 다양한 만남에서 발견한 깨달음과 감사를 담고 있어 영성적인 깨우침과 감동을 주며 순례에 나설 용기도 준다.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작은 길
필자를 통해 순례는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사람들이 발견할 수 있는 은총과 기적이 넘쳐나는 곳임을 배우게 된다. 여러 가지 한계로 선뜻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빛과 용기를 건네준다.
“소화 데레사 성녀를 통해 우리의 작음이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약할수록 하느님의 강함에 의지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받아들이며 어린이가 되었던 것이다. 성녀께서는 이렇듯 관계의 중재자가 되어 멀게만 느껴지던 하느님과의 거리를 좁혀준 분이다. 생각지도 못한 부부동반의 순례, 성녀의 기도와 루이와 젤리 부부의 도우심이었다.”(29쪽)
“청사과 1개의 욕심 때문에 어깨가 짓눌린 체험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100퍼센트에 집착하며 ‘조금 더’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요셉은 약함을 인정하며 포기했기에, ‘조금 더’ 쉴 수 있었다. 60퍼센트에 만족하며 작은 행복을 누리다 보니, 그 빈틈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놀랍도록 흘러 들어왔다. ‘지금 꼭 해야 한다. 100퍼센트를 다 채워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으니 맘이 가벼워졌다.”(129쪽)
“내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작은 길이다. 800킬로미터라는 목표에 매달리지 않고 1초에 한 걸음, 1분에 60걸음 이렇게 왔다. 또 이 길은 작은 것의 신비로 가득했다.”(280-281쪽)
하느님 안에서 나를 용서하고 자유로운 나 찾기
순례는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이며 자기 자신을 만나 용서하고 새롭게 일어서는 회심의 길임을 잘 보여준다. 필자는 자신의 한계를 작은 사건을 통해 그 실마리를 잡고 성찰 안에서 자기를 용서하고 하느님 안에서 자유로운, 참된 나를 되찾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우리를 초대한다.
“내게 있어 치유가 예수님이라면 이로써 주어지는 선물은 이탈과 자유다. 새벽의 황당한 사건, 내 손에 쥔 리모컨이 바로 그것이다. 남을 내 맘대로 조종하며 구원의 주도권이 내게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교만의 뿌리다. 어릴 적, 나를 향한 아빠의 리모컨이 나를 나답게 살지 못하게 하며 자유를 구속했던 상처의 흔적이었다.”(61쪽)
“평원 꼭대기엔 용서의 언덕, 페르돈 고개(자비의 고개)가 있었다. 누굴 용서해야 할까? 누구에게 용서받아야 할까? 먼저 나를 용서했다. 살면서 너무 많은 사람을 용서하려 애썼다. 왜 용서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거짓으로 용서했던 나, 하느님께 인정받고, 착한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은 욕망이 약한 나를 더 아프게 한 것이다. 내가 나를 찌른 가시들이 철조망에 매달려 있었다. 내가 나를 찌를 때, 내 안에 계신 예수님도 찔리셨을 테니 함께 용서를 청했다.”(98-99쪽)
“나의 관심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남의 길이 아닌 나다운 내 길, 그 길을 예수님과 함께 걸으며 나를 찾아가는 것, 그게 나의 산티아고다.”(220쪽)
부부관계의 치유와 성장
서로 소통이 되지 않을 때 사랑하지만 사랑받는다고 느끼지 못하는 관계가 된다. 가장 가까운 한 몸이면서 먼 타인처럼 되기 쉬운 부부의 관계를 어떻게 치유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 이 책은 잘 보여준다.
“우리 부부는 오랫동안 다름에서 오는 십자가를 겪었다. 그 어떤 타인보다 요셉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싶다고 기도한 적이 있었다.”(107쪽)
“요셉, 당신은 속도와 경쟁이 문제였다면, 나는 변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당신을 힘들게 한 것 같아. 여기 오기 전에 꼼꼼히 준비하면서 알뜰하게 쓰면 되겠구나 했는데 알레르기로 병원 가고, 택시비며 호텔비 등 변수가 막 생기니까 불안했어. 그런 내 맘도 모르고 사람들 있는 데서 핀잔을 주니까 죽겠더라고.” 요셉이 내 말에 공감했다.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263쪽)
“나는 워낙 생존과 안전에 대한 불안이 커. 그래서 예상치 않은 일이 생기면 두려운 거야. 치유가 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이번에 큰 훈련이 됐어.” 이런 대화, 부부에겐 큰 변화였다. 요셉이 속을 꺼내 보이며 ‘나 전달법(I Message)’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당신이 이렇게 속마음을 표현해 주니까 너무 고맙다.”(264쪽)
일상의 소소한 사건과 만남에서 깨달음과 감사를 키우는 비법
이 책엔 순례를 하며 만난 소소한 사건과 만남을 통해서도 큰 깨달음과 감사로 가득 찬 행복을 가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의 일상에 건네는 행복의 비법이다.
“오늘은 소화 데레사 성녀 대축일, 모자가 안 보였다. 식당에 가 봐도 없다. 요셉에게 부탁하고 나는 길을 나섰다. 모자야 또 사면 된다. 다른 건 다 잃어도 하느님만, … 또 나만 잃지 않으면 된다. 핸드폰만 잃어버려도 호들갑을 떨지만 정작 나 자신과 하느님을 잃었을 땐 잃은 것조차 모른다.”(104쪽)
“호두까기, 나를 깨고 내 안의 알찬 속을 만나는 길, 요셉과 내가 걸어서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는 길, 오늘의 만나는 몸에 좋은 견과류 호두다. 보통 나를 깨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깨고 안으로 들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는 것이 먼저다.”(151-152쪽)
“요셉, 이게 말이 돼요? 100유로 지폐가 있음 뭐해. 지금 당장 소용이 없는걸. 5센트짜리 동전이 결코 작은 게 아니라니까!’ 그 말을 듣던 요셉이 중얼거렸다, ‘그러게, 큰일 났네.’ 작은 것 땜에 큰 일이 생긴 것이다. 다행히 주인이 나와서 동전을 바꿔주었다. 작다고 가치가 없거나 소홀히 해도 되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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