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산제이 릴라 반살리|주연 라니 무케르지, 아미타브 밧찬|드라마인도|개봉 2009


영화 <블랙>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개봉된 인도 영화로 동양적인 감성과 그리스도교 정신이 매우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헬렌 켈러처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한 소녀의 치열한 성장기를 그린 이 영화는 하나의 장애극복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원초적인 어둠과 빛에 대한 신비로운 가르침을 들려준다.

시청각이 마비된 채 태어난 미셸은 귀족의 딸이지만 방울을 매달고 마치 짐승처럼 집 안을 돌아다닌다. 소리는 침묵으로 변하고 빛은 어둠이 되는 ‘블랙(Black)'만이 미셸이 아는 세상의 전부다. 미셸과 전혀 소통할 수 없는 부모는 사하이라는 선생에게 딸을 맡기지만 그의 특별한 교육방법을 이해 못하는 아버지는 그녀를 장애인 수용소에 보내려고 한다. 그러나 미셸을 둘러싼 암흑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생은 그녀를 어둠에서 끌어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미셸이 인간답게 행동하도록 가르치는 일은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지만, 사하이는  그녀의 손에 박힌 가시를 빼주며 친구가 되고, 영혼을 찌르는 어둠의 가시도 치유하는 의사요 스승이 된다. 그리고 블랙의 세계에서 미셸을 해방시킬 언어라는 빛을 가져다준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의 이름을 손과 입으로 가르침으로써 세상과 소통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사하이의 끈질긴 노력 끝에 처음으로 ‘워터(water)'의 의미를 깨달은 미셸은 마치 세례를 받고 다시 태어난 것처럼 어둠에서 빛으로, 무지에서 지식의 세계로 건너간다.



개미가 산을 기어오르듯이, 거북이가 사막을 건너듯이 숱한 실패와 좌절을 딛고 한 발 한 발 나아간 그녀는 블랙이라는 암흑의 색을 성취와 지식의 색으로 변화시킨다. 스승의 헌신적인 신뢰와 사랑으로 마침내 대학을 졸업하는 미셸의 소감은 이 영화의 절정을 이룬다.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맹인입니다. 누구도 그분을 보거나 듣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하느님을 만져봤습니다. 나는 그분의 존재를 ‘티-(teacher)'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이라는 어둠 속에 갇힌 스승에게 다시 그 빛을 돌려준다.



일생을 바쳐 한 인간을 어둠에서 건져냈을 뿐만 아니라 빛의 증거자로 만든 사하이한테 아주 낯익은 분의 모습이 비친다. 바로 우리가 죄의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 참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빛이 되어주신 스승 예수님의 얼굴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한 8,12)


- <그대 지금 어디에> 2009년 9월호
김경희 노엘라 수녀

*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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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크리스티아노 보르토네|주연 루카 카프리오티, 프란체스코 캄포바소
드라마, 가족|이탈리아|2009년 개봉


이탈리아의 한 작은 마을, 책을 읽으라는 아빠에게 텔레비전을 사달라고 조르는 미르코는 영화를 사랑하는 8살짜리 소년이다. 어느 날 집에 있던 장총을 잘못 건드려 눈에 큰 상처를 입은 미르코는 자기를 흠뻑 사랑해주는 부모 곁을 떠나 맹아학교로 보내진다. 갑자기 엄격한 규칙과 낯선 친구들 속에 던져진 미르코는 희뿌옇게나마 보이던 시력도 완전히 잃고 마음마저 어둠 속에 갇혀버리는데, 선천적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친구 하나가 그에게 다가온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무와 바람과 하늘이 어떤 것인지 묻는 친구에게 기억 속의 풍경들을 하나씩 꺼내어 그 친구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말해주던 미르코는 우연히 발견한 녹음기를 통해 계절과 풍경을 소리로 표현하는 법을 알아낸다.


 
미르코가 창조한 소리의 세계에서 샤워기의 물은 마른 땅을 적시는 빗물이 되고 입술로 부는 바람은 꿀벌의 아름다운 날개 짓으로 변하며 제철소 용광로의 무시무시한 굉음은 포악한 용이 뿜어내는 거대한 불이 된다. 자기를 따돌리던 친구들까지도 합심하여 만든 이 모험이야기는 그자체로 기적 같은 드라마로 탄생하고, 마침내 학부모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공연하게 된다.

