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 “교회의 불협화음 있어도 교회 가르침 전하는 것은 주교의 사명”
바오로딸, <강우일 주교와 함께 걷는 세상> 출간 기자간담회 열어
한상봉 기자  |  isu@catholicnews.co.kr

   
▲ 강우일 주교는 신자들 사이에 현실에 대한 인식이 다르더라도, 보편교회가 정리한 부분은 미루지 말고 선포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한상봉 기자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을 기념하는 ‘신앙의 해’를 맞이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과 사회교리를 일깨우며 현 시대의 사회문제를 복음과 교회정신으로 비추어 본 강우일 주교(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제주교구장)의 책이 발간된다. 강우일 주교는 한미FTA,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탈원전운동, 구제역 사태 등 굵직한 현실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교회 지도자로서 필요한 윤리적, 신학적 성찰을 해 왔다. 교회잡지와 강론 등을 통해 강우일 주교가 성찰한 내용을 담아 성바오로딸 출판사에서 엮어낸 <강우일 주교와 함께 걷는 세상>(2012) 출간기념으로 사회교리 주간인 12월 10일 천주교중앙협의회 4층 강당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강우일 주교는 “신학은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옮겨서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것”이기에 “현대인의 언어와 사고와 문화를 통해서 오늘날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신학자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강 주교는 연일 중대한 사회문제가 터져 나오는데 교회 안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며 “교회 안에는 신학자들도 여럿 있고, 학회들도 많은데 다들 바쁜지 이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석과 판단을 못하고 있어서, 한국교회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교우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신학적 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예비자 교리에서 사회교리 가르치지 않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한국적 적용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강우일 주교는 “한국 가톨릭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공의회의 구체적인 가르침은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예비자 교리에서 최소한의 가톨릭교리만 가르치고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수많은 공의회 가운데 가장 획기적이고 혁명적으로 교회를 쇄신한 공의회라고 소개하며, 여기서 발표된 4개 헌장과 10개의 교령에 입각해 <가톨릭교회교리서>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최근에는 레오 13세 교황의 <새로운 사태> 이후에 발표되기 시작한 사회회칙을 집대성해 <간추린 사회교리>도 발간되었다고 전했다.

“1891년에 레오 13세 교황이 <새로운 사태>라는 회칙을 냈는데, 이 회칙은 지금 읽어도 깜짝 놀랄 만큼 신랄하게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인간이 인간답게 품위를 유지하는 사회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그것을 출발점으로 다른 현대 교황들이 사회적 가르침을 진일보시켜 왔다. 그 중간쯤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려 ‘세상 속에서 교회의 적극적인 참여의 노선’을 본격적으로 집대성하고, 그 후 정치, 경제, 환경, 평화 등 범위를 넓혀갔다.”

그러나 한국교회 안에서 사회교리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강우일 주교는, 2011년부터 한국교회는 사회교리를 신자들에게 숙지시키기 위해 매해 12월 둘째 주일인 인권주일부터 한 주간을 ‘사회교리 주간’으로 삼았다고 전했다. 현재 각 교구에서는 사회교리학교를 열어 사회교리 교육이 확산되고 있는 사실도 덧붙였다.

한편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삶의 모델로 삼아 사는 사람들”이라며 “예수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떠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선포했다”고 말했다. 예수는 많은 이들을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신경을 썼던 사람들은 “그 시대의 제도와 체제가 거들떠보지 않았던 사람들, 체제에서 밀려난 사람들, 종교적으로도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받은 것으로 간주되었던 사람들, 심지어 거리의 여성들이었다”고 말했다. 예수는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에게 다가가시는 행태 때문에 기존의 종교지도자에게 걸림돌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예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왜 그런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술 마시고 하느냐?”는 지탄을 받으셨고, “그 결과 많은 오해도 받고 공격도 받으시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강우일 주교는 예수가 그 사회 지도층과 어울리지 않았다고 전하면서 “그 시대 지도층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행동이 마음에 안 들고 괘씸하니까 자주 공격했다. 예수가 그들을 만난 것은 이처럼 그들이 예수를 공격하는 과정에서”라고 말했다.

주교들은 태생적으로 쉽게 움직이지 못해

   
▲ <강우일 주교와 함께 걷는 세상>, 바오로딸, 2012
이날 간담회에서, 한국교회가 사회문제에 나서지 않는 것 같다는 지적을 받자, 강우일 주교는 “교회가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지적은 주로 주교님들을 겨냥해서 이야기되는 것 같다. 그런데 주교들은 교회에서 최종적인 행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쉽게 움직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교회의에서도 구체적인 문제를 놓고 의견을 하나로 조율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전제하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도 4년에 걸쳐 신학자들과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강 주교는 이런 점에서 “사회문제가 터져나올 때마다 주교회의나 개별 주교가 그때마다 민첩하게 대응방안을 내놓거나 판단기준을 제시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주교들이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었다. 대신에 “주교가 아니라도 다른 사제들이 나름대로 의사표현과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것도 교회가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천명한 혁명적인 어휘가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인 것처럼, “주교가 움직여야 교회가 움직인다는 생각을 버리고, 교회의 한 부분에서 움직이면 교회가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예수는 성당과 전례 안에만 계시지 않는다

이어 한국교회의 문제로 신자들이 교회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본당에서는 교회 울타리 안에서 친목을 이루고, 화합하고, 일치하는데 관심을 갖지만, 예수님은 제자 공동체 안에 머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이 교회 전례나 단체활동에 머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전례 안에만 성당 안에만 계시지 않고, 오늘도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이들을 찾아가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목과 단체활동, 그리고 개인의 삶이 이 세상에서 정말 힘들어하고, 눈물 흘리고, 아프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려야 예수님의 제자로서 기본적 자세를 갖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강 주교는 성경에서 전하는 회개와 회심을 “시선을 교회 안쪽이 아니라 바깥으로 완전히 돌리는 것”이라며, “가톨릭교회가 교회 바깥을 향해서 눈을 돌리는 자세로 회심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같은 신앙고백하고 같은 성경을 읽어도 생각이 다를 수 있어
형식적인 분열이 무서워 마냥 신자들 생각이 일치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

강우일 주교는 교회가 사회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때, 이 문제에 대한 신자들의 입장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 ‘교회에 분열을 일으킨다’고 공격받는 사실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별도의 공동체를 이루시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며, 강우일 주교는 “예수님 시대에도 같은 유대인이며, 같은 하느님을 섬기고, 같은 성경(구약성경)을 읽고, 같은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현실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갈등이 일어났다”면서, 예수도 그 갈등을 완전히 없애지 못했고, 없앨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예수가 전한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하느님 나라에 대한 생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오히려 그 시대의 주류였다는 것이다. 이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예수의 말씀과 행동을 보고 ‘아, 이 분이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하느님이 보내신 참 예언자구나’ 하고 따르기 시작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2천년 교회 역사에서도 갈등과 분열이 계속되었지만 “형식적인 분열 자체를 우려하면서 모든 교우들이 동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세상 종말까지 기다리면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분열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강 주교는 “우리 교우들 가운데 아직 납득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편교회에서 전통적으로 가르쳐왔고, 현대 교황이 보편교회의 가르침으로 정리해준 부분은 자신 있게 얼마든지 확고하게 선포해야 된다”고 말했다.

강우일 주교는 사회참여 과정에서 “교회 안에 다소 불협화음이 들릴 수 있고, 아직 납득 못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지만, 보편교회가 선포한 부분은 양보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교우들이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들을 수 있을 때까지 설득하고 가르치는 것은 주교들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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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바오로딸수도회 2012년 한국관구 총회 열어..대담하고 예언적인 신앙 다짐
심상태 몬시뇰, “고위 성직자들, 상명하달보다 상호존중 우선되어야”

한상봉 기자  |  isu@catholicnews.co.kr

성바오로딸수도회가 11월 15일부터 30일까지 여주 사도의 모후집에서 관구총회를 개최하고 있다. 총회는 16일 오스발도 파딜라 교황대사 주례로 개막미사를 봉헌하고, 29일 옥현진 광주대교구 보좌주교가 폐막미사를 거행함으로써 마감한다. 한국 성바오로딸수도회 관구장 정 아우실리아 수녀는 개회사에서 “성령의 뜻을 보다 충실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경청하고 식별하여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온순한 도구가 되자”고 전했다.

이번 총회는 6년마다 열리는 제 10차 세계총회를 준비하는 대회이며, 세계총회의 주제인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대담하고 예언적인 신앙으로 모든 사람에게 ‘진리의 애덕’을 행합시다”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총회 기간 동안 수도자들은 자기 성찰을 위해 심상태 몬시뇰과 한상봉 편집국장(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이병호 주교(전주교구장), 황인수 신부(성바오로수도회)의 강의를 들었다. 사회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복음 선포를 사명으로 살고 있는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들은 이번 총회를 통해 “새로운 복음화의 요청을 예언적 사명과 역사적 책임을 다하라는 교회의 초대”로 받아들였다.

