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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예스'와 '노' 사이 - 영화 <예스맨>을 보고

by 바오로딸 2012. 2. 7.

감독 페이튼 리드|주연 짐 캐리, 주이 디샤넬|코미디, 드라마|미국|2008


 

여성센터에서 요리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한식․중식․양식 조리기능사 과정을 배우고 자격증시험도 준비했습니다. 넉 달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네 시간짜리 수업을 듣고 설거지와 뒷정리를 했지요. 빡빡하지만 보람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첫 실습시간에 배운 품목은 ‘무생채’였습니다. 엄마가 해주시는 밥만 먹어온 저로선 무를 써는 것도, 무 껍질을 벗기는 것도 힘들었어요. 곱게 채를 써는 것도 가당찮았지요. 선생님은 제 옆을 지나치시며 “곱게, 더 곱게!”를 외치셨습니다. 같은 조에 있던 아주머니들은 얼마나 손놀림이 빨랐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손가락을 베어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어요. 피 몇 방울을 보니 별별 생각이 들더군요.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요리사가 될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회사를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지내던 때였습니다. 관심 있는 분야를 배우기에 좋은 때, 바삐 움직여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다질 때였지요. ‘요리를 계속 배울 것인가’란 질문에 결국 ‘예스’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요리를 배우는 과정은 ‘예스’를 이어가는 일이었어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수첩에 기록하고, 재료준비를 하고, 배운 대로 깎고 썰고 볶고 끓이고, 수강생 아주머니들이 “막내, 막내” 부르면 응대하고, 남은 재료들로 부친 부침개를 먹고, 집에 와서 배운 것을 연습하고, 조리기능사 시험을 보고, 스스로가 실업자란 현실을 넘어서고, 삶을 새로이 가꾸어나갈 에너지를 얻고… 순간순간 ‘예스’ 하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들이었겠지요.

영화 <예스맨>을 보며 요리 배우던 때를 떠올렸답니다. ‘예스’를 통해 삶을 긍정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요리를 즐기며 삶을 깨쳤던 저의 모습과 비슷했거든요.


아내와 이혼하고 무료하게 살아가는 대출회사 상담원 칼(짐 캐리)은 ‘예스’보다 ‘아니오’를 잘합니다. 그러나 친구의 권유로 <인생 역전 자립 프로그램-YES MAN>에 참여하면서 인생이 바뀌지요. 모든 일에 ‘예스’라고 답하면서 새로운 일들에 도전합니다. 경비행기를 조종하고, 한국말을 배우고, 대출 신청 서류를 무조건 승인하고, 온라인 데이트로 이란 여성을 만나고, 톡톡 튀는 밴드 보컬과 사랑에 빠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여자친구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무조건 ‘예스’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도 알게 됩니다. ‘노’라고 해야 할 때 ‘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함을 터득하지요.

‘예스’는 삶을 긍정적으로 이끌어줍니다. 그 가운데 있는 ‘노’가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줍니다. 즐거운 삶, 긍지 가득한 삶에는 두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 요리 학원을 다니는 동안 처음 접한 일들에 ‘예스’를 남발했던 저를 기억합니다. 우왕좌왕하면서도 차츰 능숙해지고, 끝내 시험에 붙었던 모습을 생각합니다. 백수, 룸펜이라는 지칭에 기꺼이 ‘노’ 했던 마음을 되짚으면 웃음이 납니다.

재미있는 작품이에요. 마음껏 웃고 싶은 분들, ‘예스’와 ‘노’를 지혜롭게 쓰고 싶은 분들에게 권해드립니다.


- 홍보팀 고은경 엘리사벳

*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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