이제껏 정상인을 흉내 내는 것만 보았던 부모들은 이제 눈을 가리고,
이 아이들만의 독특한 언어로 들려주는 연극을 보면서 비로소 아이들이 느끼고 희망하는 세계에 함께 어울리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 공연은 이탈리아가 맹아들에 대한 법을 바꾸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이렇듯 새로운 빛의 세계로 나올 수 있었던 것에 담임 신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미르코가 절망 속에 빠져 있을 때 시각 외의 다른 감각들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내면의 어둠을 벗어나도록 격려하고 이끌어준다. 유일하게 몸과 마음의 눈이 활짝 열려있던 그는 그 양쪽 눈을 다 감아버린 교장의 태도와 대비된다.

후천적 시각장애인 교장은 자기가 볼 수 있었던 과거에 얽매여서 평생 장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아이들의 직업을 단순한 기능공으로만 국한시켰지만, 아이들의 어둠까지 볼 줄 알았던 신부는 그들의 미래에 펼쳐진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되찾아준 것이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음향감독인 미르코 멘카치의 실화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한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극본을 완성시킨 것이다. 그래서인지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기억과 상상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천국의 속삭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예수님은 스스로 의롭다고 자처하는 바리사이들에게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 41)라고 꾸짖으셨다. 나 또한 교만과 무지의 어둠에 갇혀 진정으로 주님께서 보여주시려고 하는 것을 못 본체 ‘나는 잘 본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본다.

그리고 새해에는 그동안 내가 보아온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나와 다른 눈을 가진 사람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공유하고 예수님이 가져다주신 참된 빛으로 하루하루를 새롭게 밝힐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야곱의 우물> 2011년 1월호 게재
김경희 노엘라 수녀

*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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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페이튼 리드|주연 짐 캐리, 주이 디샤넬|코미디, 드라마|미국|2008


 

여성센터에서 요리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한식․중식․양식 조리기능사 과정을 배우고 자격증시험도 준비했습니다. 넉 달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네 시간짜리 수업을 듣고 설거지와 뒷정리를 했지요. 빡빡하지만 보람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첫 실습시간에 배운 품목은 ‘무생채’였습니다. 엄마가 해주시는 밥만 먹어온 저로선 무를 써는 것도, 무 껍질을 벗기는 것도 힘들었어요. 곱게 채를 써는 것도 가당찮았지요. 선생님은 제 옆을 지나치시며 “곱게, 더 곱게!”를 외치셨습니다. 같은 조에 있던 아주머니들은 얼마나 손놀림이 빨랐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손가락을 베어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어요. 피 몇 방울을 보니 별별 생각이 들더군요.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요리사가 될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회사를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지내던 때였습니다. 관심 있는 분야를 배우기에 좋은 때, 바삐 움직여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다질 때였지요. ‘요리를 계속 배울 것인가’란 질문에 결국 ‘예스’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요리를 배우는 과정은 ‘예스’를 이어가는 일이었어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수첩에 기록하고, 재료준비를 하고, 배운 대로 깎고 썰고 볶고 끓이고, 수강생 아주머니들이 “막내, 막내” 부르면 응대하고, 남은 재료들로 부친 부침개를 먹고, 집에 와서 배운 것을 연습하고, 조리기능사 시험을 보고, 스스로가 실업자란 현실을 넘어서고, 삶을 새로이 가꾸어나갈 에너지를 얻고… 순간순간 ‘예스’ 하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들이었겠지요.

영화 <예스맨>을 보며 요리 배우던 때를 떠올렸답니다. ‘예스’를 통해 삶을 긍정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요리를 즐기며 삶을 깨쳤던 저의 모습과 비슷했거든요.


아내와 이혼하고 무료하게 살아가는 대출회사 상담원 칼(짐 캐리)은 ‘예스’보다 ‘아니오’를 잘합니다. 그러나 친구의 권유로 <인생 역전 자립 프로그램-YES MAN>에 참여하면서 인생이 바뀌지요. 모든 일에 ‘예스’라고 답하면서 새로운 일들에 도전합니다. 경비행기를 조종하고, 한국말을 배우고, 대출 신청 서류를 무조건 승인하고, 온라인 데이트로 이란 여성을 만나고, 톡톡 튀는 밴드 보컬과 사랑에 빠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여자친구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무조건 ‘예스’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도 알게 됩니다. ‘노’라고 해야 할 때 ‘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함을 터득하지요.