   
▲ (사진제공/성바오로딸수도회)

심상태 몬시뇰, “한국교회, 권위주의와 붕당주의가 문제”

10월 22일 첫 강의에 나선 심상태 몬시뇰은 ‘한국사회의 도전과 교회 신앙’을 전하면서, 한국교회의 역사적 상황을 짚었다. 먼저 20세기 후반기 서구 교회가 ‘시대의 징표’에 적절히 응답하지 못해 쇠락했다는 사실을 한국교회도 반성의 계기로 삼으라고 당부했다. 근세 이후 교회의 지배하에 있던 사회에서 자율적인 ‘세속화’ 과정을 겪었는데, “교회 당국과 수도회 등은 성서에서 증언되는 복음에 입각하고 있다고 보기 보다는 로마 제국의 수직적이고 법적 사회 구조에 입각하여 형성된 전통적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사회에서 제기하는 질문에 진지하게 대응하지 못한 채 “교회로부터 이탈해 나간 모든 세력을 단죄하고 폐쇄적이고 방어적 자세에 안주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지배권을 행사해 오던 교회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쇠퇴하고 사회의 주변부로 맥없이 밀려나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경우에, 1970, 80년대에 걸쳐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아래서 교회의 일부 구성원들이 정치권력에 저항하며 인권과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한 결과 범국민적 신뢰를 얻으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심상태 몬시뇰은 특별히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정의구현사제단, 가톨릭 농민회 등을 높이 평가했다. 덧붙여 그 결과 “전래 초기에 한 세기가 넘게 혹독한 박해를 받게 된 이래 ‘천주학쟁이들’라는 폄하를 받으며 사회 주변에 머물러 있던 교회가 사회 안에서 주류적 위상을 확보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이래 교회 핵심부에서 예상치 못했던 분위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며 우려감을 표명했다.

한국교회는 일부 성원들의 희생적 투신을 통하여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을 퇴진시키는 데 기여하면서 지성인과 학생층을 주축으로 한 많은 입교 희망자들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교회에서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대거 밀려들고, 중산층들이 교회 안에서 차지하는 수적 비중이 점차 높아지면서 재정적 자립을 이룩했다. 그 결과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되는 대규모 성전과 기관 시설들을 건립할 수 있을 만큼 외형적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교회가 이처럼 호황을 누리면서 “교회 지도층 안에서 군사정권의 지도층에 결코 뒤지지 않는 권위주의적 자세가 확연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일반 사회에서의 혈연이나 지연, 또는 학연에 입각하여 형성되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의 붕당주의에 준하는 본당, 교구, 단체의 이기주의적 처신이 거침없이 표면화되기에 이른 것도 이 무렵이었다”고 비판했다.

교회에 가장 냉담한 집단은 지성인과 대학생, 그리고 근로자 계층

   
▲ 심상태 몬시뇰 (사진제공/성바오로딸수도회)
심 몬시뇰은 다원화와 분권화, 개인존중의 범사회적 변화를 수반하는 민주화 과정이 이뤄지는 분위기 속에서 “전근대적 중세 봉건사회의 중앙집권적 교회 구조가 현대인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친화감보다는 이질감을 자아내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이 기간 동안에도 교회는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나 사회복지위원회, 정의평화위원회 등을 통한 여러 공식 기관들이 주축이 되어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생명옹호, 환경보호, 우리 농산물 살리기, 한 마음 한 몸 운동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지만, 신자들의 참여도가 낮은 편이고, 소공동체 운동을 확산시키려 노력했지만, 냉담자 및 행방불명자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 계층의 신앙생활 약화를 막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심상태 몬시뇰은 “무엇보다도, 1970, 80년대의 주류 입교자 계층들인 지성인과 대학생, 그리고 근로자 계층이 21세기와 제3천년기에 접어들면서 교회에 대해 가장 냉담한 집단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심상태 몬시뇰은 ‘삼위일체 친교교회’를 실현하라고 주문했다. 심 몬시뇰은 “정보화 시대에 사회 구성원들은 쌍방향의 기능이 작동되는 정보매체를 통하여 그물망형의 네트워크 조직으로 연계되어 삶에 필요한 온갖 사회적 정보는 물론이고 신앙과 교회 관련 정보 역시 제3자에 의존하지 않고도 직접 접하는 위치에서 생활한다”며 수평적 교회를 제안했다.

“정보화 사회 안에서 교회 구성원 모두에게 해당되는 정보를 지도층이 독점하면서 전체와 상관하는 주요 사안에 관하여 민의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침을 하달하여 수용토록 하는 재래의 수직적 권위주의 질서 체계는 미래에는 교회 안에서 존립이 힘들게 될 것이다.”

이어 한국 교회 당국자들이 ‘시대의 징표’를 무시하고, 과거 서구 교회 지도자들처럼 현실에 안주하게 되면 수많은 국내 소비자들이 자신들을 폐쇄된 환경에 묶어둔 채 순응할 것만을 강요했던 국내 기업체들의 기존 제품을 외면하고 ‘개방과 공유, 그리고 다양성’을 제공한 한 외국산 ‘스마트폰’을 거침없이 애용하는 길을 택한 것과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곧 교회가 저들 세대에 의해 철저히 외면당하여 서구 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상태 몬시뇰은 또한, 기성세대들과는 달리, ‘한류(Korean wave) 문화의 전사’들처럼, 이른바 ‘G(Global) 세대’ 젊은이들은 ‘개방과 공유와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형’ 생활을 향유할 것이기에 한국교회도 역동성을 유지하려면 “교리와 전례, 그리고 생활양식을 전반적으로 ‘디지털 형’으로 대체해야 할 과업을 안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삼위일체 친교 공동체 안에서 성원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서로 구별되면서도 한 위격이 더 높거나 더 낮지도, 앞서거나 뒤처지고나 하지 않고 세 위격이 동등한 신적 관계를 맺는 것처럼, 상호간에 직무와 역할은 구별되는 가운데에서도 교회와 관련된 사안 처리에 있어서는 모두 평등하게 처신하는 위치에서 생활하도록 요청받는다”고 말했다.

“고위 성직자들과 하급 성직자 계층 사이에서나, 성직자들과 일반 신도들 사이에서나 교회의 제반 사안을 처리하는 데 있어 일방적인 상명하달식의 관계가 아니라, 직무의 상위성에도 불구하고 상호 인정과 존중의 자세로 동반자적 관계가 형성되도록 구성원 모두, 특히 고위 성직자들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심상태 몬시뇰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부분의 수도회에서 수도원장 내지 총장들이 ‘시대의 징표’에 부응하여 회원들의 직접 선거나 대의원들을 통한 간접 선거 과정을 거쳐 대표 직무를 수행하고 임기가 끝나면 평회원 신분으로 돌아가는 방식을 예로 들었다. 심 몬시뇰은 정의채 몬시뇰이 “교구 통치에 전권을 갖는 주교를 선출함에 있어서도 성직자는 물론이고 평신도도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며, 미래교회에서는 그런 방법으로 주교가 선출되고, 교황을 임명하는 제도로 바뀔 것으로 생각된다”는 말을 인용하며 “교구장들 역시 어떠한 양식이나 전 교구민들의 의사 수렴 과정을 거친 뒤에 교황청의 임명 절차를 밟아 선임되는 것이 21세기 시대의 요청”이라고 말했다.

교구장 비롯한 성직자들 … 행정가보다 따뜻한 사목자가 되어야

한편 새복음화 실현을 위해 한국교회가 ‘아시아적 교회’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심상태 몬시뇰은 신앙생활의 근간이 되는 하느님 표상을 다시 세울 것을 요청했다. 서구 그리스도교계는 유대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셈족 계열의 종교 특성을 지니면서 하느님의 초월적 부성(父性: ‘하느님 아버지’)을 강조하고, 세계와 교회 질서를 규정하는 법적이며 수직적인 관계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동아시아인들은 “내재적 만물 포용적인 모성(母性)에 더 많이 이끌린다”는 것이다.

“교회가 동 아시아 종교 문화 풍토의 이러한 통합적이고 포용적인 하느님의 모성적 특성을 생활 안으로 적극 수렴하려고 노력할 때에, 구원의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들을 자애로운 신적 분위기 안으로 쉽게 들어서게 함으로써 소외된 현실 세계 안에서 구원을 갈구해 온 그들을 따뜻이 감싸주시는 하느님과의 친교에 기꺼이 임하게 할 것으로 본다.”

한편 심상태 몬시뇰은 모성적 영역을 강조하면서 “종교지도자들이 현실적 종교기관의 관리 내지 사법 집행관으로서가 아니라 현실로부터 초탈한 자세로 영적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일반 대중이 안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내적 갈망의 충족을 따뜻이 체험토록 하는 정신적 지도자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구장을 위시한 성직 사목자들은 행정 관련 사무 업무를 가급적 최소화하면서 일반 신자들의 영적 갈증을 진정시켜주는 사목자로서의 삶에 전념하는 구조상의 변화가 절실하게 요청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심상태 몬시뇰은 한국 사회 안에서 교회는 안으로는 ‘시대의 징표’에 부응하여 자기 복음화 차원에서 쇄신되고, 밖으로는 ‘사랑의 문명’을 건설해 교회가 구체적으로 ‘구원의 성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교회생활의 틀 전체가 체험적 삶과 영성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한국교회의 미래 명운은 형식적 제도와 법 중심적 구조의 재래 서구교회적 생활양식을 탈피하고 영적 삶 중심 구조의 토착화된 교회 풍토를 조성하는데 성공하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교회와 성직자, 예수 그리스도의 매체임을 깨달아야”

22일 오후 두 번째 강의에서 한상봉 국장은 “교회는 과연 예수 안에 드러난 하느님 또는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물으며 “하느님처럼 예수의 자리로 내려앉고, 예수처럼 가난한 이들의 자리로 내려앉아야 한다”고 전했다.

