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엔 반 투안 지음, 김형민·이무하·정현식 옮김, 『지금 이 순간을 살며』, 바오로딸, 2000

 

예수님,
성모승천대축일인 어제 오후에 저는 체포되었습니다.
사이공에서 나트랑까지 450킬로미터의 거리를 경찰관 두 사람의 호송을 받으며 밤중에 여행하는 동안 저는 죄수생활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슬픔과 공포, 긴장 등의 수많은 착잡한 느낌이 제 마음을 스쳐 지나갔고 저의 백성들로부터 멀리 격리된 제 가슴은 갈가리 찢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치는 쓰라림의 바다 한가운데서 저는 지난날의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제가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동전 한 닢조차 없는 제게는 다만 묵주가 있고 예수님과 마리아께서 동반하실 뿐입니다.
밤의 어둠 속에서 그리고 걱정과 악몽의 바다 한가운데서 저는 조금씩 다시 깨어납니다. 저는 진실을 직면해야 합니다.
예수님, 저는 기다리지만 않고 현재의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면서 살아보겠습니다.
한 개의 직선은 무수한 작은 점들이 모여서 이루어집니다.
저의 삶도 수많은 초와 분들로 이루어집니다.
저는 하나하나의 점을 온전하게 정리하겠습니다.
그리하면 곧은 선이 그어질 것입니다.
저는 매순간을 온전하게 살겠습니다.
그리하면 저의 삶은 거룩해질 것입니다.
희망의 삶은 희망의 짧은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975년 8월 16일 성모승천대축일 다음날에
케이봉의 강제 연금된 집에서

(본문 21-24쪽에서 발췌)


***


베트남 전쟁이 끝나자 호치민시(구 사이공) 부교구장이셨던 구엔 반 투안 대주교님은 반혁명죄로 투옥되어 13년 반 동안 독방에서 지내셨습니다.

경찰에게 체포되어 호송되면서 그분은 다짐합니다. ‘나는 기다리지 않으리라. 현재의 순간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면서 살아보리라.’

먼 미래를 기다리면서 현재의 순간을 무력하게 놓쳐버리기보다

대주교님처럼 지금 흘러가는 이 순간의 나의 생각, 말, 느낌, 눈빛, 행동 하나하나에 사랑을 담아보렵니다.

결국 그 순간순간이 나의 미래가 될 테니까요.

 

- 유 글라라 수녀

* 유 글라라 수녀님 블로그 '바람 좋은 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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