‘예스’는 삶을 긍정적으로 이끌어줍니다. 그 가운데 있는 ‘노’가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줍니다. 즐거운 삶, 긍지 가득한 삶에는 두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 요리 학원을 다니는 동안 처음 접한 일들에 ‘예스’를 남발했던 저를 기억합니다. 우왕좌왕하면서도 차츰 능숙해지고, 끝내 시험에 붙었던 모습을 생각합니다. 백수, 룸펜이라는 지칭에 기꺼이 ‘노’ 했던 마음을 되짚으면 웃음이 납니다.

재미있는 작품이에요. 마음껏 웃고 싶은 분들, ‘예스’와 ‘노’를 지혜롭게 쓰고 싶은 분들에게 권해드립니다.


- 홍보팀 고은경 엘리사벳

*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감독 알레한드로 고메즈 몬테베르드|주연 에두아도 베라스테구이, 타미 브랜차드
드라마, 멜로/애정/로맨스|미국, 멕시코|2009년 개봉

 

영화 <벨라>는 기괴한 판타지와 범죄자들이 난무하는 극장가 한쪽에 다소곳이 피어난 작은 꽃 같은 영화다. 화려한 볼거리나 말랑말랑한 로맨스와도 거리가 먼 영화다. 슬픔을 간직한  친구에게 귀를 기울이듯 함께 느낄 때 비로소 그 진한 향기가 마음에 와 닿는 착한 영화다.

 

주인공 호세는 형이 운영하는 멕시칸 식당의 주방장이다. 원래 축구 스타로서 유명했던 그는 인기 절정의 순간에 자동차 사고로 막다른 길에 접어든 것이다. 사고 현장에서 달아나자는 매니저의 유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차에 치여 죽은 소녀를 끌어안은 호세는  잘못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않는다. 과거의 영광보다 자기 때문에 사라진 생명을 더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그는 쉽사리 그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한편 호세와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니나는 몇 번 지각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당한다. 일찍이 부모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혼자서 힘겹게 살아온 니나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의 아기를 임신한 데다가 직장마저 잃게 된 것이다. 형의 무자비한 처사를 보고 주방에서 뛰쳐나온 호세는 알록달록한 멕시코식 유니폼을 입은 채 거리를 떠돌게 된 니나를 자기 집에 데려간다. 그리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낙태를 결심한 니나는 호세의 부모님과 만나면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가족애를 경험한다.



호세의 동작과 눈빛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쫓아가며 완성된 이 영화는 그를 통해 참된 양심과 인간성을 다시금 발견하게 한다.
호세가 자기 죄를 감추지 않고 슬퍼하는 모습에서, 죽은 생명을 애통하게 바라보며 우는 모습에서, 고용주에게 억눌린 이들을 대변하는 모습에서, 절망에 빠진 이웃의 벗이 되고 꺼져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모습에서, 당신 모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얼을 만나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태 5,8)

 

- <그대 지금 어디에> 2010년 9월호 게재
김경희 노엘라 수녀

*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감독 이한|주연 김윤석, 유아인|드라마|한국|2011


점잖게 앉아서 보기에는 너무도 유쾌하고 때때로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이리저리 자리를 들썩거리며 볼 수밖에 없었던 영화 <완득이>, 다소 비현실적인 면도 없지 않으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두루 비추면서도 대충 얼버무리지 않고 할 말을 하는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척추장애자로서 카바레의 광대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그곳에서 나고 자란 도완득은 어릴 때 집을 나간 어머니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열일곱 살 청소년이다. 카바레가 문을 닫자 아버지는 노점상을 시도하지만 그마저도 자릿세와 텃새에 밀려서 전국을 떠도는 유랑극단의 약장사로 길을 나선다. 가출조차도 성립되지 않을 만큼 혼자일 수밖에 없는 완득에게 도저히 외로울 틈을 주지 않는 단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담임이자 옥탑방 이웃사촌인 동주. 시도 때도 없이 ‘얌마 도완득!’을 불러대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간섭하는 그는 완득에게 원수나 다름없다. 오죽하면 교회에서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겠는가?