“교회는 그동안 수많은 신학과 교설과 문헌을 통해 ‘스스로 하느님이심을 비우시고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선포해 왔다. 마침내 지상에 튼튼히 뿌리를 박고 십자가 위에 죄인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으신 분을 주님으로 선포해 왔다. 교황마저도 자신을 지칭할 때 ‘종중의 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주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분이라고 전했으며, 미사 때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거듭거듭 탄원해 왔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련한 시골처녀의 몸을 빌어 세상에 오셨으며,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시다가,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뿐’이라는데 있다.”

   
▲ 한상봉 편집국장 (사진제공/성바오로딸수도회)
한 국장은 교회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에 거룩한 피를 뿌리셨기에, 그 덕분에 우리는 예수가 받았던 삶의 방식을 다시 고집할 필요가 없어진 것처럼 행동한다”고 지적했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고생은 예수가 하고 행복은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누린다”고 비판했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버렸던 왕관을 다시 집어쓰고, 예수가 버렸던 호칭을 다시 부른다”고 말했다. “바오로가 폐했던 율법을 교회법으로 다시 받아들이고, 예언자들이 폐했던 제사를 다시 봉헌한다. 이로써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이 예수의 제사상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하느님을 전달하는 결정적인 매체가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매체가 교회라면, 교회의 가르침을 결정적으로 전달할 매체는 어쩔 수 없이 사목현장에서 일하는 사제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능력이 없다면 거기서 전달과정은 멈추고 만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이어 “사제들이 ‘신앙적 확신’을 지닌 사목자라기보다 ‘직업인’으로서, 칼 라너의 표현대로라면 ‘종교 공무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한, 교회문헌을 떠나서 생활적 증거로써 신자들의 신앙을 ‘재구성’하는 것 역시 어렵다”며 결국 가톨릭교회의 ‘신앙의 위기’는 ‘사제들의 위기’이며 ‘수도자들의 위기’라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법적으로 그들에게 사목적 권한을 일부 위임한 ‘주교들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한상봉 국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우리의 모든 세포를 열어 그분을 알아 볼 시선을 간직하라”고 요청했다. 복음은 단순하고 명료하지만, “우리 눈이 흐려져 복음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엉거주춤한 자리에 대한 미련 때문에, 또는 게으른 기도 때문에, 결국 나 자신 고유한 길 안에서 예수를 만나지 못한다”면서 자신들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매체임을 기억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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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저서 <나자렛 예수> 1 · 2권의 번역 출간을 맞아 독자들이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하는 강연회와 함께 소음악회가 열린다. 이번 행사는 10월 27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오패산로 알베리오네센터 2층 강당에서 열리며, <나자렛 예수> 2권을 번역한 이진수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가 강연자로 참여하고 테너 박승희 씨가 공연에 나선다.

강연회와 소음악회는 무료 행사로, 선착순 200명까지 참가 접수를 받고 있다. 참가 신청은 전국의 바오로딸 서원과 인터넷서점 바오로딸(http://www.pauline.or.kr)에서 받는다. (문의 : 02-944-0849)

<나자렛 예수>는 “예수는 누구인가? 그는 참으로 역사에 존재했던 한 인간이며 하느님이시라는 복음서의 고백은 과연 믿을 만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탐구와 노력의 성과다. 교의신학자이기도 한 교황은 <나자렛 예수> 서두에서 이 책은 교도권 차원의 공식 문헌이 아니며 “‘주님의 얼굴’(시편 27,8 참조)을 찾는 개인적인 탐구일 뿐”이라고 소개하며 “단순한 역사비평적 해석을 넘어 새로운 방법론적 통찰을 응용하려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서 “이 새로운 통찰이 성경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도록 허용해 주고 그렇게 해서 믿음을 돈독하게 해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역사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포기할 뜻은 전혀 없으며 포기해서도 안 된다”고 적었다.

5백여 쪽 분량의 <나자렛 예수> 1권은 예수가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은 때부터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과 예수의 거룩한 변모까지를 다루고 있다. 4백 쪽의 2권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부터 수난, 부활까지의 내용을 담았으며, 탄생과 유년기에 대한 3권은 2013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자료 출처 : 인터넷서점 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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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다
[2012년 여름 지금여기가 추천하는 책-한상봉]
2012년 07월 12일 (목) 10:42:53 한상봉 기자 isu@catholicnews.co.kr

사방에서 4대강 사업의 폐해가 속출하고 염려가 염려를 낳고, 우려가 한숨을 자아낸다. 그러면 우리 마음 안에는 자연스럽게 흐르던 강물을 헤집어 놓고 흙탕물을 튀겨 물길을 알 수 없게 만들어놓은 곳은 없을까. 겉보기에 산뜻한, 그러나 안으로 곪아터진 구석은 없을까. 탐욕이 앞서가며 연민을 접어두고 사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우리 교회는? 교계 제도와 교회법 테두리에서 반듯한 질서를 호소하며 성령의 흐름을 가로막는 ‘성직주의’, 그리고 만사를 교회 안에 제한하는 ‘비닐하우스 신앙’이 신자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지 않는가, 한번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마당에 가뭄과 폭우로 이어지는 2012년 여름을 ‘독서’의 힘을 빌어 신앙 업데이트 기회로 삼아보면 어떨까, 제안한다. 일단 늘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아직 읽어 내지 못한, 그러나 한번 읽고 마음을 비추어 볼 몇 권의 책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책에서는 피에르 신부, 도종환, 캐틀린 노리스, 빈센트 반 고흐, 이현주, 제프리 로빈슨, 시몬 베유 등 실천적이면서 성찰적인 인물들이 호명된다. 예수에게 길을 물었던 사람들이다. 이제 이 사람들에게 다시 우리의 길을 물어볼 차례다. 내 삶이 충분히 복음적인지, 예수의 제자가 되기에 충분히 아파했는지, 세상과 교회를 향해 하느님의 자비를 마땅히 설파했는지.

책에 대한 소개는 출판사와 인터넷 서점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기초로 했으며, 책 본문 몇 대목과 개인적인 소감을 덧붙였다. 미리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몰려올 만한 기쁨을 예감한다.

 

<성인 지옥에 가다>, 질베르 세스브롱, 남궁연 역, 바오로딸, 2012 (소설)

   

성인이 지옥에 가다니! 제목 자체가 충격적이다. 사실은 프랑스 노동사제의 이야기다. 광산촌 출신 노동사제가 가난한 마을 ‘사니’에 들어가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함께 고통을 겪으면서도 하느님 사랑 안에서 희망을 건져내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1950년대 프랑스 교회는 산업사회의 발달과 함께 대두된 사회 문제 앞에서 새로운 시대적 사명을 자각하고, 빈민층과 노동자들의 복음화를 위해 비그리스도교적 환경에 복음의 ‘누룩’을 심는 방향으로 선교를 전환한다. 프랑스 교회는 이에 소명을 느끼는 사제를 양성해 사제가 없는 빈민지역이나 공단지역으로 파견한다.

이 책의 주인공 피에르 신부는 프랑스 파리 교외 공장지대에 가서 스스로 공장 노동자가 되어 살면서 산업사회가 낳은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숨김없이 증언한다. 밤마다 어린 아들을 때리는 주정뱅이 마르셀, 경찰의 앞잡이 북아프리카인 아흐메드, 창녀 쉬잔 같은 생활에 지친 군상이 바로 피에르 신부를 둘러싼 이웃이다. 이런 환경에서 피에르 신부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함께 의논하고 고민하며 따뜻한 사랑과 헌신으로 헤쳐 나간다. 이따금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좌절할 때도 있지만, 복음의 진정한 창조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사제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 교회도 국내 노동사목뿐 아니라 이주노동자사목, 해외사목까지 광범위한 사목을 펼쳐가는 시점에서 여기 나오는 초창기 노동사제의 열정과 고난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것은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단 한 마리의 가엾은 양도 잃지 않기를….” 등장인물, 파리대교구 추기경의 유언입니다. 고인이 되신 우리의 아버지 김수환 추기경이 생각납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를 살리는 힘은 가난한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단순한 필치로 심오한 복음의 진리를 전할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좋은 피정을 한 듯한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서춘배 신부 추천사)

이 책을 지은 질베르 세스브롱은 가톨릭 운동과 인연을 맺고 청소년 범죄 문제를 다룬 <굴레 벗은 개들>, 이혼 부부의 자녀 문제를 다룬 <우리가 죽이는 모차르트>, 장애인의 문제를 다룬 <나도 역시 그들을 사랑했소> 등을 지었다.

