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대자연이 
인간의 욕심과 온갖 공해로 파괴되고 있사오니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보존하여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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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문화산책]<13> 영화(3)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하느님을 목말라 하는 인간


자신의 욕망과 어둠 극복하고 하느님 만나는 영적 여정

 

우리는 늘 인생이라는 화두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내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그 삶을 살아온 시간과 공간 속 이야기는 흥미롭기 마련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2012, 감독 이안)는 그런 면에서 자기 자신과의 싸움 같은 시간성과 그만이 소유한 공간 체험이 무엇을 말해주는지에 대한 길고도 지루한 여정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영화 속 파이를 보고 있으면 '만약에 내가 저 주인공이 된다면…'이라는 가정법 상황에 묶이는 매력에 2시간 내내 빠져들게 된다. 죽음의 경지를 체험하고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산 자들의 처지도 결국은 주인공과 같은 삶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존재라는 아이러니한 진리를 수긍하게 한다. 인간 속에 낯설게 펼쳐 놓은 역동적인 하느님 마음이 드러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줄거리

인도에서 자라 힌두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을 모두 믿는 소년 파이의 원래 이름은 '피신 몰리토 파텔'이다. 그 이름이 영어로 '오줌 싸다'라는 뜻의 '피싱'(Pissing)과 발음이 비슷해 '오줌싸개'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피신 몰리토 파텔'이란 이름이 수학적으로 원주와 지름의 비율을 뜻하는 '파이', 곧 수학적으로 정의되지 않는 무한소수인 파이라는 뜻을 지닌다고 설득해 결국 '전설의 파이'로 불린다. 그의 부모는 동물원을 운영하던 중 정부 지원이 끊기자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 동물들을 싣고 캐나다로 항해하던 중 폭풍우에 화물선이 침몰하고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탄 파이만 목숨을 건진다. 결국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파이만 보트에 남아 망망대해에서 천신만고의 기로에 서게 된다.

폭풍우 속에서 파이가 하느님께 소리치고 있다.  

폭풍 후 평온한 바다에 있는 파이. 

길들인 호랑이와 있는 파이.

목마름

마마지에게서 하느님의 존재를 믿게 할 이야기라는 소개를 받은 캐나다 작가는 파이의 체험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은 생의 극한 상황 속에서 만난 하느님과 자신과의 이야기이다. 영화분석학적으로 말한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보는 이들이 처한 현실과 맞물려 다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암시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어떤 사투 속에서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깨끗한 영혼을 갖고 싶다면 피신 몰리트 수영장에서 수영하라는 마마지의 말을 되새기며 어린 파이는 수영을 배우는 중에 해치는 것은 무엇이든 공포심을 갖게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를 통해 영화는 무한하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파이는 먼저 힌두교를 통해 하느님을 소개 받고 알라신을 통해 기도하는 법을 배운다. 어린 파이가 성당에서 성수(聖水)를 마실 때 신부님은 "목마르겠구나"하고 말하는데, 마실 물을 주는 장면에서 성수는 하느님 생명과 은혜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파이가 호랑이에게 지어준 이름이 '목마름'이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점이 복선으로 깔려 있다. 인간은 언제나 하느님에 대한 목마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시편구절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왜 자기 아들을 보내서 인간의 죄 때문에 고통 받게 해요?
 -우릴 사랑하셔서 그런것이지. 인간 모습으로 오신 거야. 우리 인간들은 전능하신 주님을 이해할 순 없어도 예수님과 그분의 고통을 이해할 순 있으니까.

 -인간의 죄를 위해 아들을 희생시킨다구요? 무슨 사랑이 그래요?
 (예수님이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파이는 그 이후 예수님의 존재를 지울 수 없었다. 파이는 세례로 하느님 자녀가 돼 믿음의 여행, 하느님과 만나는 영적 여행을 떠난다.
 