하지만 동주의 거칠고 지나친 간섭은 곧 외톨이 완득이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난다. 가난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가난을 탓하며 굶어죽는 게 진짜 부끄러운 일이라며 완득에게 진정으로 맞서야할 문제가 무엇인지, 스스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동주는 완득에게 진정한 인생선배요 스승이다. 자기 재산을 털어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마을주민들을 위한 공동체를 세우고, 입시학원으로 변질된 교실에서 학생들이 진정으로 배워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려는 동주는 어쩌면 지금 우리의 한국사회가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선생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이 영화는 사건의 내용보다 각 사람들의 됨됨이가 더 많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특히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인 완득의 아버지는 이 영화의 인물 중에 가장 성숙하고 겸손한 인격의 소유자다. 비록 돈 때문에 자기와 결혼한 외국 여자라 해도 그녀의 인격자체를 존중했고 완득의 어머니로 받아들였으며, 길에서 떠도는 민구를 거두어 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주변 관계는 공경과 이해, 대화와 화해의 끈으로 이어진다. 빈자와 이민자들을 소재로 한 기존의 영화들이 억지스러운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과장된 비극 또는 웃지못할 희극으로 끝나버린 것을 생각해보면, 보다 건전하고 현실적인 감각으로 그들이 바로 우리임을 받아들이게 해준 이 영화가 참 고맙게 느껴진다.



사실 나에게 가장 오랜 잔상을 남긴 것은 이 영화 속의 교회다. 제단 벽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글자만 걸려있을 뿐 단 한 번도 설교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동주와 이주노동자들이 만나는 장소인 이곳은 실제로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실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살아있는 곳, 가난한 이들과 이방인들의 안식처이며 나눔과 친교가 이루어지는 곳, 완득이가 다니는 교회는 그런 곳이었다.

- <야곱의 우물> 2012년 1월호
김경희 노엘라 수녀

*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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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강제규|주연 장동건, 오다기리 조|드라마|한국|2011


장동건과 오다기리 조가 출연한 영화 <마이웨이>를 보고 왔습니다. 전쟁영화라 끔찍한(?) 장면도 더러 있었지만 볼 만한 작품이었어요.

2차 세계대전 때 중국과 소련, 독일을 거쳐 노르망디에 이르는 12,000km 전장이 배경입니다. 스케일이 무척 크지요. 그 속에서 제2의 손기정을 꿈꾸는 조선청년 준식(장동건)과 일본 최고의 마라톤 대표선수 타츠오(오다기리 조)가 만납니다. 그들이 라이벌로, 적으로 겨루다 서로에게 희망이 된다는 것이 큰 줄거리입니다.



전투신이 상영시간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쏘고 맞고, 죽고 죽이고, 돌진하고 넘어지는 모습들이 매우 사실적입니다. 포로수용소 상황, 전투기 피폭 장면과 폭탄 투하 장면도 압도적이구요. 외적인 배경뿐만이 아니에요. 전쟁을 겪으며 변해가는 사람들의 내면까지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준식은 한결같이 의리 있는 인물이지만, 타츠오나 준식의 친구 종대는 좀더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인간상을 보여줍니다. 기습 받아 우왕좌왕하는 포로들을 향해 ‘후퇴하면 내 손에 죽는다’며 총을 쏘아대는 소련인 장교. 그의 모습에서 조선인에게 똑같이 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타츠오. 살아남기 위해 동고동락했던 친구를 사형대로 밀어 올리는 종대.

전쟁 가운데 괴물이 된 사람들을 그려낸 영화야 많지요. 하지만 <마이웨이> 속 타츠오의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천황과 대일본제국밖에 모르던 그였으니까요. 지난한 전쟁은 장교를 이등병으로, 군인을 포로로, 산 자를 주검으로 만듭니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사람 목숨과 명예, 충성, 승리 같은 대의명분을 저울질하는 것이 얼마나 참혹한 일인지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포로수용소 안에서 힘차게 달렸던 준식의 모습도 기억에 남네요.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꿈을 품은 그의 모습이 애틋했습니다. 마라토너가 되고 싶었을까요? 조국에 두고 온 아버지와 여동생이 그리웠을까요? 꿈은 꾸기만 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살려낼 때 더 희망적이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었어요. 중국인 저격수 쉬라이(판빙빙)의 등장으로 흐름이 끊기고 산만해진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가 아픔을 토로하거나 비행기를 명중시킨 장면은 멋졌지만, 영화의 메시지와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 기여하진 못한 듯합니다. 강제규 감독의 전작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영신(이은주)은 쌀을 받았다고 빨갱이로 몰려 처형당하지요. 짧지만 강렬하면서 시대상을 뚜렷이 보여준 그 장면과 비교할 때 <마이웨이>의 구성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는 쓰지 않을게요. 다만 전쟁이 전쟁만 낳는 것이 아니라 희망도 꽃피울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애초에 일어나선 안 되는 게 전쟁이지만요!) 예수님은 말씀하셨지요. 자기 안녕만을 바라는 사람, 자신의 ‘목숨’을 고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마르 8,35) 새해가 오기 전에 영화와 함께 곱씹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단호한 말씀 속에는 뿌리 깊은 희망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 광고팀 고은경 엘리사벳