 

<해인으로 가는 길>, 도종환 시집, 문학동네, 2006 (시집)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도종환 시인이 <슬픔의 뿌리> 이후 4년 만에 펴낸 아홉 번째 시집이다. 2004년 지병으로 교단을 떠난 시인이 보은 법주리 산방에 머물며 쓴 시편들을 엮었다. 깊은 산중에 집을 짓고 홀로 텃밭을 가꾸는 동안, 시인이 일구어 온 시간과 고즈넉한 마음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병들었던 시인의 심신은 자연 속에서 천천히 아물어 갔다. 허욕과 집착을 비우고 고통과 아픔을 삶의 축복으로 치환하는 긍정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삶과 시는 눈에 띄게 단순해지고 그러면서도 더욱 꼿꼿해졌다.

수록된 60여 편의 시는 '아름다운가게'의 홈페이지, '시인의 선물'이라는 칼럼란을 통해 정기적으로 소개된 바 있다.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의 인세는 아름다운가게에 기부되어 청소년들을 위해 쓰인다.

산경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도종환 시인은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0년 제8회 신동엽창작기금을 수상했다. 2009년 시 ‘바이올린 켜는 여자’로 제22회 정지용 문학상을 탔다. 시집에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산문집에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등이 있다. 지금은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이다.

 

<수도원 산책>, 캐틀린 노리스, 강창헌 역, 생활성서사, 2004 (산문)

   

이 책은 개신교 배경을 갖고 있는 저자가 미네소타 주에 있는 베네딕도회 성 요한 수도원에 거주하면서 수도 생활에 대한 일흔다섯 편의 다양한 고찰과 묵상을 담은 수필집이다. 이 책은 수도원 전례의 리듬을 따라서 얻은 베네딕도 수도원의 영성을 살피고 있다. 전례력에 따른 시편을 비롯해 성서를 풍부하게 인용하면서 이른바 ‘거룩한 독서’의 은총을 증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기의 삶과 연결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수많은 성인, 사상가, 예술가들의 다채로운 말과 글, 이야기들을 선사하고 있어 천천히 읽으면 그 자체로 '거룩한 독서'가 된다.

“위령의 날 분위기는 침울하다. 죽은 사람들을 위해 성무일도를 바치고 자비를 간청한다. 우리는 ‘세상을 떠난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그리고 비신자들’을 덧붙이거나, 성찬 기도문에 나오는 것처럼 ‘오직 당신만이 아시는 신앙을 지닌 사람들’과 혼란스럽고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을 첨가한다.”

이 글을 지은 캐틀린 노리스는 미국의 시인이며 작가, 베네딕도회의 봉헌자로서 노스 다코타 주의 '성모 승천 수도원'과 미네소타 주 '성 요한 수도원'에서 머물면서 얻은 영적 통찰을 이 책에 담았다.

 

<하느님의 구두>, 클리프 에드워즈, 최문희 역, 솔, 2007 (예술+신학)

   

빈센트 반 고흐가 자기만의 하느님과 영성을 깨달아가는 여정에 초점을 맞추어 쓴 평전이다. 주변의 일상적인 사물을 통해 자신의 영적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비근한 삶을 그림 속에 투사시켰던 고흐. 그가 편지와 그림을 통해 제시하는 영적 인간상을 꼼꼼하게 읽어 냈다.

고흐가 하느님이라 불렀던 것은 건강하고 인간적이며 강렬하고 솔직한 사랑과 우정, 노동이 존재하는 이 세상 위로 펼쳐진 별빛 비치는 커다란 둥근 하늘이었다. 지은이는 고흐가 남긴 회화 작품과 편지글들을 찬찬히 살피면서, 고흐의 영성이 어떤 방향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또한, 실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고군분투하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아내고자 하는 삶의 의지를 그의 그림을 통해 확인한다.

여기서 고흐의 눈은 항상 ‘일상의 거룩함’으로 열려 있다. 고흐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우리를 세속 세계의 인간적 한계 너머로 끌어 올려 삶의 상처를 치유하는 예술적 길로 안내한다. 우리는 고흐의 그림을 주의 깊게 명상하면서 우리 자신의 영혼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는 고흐의 고독한 투쟁과 나의 고뇌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발견했으며, 그가 상처 입은 치유자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이전에 내가 감히 바라보지 못했던 것을 그렸고, 내가 감히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던 것에 물음을 던졌으며, 내가 감히 근접할 수 없었던 마음의 자리에 성큼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나로 하여금 나의 두려움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고, 내가 사랑이신 하느님을 찾기 위해 더욱 깊이 또 더욱 멀리 나아갈 수 있게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헨리 나웬)

고흐의 도록에 헨리 나웬이 남긴 메모를 기초로 이 책을 지은 클리프 에드워즈는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종교역사와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와 스위스 뉴샤텔대학교, 예루살렘 히브리 유니언대학교에서 성경 및 고고학을 공부하고, 일본의 선 사찰인 대덕사에서도 공부했다. 그는 버지니아 커먼웰스대학에서 30년 이상 학생들을 가르쳐 왔으며 현재 이 대학의 종교예술학과 교수다. 저서로는 <신자의 삶과 행위>, <하늘 아래 모든 것>, <고흐와 하느님>이 있다.

 

<예수에게 도를 묻다>, 이현주, 삼인, 2005 (묵상 대담집)

   

작가이자 번역가인 저자 이현주 목사가 마르코 복음서를 한 구절 한 구절 풀어 읽은 기록이다. 책에서 예수는 '선생님'으로 등장하여 제자인 저자와 직접 대화를 나눈다. 주석서이면서 스승과 제자의 문답집이기도 한 셈이다. 동서양의 종교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복음서의 뜻과 기독교의 개념을 알기 쉽게 전달한다.

“네가 애써서 요한처럼 먹고 요한처럼 입는다 해도 네 마음이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결국 자신과 세상을 속이는 것일 뿐이다. 요한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었나에 눈길을 머물지 말고, 그가 그렇게 해서 누렸던 자유를 보고 그것을 배우도록 하여라.”

많은 이들이 이현주 목사를 이 시대의 멘토로, 영성가로 꼽는다. 글이 모이면 책을 내고, 부르는 곳이 있으면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있다. 그동안 <기독교인이 읽는 금강경>, <지금도 쓸쓸하냐>, <예수의 죽음>, <길에서 주운 생각들>, <장자 산책>, <대학 중용 읽기> 등을 썼다. 그밖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 <예언자들>, <어둠 속에 갇힌 불꽃> 등을 번역했다. <바보 온달>, <콩알 하나에 무엇이 들었을까> 등의 동화를 쓰기도 했다.

 

<성 권력 교회>, 제프리 로빈슨, 최문희 역, 2011 (신학 에세이)

   

적지 않은 사제와 수도자들에 의해 자행된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과 그러한 추행을 은폐하려는 바티칸 당국의 시도는 가톨릭교회의 가장 불미스런 추문 가운데 하나다. 1994년 호주 주교들의 논의에 따라 성추행 사건에 대응하는 소임에 임명된 저자는, 그로부터 9년간 추문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사건의 본질을 목격하며 환멸을 느낀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관리’하려 드는 모습에, 조용히 입 다물고 문제가 사라지기만을 바라는 모습에 고뇌한다. 그리고 마침내 성과 권력을 다루는 교회 태도의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절실히 느꼈다.

“완전하고 무한한 사랑을 갈망하는 우리에게 종교적 믿음은 삶에 의미를 형성하는 중요한 한 부분이다. 종교적 믿음은 삶의 큰 문제들에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해답은 사랑을 토대로 한다. 우리는 사랑에서 왔고, 사랑할 것이며, 사랑은 이 세상에 우리가 현존하는 목적이자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한 종교적 믿음을 직접 상징하는 이들에 의한 성추행은, 그 종교가 지금까지 제시해 온 대답들을 무너뜨린다.”(제프리 로빈슨)

제프리 로빈슨은 호주 시드니 대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호주와 로마에서 철학과 신학, 교회법을 전공했다. 1984년 시드니 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었으나 2004년 사임하면서 <성과 권력 교회>라는 책을 발간했다.

 

<시몬 베유 노동일지>, 박진희 역, 리즈앤북, 2012 (평전+철학)

   

예전에 <불꽃의 여자 시몬느 베이유>라는 책으로 유명해 졌던 시몬 베유의 삶과 사상을 읽을 수 있는 모음집이다. 우리 시대에 다시 시몬 베유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녀의 삶과 이상이 오직 하나의 길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시몬 베유는 모든 지성인들이 저지를 수 있는 습관적 오류에 빠져들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생각을 위한 생각, 지성을 위한 지성에 몰입하지 않았다. 시몬 베유는 자신이 납득할 수 있을 때 스스로의 의지를 완성시켰다. 괴팍하다 할 만큼 고집스러운 시몬 베유의 삶의 자세를 들여다보며 우리는 느슨한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시몬 베유 노동일지>는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노동운동가 시몬 베유의 저작 <중력과 은총>, <뿌리박기>, <신을 기다리며>와 여섯 통의 편지 등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시몬 베유의 삶과 현실>에서는 T. S. 엘리엇과 체슬라브 밀로스의 글을 통해 시몬 베유의 짧은 생애를 이해해 보고자 했고, 지인들과 부모에게 보내는 시몬 베유의 편지들을 통해 그녀가 겪었던 현실의 순간을 보여주고자 했다. 제2부 <시몬 베유의 작품과 이상>에서는 시몬 베유의 사후에 발표된 여러 글들을 편집하여 실음으로써 그녀의 사상이 어떻게 글로 표현되었는지, 그리고 그 사상의 깊이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했다.