자신과의 끊임없는 투쟁

인간은 엄마의 아늑한 에덴과 같은 자궁 속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파이에게 더 이상 그 같은 낙원은 없다. 어둔 밤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 파이는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홀로 남겨진다. 작가는 파이와 호랑이가 자기 자신이었다고 말한다. 호랑이 눈에 비친 것은 파이의 욕망이고, 호랑이는 하느님께 나가는 영적 여정 중에 만나게 되는 내면의 투쟁이자 어둠이다. 끊임없이 일어서는 욕망은 살아남기 위한 자기와의 싸움, 어쩌면 프로이드가 말하는 무의식 속에 자리를 틀고 있던 이드(id)를 거세하고 훈련된 자아, 초자아에로 승화하는 내면의 작업을 뜻한다고도 보겠다. 무엇에 잡혀 먹히느냐에 따라 나는 참 자아의 성장과 평화라는 항구에 빨리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이 주시는 위로

폭풍우가 물러가고 바다 위엔 오렌지 빛 햇살이 찬란한 장면이다. 바다 위에 떠있는 보트를 버즈 아이 뷰(bird's eye view)로 보여준다. 하느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화의 상징이다. 우리는 고요 속에서만 진정한 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주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호랑이는 계속 으르렁 댄다. 아직 내면의 나는 욕망과 맞서고 있음을 직시하고 파이는 하느님과 대화한다. "하느님이시여 절 받아 주소서. 전 당신의 종입니다.… 보여 주세요."
 
나 자신 길들이기

파이는 서바이벌 가이드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배운다. 식사와 휴식, 마음의 여유 등 체력이 고갈되지 않도록 애쓰면서 무엇보다도 호랑이를 다루는 법, 소통 훈련에 심혈을 기울인다. 내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읽고 조절하는 비유적 훈련이다. 무조건 방어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호랑이와 교감하기 위해 호랑이를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엄한 조련사처럼 먹이를 낚는 법도 교육시킨다. '리처드 파커가 없었다면 난 죽었을 거다. 난 녀석을 보며 긴장했고 녀석을 돌보는 것에 삶의 의미를 뒀다. 무엇보다 희망을 잃어선 안 된다'며 파이는 그의 존재에 감사한다.
 
전부 다 내려놓고

그나마 잔잔하던 삶에 다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반전 상황이 벌어진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쓰고 있던 사투의 기록 쪽지가 날아가 버린다. 자신의 과거마저 놓아버린 파이는 하느님께 외친다. "하느님 전 가족을 잃었어요. 전부 다 잃었다고요. 굴복했잖아요.…"

폭풍 속 밤하늘엔 한 줄기 빛이 환하게 비추고 번개가 번쩍인다. "하느님이 우리한테 오셨어. 이건 기적이야." 파이의 고백이다. 우리의 영적 위기와 믿음의 시련 속에서도 당신을 보여주신다는 중요한 장면이다. 이제 의존할 것을 모두 잃은 파이를 버즈 아이 뷰(bird's eye view)로 망망대해의 아주 작은 보트에 떠있는 것을 연출한다. 무한한 하느님 앞에 놓인 인간 모습이다. 폭풍우가 지난 뒤 파이는 쓰러져 있는 호랑이 머리를 무릎에 올려놓고 쓰다듬는다. 영적 투쟁에서 포효하던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자기 힘에 의존했던 기운이 빠져나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납죽 엎드린 상태, 그제야 하느님이 자신의 삶을 이끌어줌을 느낀다. "하느님 절 창조해주셔서 감사해요. 이젠 돌아갈 준비가 됐어요." 그리고 화면은 검은색으로 변한다. 죽음을 지나 하느님의 빛 속으로 옮겨 가는 순간이다.
 
지켜보고 계시는 하느님

보트 머리에 누워 있는 파이 얼굴에는 눈부신 햇살이 비치고 식충 섬에 도착한다. 파이는 이곳에서 사랑했던 아난디가 준 팔지를 풀어 나무에 묶어놓는다. 아난디와의 인연마저 놓아준다. "하느님이 날 버리셨다 생각했는데 지켜보셨던 거죠. 내 고통에 무심하다 생각했는데 지켜보신 거죠. 구조될 희망을 버렸을 때 휴식을 주시고 여행을 계속하라는 계시를 내리셨죠"하고 파이는 중얼거린다. 죽은 듯 늘어져 있던 파이는 멕시코 해변에 도착한다. 그의 험난한 여정은 끝나 보인다. 하느님의 따뜻한 품속에 안긴 듯한 마지막 그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나를 잡아먹으려던 잔인한 친구는 내 삶에서 영영 사라졌죠. 영영 자취를 감추고 말았죠."
 
