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취제크 지음, 성찬성 옮김, 『나를 이끄시는 분』, 바오로딸, 2012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아주 오랜만에 <신과 인간>이라는 영화의 수작을 감상할 수 있었다.

1996년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내전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알제리의 산골, 티브히린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가난한 마을사람들과 함께 노동하고 환자를 치료하며 종교를 뛰어넘는 사랑으로 살아가던 프랑스의 수사들이 납치,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영화 <신과 인간>은 실제 있었던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마을에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과 위기가 닥치자 수사들도 그곳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마을사람들을 지키며 수도원에 남아야 할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수사들은 갈등과 깊은 고민을 거친 끝에 자신의 안위를 뒤로 하고 모두 수도원에 남기로 결정하지만 결국 무장괴한들에 의해 일곱 명이 납치, 살해되었고 살아남은 두 명의 수사들에 의해 사건이 알려지게 되었다.

감동적 여운 속에서 또 한 분의 러시아 선교사 취제크 신부님이 떠오른다.

1940년, 재기발랄한 미국인 예수회 사제가 선교의 꿈을 안고 러시아에 잠입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곧바로 체포되고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형무소와 시베리아 강제노동 수용소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947년, 소속 수도회의 사망자 명단에 오르게 되고 그를 위해 장례미사를 드린 동료사제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지고 있을 즈음인 1963년, 그는 돌연히 러시아에서 귀환한다. 사제가 어떻게 소련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철의 장막 안에서 고난과 핍박 속에 보낸 23년을 그린 책이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와 [나를 이끄시는 분]이다.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가 실제상황의 외적인 사건 중심으로 엮어져 있다면, [나를 이끄시는 분]에서는 취제크 신부님의 영적이고 내적인 신앙이 나타난다.

“원시적으로나마 러시아인들과 처음으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된 취제크 신부님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수용소에서 비밀리에 미사를 드리기 위해 수인들은 어떤 위험도 기꺼이 감수하였다. 장소는 허름한 창고가 되기도 하고 질퍽한 웅덩이 한쪽이 되기도 하였다. 있는 것이라곤 사제와 수인들의 열렬한 신심뿐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할 만큼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다….”

시베리아의 처형생활에서도 사제로서의 임무를 다하다가 마침내 자유를 찾아 돌아올 수 있었던 신부님의 마음은 자신의 온 생애를 다 바쳐 돌보아온 그곳의 신자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자비심으로 넘치고 있었다.

티브히린의 수도사들이 알제리를 떠날 수 없었던 것은 “거짓 목자는 이리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면 양떼를 버리고 달아나지만,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는 말씀 때문이었다.

국가와 세계적 강대국의 탐욕적 권력 앞에서 진실과 진리가 박해를 받는 상황은 지금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평화의 섬, 제주 강정마을을 지키고자 기도하던 사제, 수도자들을 연행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생애를 바쳐 러시아의 양떼를 지켰던 취제크 신부님 그리고 알제리에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사님들의 신념과 용기가 오늘의 우리를 비춰주기를 기도한다.

- 박문희 고로나 수녀

* 이 글은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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