오직 신만이, 진정한 신만이, 우주가 온 무게로 우리를 짓누를 때 균형을 이루는 추가 될 수 있다. 거짓의 신은 설사 참된 신의 이름으로 일컬어진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악은 한정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무한하다. 물질, 공간, 시간. 오직 참된 무한만이 이런 무한을 이길 수 있다. 십자가는 저울이며, 그 위에서 연약하고 가벼운 육체―바로 신이다―가 온 세상의 무게를 들어 올린다.
'나에게 지렛목을 주시오. 이 세상을 들어 올리겠소.'(아르키메데스)

십자가가 바로 이 지렛목이다. 다른 것으로는 안 된다. 세상을 들어 올리는 지렛목은 세상이 아닌 것과 세상의 교차점이어야 한다. 십자가가 바로 그 교차점이다.(시몬 베유)

시몬 베유는 프랑스의 철학자.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고등사범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져 공장과 농장의 임금 노동자로 취업했고, 스페인 내란에도 참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와 합류하고자 귀국을 시도하던 중 런던에서 죽었다. 그녀는 유대인이었지만 가톨릭 영성에 심취한 신비가였으며, 평생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들의 고통으로 아파했다. 그래서 독일 여성신학자인 도로테 죌레는 시몬 베유를 ‘우리 시대의 성인’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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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지옥문에서 하느님을 만나다
<성인 지옥에 가다>, 질베르 세스브롱, 바오로딸, 2012
2012년 07월 11일 (수) 11:04:07 한상봉 기자 isu@catholicnews.co.kr

사랑이 우리를 불태우지 않았다면
예기치 않았던 산불이 우리를 태우고 갔으리

착한 열정으로 우리가 넘치지 않았다면
이름도 모르는 파도가 우리를 휩쓸고 갔으리

가난했지만 민망할 정도로 가난하여
겨울바람도 우리의 냉기를 비켜갔지만

때 묻지 않은 마음 우릴 가득 채우지 않았다면
어지러운 바람 이 골짜기 끝없이 몰아쳤으리

도종환 시인이 지은 ‘청년’이란 시다. 시인은 민망할 정도로 가난한 가운데서도 사랑으로 자신을 불태우고, 착한 열정을 일으켜 세우며, 때묻지 않은 마음으로 가득 차길, 그 힘으로 파란만장한 바다에서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그예 몸을 다쳐 충청도 보은 산속, 해인(海印)으로 들어갔다. “해인에서 거두어 주시어 풍랑이 가라앉고 경계에 걸리지 않아 무장무애하게 되면 다시 화엄의 숲으로 올 것”이라고 했다. “그때는 화엄과 해인이 지척”이라고 했다(도종환, ‘해인으로 가는 길’ 참조). 여기서 해인이란 지혜의 바다이며, 화엄이란 실천적 삶이라 불러도 좋겠다. 해인이 성(聖)이라면, 화엄은 속(俗)이고, 해인이 종교라면 화엄은 일상이며, 해인이 하느님이라면 화엄은 그분을 드러내는 성사(聖事)다.

성인, 지옥에 가다

   

이처럼 화엄에서 해인을 보고, 해인 안에서 화엄을 만난 사제가 있다. 가난한 노동자의 얼굴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하느님 안에서 ‘지옥’으로 간 사제가 있다. 질베르 세스브롱의 소설 <성인 지옥에 가다>(바오로딸, 2012)에 등장하는 피에르 신부다. 이 책은 공장 지대인 사니 마을의 노동사제가 마침내 지옥문처럼 열려 있는 탄광촌 갱도에 이르러 '고향 같은' 하느님의 땅을 발견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세스브롱은 책을 펴내면서 “같은 언어를 가진 사람들끼리도 소통이 어렵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중재자를 죽이는 시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지라도 찢어야 하는 시대, 예수 없는 십자가가 군림하는 이 시대에 나는 어느 편에도 가담하고 싶지 않다”고 전했지만, 피에르 신부의 입을 빌어 한탄할 만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건져 올리고 있다. 세스브롱이 “이 책이 어떤 사람에게는 비위에 거슬리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결국 나이브하게 ‘복음’을 말하던 이들에게 심각한 걸림돌이 될 게 뻔한 소설이다. 그리고 고난받는 백성들과 더불어 이승을 순례하는 이들에게는 깊은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난 그분과 함께 있지 않아. 난 그분과 함께 있고 싶어, 피에르.” 전임 사제로서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혼신을 다하던 베르나르 신부가 용기를 잃고 공단을 떠나 자신이 소속되었던 수도원으로 되돌아가고, 피에르 신부가 이 마을에 파견되었다. 먼저 인근 공장에 취업해서 일하며, 퇴근 이후에 자신의 집에 모여드는 이들에게 하룻밤 지낼 숙소를 주선하고, 필요한 서류도 작성해 주고, 노동자들과 마주 앉아 조촐한 미사를 봉헌하며 이들에게서 그리스도의 눈빛을 가늠한다.

“피에르는 팔을 벌리고 웃는 얼굴로 그들에게 손짓했다. 그가 본당에 있을 때 몇 달 동안 신자들 앞에서 미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신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미사를 드렸으며, 제대에 오르는 계단과 성가대 사이에 철책이 있어 신자들과 신부를 갈라놓았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는 똑같이 피로를 느끼며 똑같은 요구를 가진 공장 친구들과 얼굴을 맞대고 미사를 드리는 것이다. 같은 손을 가진 그들, 그리스도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분이 사람들 사이에 계실 때 그분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그분의 눈빛밖에 없었다.”

노동사제 운동의 시작, ‘미션 드 프랑스’(Mission de France)

   
▲ 쉬아르 추기경(Emmanuel Suhard)은 1941년 ‘미션 드 프랑스’(Mission de France)를 설립해 노동사제를 양성했다.

프랑스에서 노동사제운동이 시작된 것은 1941년 7월이었다. 산업사회가 낳은 비참한 노동현실 속에서 빈민층과 노동자들의 복음화를 위해 파리 대주교인 쉬아르 추기경(Emmanuel Suhard)은 ‘미션 드 프랑스’(Mission de France)를 설립했다. 비그리스도교적 환경에 복음의 누룩을 심는 선교 활동이었다. 여기에 사명감을 느끼는 사제들을 양성해서 도시빈민지역이나 공단지대에 사제들을 파견했다. 이들은 직접 공장 생활을 하며 노동자들과 삶을 나누었다.

중요한 것은 사제로 대변되는 교회가 노동자들과 친밀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제들이 현장에 직접 투신한다는 의미와 그들과 나누는 우정의 중요성을 갈파하는 것이다. 시몬 베유가 <노동일기>에서 드러내고 있듯이, 직접 공장 노동에 투신해야 그들을 ‘정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해가 되어야 ‘참된 사귐이나 우정’이 가능하다. 여기서 예수회의 노동사제였던 반 브뢰크호벤 신부가 지은 <우정일기>(대구 가르멜 수녀원 옮김, 계성 출판사, 1986)의 한 대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언제 어떻게 사람들에게 가야 할지를 모색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방식이 불완전해도, 원숙하게 재검토를 못했더라도,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다. 누군가를 향하여 간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 이것만이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요, 그들 마음을 채워주고 감동과 행복을 전해 준다. 이것은 크리스챤적인 메시지, 즉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진실은 흔히, 달갑지 않은 듯한 상황에서 더 잘 증명된다. 타인들에게로 이와 같이 가는 것이 사도직이다.”

피에르 신부가 처음 입사하던 날 만난 인사과장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남겼다. “자신이 선하고 하느님이 저기 편인 줄 믿고 있는 이 외로운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다.” 그 사람은 양심의 가책 없이 자기 의무에 충실하다고 믿고 일한다. 가능한 많은 이익을 내도록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관심사이며, 그 밖의 것은 상관이 없다. 그러나 피에르가 보기에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장에서, 환기도 되지 않는 숨막히는 창고에서 죽음을 코앞에 두고 하루 끼니를 걱정하면서 일했지만 그들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살고 있어 결코 외롭지 않았다.”

이는 단지 사니의 공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공장 노동자들은 작업라인에서 다른 노동자를 협력자로, 동료로 만난다. 급기야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 유성기업과 콜트·콜텍에서 보듯이, ‘해고’라는 같은 어려움에 처할 때, 해고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을 ‘같은 고난을 넘어가려는’ 혈육처럼 느끼며, 희망버스에서 보듯이 선한 이들의 연대를 체험한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나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다른 이들의 세상마저 따뜻하게 품어낼 마음을 낸다.

이런 점에서 노동사제는 축복 가운데 있다. 그리스도가 사랑하던 그 ‘가난한’ 얼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형제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상징’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랑도 ‘상징적인 사랑’이 아니다. 그들은 구체적인 인간을 만나고, 시간과 돈과 몸을 내어놓고 구체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더 이상 사니 마을에서 선교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피에르 신부가 다시 본당으로 가지 않고 광산으로 발길을 옮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당 사제들은 너무 쉽게 강론대에서 ‘사랑’을 설교하고, 이런 관념적 사랑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하느님이 발생(發生)하지 않는다. 복음서의 최후 심판 이야기에서 예수가 거론한 것은 ‘구체적인 사랑’이었다.