이젠 당신의 스토리

'라이프 오브 파이'는 얀 마텔의 원작 소설 '파이 이야기'를 리안 감독이 3D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줄거리 자체가 개연성과 일관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서사로, 이성과 마음, 동물과 식물이 공존하고 여러 종교와 우주가 공존하도록 펼쳐진다. 모든 것을 열어 놓은 채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한 소년이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다 구조된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가 있고, 성장한 파이가 과거를 회상하며 재구성해 캐나다 작가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캐나다 작가는 다시 또 나름대로 재구성해 이야기를 할 것이고, 관객은 각자 나름대로 풀어내면서 자신의 일부분을 이야기할 것이다.

파이는 일본 보험조사단에게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하며 캐나다 작가에게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 영화는 관객의 결정에 그 결말을 맡겨 놓으며 끝을 맺는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이 많은 이야기들을 신앙이라는 관점으로 다시 풀어 미디어가 던져주는 이야기에 나의 삶을 스토리텔링해보면 어떨까 한다.

 

이복순 수녀(성바오로딸 수도회)

http://web.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48420&path=201304

 






     발행: 2012년 9월

     분류: 강론

     시간: 111분 24초

     가격: 2CD 1set 18,000원 | 2Tape 1set 10,000원

     대상: 모든 이


● 기획 의도

매일미사 해설로 신자들의 호응을 얻었던 신은근 신부님의 강론 음반이다. 신앙을 기쁨으로 이끄는 열 가지 열쇠를 찾도록 해주고 참된 신앙의 길을 발견하도록 한다.

● 주제 분류 - 음반 | 강론, 강의, 묵상

● 키워드(주제어) - 신앙, 신앙생활, 삶, 믿음, 사랑, 이별, 죽음, 인간, 교회, 십자가, 말씀, 예수님, 하느님

● 요약

신은근 신부의 신앙강의

매일미사 해설을 통해 깊은 묵상으로 이끌어 주었던 신은근 신부님의 강론 음반이다. 신앙을 기쁨으로 이끄는 열쇠의 비결을 사목체험 안에서 들려주고 있다. ‘신앙이 보물’, ‘잘 듣는 삶’, ‘행복한 부부생활을 위하여’ 등 열 가지 주제로 구성되었으며, 교리적 해설을 곁들였기에 신자 재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

● 상세내용

주일미사에 마지못해 참석한다, 신부님 강론이 지루하기만 하다, 고해성사를 보기가 귀찮다… 이 가운데 자신에게 해당되는 내용이 있다면 신앙생활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신앙의 열 가지 열쇠>는 신자의 의무를 짐처럼 여기지 말고 다시 한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라는 초대를 하고 있다.

신앙은 끊임없는 고백이고, 늘 다시 시작하겠다는 용기 있는 다짐이다. 믿음의 길은 우리 인생에 더없는 축복이다. 신앙생활을 기쁘게 하면 할수록 하느님의 사랑과 힘을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고 신은근 신부님은 힘주어 말한다.

음반에서는 기쁨으로 이끄는 신앙의 열 가지 열쇠를 한 가지씩 들려준다. 그중 열쇠 하나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고 하느님 안에서 기쁘게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첫 번째 열쇠는 교회에 대해 일관된 견해 갖기, 두 번째 열쇠는 신앙을 보물로 여기기, 세 번째 열쇠는 십자가를 껴안기, 네 번째 열쇠는 인간의 이중성을 바라보고 인정하기, 다섯 번째 열쇠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카리스마를 깨닫기, 여섯 번째 열쇠는 주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이기, 일곱 번째 열쇠는 잘 듣기, 여덟 번째 열쇠는 사랑의 올바른 개념을 간직하기, 아홉 번째 열쇠는 행복한 부부생활 추구, 열 번째 열쇠는 이별과 죽음 묵상하기이다.

교리적 해설을 곁들였기에 신자 재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 신은근 신부님이 전해주는 열 가지 열쇠는 다가오는 신앙의 해(2012. 10. 11 - 2013. 11. 24)에 신자들의 신앙에 촉매역할을 할 것이다.