* 이미지는 <마이웨이>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1. 호빵 2011.12.30 11:17

    글을 잘 봤습니다. 강재규 감독님도 처참한 전쟁 속에 인간적인 갈등과 연민.. 그리고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통해 휴머니즘의 발현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

    • BlogIcon 바오로딸 2011.12.30 12:07 신고

      호빵 님, 잘 봐주셨다니 고맙습니다.^^ 남겨주신 의견에 공감합니다. 영화에서 이야기된 주제가 여러 가지인 듯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휴머니즘'이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종종 놀러오시고 의견 나눠주세요. 복 많이 받으시구요-*


   원제 : Don Bosco
   Director : Leandro Castellani
   Writers :  Ennio De Concini
   music : Stelvio Cipriani
   Stars : Ben Gazzara, Patsy Kensit , Karl Zinny
   Production :Elle Di Ci Cinematografica
   coporation : RAI
   원제작년도: 1988
   우리말녹음/영어/한글자막/컬러
   분 류 : 성인전 / 드라마 DVD
   국 가 : 이탈리아
   상영시간 : 108분
   가격 : 22,000원
   대 상 : 12세 이상
   출간일 : 2011. 01. 15


● 기획 의도
 돈보스코 성인 탄생 200주년(2015년) 맞아 살레시오회에서는 돈보스코 유해 세계 순례가 2009년 7월부터 약 5년간에 걸쳐 전 세례에 134개국을 찾아 순례하기 시작했다. 2010년 11월 약 보름정도 돈보스코 성인 유해의 한국 순례가 있었고 많은 신자들이 성인을 공경하는 분위기 안에서 돈보스코 성인 유해 미사에 참석하였다.  오래되었지만 돈보스코 영화를 다시 DVD로 재출시하여 돈보스코 성인의 생애를 잘 알고 청소년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까지 하느님의 도구로 온존히 투신한 돈보스코 성인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많은 이들이 성인의 삶을 본받는 은혜의 때가 되기를 희망한다.

키워드 - 영화로 보는 돈보스코 성인전!
사랑과 희생의 교육자 돈 보스코 성인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아냈다.

내용

1996년 바오로딸에서 VHS로 출시된 것을 재계약하여 DVD로 새롭게 출시한 작품이다.
살레시오 수도회를 창립하여 청소년들의 교육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돈 보스코 이야기를 영화화 했다. 돈 보스코는 활력이 넘치는 사도의 전형이었다. 또한 그의 가르침은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얻어지는 신뢰와 사랑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돈 보스코에게 마음을 열고 모든 비밀을 두려움 없이 털어놓았으며,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1815년 이탈리아 북부 피에콘테 지방의 농촌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9살 때 꾼 꿈을 통해 청소년 교육에 일생을 바치라는 신적 소명을 받고 신학교에 진학, 1845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전쟁으로 고아가 많았고,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나선 청소년들도 많이 있었다. 돈 보스코는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전문 기술을 가르치며 직업을 갖게 했다. 이것이 후에 기술 전문 학교로 발전하였다. 그 후 돈 보스코는 살레시오 수도회를 창설하고(1856년),성녀 마자렐로의 도움으로 여자 수도회도 창립했다(1872년). 가난한 청소년을 위한 교육사업과 출판사업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돈 보스코는 인자하고 단순하며 예지에 넘치는 새 시대 사도의 전형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청소년들을 위해 생명을 바쳤으며 1886년에 선종, 1934년에 성인품에 올랐다. 돈 보스코와 관련된 교훈적인 일화뿐 아니라,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사랑의 모범을 통해 돈보스코의 청소년들을 향한 사도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대상
청소년, 청소년 사목자, 부모, 교사, 교리교육자

인터넷 서점 바로가기

감독 크리스티앙 카리옹|주연 다이앤 크루거, 벤노 퓨어만|전쟁, 드라마
프랑스, 독일, 영국, 벨기에, 루마니아|개봉 2007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성탄 전야,
독일군과 프랑스군, 영국군의 접경 지역에서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이 사건은 바로 ‘크리스마스 휴전’.