그리스도인은 '양떼' 인가 '군대'인가?

이 소설에서는 본당사제와 노동사제 사이에 빚어질 만한 갈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날 그 지역의 본당 보좌신부인 르부아쇠르 신부가 피에르 신부를 찾아와 하소연한다. “전 본당에서 숨이 막혀요. 어린애들과 축구나 하고 부자들의 장례나 치러주기 위해 신부가 된 건 아닌데…….” 사제직에 대한 갈등을 빚고 있는 보좌신부 때문에 급기야 본당 신부가 본당 수녀를 대동하고 피에르 신부의 집으로 찾아왔다. ‘불안정한 사도직’으로 기울어지는 보좌신부를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것이다.

피에르 신부는 본당이 시내 중심가에 사는 몇몇 신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빈민 지역을 포함한 모든 주민들을 위한 본당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본당 신부는 “먼저 있는 것부터 지키고 구원하도록 해야지, 나머지는… 뒤에 해야지 한꺼번에 모든 걸 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난 이 본당의 양떼를 책임지고 있소. 그것을 지키고 하느님 앞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내 임무요.”
"그들은 양떼가 아니라 군대입니다. 제각기 방법이 다를 뿐이지 모든 그리스도인은 똑같은 직책을 갖고 있습니다."
“신자가 모두 ‘투사’란 말인가? 나도 알고 있소, 현대 유행어를.”
“‘구제회’라는 것이 옛날에 유행어였습니다. 그럼 아직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 ‘사도직’은 어떻습니까?”
“이 거리에서 사도직인지 뭔지는 당신 마음대로 하되 본당은 침범하지 말라는 것이오.”
본당신부의 고운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본당신부는 노동사제 베르나르 신부가 지역에서 노동자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예전에 본당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마들렌이 본당을 떠난 것, 그리고 본당 보좌신부가 ‘복음적 삶’에 대한 갈증으로 방황하기 시작한 책임을 피에르와 같은 노동사제들에게 돌렸다. 피에르 신부는 답답한 교회 현실을 생각하며 “그들의 귀를 막고 있는 유리창을 깨드릴 수만 있다면! 돈, 특권, 관습, 심지어 의무라는 이름을 가진 유리창을!”이라고 읊조렸다.

피에르 신부는 노동자가 되었다. 그리고 “경찰과 노동자, 집주인과 셋방살이하는 사람들, 기업주와 날품팔이꾼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교회나 난방이 잘 된 안락한 아파트, 하늘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공장이나 셋집이나 감옥에서는 동료를 배반하지 않고는 다른 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는 게 ‘노동자 세계’의 비극이라고 여겼다.

문득, 지난 6월 25일 명동대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 착좌식을 행한 염수정 대주교가 강론에서 “나는 특정 계층을 위한 목자가 아니라 노인에서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의 구별 없이 모든 이들이 더불어 사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라고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한 게 떠올랐다. 이런 발언 역시 안온한 교구청이나 윤택한 주교관에서나 가능한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며 슬퍼졌다. 언젠가 그도 추기경을 꿈꿀 것이다.

   
 ⓒ한상봉 기자

사제보다 아름다운 '대주교'

때로는 사제보다 아름다운 주교가 있기 마련이다. 아들보다 사랑스러운 아버지가 있기 마련이다. 사니 마을에서 동맹파업이 시작되면서 피에르 신부가 동료 노동자들과 더불어 도움을 청하러 파리의 대주교였던 추기경을 방문했다. 창백하고 마른 노인이었던 추기경에게 피에르 신부가 “죄송합니다. 피로하시다는 말씀을 듣고도…”하며 사과하자, 추기경은 “당신들은 피곤하지 않은가요?”라며 되묻는다.

추기경은 요청을 듣고서 “아버지는 특별히 한 자식만 사랑해서는 안 되는 법”이라면서 “마음속으론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강한 놈들한테 항상 맞고 아무한테도 사랑받지 못하는 자식을 특별히 더 생각하지만 겉으로는 공평해야 한다”고 말한다. 추기경은 그 자리에서 피에르 신부에게 어떤 약속도 해주지 않았지만, 본당신부들에게 기업주들의 최근 회계장부를 수집하게 하고, 이를 회계사에 맡겨 분석한 뒤에 행동할 것이라고 언질을 주었다. 일행이 떠나려고 하자 추기경은 “언제든지 오시오. 되도록 자주……” “혹시 내가 침대에 누운 채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당신들을 만나겠소.” 하였다.

다음 주일에 추기경의 명령으로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파리의 성당 문 앞에서 파업한 노동자들의 가족을 위한 모금이 있었다. 추기경의 메시지는 성당에서, 사무실에서, 술집에서, 정당에서, 살롱에서 검토되었고, 어떤 이들은 “추기경이 제 정신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수많은 신자들은 처음으로 “정치적 편견 없이” 노동자들의 조건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으로 노동자들한테서 자기의 형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 파리의 많은 주민은 새옷을 입고 승용차를 몰며 기름진 얼굴을 들고 다닐 때 그들 주변에 있는 가난하고 헐벗은 외곽지대를 언짢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 그들 가운데는 진실로 양심과 영혼의 고통을 느끼는 이가 생겨났다. 그들은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라고 자처할 수 없게 되었다.” 

"대주교님, 며칠 동안만 저희 사이에서 살아보시면…"

그러나 이윽고 추기경이 이승을 떠나고 새로운 교구장이 임명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새로운 대주교는 피에르 신부를 불러 제일 먼저 “몇 사람이나 세례를 주었소? 몇 사람에게 혼배성사를 주었고 미사에는 몇 명이나 모였소?”라고 물었다. 피에르 신부는 “매우 소수입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형제애가 싹트고 이해관계를 떠난 생활태도와 사랑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바로 복음을 살고 있습니다. 그 밖의 것은 자연히 따라올 것입니다. 대주교님, 며칠 동안만 저희 사이에서 살아보시면… 공장에서, 식당에서, 셋방에서, 회합에서… 아, 정말로 온 마을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하고 전했다.

그러나 “우리는 초대교회에 살고 있는 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대주교는 “그분은 죽음까지도 순명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오! 피에르 신부, 질서문란은 위험한 함정이오. 그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니오?”라고 질책했다. 결국 피에르 신부는 사니 마을을 떠나야 했다. 후임으로 전에 본당보좌였던 르부아쇠르 신부가 노동사제로 부임한다는 전갈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혼신을 다해 일했던 사니를 떠나야 한다는 게 피에르 신부에게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피에르 신부는 베르나르 신부처럼 수도원으로 달아나지도, 안온한 본당사제를 택하지도 않았다. 그가 추운 겨울을 택해 힘차게 돌아서서 간 곳은 ‘지옥문’이었다. 탄광촌이었다.

지옥문에서 '다시' 만난 하느님

피에르 신부는 어린 시절부터 지옥의 영상으로 머릿속에 새겨진 탄광 갱도를 바라보았다. 지옥의 문에서는 눈만 하얗게 드러난 시꺼먼 광부들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자신의 상복을 입은 사람들, 그들의 발밑에 쌓인 석탄 먼지가 버석버석 소리를 냈다. 가장 불행한 이들에게로 가서 하느님을 다시 만나기로 작심한 노동사제 피에르.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반백의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무슨 용건이오?”
“일자리가 있습니까?”
“갱에 들어갈 수 있겠소?”
“네.”
“자리는 언제나 있지.”

어차피 예나 지금이나 ‘복음적 명령’을 따르는 이들은 소수다. 주교거나 사제거나 수도자거나 평신도거나 아무 상관없다. 김수환 추기경 마저 ‘복음적 청빈’을 살고자 했으나 용기가 부족했던 자신을 질책한 적이 있다. 주교들도 우리 안에 매인 양떼를 지키거나 우리 안에 더 많은 양들을 집어넣으려고 애쓸지언정, 우리 밖의 사정에 대해서는 무감하기 쉽다. 사제들 가운데 본당 살림 먼저 챙기고서 여유가 생기면 지역사회를 돌아보리라 마음‘만’ 먹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이들’과 ‘복음’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의심하지도 않는다. 종교를 부적처럼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다. 액땜을 하려고 봉헌금을 내고, 사제 생활을 철밥통으로 여기고, 짐짓 점잖은 체 하지만 결국 암투를 통해 주교좌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편에서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겸손’으로 언제나 낮은 곳으로 내려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던 백성을 나도 사랑한다”고 몸으로 증거하는 이들이 있다. 이를 두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눈먼 풀포기도 돌 사이에서 돋아날 것이고 슬픈 새도 우짖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 그리스도 역시 그런 슬픈 눈매를 가진 이들 가운데 한 분이셨다. 그분 역시 지옥문(화엄, 華嚴)에서 해인(海印)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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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구의 사냥꾼입니까, 지구의 동반자입니까?
환경·생태 지킴이 황창연 신부의 환경 에세이 ... <북극곰! 어디로 가야 하나?>
2012년 06월 19일 (화) 17:05:54 한수진 기자 sj1110@catholicnews.co.kr

최근 동해안에서 식인상어가 잇따라 발견됐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수온이 오르면서 동해안에서까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유엔환경계획은 이번 달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지구 환경이 생물학적 한계점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해수면 상승과 잦은 홍수와 가뭄, 동식물의 멸종 증가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의 조짐이라고 경고했다. 도대체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환경전문가이자 강원도 평창에서 성필립보생태마을 관장을 맡고 있는 황창연 신부의 환경에세이 <북극곰! 어디로 가야 하나?>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구온난화부터 환경호르몬, 자원고갈, 원전 사고에 이르기까지 하루도 미뤄서는 안 될 환경문제를 빠짐없이 다룬 이 책은 일반인을 위한 환경입문서로도 충분하다.

