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 지음, 이석봉 옮김, 『사해 부근에서』, 바오로딸, 2011


언제까지나 그대 곁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 주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던가?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 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 53,1-5 야훼 종의 넷째 노래중에서)

이 책 안에서 작가 엔도 슈사쿠가 그려내는 예수의 모습은 바로 야훼 종의 모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얼핏 보면 힘이 없고 무능력하여 마냥 슬프기만 하다.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곧바로 누구나 치유해 주고 기적을 일으킬 수 없어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없는 사랑과 연민으로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과 고통을 나누는 일입니다. …나는 다만 사람들의 슬픈 인생을 하나하나 지켜보았고 사랑하려 했을 뿐입니다. …내가 한번 그 인생을 스쳐 지나가면 그 사람은 나를 잊지 못하게 됩니다. 내가 그 사람을 언제까지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인 나와 도다가 학창시절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일본대학에 다닐 때 별명이 '쥐'였던 폴란드 수사 코바르스키라는 심약하고 교활하며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나치수용소에서 최후를 어떻게 마쳤는지를 밝혀내면서 이 책은 반전을 이루는 동시에 충격적인 감동에 휩싸이게 한다.

 "코바르스키를 데려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내가 그의 곁으로 다가가 팔을 잡자 그는 심하게 무릎을 떨어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힌 그는 오줌을 싸고 있었습니다. 그는 울면서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습니다. 코바르스키는 비틀거렸으나 얌전하게 따라갔습니다. 그때 나는 매우 짧은 순간이지만 그의 오른쪽에 누군가 또 한 사람이 그처럼 비틀거리면서 다리를 질질 끌며 걷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코바르스키처럼 초라한 죄수복을 입고 오줌을 땅 위에 흘리면서 걷고 있었습니다."

코바르스키처럼 극도의 공포와 괴로움을 겪는 예수의 모습에서 우리는 왜 그가 십자가에서 목숨 바쳐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답을 읽는다.

오늘도 예수가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찾고 만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엔도 슈사쿠는 바로 이런 예수의 한없이 나약하면서도 한없이 큰 사랑, 아니 한없이 크기에 나약함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을 제시함으로써 커다란 희망을 준다.

- 박문희 고로나 수녀

* 이 글은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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