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당신이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요한13,6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요한 13,7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요한 13,8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15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3,34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행위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파견되신 이유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파견되신 이유는

죄의 노예 상태에 있는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어준 행위는,

곧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심을 상징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를 제거할 수 없고,

우리의 죄는 예수님에 의해서만 씻김 받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으실 수 없다면,

베드로의 죄는 씻김을 받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있어서,

결과적으로 그는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은, 곧 예수님과 같은 몫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목욕을 한 이는 온 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목욕을 한다는 것은 세례성사의 의미를,

발 씻김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이뤄지는 죄의 씻김을 상징한다.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용서받는

차원의 의미로 고해성사를 상징한다.

 

봉사(섬김)에 대한 성찰

잠들어 꿈꾸었네, 삶은 기쁨이라는 것을.

잠에서 깨어 깨달았네, 삶은 섬김이라는 것을.

행하면서 보았네, 섬김은 기쁨이라는 것을. _타고르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1

_ 송봉모 신부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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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마 수녀의 신나는 성경공부]<10>가장 큰 사람(마르 9,33-37)

스스로 낮추고 섬기는 위대한 삶

▲ 영화 '마르첼리노의 기적' 포스터.


예수님이 높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마르코 복음 9장에는 제자들의 무능력이 드러난다. 예수님이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했음에도 제자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제자들은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인지에 너무 관심을 갖고 있었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하면서 수난과 죽음에 대해 세 번이나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런 가르침이 제자들의 마음속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예수님 말씀에 힘과 권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자들이 딴생각을 하고 있어서다. 마음 깊이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나와는 다른 사람에게 해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자들은 많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고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에게 십자가와 죽음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따라다니는 예수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가 오면 예수님 옆에는 누가 앉을까에 더 관심이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예수님과 생각이 너무 달랐다. 그 제자들 모습이 우리 모습이다. 우리는 신앙생할을 열심히 하면서도 예수님 생각 따로, 우리 생각 따로인 것처럼 행동한다. 야고보와 요한은 수난을 당하려고 예루살렘에 가시는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르 10,37)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그 길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제자들의 알아듣지 못함이 내 모습은 아닌가 생각해보자. 세속적인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현세적 축복을 기대하는 제자들처럼 예수님이 아무리 당신 수난과 부활을 이야기하셔도 알아듣지 못한다. 예수님이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것은 당신의 죽음이 실패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자원하셨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두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용기를 주고자 하셨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통치자가 되시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자기들은 마땅히 그 다음가는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 마음은 어땠을까.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마르 9,33-34)

 그러나 제자들은 거리낌이 있어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설명해주신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신다. 삶을 진정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은 나눔의 삶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

 예수님은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가운데 세우신 다음, 어린이를 껴안으면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 9,37).

 어린이들은 서슴없이 예수님에게 간다. 이익을 따지지 않고 예수님께 곧장 갈 수 있는 마음은 우리 안에도 있다. 많은 사람이 통상적으로 천진무구하다. 예수님은 하느님 앞에서 가장 미소한 이의 상징이 어린이라고 말씀하신다. 

 영화 '마르첼리노의 기적'을 보면, 주인공 마르첼리노가 수도원 앞에 버려져 있다. 수사들은 마르첼리노를 데려다 키웠다. 수사들은 마르첼리노에게 다락방에는 올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마르첼리노는 다락방에 올라간다. 다락방에 올라가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고 마르첼리노는 놀란다. 옷을 걸치고 있지 않은 예수님에게 마르첼리노는 "예수님 춥죠? 예수님 배고프죠?"하고 묻는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어 마르첼리노가 가지고 온 빵을 같이 잡수신다. 우리 마음에도 분명히 예수님을 직면할 수 있는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이 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 눈에서 의심 없이 순수한 믿음을 보셨다. 어린이들처럼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갖고 살 때 누구라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선언하셨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스스로를 낮추고, 하느님의 종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분의 이름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어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 예수님은 가장 큰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대답해주셨다. 섬기러 오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느님과 이웃에게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진정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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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job coaching 2013.09.20 18:37 신고

    행복 경제학은 공공 정책의 성공을 평가할 때 공공 행복의 조치가 전통적인 경제 조치를 보완하기 위해 사용되어야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감사합니다.

[화제의 책] 내 마음의 도덕경 / 김권일 신부 지음

 

도덕경에 담긴 철학·사상,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

발행일 : <가톨릭신문> 2013-07-14 [제2854호, 17면]


김권일 신부 지음/187쪽/1만 원/바오로딸

 



빠르게 달리면 달릴수록 우리의 시야는 좁아진다. 우리의 삶 속에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가득하지만, 무한 경쟁에 떠밀려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어느 순간 왜 달리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불안해 하고 있다.

이런 현대인들에게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을 철학적 소재로 삼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사유세계로 이끌어 주는 것이 「내 마음의 도덕경」의 매력이다.

저자는 생태적 감성과 영성, 그리고 치유를 요구하는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도덕경」에 담긴 철학 사상을 재해석해 쉽게 소개하고자 했다.

서양 철학가들의 생각과 저자 자신이 일상에서 느낀 점, 성경 말씀을 부드럽게 조합해 「도덕경」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다.

서문에서 현대인들이 「도덕경」을 찾는 이유와 「도덕경」이 갖고 있는 매력 등을 설명한 저자는 이어 ‘도’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후 ‘청정한 빈 마음과 득도’, ‘섬김과 살림살이를 위한 무위’, ‘우주의 꼴과 인생의 멋’, ‘사색의 길에서 만난 내 자신’ 등에 대해 심오하지만 어렵지 않게 덤덤히 이야기를 풀어놓고, 「도덕경」의 형성에 관한 해설로 마무리를 짓는다.

김권일 신부는 1958년에 태어나 1988년 사제 서품을 받고 타이완 푸런대학교 철학대학원 석·박사 과정에서 동서 비교철학을 전공했다. 2001년부터 2012년까지 광주가톨릭대학교 철학교수로 재직했으며, 2012년 9월부터 광주 월곡동본당에서 사목을 하며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nicolao@catimes.kr)

 

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56388&ACID=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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