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휘 님의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수녀원 공동 성체조배 시간이었다. 기타 소리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힘 있는
목소리와 함께 가슴을 쿵쿵 치며 울려 퍼졌다. 공동기도의 주제는 ‘공동체’에 대한 것이었는데 노래 가사와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누군가 보지 않아도 / 나는 이 길을 걸어가지요. 혼자 혼자라고 느껴질 땐 / 앞선 발자욱 보며 걷지요.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쉬어가도 / 서로 마주보며 웃음 질 수 있다면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 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
마음의 마음의 총을 내려요 / 그 자리에 꽃씨를 심어보아요 손 내밀어 어깨를 보듬어 봐요 / 우리는 한 하늘 아래 살지요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쉬어 가도 / 서로 마주보며 웃음 질 수 있다면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 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 ―손병휘, ‘나란히 가지 않아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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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정아 수녀 ⓒ바오로딸 |
수도원에서 ‘공동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더불어 살며 그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수용하며
동글동글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모습에 거부감이 들고, 싫어하거나 미워지는 것은 수도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끊임없이 ‘마음의 총’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꽃씨를
심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나중에 보니 노랫말을 쓰고 곡을 만든 손병휘 님은 2002년 임진각에서 열린 통일 관련 행사를 가면서 ‘나란히
가지 않아도 1’을 만들었고, 이라크 전쟁 소식을 들은 후 가사를 약간 수정하여 ‘나란히 가지 않아도 2’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알고 나서 노래를 다시 들어보니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로 새롭게 다가왔다.
노랫말이 주는 의미가 참 컸다.
오는 4월 27일 시성되시는 교황 요한 23세는 ‘평화’를 중요한 사목 방향으로 삼았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무고한
유대인들을 구하고, 프랑스에서는 전쟁포로 석방을 위해 힘썼으며, 미국과 소련의 긴장감 도는 세계 정세 안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 또한 갈라져 있는 교회의 현실을 보며 가장 중요한 것이 평화와 화해임을 깨닫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어 교회의 쇄신과 일치를 위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마지막에는 회칙 <지상의 평화>를
통해 모든 이들에게 평화의 길을 제시하였다. 교황 요한 23세가 제시한 이 길은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의 길이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사순 시기를 지내면서 우리는 예수님이 수난과 고통을 받으신 이유를 기억하게 된다. 예수님은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우리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보여주셨고 인류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셨다. 모두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이었다. 이 길은 예수님께도 쉬운 길이 아니었다. 반대 받고 배척 받았으며 그분의 생각을 제자들마저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른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 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내가 남긴 발자국을 보며 따라오면 된다’고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다.
혼자라고 느껴지고, 넘어지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나와 의견이 다르고, 함께 갈 수 없다 생각된다 해도
결국 한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함께 걸어가는 존재들이다. 앞서 걸으신 예수님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있기에 서로 마주볼 수 있고, 웃음 지을 수 있으며,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노래를 들으며 나와 너의 평화를 위해,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걸어가고 있음을 다시 기억해보자.
황난영 수녀 (율리아나) 성바오로딸수도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0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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