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란, 『나도 예쁘고 너도 예쁘다, 바오로딸, 2012

 

두 번씩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모습

나의 어머니는 건강하게 사시다가 96세에 돌아가셨는데 팔순 때까지 성당에서 하는 노인대학을 3번이나 다니시고, 그러니까 사각모를 세 번이나 쓰셨다.

“노인대학도 졸업했으니 이젠 뭘 하나?” 하고 있는데 대녀님들이 와서는 집에서 심심하게 뭐하느냐면서 또 같이 노인대학 다니자고 해서 다시 두 번을 더 공부하신 것이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나의 큰 오라버니 가족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서 기반을 잡고서 노부모님을 모시고 갔는데, 그때 어머니 말씀이 “나 이제 대학 졸업하고 유학 간다”고 노인 친구 분들께 장난스럽게 인사하셨다고 했다.

아르헨티나 넓고 큰 땅, 그리고 선량한 그곳 주민들과도 이웃하면서 친하게 지내시다가 다시 한국에 오셔서 두 작은 아들네 집을 공평하게 오가며 “우리 며느리들은 다 착해!” 하면서 칭찬하시고 딸처럼 여기셨다. 90이 넘으시고 거동이 불편해지셨지만 그것도 다 순히 받아들이셨다.

우리 어머니들 세대는 인생이 그저 운명이고 숙명이어서 그 모든 아픔과 슬픔, 고통을 초연히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졌고, 이제 그들은 또다시 신세대 젊은이들의 당당한 자기주장을 받아주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섭섭함도 노여움도 내색이 없으려니와 기쁜 내색도 그리 없는 것을 보면 어쩌면 달관의 경지에 들어서신 것일까?

“다 그런 것이니라, 그러려니 해야 하느니라.” 보석 같은 지혜가 빛나 보인다. 웬만한 동요에는 끄떡없고 풍파 뒤에도 곧바로 평온을 되찾는 바다 같은 마음의 어머니, 한 달 정도 노환을 겪으시다가 촛불 사그라지듯 평화로이 하느님 품에 안기셨다. 비교적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셨고 어떤 여한이 없는데도 마음속에 아련한 아픔 같은 그리움에, 길에서도 어르신들을 만나면 꼭 두 번씩 바라보게 된다.

성바오로딸수도회의 윤영란(일마) 수녀가 오래전부터 [새로 나는 성경공부]라는 교재로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어르신들을 위한 성경교육을 해왔는데, 그동안 쌓인 체험담을 엮은 책이 [나도 예쁘고 너도 예쁘다]라는 제목으로 새로 나왔다. 하느님의 말씀이 어르신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고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를 잘 보여준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책가방을 들고 성경공부 하러 오시는 일이 너무나 즐겁고, 또 남학생, 여학생으로 불리기를 좋아한다는 것, 며느리한테 전화걸기 숙제를 안 할 수 없어 억지로 한 전화가 몇 년간 보지 않고 지내던 고부간의 갈등을 화해로 바꾸었다는 이야기, 또 성경 그림 색칠하기 시간에 십자가 아래에 서 있는 성모님을 온통 검정색으로 칠한 할머니는 수녀에게 아이 낳아봤냐고 하시면서 “수녀, 생각해 봐, 자식이 죽으면 부모 가슴은 다 타들어 가서 새까만 재가 되고 말지, 나는 알아, 성모님의 아픔을….” 이렇게 어르신들은 삶의 연륜이 그대로 묵상과 관상으로 곧장 이어지는 것이 놀랍다.

말씀공부를 통해서 변화되는 단순하고 순진한 모습들이 감동과 웃음을 선사하는 이 책을 어르신뿐 아니라 함께 사는 가족과 봉사자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 박문희 고로나 수녀

* 이 글은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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