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파란 우리 할아버지
“세상에, 이분들이 우리나라 사람이랑 꼭 닮았어요!”
눈이 파란 두봉 주교님께서 달력 속의 한국인들과 꼭 닮은 남미 어느 부족의 모습을 가리키며 하신 말씀에 우리는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두봉 주교님은 이제 당신이 프랑스 사람이란 것도 잊으시고 대한민국이 “우리나라”가 되신 것이다.
안동에 살 때 나는 종종 공동체 수녀님들과 함께 두봉 주교님을 뵈러 갔었다. 두봉 주교님을 뵐 때마다 우리는 많이 웃고 온다.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반상회도 하고 옆집 통일교 가족의 자녀들을 당신 집 마당으로 불러 맘껏 뛰놀게 하시고… 이웃 무당 아주머니와 친근히 인사를 하시고…
주교님이 사시는 동네에 가면 모두 주교님과 친구다. 대부분은 천주교 신자들이 아니다.
스스로 안동교구에서 가장 천주교 신자가 적은 곳을 선택하셔서 작은 텃밭에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사시는 주교님을 뵐 때마다 척박한 동네 나자렛의 목수이셨던 예수님을 만난다.
“예수님은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셨기에 최고의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신 분이다. 그래, 그래. 내가 예수님처럼 사랑밖에 모르는 사람이 된다면 가장 큰 행복을 누릴 거야.” (가장 멋진 삶, 14쪽)
두봉 주교님께서 쓰신 『가장 멋진 삶』 중 당신이 사제의 길을 선택할 때 느끼셨던 마음을 표현하신 부분이다. 최고의 삶, 최고의 사랑을 원했던 욕심 많은 푸른 눈의 젊은이는 이제 한국 땅 시골의 할아버지가 되어 환히 웃고 있다.
『가장 멋진 삶』의 표지를 보면 땀에 전 누런 러닝에 밀짚모자를 쓰고 환히 웃고 계신 두봉 주교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 바로 가장 멋진 할아버지의 얼굴이다.
주교님의 표현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 탄복한 사람들, 반한 사람들,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당신의 사랑을 하시도록 예수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린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맘대로 사랑하실 수 있도록 나를 내어드릴 때 나 또한 예수님처럼 행복해진다는 것이 주교님과 주교님의 책을 접하면서 더욱 또렷해진다.
당신이 가꾼 상추를 손수 따셔서 한 아름씩 안겨주시는 주교님을 뵙고 오면서 우린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나라 사람이시지… 대한민국 사람보다 더 대한민국을 사랑하시는 우리 동네 할아버지, 예수님께 사로잡히신 우리 주교님…”
- 주민학 벨라뎃다 수녀
*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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