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고향 느끼며 말라위 고아들 돌봐”

발행일 : [문화일보 2014.10.23]

자서전 ‘…아프리카 사랑’ 펴낸 김청자

김청자(70) 씨는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선 메조소프라노로 잘 알려져 있다.(문화일보 2010년 3월 17일자 ‘사랑·희망 전령사 릴레이 인터뷰’ 참조)

지난 1963년 외국 신부의 도움으로 독일 간호조무사로 가게 된 그는 사실 ‘음악 공부’가 꿈이었다. 돌보던 환자를 통해 현지에서 음악계 은인을 만난 것은 기적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독일에 간 지 다섯 달 만에 레오폴트 모차르트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공부하게 됐고, 1970년 스위스 베른오페라단과 전속계약을 맺으면서 한국인 최초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김 씨는 이후 독일 카를스루 국립오페라단 단원 생활을 비롯해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16년간 이름을 날렸고 뒤셀도르프 오페라단의 프리마돈나로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중앙대와 연세대를 거쳐 1994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런 그가 2010년 예순여섯의 나이에 돌연 아프리카로 떠났다. 김 씨가 최근 펴낸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바오로딸출판사)은 어린 시절부터 최근 아프리카에서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생을 담은 자서전이다. 특히 책은 그가 아프리카로 떠난 이유와 그곳에서 음악학원을 설립해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제2의 인생’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앞서 김 씨는 2005년 안식년을 맞아 세계 곳곳을 여행하던 중 아프리카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프리카 사람들이 춤과 노래를 잊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마지막 ‘내 영혼의 고향’은 이곳”이라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평생 성악가로서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며 “이 사랑을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이런 연유로 김 씨는 정년퇴임을 하자마자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후원회’를 만들었고 홀로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현재는 말라위에서 고아들을 돌보면서 음악학원을 통해 한국 유학의 길을 열어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지역의 추장은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여인’이란 뜻의 ‘루세케로’란 이름을 지어줬다.

김 씨는 책 출판을 기념해 음악학원의 제자들과 함께 한국에 와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22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에서 열리는 ‘희망을 노래하라’다. 제자들의 공연단 이름 또한 루수빌로(희망) 밴드로, 현지 음악콩쿠르에서 1등을 할 만큼 실력을 갖췄다. 김 씨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유행 때문에 관객이 별로 없을까봐 걱정된다”며 “많은 분들이 오셔서 아프리카의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102301032530109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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