1986년 체르노빌 사건을 계기로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저자는 지구 환경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해 환경공학을 공부했다. 신학교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한 인문학도가 공학도로 변신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생태마을을 운영하며 얻은 생활 속 경험들은 황 신부 특유의 입담을 거쳐 환경 문제를 일반인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도록 만드는 토대가 됐다.

‘노아의 방주’를 준비해야 할 만큼 심각한 지구의 상태

저자는 본래 책 제목을 ‘노아의 방주’로 쓰고 싶었다고 한다. 방주를 준비해야 한다고 외치고 싶을 만큼 현재 지구의 상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황 신부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로 꼽았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내려 작은 얼음 조각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북극곰의 사진을 표지에 넣은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물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샤워하고 난 물을 모아 변기에 사용한다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부터 무심히 버리는 담배꽁초가 산불로 이어진다, 농약을 뿌리면 땅이 죽고, 흙 속 생물이 죽고, 인간도 죽는다, 전기를 아껴 쓰면 원자력 발전소 사용도 줄일 수 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목욕 가방을 들고 다녀라 등 줄줄이 이어지는 황 신부의 잔소리를 읽다 보면 환경 문제가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음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황 신부는 “모든 환경 문제는 나에게서 시작된다”고 책 전반에 걸쳐 호소한다.

   
▲ <북극곰! 어디로 가야 하나?> 저자 황창연 신부

교회가 예언자로서 지구 환경 문제에 앞장 서야

또한, 저자와의 공동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황 신부는 환경 문제에 있어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종교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천주교와 개신교, 불교 모두 교계 확장에만 관심을 갖고 지구 환경 문제는 관심이 없다. 교회는 바로 지금 예언자로서 지구 환경 문제에 앞장 서야 한다. 교회 건물을 짓는 데 몰두할 것이 아니라, 자연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 지를 뼛속 깊이 깨닫고 알려야 한다.”

물론 책 속에 환경오염에 대한 경고와 잔소리만 가득한 건 아니다. 황 신부 스스로 “자연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환경 보호 운동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다”고 이야기 했듯이 그가 대한민국 곳곳을 돌며 보고 느꼈던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 대한 찬사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편, 출판사 바오로딸에서는 <북극곰! 어디로 가야 하나?> 출간을 기념해 UCC 공모전을 개최한다. 25작품을 선정해 황창연 신부가 운영하는 성필립보생태마을 2박 3일 가족 무료 체험권을 시상한다. 응모 기간은 7월 31일까지이며, 자세한 내용은 바오로딸 인터넷 서점(www.pauline.or.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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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일이고 하느님은 어디에?
[생활하는 신학-이연수]
2012년 02월 28일 (화) 09:55:13 이연수 .

   
▲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구엔 반 투, 바오로딸
“왜 그토록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일(사업)을 구분해야 한다. 네가 마친 일과 계속해서 하기를 바라는 모든 것, 곧 사목 방문과 신학생과 수도자, 평신도와 젊은이 양성, 학생들을 위한 학교와 휴게실 건설, 믿지 않는 이들의 복음화 사명은 훌륭한 하느님의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아니다. 하느님께서 네가 이 모든 것을 포기하길 바라신다면 즉시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하느님을 믿어라! 하느님은 그 모든 것을 너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하실 것이다. 그분은 네 일을 너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맡기실 것이다. 너는 하느님을 선택했지 하느님의 일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이 글은 공산화된 베트남에서 13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그 가운데 9년은 창문도 없는 감방에 격리된 채 독방 생활을 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구엔 반 투안 추기경의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한림대 가톨릭교수협의회 옮김, 바오로딸, 2011, 64쪽)라는 책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당시 젊은 주교였던 그는 8년 동안 사목 현장에서 쌓아 올린, 하느님을 위해 시작한 수많은 사업이 수포로 돌아가고 교구를 포기해야 한다는 상념으로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느 날 밤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온 소리로 말미암아 내면은 평화를 찾는다.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을 택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적 삶의 뿌리가 된다고 말하는 그.

당신을 위해서 일하고 싶어요

이 책에서 반 투안 추기경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그리스도적 신앙이 전하는 희망을 줄곧 얘기한다. 그 희망으로 말미암아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미래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을 영원처럼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앞서 인용한 글을 보면서, 지금의 나는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에 희망을 두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세례를 받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자기 전에 촛불을 켜고 기도하고 싶어졌다. 책상에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데, 뜬금없이 ‘당신을 위해서 일하고 싶어요, 당신의 도구가 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내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다. 벽에는 나의 실루엣만 촛불에 비쳐 크게 보일 뿐이다. 왜 이런 기도가 나왔지, 나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는데, 하며 서둘러 기도를 끝냈다. 당시만 해도 나는 학부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있었을 때였다. 계속 그 전공을 살릴 계획이기도 했고.

며칠 뒤, 나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개신교 친구에게 이 ‘기이한’ 체험을 얘기했다. 친구 말로는, 그런 기도는 잘 나오지 않는데, 하느님이 쓰시려나 보다, 한다. 그런가, 하며 웃어 넘겼던 순간. 지금 나는 그분을 위해 일하고 있나, 아니면 그분의 일을 위해 일하고 있는가. 헛갈린다.

하느님인가 하느님의 일인가

신학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신학’이야말로 신에 관한 학문이니 하느님을 위해 공부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세례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린 기도가 이제야 효력을 드러낸다면서 말이다. 교회 안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열심히 하느님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느님을 위해 사람들이 펼쳐 놓은 하느님의 일이다. 하지만 하느님을 교회 안에 고이 드러낼 수 있는 하느님의 일은 내게 하느님을 택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느님과 하느님의 일은 동격이었고, 따로 떼어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일 속에서 하느님은 자꾸 일에 치여 뒤로 젖혀지기만 한다. 하느님보다는 일이 먼저여서다.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숨어 있는 하느님을 보지 않았다. 하느님의 거룩한(?) 일을 한다며, 사람을 하나둘 내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무슨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인가. 심지어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마저 잠시 다른 데 갔다 오시라며, 내몰기까지 했다. 하느님의 일을 한다며 나를 한껏 드러내고 싶은 욕망 앞에서, 내 안의 하느님은 주춤하고 다른 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은 아파하시고. 에고고. 이게 무슨 하느님을 위한 일이라고. 내 멋대로 생각하고 행하는 하느님을 위한 일이지.

하느님은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이제 당신을 제자리에 있게 해달라고 내게 말씀하신다. 당신의 일을 한답시고, 사람들끼리 싸우는 꼴 못 보시겠단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당신을 위한 건지, 당신의 일을 위한 건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당신과 당신의 일을 구분하는 거리두기를 하면 될까? 답을 알려 주시면 좋을 텐데 ….

이연수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연구이사. 가톨릭대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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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은 자신을 ‘마리아의 종’으로 봉헌했다
[가톨릭도서관 나들이] <여성과 그리스도교 3>, 메리 T. 말로운, 바오로딸, 2011
2012년 02월 09일 (목) 15:07:32 한상봉 기자 isu@catholicnews.co.kr

메리 말로운(Mary T. Malone)의 <여성과 그리스도교> 제3권이 바오로딸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 전승에서 잃어버린 여성의 역사를 발굴해 냈다는 점에서 ‘교회 안에서 여성의 신원회복’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에 출판된 3권은 종교개혁부터 21세기까지 여성 그리스도인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특별히 근대에 들어서 가톨릭교회가 성모발현과 성모신심에 대한 교의적 선언을 통해 마리아시대를 열어간 것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마리아신심은 교회 안에서 '원없이 잉태하신 마리아'와 '성모승천' 교의와 관련해 '믿을 교리'로서 진보적 신학계에선 여전히 쟁점이 되고 있으며, 특히 성모신심을 둘러싼 그릇된 신앙과 사적계시 문제로 한국교회마저 소란에 휩싸이고 있는 상황이다. 띠라서 2006년에는 한국 주교회의 교리신앙위원회에서 <올바른 성모신심>이란 책자가지 발간했다. 

프랑스혁명으로 더욱 촉발된 교황권주의와 신심운동

   
메리 말로운은 “성모 마리아를 여성적 삶의 가장 완벽한 전형으로 드높인 1850년부터 1950까지 한 세기를 ‘마리아시대’라고 이름 지었다. 그 고비는 1789년 프랑스혁명이었다.