서로에게 총을 겨누던 군인들이 성탄절을 기해 적군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음식과 친교를 나누며 새해가 올 때까지 자발적으로 전쟁을 멈춘 것이다.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성탄이 주는 기쁨과 평화가 진정 어떤 것인지를 아름다운 캐럴과 함께 보여준다.



영화는 프랑스, 영국, 독일 각국의 학교에서 어린이가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 웅변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마치 전쟁놀이라도 시작하듯 참전한 영국 형제, 오페라 공연 중에 징집 당한 독일 가수,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프랑스 장교, 이처럼 평범한 이들이 모인 전쟁터에 성탄절이 오자 각국의 초소에서는 조촐한 파티가 열린다.

독일군의 참호 위에 작은 성탄나무들이 세워지고, 오페라 가수가 ‘고요한 밤’을 노래하자 영국군 사제가 백파이프로 화답한다. 거기에 프랑스의 샴페인이 더해지면서 세 나라는 크리스마스 휴전을 약속한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자기 가족사진을 보여주고, 초콜릿과 술을 나누며 축제를 즐기는 가운데 그들이 함께 모여 성탄 미사를 드리는 장면은 정말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감동적이다. 미사에서 울려 퍼지는 <아베 마리아>는 평화의 메아리가 되어 전장의 슬픔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적이 아니라 한 형제가 되어 새로운 날을 맞이한다.

결국 병사들이 쓴 편지 때문에 이 일이 알려져서 모두 큰 희생을 치르게 되지만, 그 일은 오늘날까지도 전쟁의 무모함과 평화를 상징하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 끊임없이 기념되고 있다.


요즘의 크리스마스는 해마다 조금씩 앞당겨 불을 켜는 백화점을 시작으로 점점 더 화려하고 호화스런 장식만 늘어나는 것 같다. 이유야 어찌 됐든 예수님의 탄생을 하루라도 빨리 기억하게 해주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가난하고 소박한 곳에서 드러나는 성탄의 신비와는 자꾸 멀어지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차가운 겨울 전장처럼 힘없는 자연과 가난한 이들이 의지할 곳 없는 이 나라를 따뜻하게 밝혀줄 성탄나무가 우리 가운데 세워지고, 이기심과 두려움으로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열어줄 캐럴이 하루 빨리 우리 모두의 가슴으로부터 울려 퍼지기를 바란다.   

“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0-11)


- <그대 지금 어디에> 2010년 12월호
김경희 노엘라 수녀

*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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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한|주연 김윤석, 유아인|드라마|한국|2011


완득이는 문제아입니다. 옥탑방에서 등 굽은 아버지, 모자란 삼촌과 함께 삽니다. 한창 공부해야 할 고등학생이지만 툭하면 쌈박질에, 가출을 시도하기도 하지요.

동주는 그의 담임선생님입니다. 수업을 땡땡이치면 아낌없이 매를 들고, 무료 배식품으로 받은 햇반을 빼앗아 먹으며, 없는 줄 알았던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놓습니다. 사사건건 자신의 일에 간섭하는 그를 보며 완득이는 기도합니다. “하느님,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학교와 담을 쌓으려는 제자와 마음의 벽을 허물려는 선생님. 얼핏 보면 앙숙이지만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닐 수 없습니다. 11월 27일자 서울주보에 실린 허영엽 신부님의 글을 보며 떠올렸답니다. 몸 불편한 아버지가 얼마나 성실한 분인지 일깨우는 선생님, 그리고 생김새 다른 필리핀인 어머니를 받아들이는 완득이를요.