 순서

첫 번째 열쇠 - 교회 안에서

두 번째 열쇠 - 신앙이 보물

세 번째 열쇠 - 십자가를 깨달아야

네 번째 열쇠 - 인간의 이중성

다섯 번째 열쇠 - 사람에게 주어지는 카리스마

여섯 번째 열쇠 - 인생의 주인이신 분

일곱 번째 열쇠 - 잘 듣는 삶

여덟 번째 열쇠 - 사랑에 대한 올바른 개념

아홉 번째 열쇠 - 행복한 부부생활을 위하여

열 번째 열쇠 - 이별 연습(죽음을 묵상하자)

● 대상

신앙생활을 기쁘게 하고픈 이, 신앙의 목적과 지향을 찾으려는 이, 신앙교육을 필요로 하는 모든 신자와 사목자. 하느님의 힘을 얻고자 하는 모든 이.

● 강론자 : 신은근 신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나 1969년 서울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를 거쳐 1976년 광주가톨릭대학교를 졸업했다. 1979년 사제품을 받은 후 마산 교구에서 사목생활을 했으며, 현재 미국 덴버 한인 천주교회의 주임 신부를 맡고 있다.


인터넷 서점 바로가기


 

미하엘 발트슈타인 지음, 이병호 옮김, 『몸의 신학 입문』,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0

 

하느님 사랑의 원형인 남녀 사랑

이번 세미나의 주제가 ‘몸의 신학’이라고 들었을 때 당연히 머릿속에는 그리스도의 몸 또는 교회의 신비체를 다룰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수녀님은 우리의 몸을 기도하는 몸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주제로 도움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첫날 강의를 시작하시는 이병호 주교님의 말씀은 전혀 예상을 뒤엎었고 충격과 놀라움으로 우리의 사고를 수습해야 했다.

몸의 신학을 펼치신 분은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이신데 교황님은 재임 초기부터 ‘수요일 일반 알현’ 시간을 이용하여 이 가르침을 펴기 시작하셨다. 몸의 신학의 주제를 쉬운 말로 요약하자면 모든 남녀가 몸으로 나누는 사랑의 지고한 아름다움에 대한 사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유는 하느님의 사랑 곧 자기 증여의 원형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자신을 남김없이 완전히 주시는 분이다. 인간의 사랑도 자신을 내어줌으로써만 성취되고 인격이 완성된다는 진리를 우리는 보고 배우고 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의 비극이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배우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사랑이 없는 가운데 이혼부부가 늘어나고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슬프고도 고된 삶이 시작되고 있다.

이른바 프로이트의 심리학 이후 여성들에게 임신에 대한 걱정 없이 성을 맘껏 즐겨 자신을 성취하라고 권장하는 성 혁명이 유행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인류사회는 가정파괴라는 비극의 절정에 이르고 있다.

피임약으로 성을 즐기도록 하는 것은 자기 증여의 원리가 아니라 상대를 자기 욕망의 소유로 삼고 지배하려는 비극의 논리인 것이다.

사실 교회 역사 안에서 성에 대한 표현은 금기시되었고 그것이 표현될 때는 항상 부정적이고 죄와 연관될 때였다.

가톨릭의 모든 사제와 수도자들이 정결과 독신의 신분으로 살면서 성의 아름답고 좋은 것을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일일지 의문이지만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은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창조설화의 ‘한 처음’으로 우리의 눈길을 돌린다.

하느님은 당신의 작품이 하나하나 완성될 때마다 ‘좋다’고 하셨고 마지막으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나서는 ‘참 좋다’라고 하셨다.

이렇게 아름답고 참 좋은 하느님의 작품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를 염원하시는 교황님의 사목적인 심려가 담겨 있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를 위해 시급하고도 핵심적인 가르침이 바로 [몸의 신학]이라는 것을 절절히 깨닫게 되었다.

[몸의 신학]의 원서는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고 교황청 가정평의회 위원인 미하엘 발트슈타인이 [몸의 신학 입문]이라는 저서를 내어 번역되었다. 요한바오로 2세의 [몸의 신학]에 관하여 사상적 배경과 철학적 접근방법, 영성적이며 사목적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개요를 담고 있다.

성가정을 이루기를 원하는 모든 부부와 결혼을 앞둔 젊은 남녀가 이 가르침을 받아들여 인생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

- 박문희 고로나 수녀

* 이 글은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에 실린 글입니다.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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