프랑스혁명 이전까지 로마 가톨릭교회는 귀족적인 위엄있는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절대군주들과 맺었던 동맹이 다소 삐그덕거리기는 하였지만 가톨릭국가에서 교회는 교육과 환자치료를 독점하고, 세금을 면제받았으며, 어떤 통치자도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귀족정치아래서 주교들은 ‘성사집행보다 교구를 다스리는데 더 치중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프랑스대혁명은 프랑스 가톨릭교회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교구민과 시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57개 교구가 압박을 받았으며, 교황은 대주교 정도로 강등되고, 모든 사제는 시민법을 존중한다는 선서를 강요받았다. 그러나 교회는 사라지지 않았고, 나폴레옹은 다시 상황을 바꿔놓았다. 오히려 그 후로는 교황권 제한주의에서 교황권 지상주의로 돌아가고, 인간의 타락이야말로 참된 현실이며 오랜 통제수단이 더 안전하다는 보수적 견해가 힘을 받고,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에서 일어난 마리아 발현은 가톨릭교회를 새로운 열정으로 채웠다.

로마는 많은 이를 계몽주의가 낳은 의심의 고통에서 구해주었고, 모두가 안심하고 안길 요새를 제공하는 듯 했다. 또한 로마는 서둘러 요새를 떠나려는 자들에게 ‘지옥의 두려움’이라는 오래된 위협을 다시 가동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후 100년간 교황권은 대중에게 점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점점 더 많은 성인(聖人)들을 공급하고, 새로운 신심형태를 만들어갔다. 동정 마리아에 대한 신심, 티 없으신 성모성심과 거룩한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 특히 감실 안에 계신 성체께 대한 신심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리고 교황은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겨지는 대상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 연장선에서 교황은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황 무류성 교의를 선포할 수 있었다. 이로부터 가톨릭신자들은 교황이 ‘지상의 그리스도’라는 주장을 조건 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갔다.

1854년에는 성모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가 선포되고, 1862년과 1865년에는 몇 천 명의 주교와 사제와 평신도들이 로마에 모여 대규모 축제를 벌였다. 1864년에는 근대세계에 반대하는 교황선언인 <오류목록>(Syllabus of Errors)을 반포했다. 이것은 철학, 과학, 문학, 신학 분야에서 이룩한 대부분의 진보를 단죄한 80개의 명제로 구성된 문서다. 범신론에서 성경 연구모임까지, 시민학교에서 교회일치운동까지, 표현의 자유에서 여러 다른 종교형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단죄했다. 이 문서는 교황좌만이 거룩한 것을 선언할 독점권을 지녔으며, 교황은 진보의 흐름에 발맞춰야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마리아시대, 은총의 통로가 된 성모

   

말로운은 가톨릭교회가 여성해방운동에 맞서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마리아’가 유효하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전했다. 19세기 가톨릭교회는 여성해방운동에 거의 공감하지 못했으며, 1885년에 레오 13세 교황은 회칙 <불멸의 하느님>(Immortale Dei))을 반포하면서, 히포의 아우구스티노를 인용해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구절을 상기시켰다.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에서 여성을 공장에서 중노동 시키는 것을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여성은 집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가톨릭여성을 복종시키는데 효과적인 처방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야말로 가장 엄청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은 마리아를 그리스도의 은총에 다가가는 ‘통로’로 여겼다.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께로’(ad jesum per Mariam)은 수많은 신자가 선택한 기도의 길이었다.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인 까닭에 ‘공동구속자’로 공경 받았다. 천사가 예수의 탄생 예고 때 말한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루카 1,28)라는 구절을 두고, 마리아가 은총을 선물로 받았으므로 은총을 나누어주는 지위를 얻었다고 믿었다. 아울러 ‘미리암’이라는 성경의 젊은 유다여성 마리아는 잊혀버렸다.

이 당시 루터와 에라스무스는 주석을 통해 ‘은총이 가득한 이여’를 뜻하는 케카리토메네(kecharitomene)는 마리아가 그녀 이전의 다른 많은 인물들처럼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는 뜻일 뿐이라고 밝혔으나, 오히려 가톨릭교회에서는 종교개혁 시대 이후에 호교론적이고 승리주의적인 마리아신심이 늘어났다.

가톨릭은 개신교의 공격 앞에 마리아의 명예를 방어했으며, 여러 마리아 신심단체를 조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명칭은 하나같이 군대식이었다. 푸른군대, 무염시태 국민군, 레지오 마리애(‘마리아의 군단’이라는 뜻)가 그것이다. 특별한 축일에 묵주기도로 마리아에게 영광을 돌리는 풍습이 생겨났고, 마리아를 공경하는 축일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성모마리아, 사제를 유혹하지 않는 여성이며, 위로를 주는 중개자

   
▲ 루르드의 성모 발현.

프랑스 마리아론자인 베륄, 올리에, 외드는 각자 고유한 마리아론을 주장했는데, “사제는 마리아와 혼인해야 하고 성모성심을 예수성심과 똑같이 공경해야 한다”고 했다. 그 결과 많은 사제들이 자신을 ‘마리아의 종’으로 봉헌했다. 18세기 중엽 알폰소 데리구오리는 <마리아의 영광>을 출판해 “마리아는 밟아 누르는 여 지배자”이며 “모든 은총은 그분을 거쳐 나온다”고 주장했다.

1846년에 비오 9세가 교황으로 선출된 뒤로 잇달아 마리아발현이 일어나면서, 이런 분위기가 열광적이 되었다. 첫 번째 발현은 1830년 파리에서 가타리나 라부레 수녀에게서 일어났다. 가타리나 수녀는 환시를 열망하며 수도회 창립자인 빈첸시오 드폴의 유물인 리넨천을 가슴에 품고 살았는데, 어느 날 수도원 성당에 비단옷을 입고 하얀 베일을 쓰고 발아래 초록과 노란색이 섞인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밝은 빛이 가타리나 수녀를 향해 흘러나왔는데 ‘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지하는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고 전한다. 그 여인은 가타리나에게 ‘메달’을 만들라고 지시했는데, 그 이듬해 이 메달이 온 세계에 퍼져나갔다. 한편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를 선포했다. 직후인 1858년에는 루르드에서 시골소녀인 벨라뎃다에게 마리아가 발현해 자신을 ‘원죄 없으신 잉태’라고 소개했다.

1879년에는 아일랜드 노크에서 또 다른 성모발현이 발생해 이 지역에 국제공항이 생길 정도로 순례자가 붐볐다. 마지막 발현은 1917년 포르투갈의 파티마에서 나타났는데, 이곳은 교황한테만 전하라는 비밀 메시지 때문에 유명해졌다. 훗날이 이러한 발현들은 메주고리예 발현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성모발현은 아니지만 나주 성모 등 마리아를 둘러싼 기적 시비와 사적 계시 문제로 진통을 앓고 있다.

말로운은 1950년 12월 8일에 있었던 성모승천 교의 선포로 마리아 찬양시대가 막을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는데, 이 성모승천 교의를 두고 심층심리학자인 칼 융은 ‘여성성의 신격화’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마리아시대는 지배하는 남성과 특유하게 영광을 입은 여성이라는 매우 다른 두 인간성의 이분법이 승리한 때이며, “마리아는 성과 상관없는, 육체에서 이탈한 순수함을 지닌 채, 여성들이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본보기”로 제시되었다.

사실 사제와 일반 신자는 각기 다른 이유로 이러한 마리아 이미지가 필요했다. 사제는 안전하고 완벽하게 순수한 여성의 이미지로 마리아가 필요했는데, 이 이미지는 사제직무를 수행하면서 만나는 유혹적일 수 있는 여성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일반 신자들은 자신의 곤경을 이해해 주며, 접근할 수 없고 두려움을 안겨주는 남성 신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게 해주는 ‘둘째 신성’으로서 여성 이미지가 필요했다. 여기서 나오는 게 ‘중재자인 마리아’다. 이처럼 마리아 이미지는 아름답고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심할 바가 없으나, 마리아를 역사적 진공상태로 존재하게 만들어 실제 마리아의 삶은 성모발현 이야기보다 신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여성이 없이 교회유지도 어렵지만, 여성은 '영원한 조력자요 보조자'

   
한편 아일랜드의 마리아신심은 여성들에게 쌍날칼로 작용했다. 성모신심과 관련된 행렬과 순례, 9일기도, 5월과 10월의 신심행사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일상에 찬란한 빛깔과 흥분,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이 행사들은 쌓여 있는 집안일에서 여성을 해방시켜 주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러나 마리아신심은 다른 한편 교회가 특정한 어머니상을 고착시키는데 기여했다. 어머니는 성과 무관한 피조물로 여겨지고, 가정에 머물며 자녀들의 종교의식을 책임져야 마땅했다. 여성은 고통을 참는 능력인 인내, 침묵, 눈에 보이지 않는 투쟁 안에서 그리스도의 이상적 모방자로 마리아처럼 추앙되었으며, 이런 생각은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 이르기까지 반복되었다.

오늘날 남자들이 교회를 포기하고 정치권력과 경제적 성공에 매달리는 사회에서 여성은 역사상 처음으로 교회 안에서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여성은 성경을 공부하고 육아와 선교를 수행하며, 수많은 자모회와 선교회, 본당에서 활동하면서 엄청난 시간과 돈을 기부해 왔다. 이처럼 교회에서 여성들이 없으면 그리스도교가 살아남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으나, 여성에 대한 교회의 갖은 찬사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자기 생활과 교회 안에서 결정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그들은 다만 영원한 조력자요 눈에 안 띄는 보조자로 머물 때 마리아를 닮은 그리스도인으로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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