“러시아의 유명한 문호(文豪) 톨스토이는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삶의 본질은 육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 <서울주보> 제1821호 2면

말과 행동이 거칠다고 해서 마음까지 사나운 것은 아니지요. 완득이는 내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키 작은 아버지를 업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함부로 불평하지 않아요. 이주노동자들을 돕다 잡혀간 선생님이 걱정되어 경찰서에 찾아갑니다. 아직 서먹서먹한 어머니에게 구두를 선물하며 주저 없이 우리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완득이의 마음속에는 사랑과 그리움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보는 것, 느끼는 것, 깨닫는 것, 가진 것, 그것이 결코 전부가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야말로 바르게 깨어 있음의 시작이 됩니다. 세상의 것에 너무 기대하지 않고 영원한 삶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 <서울주보> 같은 호, 같은 면

사람 수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볼 수 있는 것, 가질 수 있는 것도 제한적이고요.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무엇, 손에 잡히는 것 바깥의 무엇을 느끼고 움직이는 사람은 그만큼 더 행복하겠지요.

원작은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소설 『완득이』입니다. 소설도 인기 있었는데 영화에 대한 반응 역시 좋네요. 배우들의 멋진 연기, 명쾌하면서 다채로운 줄거리, 진솔하고 따뜻한 시선을 두루 갖췄기 때문인가 봅니다. 저는 완득이가 어머니에게 새 구두를 내밀던 장면이 가장 감동적이었어요. 비뚤지만 깨어 있는 그를 만난다면 여러분도 행복해지실 거예요.

- 광고팀 고은경 엘리사벳

*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감독 테렌스 맬릭|주연 브래드 피트, 숀 펜|드라마|미국|2011


“어머니, 동생… 그들이 당신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는 한 사람의 독백으로 시작됩니다.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두 동생과 함께 살았던 남자. 동생 중 한 명을 잃고 늘 같은 꿈을 꾸어온 남자. 그런 그에게 어머니가 말합니다.

“인생에는 두 가지 삶이 있단다. 현실만을 쫓는 삶과 사랑을 나누는 삶. 어떤 삶을 살지는 네가 선택해야 한다.”

아마도 어린 아들에게 들려주었던 말 같습니다. 아버지가 ‘현실을 쫓는 삶’을 가르친다면 어머니는 ‘사랑을 나누는 삶’을 보여주지요. 큰아들은 그들 밑에서, 아니 그들 사이에서 자라납니다. 아버지한테 말 자르지 말라고 혼난 뒤 어머니가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잠듭니다. 아버지한테 밭을 제대로 일구라고 잔소리 들은 뒤 어머니가 연결한 호스에서 물을 받아 마십니다. 작품에는 이런 독백도 나오지요. “아버지, 어머니, 저는 언제나 당신들 사이에서 씨름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아들이 강한 사람으로 크길 원합니다. 엄마처럼 순진하면 안 된다고, 잘 먹고 잘 싸우고 일도 잘해야 한다고, 그렇고 그런 놈들이 더 잘 산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그 나름의 사랑입니다. 아들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아 풍요를 누리길 비는 간구입니다. 허나 어린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읽어내지 못합니다. 그는 소년답게 저항합니다. 나무를 후려치고 빈집의 창문을 깨부숩니다. 자신을 철석같이 믿는 동생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그런 뒤에는 다시 어머니의 미소와 포옹 안으로 돌아갑니다.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소년의 성장과 가족사가 맞물리는 가운데 인생의 희로애락이 이어지지요. 단란했던 가정에도 아버지의 실직, 동생의 죽음이라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고 십일조까지 바쳐온 자신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기냐고 절규하는 아버지. 강인한 줄만 알았던 아버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미움 속에 묻혀 있던 사랑을 발견하는 아들. 우리들의 인생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시는 분만 하느님이 아니라 거두시는 분도 하느님입니다. 지켜주시는 분만 하느님이 아니라 등을 보이시는 분도 하느님입니다.”

시련을 곧바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뭅니다. 대개는 착하게 살아온 자신한테 왜 벌을 내리냐며 신을 원망하곤 하지요. 그러한 순간에 기적처럼 드러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시련의 순금 부분이라고 할까요. 그러한 때 곁에 있는 생명들은 희망입니다. 하느님은 전지전능한 조물주로서만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으로서 우리 삶에 깃들여 계심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영상과 철학적인 연출이 돋보인 <트리 오브 라이프>. 상영시간이 꽤 길게 느껴질 수 있어요. 원시림과 심해, 우주가 펼쳐지는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들이 왜 나오나 의아할 수도 있고요.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나면 곱씹을수록 좋은 메시지가 남는답니다. 사랑과 희망으로 목을 축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해드립니다.

- 광고팀 고은경 엘리사벳

* 이미지는 공식 홈페이지 내 영화 정보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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